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3 252.진짜 용사 맞습니다
세계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모여, 어쩌면 제국보다도 더 영향력이 강할 수 있는 성.
그런 성의 주인들이자 인혁의 아내들은 오늘도 바쁘다.
그건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시종들을 시켜 아기들을 돌보게 하는 것이 아닌.
본인들이 24시간 딱 붙어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부 인혁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더 열심히 돌봐주자는 인혁의 누나 아연의 말이 있었기에,
인혁의 아내인 이상 여왕도 마왕도 예외는 없다.
“흐윽.. 으아아앙!!”
“울어도 소용없다. 뚝 그쳐라. 콧물까지 이렇게 흘리고는..”
슥슥-
세계를 벌벌 떨게 했던 마왕 키리아 아그네스가, 자신의 아이의 콧물을 닦아주는 모습.
그 어떤 이들도 상상이 가지 않을 모습이지만, 이 성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후.. 조금만이다. 조금만 더 놀고 낮잠을 자는 걸로 하지.”
“웅..!”
키리아도 엄마여서 그런지 아이의 떼쓰는 것에 못 이기고 노는 것을 허락해준다.
근처 의자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키리아.
좋은 날씨와 선선한 바람에 조금씩 잠이 쏟아지던 와중.
펄럭펄럭-
익숙한 용의 날갯짓 소리에 하늘을 바라보자 엘로시아의 딸 엘리가 날아온다.
“신나서 나가더니 벌써 돌아온 건가?”
“마왕엄마, 안녕하세요.”
키리아를 보자 배꼽 인사를 하는 엘리.
자신의 아이도 얼른 저 정도로 큰다면 좋으련만..
엘로시아의 말에 의하면 아이가 커도 똑같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똑같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근데 엘로시아는 왜 같이 안 온 것이지?
둘이 함께 나가 혼자 오는 일은 있을 리가 없기에, 엘리의 인사를 가볍게 손짓해서 받아주고는 엘리의 주변을 살피며 묻는다.
“엘로시아는 함께 나가더니 왜 혼자 온 거지 엘리?”
“엄마는 아빠랑 성 앞에서 좀 더 있다가 과일 사탕 사 온다고 하셨어요.”
“...아빠?”
엘리의 말에 고개를 키리아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빠.. 아빠라니?
엘리에게서 전혀 나올 수 없는 얘기가 나오자 순간 뇌가 정지하는 키리아였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자세히 얘기를 들어 보려고 엘리를 불러 세워 본다.
“엘리, 잠깐....!”
“과일 사탕 먹으려면 방에서 얌전히 기다려야 해요!!”
하지만 키리아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엘리는 자신의 방으로 날아 가버린다.
꽤나 빠르기는 하지만 키리아가 따라가서 못 붙잡을 정도는 아니다.
근데 자신의 아이도 버려 두고, 갑자기 엘리를 납치하듯 붙잡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따라가기를 멈춘다.
꼬마 아이가 흘러가듯 내뱉은 말.
아빠라고 하는 것이 엘로시아와 소꿉놀이를 하다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카린.”
곧바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자신의 딸 카린을 부르는 키리아.
키리아가 부르자 이제 그만 놀라는 뜻인 줄 알고 키리아를 똑 닮은 딸, 카린이 울상을 짓는다.
“우웅.. 장난감, 놀래! 놀래애!!”
“그만 놀라는 것이 아니다. 잠시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엄마의 품에 안겨라.”
카린이 더 떼를 쓰기 전에 키리아는 아이를 홱- 들쳐 안았다.
혹시나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포대기에 감싸듯 안전하게 카린을 끌어안고서 엘리가 말한 성 앞을 향하기 시작했다.
***
엘로시아와의 섹스를 끝내고 모든 아내들을 만나기 위해서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러니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으면 성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다.”
“이 성에 아무것도 없이 함부로 들어오려 해? 자신이 무슨 용사라도 되는 줄 아나..”
“아니, 내가 용사라니까?”
성문 앞 여자 병사들에게 발걸음이 턱- 막혀 버렸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신분을 증명하지 않는다면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는 병사들.
“크하핫! 그딴 수상한 복장을 하고서 대놓고 용사를 사칭하다니..”
“쯧쯧..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세계를 구하고 사라진 용사님을 사칭해?”
수상한 복장..
그러고 보니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이 세계와 맞지 않는 저쪽 무협 세계의 옷이다.
수상하게 보이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할 수 있긴 하지만..
사라진 지 2년도 아직 안 됐는데, 세계를 구한 용사를 못 알아봐?
“뭐, 얼굴은 좀 용사님 같은 외모기는 하네. 근데 딱 봐도 동정 같은데, 이 누나가 딱지 좀 떼 줄까?”
“아하하하!!”
“너무 놀리지 마. 우리 용사님이 겁 먹었잖냐.”
자신의 갑옷 틈새 사이로 손을 집어넣으며 나를 놀리기 바쁜 여자 병사들.
원래라면 이딴 건방진 보지들은 가볍게 따먹어 줄 나지만,
드디어 돌아왔는데 아무한테나 좆방망이를 휘두를 수는 없다.
현재 내 좆은 외로웠을 아내들을 위한 것이지 이딴 걸레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니 진짜 용사인데..”
“그래그래, 어련 하시겠지요~”
“큭큭.. 네놈이 진짜 용사라면 내가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성문 앞에서 다리를 벌려주지.”
아무리 말해 봐도 내가 용사라는 것을 믿어 주지 않는 여자 병사들.
결국엔 성의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성벽을 넘으려고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오자.
웅성웅성-
여자 병사들이 크게 소란스러워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성문 쪽을 바라보니.
“헉..! 마, 마왕님!! 추, 충성!”
