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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735화 (735/749)

Chapter 734 - 요화의 비밀 1

지금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동안 아무리 애써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왠지 모르게 그립게 느껴지는 광경이 보여지고 있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어쩌다 혼자 이런 곳까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조금 젊게 느껴지는, 날 키워주신 신관님의 얼굴.

저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 그런데 어째서 신관님의 얼굴이 제대로 보여질 않는다.

마치 내 기억에서 신관님의 얼굴만 뜯겨나간 것처럼, 보고 싶은 저 얼굴이 제대로 떠오르질 않는다니.

어렵게 떠올린 기억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타인의 기억을 보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아이가 우리 신사로 오게 된 것... 이 또한 XX 신 님이 이끄신, 이 아이의 운명인 것이겠죠... 그러니 우리 신사에서...”

신관님이 날 발견하신 날이, 맑은 날이었다고 했던가? 아니면 흐린 날이었다고 했던가?

어떤 날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질 않지만. 신관님이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모습만은 제대로 보이고 있다.

마치 부모를 잃고서 한참을 떠돈 것처럼, 너덜너덜한 모습을 한 어린 여자아이.

어째서인지 부모도 자신의 이름도 떠올리지 못하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이다.

“네 이름은 오늘부터 XXX 다. 너는 앞으로 이 신사에서, XX 신 님을 모시는 무녀가 되도록 하거라...”

어째서일까. 이건 분명 내게 있어서, 소중하기 그지 없는 기억일 텐데.

그런데 정작 신관님이 붙여주셨던, 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게 어느 시대였던가? 어디에 위치한 신사였었지?

무엇인가 망가진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처럼, 기억이 어딘지 모르게 누락되어 있다.

“아아. 그렇군요. 이 아이가 새로운 무녀님입니까.” “어린 아이가 혼자 그런 위험한 곳에... 요괴에게 붙잡혀 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군요.” “XX 님이 보살펴 주신 것인가. 네가 이곳에 온 것도 다 신님의 인도인 모양이구나.” “홀홀. 어린 무녀님.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그렇게 기억이 어딘가 누락되어 있는 와중에도, 선명히 떠오르는 이 포근한 느낌.

갑자기 신사의 무녀가 된 부모조차 기억 못하는 아이를,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던 고마운 사람들이 보인다.

신관님과 마찬가지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질 않고 있지만. 그래도 모습에서 하나씩 기억이 나는, 신사를 방문하던 사람들의 그리운 느낌.

이렇게나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른다면, 분명히 그 사람 역시...

“네가 아버지가 데려왔다던 그 아이구나? 반가워. 나는 XXX 야...”

아아... 어째서... 가장 보고 싶은, 그 사람의 얼굴인데...

그런데 얼굴은 커녕... 저 사람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다니...

이름만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더는 여한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기억이...

읏... 그래도... 이렇게 저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 것 만으로도, 가슴이...

“저 마을은 아주 오래 전부터 XX 신 님께 보호받고 있었단다. 이 신사는 그런 XX 님께 감사하기 위해 지어진 신사지. 너 역시 우리 신사의 무녀가 되었으니, 성심 성의껏 XX 신 님을 모셔야 하는 거란다.”

...그랬었죠. 신관님.

분명 아득히 먼 옛날부터. 신 님께서 마을을 보호해 주셨다고...

마을을 평화롭게 지켜주시는 신님이시니, 당연히 진심으로 그 분을 섬겨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신님은 저를...

저희를, 그렇게...

“홀홀. 무녀님. 아침부터 청소를 하시는 겁니까. 기특해요. 아주 기특해.” “호오. 벌써 축사를 외우신 겁니까. 어린 무녀님이 꽤 똑똑하시군요.” “날이 갈수록 무녀다운 모습이 되어 가시는데요? XX 신 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무녀님. 이번에 수확한 과일 좀 가져왔습니다. 신관님과 같이 드셔보시죠.”

전혀 상관없는 어린 아이일 뿐인데. 그런 아이가 갑자기 무녀가 된 것을, 비웃거나 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던 고마운 사람들.

저렇게 날 배척하지 않아준 사람들 덕분에, 무녀로서의 내 삶은 너무나도 평화로웠었다.

저 고마운 사람들과 평화로운 삶 때문에, 무녀 이외의 삶은 전혀 생각질 못해서...

내가 조금 다른 길을 걸었더라면, 그런 끝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게 친절히 대해주는 저 사람들이 그러한 마지막을 맞이했어야 했다는 것은... 너무...

“공양물은 이 축사를 읉으며 XX 신께 기도를 드리면 된단다. 어디, 다음부턴 네가 진행해 보겠느냐?” “XXX! 같이 놀러 가자! XX 님이 기분이 좋으신지,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 “이 술은 XX 님께 바치는 특별한 술이란다. XXX 네가 좀 더 크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마. 그땐 나 대신 XXXX와 네가 같이 만들어 보거라.” “XXX. 며칠 뒤에 마을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나랑 같이 구경가지 않을래?”

아아... 하지만... 내가 무녀가 되지 않았으면...

내가 이 신사에 머물지 않았으면, 이 때의 행복을 누릴 수는 없었겠지...

내게 늘 웃어주던 착한 마을 사람들과, 날 진심으로 가족처럼 대해주던 신관님과 저 사람...

이때의 추억 만큼은... 정말, 행복했던 추억이라... 이것 만큼은...

“XXX... 혹시 괜찮다면... 나랑, 결혼해 주지 않겠어...?” “...응...♡”

특히 당신이 내게 청혼했던, 이 순간...

