Chapter 679 - 623화 - 신수들의 확인! (3)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어, 그러니까...
백선 얘 지금... 나보고, 자길 죽여달라고 한 건가?
“...이미 깨달았을 거라 생각한다만, 신수는 불로영생의 존재다. 육체가 소멸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는 것이지.”
어처구니 없어하는 내 감정을 읽었단 듯이, 곰방대를 빨며 차분히 설명을 시작하는 백선.
그런 백선의 표정은 무엇인가, 희노애락이 보이질 않는 허무함만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세계수는 여신이 우릴 굳이 데려온 목적이 세계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고 추측했었다. 세계수의 영향을 받는 수왕국, 그 이외의 영역에도 에세르의 기운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
그렇다는 건... 신수는 이 우주에 속한 자연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여신의 의도로 만들어진 존재란 소리...
흐음... 난 신수는 몬스터에서 비롯된 신성한 존재라는 정도의 지식 뿐이었는데... 이러면 이제 거의 확실한 것 같은걸?
내가 아는 우주의 정보는, 틀린 건 아니지만 여신의 의도만 쏙 빠져있는 모양이야.
“초창기의 신수들은 그런 여신의 의도대로, 지금의 인간 왕국이나 마족령을 돌아다니며 에세르의 기운을 퍼트렸다. 덕분에 그때 당시엔 세상에 맑은 정기가 충만했다고 하던데... 헌데 거기서, 여신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점이 있었지.” “...뭔데?” “우리 인간의 영혼이, 영생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니라.”
뭔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떠오른 것일까.
허무해 보이던 백선의 얼굴에서 눈썹이 살짝 까딱거리며, 무언가 기분 나쁜 듯한 기색이 나타났다.
“새로운 세상과 제 2의 삶에 만족하는 건 수십 년 정도뿐. 인간이던 시절의 욕망이 약해진 채 영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괴로운 것이다. 때문에 신수들은 천 년도 버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던가, 아니면 생각하기를 그만두어 버리게 되지.” “어... 그냥 지낼 만큼 지내다가, 정 괴로우면 그때 자살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것이 불가능 하느니라. 이 감정과 욕망이 부족한 육체는 자살할 시기를 놓치게 되면, 괴롭다 생각하면서도 자살하고픈 욕망이 생기질 않으니 말이다.”
으음~? 어째 이건 잘 이해가 안 되는걸. 아무리 욕망이 부족하더라도 자살하는 건 별로 문제될 것 없지 않나?
“아마 이해가 안될 테지. 이건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자살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을 실행하려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에 가깝겠구나.” “음... 애초에 시도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야?” “그렇지. 본녀가 지금 딱 그 상황이니라.”
하아... 어쩐지 무아의 상태로 그냥 시간만 보내게 된다는 그런 말인 것 같은데...
갑자기 걱정스러워 지는데. 나도 오래 살면 저렇게 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려나?
“여신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다른 판단을 내렸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때부터 세계수는 여신을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만... 이건 또 길어질 이야기니 다음에 얘기해주마.”
무언가 내 마음에 들 거란 것처럼,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세계수에 대한 이야기를 뒤로 미루는 백선.
저 표정이 감정과 욕망이 부족한 상태라니. 아무리 봐도 영 믿기지가 않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그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만, 본녀는 지금 의욕은 물론이고 별다른 생각이 없는 상태이니라. 그나마 마왕이라는 그대의 존재로 인해, 이렇게 생각해 왔던 것들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그대가 세상을 멸망시킬 존재였다면, 그냥 얌전히 멸망을 기다릴 생각이었다만...” “...내가 멸망을 막으려고 하고 있으니, 그럴 거라면 차라리 죽여달라?” “그래. 본녀가 움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라. 어쩐지 그대가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 같단 불길함을 느껴서 말이다.”
그걸 불길하다 말하다니. 이거 참... 백선 얘는 요화랑은 꽤나 다른걸.
지금 말하는 걸 봐선 대부분의 신수들은 다 자살하거나 생각을 그만둔 상태가 된 것 같은데... 그럼, 지금 내가 만난 네 마리만 잘 정리하면 신수는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건가?
흐음. 그건 좋은 소식이긴 하다만... 하필이면 암컷인 백선이 나보고 자길 죽여달라고 하다니...
...응? 그럼 요화는 자기 제자들은 왜 키우는 거지? 욕망이 모자라면 당연히 그런 제자도 키울 생각이 들질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바로 죽여달라는 말은 아니다. 그대가 본녀를 즐길 만큼 즐기고 난 이후에, 질리게 되었을 때... 그때, 본녀를 죽여주면 되는 것이야.” “내가 질리게 될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될 줄 알고?” “흐음. 적어도 그대가 세계를 정복하기 전엔 죽여줬으면 한다만...”
