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126.엘로시아의 어머님
힐이 동료가 된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행운이었다.
경계 너머에서는 하루에도 셀 수 없는 마물과 마족이 튀어나오는데. 힐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 경계에서 안전하게 용사들은 강해질 수 있었다.
정신공격을 통해 마족과 마물을 상대하기 쉽게 만들고, 휴식이 필요할 때는 그림자로 벽을 세워 휴식을 취하게 하며, 끊임없이 싸움이 가능하도록 도와줬다.
역시 몽마여왕이라고 해야 하나? 마족들이 이 그림자 벽 너머에 가득한 것이 느껴지는데, 이 것을 깨트리거나 침범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보인다.
마족들한테 힐은 배신자겠지만.. 전 마왕의 심복의 마기를 버티는 마족은 얼마 없는지 그림자를 건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그만 돌아가자.”
“네!”
시아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신이 걱정했던 용사로서의 정신적 성장도 꾸준히 되고 있는 모습인 것이. 일주일동안 쉬지 않고 마물, 마족을 퇴치하며 조금은 용사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한 달 뒤까지 과연 용사들이 그만큼 강해 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거 예상보다 더욱 강해질지도 모르겠다.
뭐.. 마족들의 경계 앞에서 이렇게 죽치고 2주간 죽어라 사냥만 했는데 강해지지 않는 것도 이상한가?
근데 이렇게 내가 아니라 힐이 우리 용사들을 처음부터 도와줬다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용사들이 지금보다도 더 강해졌을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힐을 쳐다보니 방긋하고 내게 웃음 짓는다.
“좋아. 충분히 쉬었으니까 이제 그림자 허물어.”
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림자의 벽을 천천히 허문다. 허무는 벽을 보며 임전태세를 갖추는 용사들과 세레스티나를 보며 나도 싸울 준비를 한다.
-슈루룩
“크와아악!!!”
“용사를 죽여라!”
그림자의 벽이 사라지자마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족과 마물군세가 몰려든다.
-슈아아악!
일주일 간 경험해서 익숙한 상황이어서 그런지, 용사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몰려드는 마족과 마물들을 계속해서 베어나간다.
여기가 참 지옥이네.
마물과 마족의 시체. 마족의 피로 흥건해져 이미 죽어서 쩌억쩌억하고 가뭄이 일어난 듯 갈라져있는 땅.
이 것은 몇 번을 봐도 정신이 피곤해진다.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대륙 전체가 이런 모습이 되어버리는 건가?
-서걱
“크아아악...!”
끔찍하네.
길을 만들어 계속해서 마물과 마족들을 앞만 보며 베어나가는 용사들을 뒤 따라가며 미처 못 죽인 마족들과 마물을 인혁이 뒷정리하듯 베어나간다.
***
“새 무기요?”
“그래.”
새로운 무기라는 소리에 민건이 기뻐한다. 시아는 지금까지 써 온 무기가 마음에 들고 익숙했는지 좀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저 무기들도 수명이 다 달았다. 황제가 좋은 무기를 챙겨 준 것 같기는 하지만, 계속 날을 관리해줬지만 계속 써서 저 무기들은 안 된다.
용사들보면 성검 같은 거 있지 않나? 그런 것도 안 만들고 뭐한 거야 여신은..
“근데 어디로 가는 거 에요..?”
“말했잖아? 용의 둥지라고. 드래곤 레어.”
“드래곤 레어..?”
용들은 예전부터 진귀한 무기, 아티팩트등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몇 백.. 몇 천년을 살아올 텐데 유적을 수 없이 공략 해냈을 테니까.
하지만 쓰지도 않으면서 모으는 그 수집가의 모습과 절대 남한테 자신이 모은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딸 사위한테 마왕을 죽이기 위해서인데 설마 안 주겠어?
지금 가려는 곳은 엘로시아의 부모님의 레어. 인간 주제에 용을 쓰러트리고 임신시킨 내가 꼭 보고 싶다고 했는데 용사파티가 되면서 무산되었다.
드워프들의 지하도시 델가른에서 만드는 무기가 최고지만.. 여기서 가기에는 너무 멀다. 이 참에 한 번 뵐 겸 무기도 얻어오고 나쁘지 않을 것이다.
