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3 152.처녀 줘
마왕 키리아 아그네스.
마왕한테서 느껴지는 힘이 만전의 상태의 나였어도 어떨지 가늠이 안 간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그런 가 바라보고만 있어도 힘이 쫙 빠지는 기분..
“무척이나 반갑다. 용사여.”
나를 만나고 싶었다는 등 무척이나 반갑다고 하는 마왕,너는 반가울지 몰라도 나는 하나도 반가운데 말이야.
날 죽일 생각에 신이라도 난 걸까?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손을 천천히 내민다.
마법이라도 사용할 셈인가 싶어 힘겨운 몸을 이끌고 검을 잡아 언제든 반격할 수 있게 자세를 취했지만.
왜 공격을 안 하는 거지?
손을 내민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 마법을 사용하거나 나를 공격하려는 행동도 일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보면 모르나? 손을 잡고 일어서라는 뜻이다.”
내게 방심을 유도하거나 장난을 치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 에는 정말 아무런 악의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불안케 하던 기운을 거둬들이는 모습을 보면.. 믿어도 되는 건가.
어차피 무엇을 하든 죽을 것 같으니 속는 셈 치고 마왕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근데.. 손 부드럽네.
마왕의 손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부드럽고 힘주면 부러질 것만 같은 손이다.
“그렇게 만져대는 것은 좀.. 그렇군.”
헉..
나도 모르게 마왕의 손을 조물조물 만져댔다.
마왕이 피식 웃는 것과 동시에 붙잡고 있던 손을 놔주고 자연스레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래서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인간들의 대륙을 침공하는 마왕이 쓰러트려야 할 용사가 힘이 빠져있는데도 이러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내가 그대에게 이러는 이유는.. 여기서 말하기에는 듣는 귀가 많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붙잡고 손을 튕기니 익숙한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카르세린이나 노아가 나를 꿈에서 맨날 부르던 곳, 일정 경지에 이르면 이런 장소를 만들어내는 건 숨 쉬듯 당연한 것일까?
나도 만들어보고 싶네..
아내를 불러서 거리가 어디든 섹스할 수 있는 장소.. 무척이나 편리할 것 같다.
“이 곳이 꽤나 익숙해 보이는군.”
“조금..”
수없이 많이 와서 봤었으니까.. 익숙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 올 때마다 노아와 질펀하게 섹스해서 그런가, 내 아래가 자연스럽게 반응하려고 그런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도록 하지, 아픈 상대를 계속 서 있게 하긴 조금 그렇기도 하니까 말이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화려한 식탁과 의자 마련해준 의자에 앉자 마왕이 턱을 괸 상태로 반대편에 앉아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래서 이런 곳으로 나를 데려온 이유가 뭐야.”
“이유라..”
“그렇잖아? 너는 마왕이고 나는 용사인데, 나를 안 죽이고 데려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계속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기만 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아 내가 물었다.
그제야 마왕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서 내 물음에 답하기 시작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용사. 그대를 원한다.”
“나를 원한다고..?”
마왕이 갑자기 나를 원한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예쁜 마왕이 나를 원한다고 해주는 것은 좋지만.. 대륙 침공의 방해가 되는 나를 원할 이유가 있나? 배신하고 자신의 밑에 들어와라 이 뜻인가?
마왕이 무슨 뜻으로 말한 것일까 추측하고 있자 마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그대가 뭘 생각하든 그것은 아니다. 내가 그대에게 원하는 것은 그대의 힘이다.”
“내 힘?”
“몸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리겔을 쓰러트리고 강해지지 않았나?”
확실히.. 리겔을 쓰러트리고 나서 가리스를 쓰러트렸을 때보다도 더욱 강해지는 것이 느껴지긴 한다.
근데 내 힘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뭐지?
“그대가 우리 마족들을 쓰러트리면서 점차 강해지는 것을 안다.”
“......”
“그래서 리겔과 가리스를 따로 보내 그대가 더욱 강해지도록 만들었지.”
저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하기 에는 지금의 나를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을 뿐더러, 나도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나를 키우는 듯한, 그런 느낌을 말이다.
근데 그것을 전부 마왕이 유도한 거라고? 자신의 심복까지 죽이면서 나를 원한다는 이유로?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오히려 퉁명스럽게 마왕에게 말했다.
“그래서 덕분에 강해졌으니까, 나보고 배신하고 그 쪽 편에 붙으라고?”
대륙의 사람들을 배신하고 마왕의 편을 들 수는 없다.
아내들 때문도 있을 뿐더러.. 그런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아, 만약 그 편을 들라하면 바로 거절 할 생각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뜻이 아니다.”
내 퉁명스러운 말투에 마왕은 피식 웃고는 손을 휘저으며 말한다.
그럼 대체 무슨 뜻으로 나를 원한다고 말하는 건데?
“그럼..”
도저히 마왕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싶어 물으려고 하자..