“여, 여기에는 갑자기 어쩐 일로.”
“아까 보니 성문 앞이 좀 시끄럽던데 무슨 일이 있었지?”
키리아?
예상외에 인물이 성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다.
내 아이로 추정되는 키리아를 빼닮은 아이를 안은 채.
근데 신기하네..
아무리 시간이 흘렀고 마신도 없어졌다고 한들, 키리아가 다른 사람들과 평범히 얘기하는 모습이라니.
무서운 기운 뿜뿜이던 마왕님 어디 간 거냐고!
아직도 예쁘고 멋지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유해진 듯한 모습..
“얼른 말해 봐라.”
“벼, 별일 아닙니다! 그저 용사를 사칭하는 나쁜 놈이 하나 있어서 내쫒은 겁니다!”
“용사를.. 사칭했다고?”
“히이이익....!!”
인 줄만 알았는데, 용사를 사칭했다는 말에 키리아가 무섭게 돌변한다.
마왕님.. 그대로였구나.
리겔을 쓰러트리고서 모습을 드러냈던 키리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여자 병사들도 키리아의 화난 모습에 잔뜩 겁을 먹고 몸을 덜덜 떤다.
“감히 누가, 용사를 사칭한 거지?”
“저, 저, 저기...! 저기 있는 남자가 그랬습니다!”
키리아의 화를 피하기 위해서 나를 가리키면서 빠르게 고자질하는 여자 병사들.
화를 피하고 감히 용사를 사칭한 나한테 아주 좆 돼 버리라는 식으로 저런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진짜 용사인걸..
여자 병사들 사이에서, 무척 화난 모습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키리아와 나의 눈이 그대로 마주쳤다..
“......”
“키리아.”
“저, 저게 정말로 미쳤다고 마왕님의 이름을...!”
내가 키리아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것을 보고, 화난 키리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를 향해 화내는 여자 병사들.
하지만 여자 병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키리아의 화는 점차 사라지다 못해 완전히 없어졌다.
그리고는 떨리는 입술과 함께 천천히 말을 내뱉는다.
“정말로 돌아왔군, 용사.”
“돌아왔어 키리아.”
키리아는 엘로시아처럼 울며 안기지는 않았지만 마왕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예쁜 미소를 싱긋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 키리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키리아의 품에 있는 아이와 함께 안아준다.
“내 아이지? 이름이 뭐야?”
“카린이라고 한다.”
“카린..”
내가 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카린이 꽤나 낯설어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건데, 아빠라 해도 아직은 완전 남이라 생각할 테니 낯선 것도 당연하다.
천천히 친해져 가면 되는 거니까.
“카린, 내가 항상 말했던 너의 아빠다.”
“아빠...? 용사님...?”
“그래 용사다.”
“용사님...!!”
용사라고 하는 소리에 카린이 눈을 빛내며 내게 꼭 안긴다.
“카린한테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해준 거야 키리아?”
“별것 안 했다. 그저 용사의 얘기를 좀 많이 해줬을 뿐이다.”
좀 많이 가 아닌 것 같은데.
카린의 눈이 딸이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극성팬이 연예인을 보는 것만 같은 눈빛이다.
딸이 좋아해주니 썩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대체 어떻게 얘기해준 거야?
용사의 열렬한 팬인 마왕의 딸이라..
“하하.. 일단 키리아. 할 얘기도 많고 더 이러고 있고 싶지만, 다른 아내들도 만나 봐야 하니까.”
“음.. 알겠다. 용사.”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키리아.
카린을 안고서 키리아와 딱 붙은 채 성문을 지나고 있으니,
“아, 아아.. 저, 정말로 용사님 이었....”
성문 앞의 여자 병사들이 완전히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서 내뱉는 말소리들이 들려온다.
나를 실컷 놀려 먹고 막 대했는데 내가 진짜 용사였으니 저런 반응이 당연한가?
근데..그러고 보니,아까 뭐랬지 저 여자 병사가?
“야, 거기 너.”
“네, 네에엣....?”
“이름 뭐야.”
“스, 스테인이라고 합.....”
“그래, 스테인이구나..”
분명 내가 용사면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성문 앞에서 다리를 벌린다고 했었지 아마?
“뭐하고 있어? 어서 옷 전부 벗지 않고?”
“네....?”
“내가 진짜 용사면 한다고 한 게 있잖아? 못하겠으면 내가 해줄게.”
“시, 싫엇......!”
싫기는 뭐가 싫어.
스테인의 옷을 없애버리고 다리를 잡고 벌린 자세로 몸을 고정시킨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두니 마치 성문 앞 공용 리얼 돌 같은 모습이다.
“한 시간 뒤면 움직여질 거니까 참아. 네가 내뱉은 말이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텨.”
저 상태로 성을 지나려는 질 나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더라도, 내 알 바는 아니다.
카린이 보기에는 안 좋으니, 볼 수 없게 카린의 눈을 가린 채 키리아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왔다.
“모두를 불러오지.”
내게 카린을 맡겨둔 채, 성안에 있는 모든 아내를 데리러 간 키리아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서방님!”
“레일라!”
커다란 가슴에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레일라가 엘로시아 때처럼 울면서 내게 안겨든다.
거유 엘프 여왕 레일라부터 시작해서 차례차례 모이기 시작하는 아내들.
모인 아내들은 전부 자신들을 닮은 딸과 아들들을 데리고 나온다.
딸이 좀 더 많기는 하지만역시 아들들도 있는 것이 역시 당연하지?
딸이 더 좋고 아들은 싫다! 이런 것이 아니다.
전부다 내 자식이니 사랑스럽기만 하지만..
나부터 친누나와 친엄마를 따먹은 콩가루 용사 집안이다 보니, 미래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쌓은 업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