딸을 임신시켰다고 죽이지는 않겠지.
“그리고 무기도 얻을 겸 너희 휴식도 좀 취해야지.”
“휴식이요?”
휴식이라는 말에 좋아하는 둘이지만 시아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는다.
“저희가 마물과 마족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강한 마족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힐 같은 애들 튀어나오는 거 아니면 우리 없어도 충분히 막아.”
“그치만..”
“지금 최우선은 너희의 휴식과 새 무기야. 강해져도 마왕이랑 싸우다 멘탈 터지거나 무기 부러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 말에 시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용사 같은 모습은 좋지만 저러다 펑 터져버린다고.
이미 일주일동안 수천의 마족을 잡아서 능력치가 300에 근접했는데도 불안한가 보다. 이제는 둘이 함께 나한테 덤비면 꽤나 버겁다.
강해져야 좋은 거지만 막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강해지니 마음이 착잡하면서도 대견하다.
-스윽 스윽
시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자 시아가 귀를 빨갛게 물들이며 부끄러워한다.
“......”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인혁의 모습을 보며 민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세레스티나와 힐도 자신의 여자면서 시아도 노리는 것인가..?
아내도 엄청나게 많다고 하는데.. 분명 존경할만한 형이지만 시아한테 저런 짓을 할 때면 안 좋은 생각이 든다.
시아는 저런 유부남이 머리 쓰다듬어주는 것이 뭐가 좋다고..! 어차피 세상을 구하는 것은 우린데...
“민건용사님 표정이 안 좋은 겁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레스티나님.”
“흐음.. 알겠는 겁니다.”
자신을 수상한 듯 바라보는 세레스티나를 보며 놀란 가슴을 살짝 달래는 민건.
아무것도 모르는 저 순진한 모습이.. 밤에는 형한테 깔려 앙앙대며 우는 모습으로 바뀌는 거겠지..?
민건이 세레스티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인혁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시아와 민건은 용사로서 강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시아는 자신을 도와주는 인혁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마음 속 깊이 몰래 숨겨둔 애정,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마왕을 꼭 물리쳐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정말 한 없이 용사다운 마음으로 강함을 꿈꾸지만.
하지만 민건은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강한 인혁에게 경외.. 존경의 마음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지만.
세레스티나와 힐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것을 알고,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자신을 보며 인혁에 대해서 가지고있던 남자로서의 열등감.. 그리고 마왕을 물리칠 것은 자신 뿐이라는 자만심이 마음속 깊은 곳부터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시아처럼 용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민건은 자기 스스로 조금씩 파멸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 안 가서 일어나는 미래의 일이지만..
그저 자신 앞에 있는 인혁에 대한 열등감.. 시아만은 줄 수 없다는 욕망으로 시야가 점점 좁아져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것을 알까?
하지만 민건이 그것을 알 방도는 전혀 없었다.
“자 2주밖에 없다. 얼른 가서 무기 얻어오고 휴식도 충분히 취해야 해.”
앞으로 2주 뒤면 마왕의 심복 두 명이 함께 튀어 나온다.
시아와 민건이 이대로만 성장하면 휴식을 취해도 무리 없이 쓰러트릴 것이라고 힐도 보장했다.
***
엘로시아의 부모님이 있다는 레어에 도착했다.
거대한 용의 둥지, 동굴 같은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드래곤의 성이란 것을 과시하듯 엄청난 크기의 용의 석상과 함께 거대한 성이 하나있다.
하긴 엘로시아도 델가른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저택에서 머물렀으니까..
그래도 일단 딸의 사위로써 환대는 받지 않을지언정 별 문제 없이 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인혁님 이게 뭐인 겁니까?!!!”
“나도 몰라.”
-쿠오오오오!
환대가 아니라 공격을 받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절대.. 절대 용서 할 수 없다 인간...!!!”
성에 다가서자 마중나오듯 나온 사용인으로 보이는 수인한테, 엘로시아의 남편이라고 소개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저 회색빛의 용이 뛰쳐나왔다. 내 귀여운 딸을 더럽힌 인간이라며 무차별 적으로 공격하더니.
그리고서는 이 상황이다.
-콰아아앙
“꺄악..!”
“으아악!”