“나는, 마신을 죽이고 싶다.”
내 말을 끊고서 방금까지 와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지금 마왕이 무슨 소리를 한 걸까.. 신을 죽이고 싶다 한 건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채 마왕을 빤히 쳐다봤다.
마왕은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란 안광을 빛내면서 자신이 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한 얼굴로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그 말 진심이야?”
“진심이다.”
“허..”
신을 죽이자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그것도 노아한테 대조되는 세계관 최강자인 마신을 말이다.
노아도 나한테 깔려 앙앙 울어대기는 하지만.. 그 건 노아가 다 허락하고 내 자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가능 한 것이지, 노아를 보며 내가 진정으로 노아를 힘으로 압도하거나 할 수 있을 리는 없다.
노아를 보는 순간 힘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아니 느껴졌기 보다는 아무 힘없는 어린 꼬마 아이가 근육질 성인 남성을 이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머리에 꽂히듯 다가왔다.
근데 이 마왕은.. 근육질 남성을 어린 꼬마 아이가 패 죽인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인 말을 내게 하고 있다.
신을 죽인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말이다.
“우리를 그저 여신에 대항하기 위한 꼭두각시로 삼는 마신을 죽이고 자유를 찾고 싶다.”
마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며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대가 필요하다. 나 혼자로는 절대 마신을 죽일 수 없으니.. 여신의 힘을 가진 나와 비견되는 그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미녀의 몸매 좋은 여자가 내민 손이, 잡기 부담스러워지는 것은 처음이다.
“만약 내가 거절하면?”
“그렇다면 죽일 뿐이다. 아쉽기는 하겠지만 내 방해를 하겠다면 살려둘 수는 없다.”
애초에 내게는 선택권 따위는 없던 것 같다.
반 강제로 마왕의 손을 붙잡자 마왕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분질러 버리기라도 할 듯 강하게 잡는다.
“이 손을 이제 마음대로 놓을 수는 없을 거다 용사.”
“하하...”
마왕의 말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정말 내 멋대로 마왕이 잡고 있는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우리 이제 같은 배를 탄 건가?”
“그런 셈이다. 용사.”
“그러면 이름으로 불러도 돼?”
서로 마왕 용사 하는 것은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나, 이왕 같은 목적을 삼은 동료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마음대로 하도록.”
감히.. 이 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생각을 하다니..! 같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없는 반응이다.
“그러면 키리아. 그래서 마신은 어떻게 죽이는 건데?
애초에 신을 죽일 수가 있나? 영원불멸의 존재란 것이 신 아닌가?
마신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방법이라도 있나? 찾아간다고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왠지 개죽음을 맞이할 것 같아 불안하다.
“내가 죽인다고 표현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마신의 분신을 죽이고 마신의 제단을 없애는 것이다.
“마신의 제단?”
“마계가 아닌 대륙에는 수많은 종족이 여신을 받들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제단이 설치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지..? 근데 그게 왜?”
“우리 마족은 아니다. 제단은 마왕성 지하 유일하게 하나며 그 제단을 마신의 분신이 지키고 있지.”
“그 분신을 죽이고 제단을 부수는 게 목적인 건가?”
“그렇다.”
제단을 부수는 것만으로 마신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간섭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에 생각보다 크게 안심이 되었다.
신이란 존재는 참.. 막막했는데 분신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신도 만만한 존재는 아니다. 그것도 신의 일부니까 말이다.”
“그래, 그러니까 마왕이 용사에게 도움을 청했겠지.”
내 말에 웃음 짓는 마왕.
웃음 짓는 모습이 너무 예쁜서 그런가? 마왕에 대해서 조금 안심이 되자내 여자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 시작한다.
“근데 마신을 쓰러트리고 자유를 찾으면 다시 대륙을 침공할 생각이야?”
“딱히 대륙을 침공할 생각은 없다. 마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지, 마계에서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대륙 침공도 마신 때문인가..
마신이 아주 모든 나쁜 짓의 근원이다.
노아의 반 정도 되는 인성이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야..마신만 없다면 키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쌓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면 키리아. 제단을 부수고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부탁정도가 아니라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도 있다.”
역시 마왕답게 통이 아주 크다.
원하는 모든 것이라니...
“두말하기 없는 거 알지?”
“마왕인 이 몸이 그럴 것 같나?”
마왕님이 그럴 리 없지요..!
거만 한 자세로 내가 뭘 말할지 기다리는 키리아.
나는 키리아의 양 어깨의 한 손씩 올린 다음 키리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의 처녀를 줘.”
“그래, 처녀를....?”
내 말을 잘못 들었다 생각하는지 마왕이 눈을 크게 뜨곤 나를 바라본다.
용왕 처녀를 못 먹었으면 마왕 처녀라도 먹어야지.
“처녀 줘.”
무척이나 당연한 것을 달라는 듯 진지하게 한 번 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