하아... 그러니까... 얼마든지 가지고 놀아도 좋으니, 확실히 죽여주겠다는 약조만 해달라?
아~ 이거 난감하네... 암컷은 누구든 날 섬기며 행복해져야 하는데... 설마 내 앞에서 죽여달란 말을 하는 암컷이 있을 줄은...
이걸 어쩌지? 이렇게 바라는데 진짜 죽여줘야 하나? 아니, 왜 다른 신수들한테 부탁하지 않고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신수들끼린 서로 죽이지도 못하나? 하아. 뭐가 됐든 참 마음에 안 드는 부탁이네 이거.
“...그대의 곁에는 요화가 있을 테니 충분할 게야. 그를 위해 그대의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이기도 하고.” “...음? 내 영혼을 다듬는 게 요화에게 도움이 되나?” “요화 뿐만 아니라 그대 역시 마찬가지다. 여신에게 휘둘리게 될 가능성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 그대의 불안정한 영혼으론 이 우주에서 튕겨나갈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튕겨나가? 그건 또 무슨...
영혼이 안정되어야 이 우주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찌됐건 나한테도 좋은 거다, 뭐 그런 얘기?
...쯧.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시간이...
“...시간이 다 되었구나. 후후. 하루 하루 나눠야 할 대화가 있으니, 그래도 시간을 버티는 괴로움이 조금은 덜어진 느낌이로다.”
아니, 거기서 그렇게 말하면 이걸 따질 수도...
하아. 정말... 무슨 자살을 바라는 암컷이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느낌이네 이거.
“부디 잘 생각해 봐다오. 마왕이여. 대가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들어줄 테니 말이야.” “...일단, 가서 내 암컷들이랑 같이 생각 좀 해볼게.” “후후. 그래. 기대하고 있도록 하마.”
저렇게 미소 짓고 있는 표정 조차, 본인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그러한 미소일 터.
백선에게서 어째서 인형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면서.
그렇게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백선의 방을 빠져 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꺼냈던 말자지를 집어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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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백선이 그런 얘기를...”
백선과의 보상 시간을 보내고 손님용 별채로 돌아와, 나는 저녁을 먹으며 내 음수들에게 백선이 얘기했던 내용을 공유했다.
그러는 동안 식욕이 영 나질 않는 찝찝한 기분이라, 나는 세레스와 클레아의 겹쳐진 허벅지에 누워 그녀들이 물어다 주는 요리를 우적우적 씹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는 세레스와 입으로 반찬을 물어다 주는 클레아.
클레아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반찬을 받아먹자, 사이 좋게 모여 식사하던 내 음수들이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운 이야기네. 마왕님이나 여신에 관한 것도 그렇고... 쉽게 믿기가 힘든 이야기인걸.” “하지만 뭐든 해도 된다며 자신을 제시한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니겠지. 우리를 막아선 신수가 단 네 마리뿐인 것도 설명이 되고 말이야.” “신수에 대한 거야 그렇다고 쳐도. 영혼을 다듬는다는 얘긴 믿을 수 있는 거야? 마왕님의 힘에 영향이 있거나 하면 곤란한데~” “그렇네요. 가장 중요한 건 마왕님께 위험한 것이냐는 거니까...”
음~ 나를 걱정하는 듯한 내 음수들의 표정... 그래. 암컷들의 표정은 저래야지.
사랑하는 수컷의 몸을 걱정하는 저 자세야 말로, 암컷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라고.
그런데 백선은 그런 자세는 커녕... 하아. 갑갑하다 갑갑해~
“흐음... 어때 클레아? 괜찮은 것 같아? 아직 발기는 될 듯 말듯한 느낌인데...” “음~ 확실히 큰 이상은 없을 것 같아요. 마왕님의 중심에 기분 나쁜 흔적이 보이기는 한데...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뭐, 확실히 나도 몸 상태는 그리 나빠진 것 같진 않아. 하지만 영혼을 다듬는다는 게 영 이해가 안되니...”
라피나를 음수로 만드는 동안 영혼이란 것에 대해 제법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게 참 알면 알수록 오묘한 느낌이네.
내게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다듬는다니. 이걸 뭐라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라피나. 영혼이 가장 특수한 네 의견은?” “음...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불안정하다는 뜻은 마왕님의 육체에 영혼이 완벽하게 깃들지 못했다는 뜻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영혼에 육체와 분리된 상태로 유지시키는 에너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수성력이란 힘을 써서, 그 에너지를 마모시킨다는 건가...”
바울이랑 라플라스 새끼의 영혼을 불사지르며 알게 된 것이지만, 영혼과 육체는 하나이면서 별개인 오묘한 것이다.
심신이 멀쩡하면 영혼이 육체와 단단히 결합된 상태지만, 육체가 심하게 손상되거나 정신이 망가질 경우엔 그 결합이 느슨해지는 그러한 것.