이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

아버지나 다름없는 신관님이... 마을의 모두가... 그리고 당신이, 날 받아들여줘서...

그래... 정말 이때까지는, 행복했었는데...

“홀홀. 무녀님과 신관님이 결혼하시는 겁니까. 이거 정말 축하할 일이로군요.” “하하.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역시 이렇게 된 거로구만.” “계속 무녀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더니. 아예 말뚝을 박는구나? 후후. 아무튼 축하해 XXX~!” “그래. 너희 둘의 뜻이 그렇다면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지. XX 님께서도 기뻐하실 게다.”

응... 정말, 고마워요 다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축하해 줬는데. 이 뒤에 나는...

모두가 축하해 준 만큼, 당연히 행복해졌어야 했는데. 그랬는데...

나는, 전혀 행복해 지질 못해서...

“하아, 하아...! 읏, XXX...!!” “아, 아아♡ 당신, 당시인♡” “흐읏, 읏...! XXX...! 나의, 아이를 낳아줘...!!” “네엣♡ 낳을게요♡ 여보오♡”

아아. 그래. 분명...

이렇게 그이와 이어지던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준 사랑하는 남편.

그런 남편의 아이를 잔뜩 낳으며, 앞으로도 이 신사의 무녀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으읏...! XXX...! 간다...!” “네엣♡ 와줘요 여보♡ 당신의 씨앗을, 제 안에...♡” “흐읏, 아, 하아아아악...!!” “...? 오, 오호옷...?”

...? 어라...? 뭐지 이건...?

어...? 내가... 남편과의 ‘교미’에서, 이런 기분을 느꼈던가...?

어라... 이상하다... 분명 이때까지는, 정말 행복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어째서인가... 남편과의 ‘교미’의 기억이, 뭔가 조금 모자란 듯한...?

“하아, 하아... XXX... 어때? 만족스러웠어?” “네에... 만족... 응? 어라... 만족...?” “하하... 다행이야... 앞으로도, 널 더욱 만족시켜 줄게...”

...분명 여기서는... 만족스러웠다면서, 부끄러운 듯이 남편을 바라봤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어째서... 내 기억이, 이렇게 미묘하게 다른 것 같지...?

이상한 느낌... 어째서... 남편의 얼굴이 보이질 않는 게, 이렇게나...

다행이라는, 그런 기분이 드는 거지...?

“...XXX. 의사 선생님은 뭐래...? 이번에도...?” “...네. 미안해요...” “으응. 아니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아직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것 같으니까. XX 님께 기도하면서 기다려 보자고.”

아... 응...? 으, 응... 그래... 분명, 이 시기 때쯤부터 였어...

내가 뭔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이... 응? 어라...? 이 때가 아니라, 남편과 맺어졌을 때부터였나...?

읏... 뭔가 기억이... 조금, 뒤죽박죽인 것 같은 느낌이라...

...아무튼... 이때쯤부터, 뭔가 이상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었지...?

“XX 님... 부탁 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XX 님을 섬기겠사오니... 부디, 그 이와의 아이를...”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기도해도. 수 년이 지나도록 생기질 않던 그이와의 아이...

처음엔 그이의 아이를 몇 명이고 낳을 생각이었는데. 그러긴커녕 단 한 명의 아이조차 임신하질 못해서...

그래서 매일 신께 기도해 보았지만... 그 신은, 내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나에게 더, 커다란 시련을...

“쿨럭, 쿨럭...! ...후우... 아무래도, 나는 이제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아, 아버지...” “아버님...” “쿨럭...! 이제부터는 XXXX 네가 이 신사의 신주다. XXX와 함께 이 신사를 잘 이끌어 나가거라...” “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XX 님께서 분명...” “하아... 아니야... 이것도 다 XX 님의 뜻인 게지... 내 나이도 있으니 이제 그냥 때가 된 것 뿐이야... 쿨럭...! 하지만... 손주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야 하는 건, 조금 아쉽군... 쿨럭, 커흑...!” “아, 아버님!!”

아아... 신관님... 아니, 아버님...

정말 감사한 아버님께, 귀여운 손주들을 안겨드리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아버님이 떠나실 때까지... 손주 하나 제대로 보여드리질 못해서...

읏... 정말, 죄송해요 아버님...

“쿨럭, 커흑...! 안돼 XXX... 나까지 이런 걸 보면, 이건 전염되는 그런 병일 거야...” “으흑... 하, 하지만, 여보...” “금방 일어날 테니까... 들어오지 말고, 신전에 가 있어... 쿨럭...!”

응. 그래... 아버님은, 그저 시작이었을 뿐...

그렇게 아버님이 떠나신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당신까지 쓰러져 버렸었지...

아니, 당신뿐만이 아니야. 이때부터, 마을 전체에 수상한 병이 퍼지기 시작해서... 그래서, 신사를 찾아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차라리 이때 사람들과 뭔가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나는... 무녀일 외엔 배우질 못해서...

“XX 님... 부디, 제 남편과 마을 사람들을... 제가 좀 더 노력할 테니, 제발...”

그래서 멍청하게 정말 있는지도 모르는 신에게, 애원하듯이 매달렸었지...

부정함이 없도록 정성껏 몸을 단장하고. 신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게 정성 들여 공양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매일 기도했었는데. 그런데도 신은 간절한 내 부탁을 들어주질 않아서...

‘누구’ 와 달리 나를, 커다란 불행으로 밀어 넣었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있지도 않은 신이었는데. 그런데 바보처럼, 그런 존재에게 매달렸었다니...

하하... 나란 여자는 정말...

너무나도, 어리석은 여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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