브레스를 마구 내뿜고 날갯짓으로 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솔직히 죽이려고 전력을 다하면 죽일 수 있지만.. 엘로시아의 아버님을 어떻게 죽여..! 그렇다고 제압하기에는 저렇게 미쳐 날뛰는데.. 안 다치게 제압이 가능할까?
일행한테는 공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니 지금 이렇게 비명을 지르며 저 용의 공격을 피하고 만 있다.
이런 씨발.
브레스 뿜는 것을 멈추더니 하늘 위에서 메테오라도 소환할 속셈인지 용언마법을 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아버님께 손찌검을 해야 하나..?
엘로시아한테 마음속으로 사과하고 장인어른한테도 사과한 다음, 용검을 뽑아 저 용언마법을 저지하려고 하는 순간.
“크르르.... 크... 크억...!”
-쿠구구구구구!
어디서 또 뛰쳐나온 거대한 용이 그대로 날라오더니 용언마법을 쓰던 엘로시아의 아빠의 머리를 짓누르며 땅에 처박아버린다. 처박힌 엘로시아의 아빠는 기절했는지 혀를 내밀고 쓰러져있다.
엘로시아의 용일 때 모습과 색깔과 무척이나 닮았다. 엘로시아보다도 더 어두운 듯한 검은 용. 저 용은 또 누구지 싶다가 용이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니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엘로시아의 어머님...!
엘로시아보다도 거대한 뿔.. 거대한 꼬리.. 엘로시아와 무척이나 비슷하게 생겼다.
엘로시아가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엘로시아한테 성숙함이 겸비된 듯한?
“우리 바보 같은 그이 때문에 미안하구나. 많이 놀랐지?”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딸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다. 어서 들어오렴.”
쓰러져있는 회색 용을 버려둔 채 우리에게 웃으며 들어오라 손짓하는 엘로시아의 어머님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엘로시아의 어머니인 에르다 델 아달라츠 시어든이라고 한단다.
“아 예.. 송인혁이라고 합니다.”
“후후.. 너의 이름은 이미 엘로시아한테 들어서 알고 있단다. 다른 사람들을 소개 시켜주렴.”
차례대로 세레스티나와 힐, 민건과 시아를 알려주자 재밌다는 듯 웃기 시작하는 에르다.
“언제든 만나러 오라고는 했는데.. 그 유명한 용사파티 전체가 함께 올 줄은 몰랐구나.”
“......”
“조금 수상한 것도 하나있고 말이야?”
“!”
눈웃음 짓는 눈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동공이 힐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엘로시아가 그렇게 말하던 위대한 용이라 이건가? 힐의 정체를 바로 간파해냈다.
에르다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는 힐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하듯 고개를 살짝 숙일 뿐이었다.
“수상하지만.. 같이 있는 것을 보니.. 괜찮아 보여도 조심하도록 하렴.”
“네, 충고 감사합니다.”
“자.. 그래서 무슨 이유 때문에 갑자기 찾아온 거지?”
어떤 방으로 들어가자 넒은 공간이 나온다. 커다란 식탁 주변에 있는 의자 하나에 앉더니 눈웃음짓는다.
“우리 딸의 귀여운 인간 남편이 무슨 일로 용사까지 전부 이끌고 찾아왔을까?”
식탁 위에 엘로시아가 빨았을 거대한 맘마통을 과시하며 말하는 에르다.
내가 쳐다보자 귀엽다는 듯 가슴을 팔로 슬쩍 더 모은다.
흠흠.. 하는 기침과 함께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하자 별거 아니라는 듯 흔쾌히 허락하는 에르다.
거기다 사정을 듣고는 이 성에서 휴식을 취해도 된 다고했지만.. 갑자기 찾아와 무기를 달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이러기는 조금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예의있는 것은 좋지만 계속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다.”
“..그러면 며칠만 실례하겠습니다.”
계속되는 권유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본인의 입으로 말해서 이 용의 성에서 쉬기로 했다.
다른 일행은 오랜만에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좋은 듯 하지만..
흠칫-
방금 어머님의 눈웃음 짓는 눈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는데..
마치 먹이를 노리는 것 같은.. 맹수의 눈빛..
착각이겠지..?
왠지 따가운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어쨌든 모두와 함께 휴식을 좀 취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