그걸 이용해 망가진 두 놈의 영혼에 쉽게 접근해 불태울 수 있었던 건데... 나의 경우는 심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 느슨한 상태... 라는 건가?
흐음. 그래... 지구에서 내 영혼을 가져오려면, 영혼을 담을 에너지가 필요했을 거고...
내가 완성되다 말아서 영혼을 감싼 에너지가 남아있는 것이라고 보면 그럭저럭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네.
왜 완성되지 못했는지, 이 추론이 맞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무튼, 대강 그렇다는 거겠지?
“고민되네 이거~ 발기 부전 상태가 되는 것도 짜증나고. 내 영혼을 완성한다는 게 과연 좋은 쪽일지... 냠.” “하음♥ 우물... 쯉...♥”
이번엔 클레아와 교대해 내게 반찬을 물어온 세레스.
혀를 뒤섞으며 세레스에게 반찬을 보내자, 세레스가 먹기 좋게 반찬을 씹어서 다시 내게 넘겨온다.
안 그래도 맛있는 진미가 더욱 맛있어지는 느긋한 식사. 천천히 세레스가 황홀한 표정으로 입을 떨어트리자, 근처에 있던 리즈벳이 나를 바라보았다.
“흐응. 글쎄.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아 마왕님?” “음? 그건 무슨 말이야?”
집어 든 튀김을 색기넘치게 한 입 베어 물면서 우물거리던 리즈벳.
입에 들어있는 것을 삼킨 리즈벳은 뭔가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간단한 것이란 듯이 가볍게 나에게 대답했다.
“백선이 다른 생각이 있든 말든. 어차피 걔도 암컷이잖아. 수작을 부리기 전에 마왕님의 암컷으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그 수성력이란 힘을 받아내고 나면 요 말자지 녀석이...” “뭐가 걱정이야~♥ 마왕님 곁에는 우리가 있는데♥”
입을 닦은 리즈벳이 자리에서 일어나, 키득거리며 누워있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몸 밖으로 나와 꿈틀거리고는 있지만, 아직 고개를 들진 못하겠다는 듯이 축 늘어져 있던 말자지.
리즈벳은 오랜만에 내 음수가 되기 이전의 앙칼진 느낌이 보이는 미소를 내비치며, 내 말자지를 발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음란하고 뛰어난 음수들이, 마왕님을 돕고 있다구? 허접한 신수새끼들의 힘 따위, 알게 뭐야?”
그 시절과는 달리 나를 깔보는 듯한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제법 그 시절의 느낌이 나는 저 키득거리는 표정.
저런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며 말자지를 매끈한 양말을 신은 발로 문지르다니. 큭큭. 이거... 흥분되는 격려인걸? 아직 말자지가 쳐져 있는 게 너무 아쉽네 이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면 마왕님의 암컷이 된 순간 고백하겠지♥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백선을 따먹어버려♥” “큭큭. 그렇지... 따먹기만 하면 알아서 내게 복종할 테니...”
그래. 리즈벳 말대로야.
뭘 굳이 하나 하나 따지고 있는거람? 어차피 내가 할 일은 하나인데 말이야.
난 그냥 열등한 수컷들과 맺어져야 할 불쌍한 암컷들을, 내 말자지로 구원해주면 될 뿐이잖아?
암컷을 따먹고 그 암컷들의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 그게 바로 나란 마왕이 해야 할 일.
그 외의 것들은 그냥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일일 뿐.
큭큭. 그러네. 이거 리즈벳한테 한 방 먹었는걸. 갑자기 머릿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야.
“그래! 뭘 이것저것 재고 있어! 수성력이니 뭐니 그딴 거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해! 나도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까!” “킥킥♥ 바로 그거야 마왕님♥” “어머나~♥ 마왕님이 리즈 덕분에 의욕이 생기신 모양이네요♥ 후후♥” “아핫♥ 역시 오빠랑 가장 오래 지낸 리즈 언니네♥ 오빠 기운 북돋아 주는 건 최고야♥”
내가 몸을 일으키며 외치자, 내 음수들이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키득거린다.
암컷을 범한다. 열등한 수컷들을 도태시킨다. 그렇게 암컷들을 차지해, 그녀들에게 새로운 종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나의 의무.
멸망이니 구원 따위 알 빠냐? 그딴 거, 그냥 내가 암컷들을 범하는 거에 따라오는 것일 뿐이라고.
“페이엔! 정력제니 뭐니 있는 거 다 들고 와봐! 먼저 요화부터 따먹어야 하니까!” “킥킥♥ 알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왕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 말자지를 건강하게 만들 정력제를 부탁하자, 키득거리며 내게 예를 갖추는 페이엔.
그런 내 모습을, 정면에 있는 리즈벳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