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7 266.첫 시험
술집은 당연히 여관 달린 술집이 국룰.
들어와서는 빈 테이블에 앉아 혼자 안주와 술을 조금씩 먹으면서 주변을 스캔한다.
딱 봤을 때 탑의 정보를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힘드니, 대화하는 것을 귀 기울여서 들어 본다.
“이번에 37층에서 굴루스한테 거의 죽을 뻔한 거 있지 않냐..”
“푸하핫! 허접도 아니고 굴루스한테?”
“요즘 또 흑암 쪽에서 또 날뛴다면서?”
“쯧쯧.. 되다만 녀석들이 주제파악 못 하고 날뛰기는..”
내가 현재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탑에 대한 내용들이 오가는 수많은 대화들.
운 좋게도 이곳에 있는 이들이 거의 다 탑에 대한 지식이 많아 보인다.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사람은.
“저기..”
“응?”
내가 다가와서 말을 걸자 근육이 커다랗고 험상궂은 중년 아재 무리가 험악하게 쳐다본다.
대화하는 것을 듣기로는 이 남자들은 대장장이 무리들.
다른 등반자보다 이런 대장장이들이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우리에게는 갑자기 무슨 볼일이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내가 수상해 보였는지 아재들이 크게 경계한다.
그런 아재들에게 멍청하게 웃으면서 술을 산다 하자.
“크하하하하! 오늘 들어온 병아리였나? 괜히 겁줘서 미안하군! 크핫하하하!!”
“괜찮습니다.”
내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그래, 술을 산다는데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알고 싶은 게 뭐지 병아리?”
뭐든 물어봐도 알려줄 것만 같은 분위기로 말하는 아재들에게, 생각해온 질문거리를 전부 물어본다.
일단 기본적으로 탑을 올라가는 법.
“응? 그건 등반자가 아니어도 잘 알 텐데.”
“사정이 좀 있어서, 아하하....”
“뭐 어디 깊은 곳에서 처박혀 수련이란 것도 한 건가? 뭐 일단, 등반자 시험을 볼 때처럼 검은 기둥이 있는 곳으로 가서 관리자가 출제하는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모든 층이 그런가요?”
“당연한 것을 묻는군.”
올라갈 때마다 시험을 봐야 하는 건가?
시험이 걱정되지는 않지만 조금 귀찮을 것 같다.
“한 번에 탑을 올라가는 법은 없나요?”
“이 탑에 그런 게 있을 리가.”
내 말에 대장장이 아재1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지만 올라갈 때와 다르게 탑에서 내려올 때는 한 번에 내려올 수 있는 모양.
참 불친절한 탑이다.
올라갈 때도 한 번에 10층씩 팍팍 올라갈 수 있는 시험을 만들면 얼마나 좋아.
어쨌든 그 외로 탑에서 돈을 버는 법, 지금까지 등반자들이 올라간 최고층수, 여러 가지 위험 요소, 시험 볼 때 주의할 점 등등.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은 뒤, 필요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를 말해대는 술주정뱅이 아재들한테서 벗어난다.
“얼마나 먹는 거야..”
금화라서 많은 줄 알았는데..
이 탑에서 이 금화는 내가 알던 금화의 값어치를 하지 못했다.
대장장이 아재들한테 술사고 이곳 여관 하루 값을 치르니 거의 남지 않았다.
내일은 길바닥에서 노숙을 해야 할 정도.
그래도 돈은 벌면 되는 거니까 별문제는 아니고.
시험이 참 문제인데..
시험 자체는 저녁이 되기 전 낮 시간대라면 언제든 도전 할 수 있다지만..
탑을 오르는 시험은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무조건 2일에 한 번씩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컨디션을 조절 못하고 객기부리는 등반자들을 위한 차원에서 그런 규칙이 세워졌다는데..
“하아아..”
덕분에 나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율이 있는 꼭대기 층은 100층이라고 하던데.
시험을 규칙에 따라 2일씩 쉬지 않고 봐도 꼬박 200일이 걸린다.
거기다 시험이 하루에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
이상한 괴물 풀어둔 곳에 일주일 동안 살아남으세요! 같은 시험을 준다면 200일보다도 더 걸리는 셈.
“으어어...”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벌써부터 내 아내들과 아이들이 보고 싶어져서 죽을 것 같다.
향수병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게 내가 될 수도.
에휴.. 더 생각해서 뭐 하냐, 그냥 푹 자고 내일 시험에 합격해 탑을 올라가면 되는 거잖아.
여관 침대에 벌러덩 누운 채 잠을 자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정말 오랜만인 옆에 여자가 없는 외로운 잠자리.
당분간 이런 상태로 밤마다 자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위로도 아래로도 울고 싶어졌다.
***
“흠..”
생각보다 시험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탑을 오르기 위해 검은 기둥으로 왔는데, 예상외로 사람이 적다.
1층처럼 바글바글 한 것까지는 아니라도 콜로세움의 인원을 보고서 꽤 올 줄 알았는데..
아니면 2층에 오자마자 이런 이른 아침부터 시험에 도전하는 놈들이 이상한 건가?
어쨌든 간 서른명 남짓한 인원수가 모여 서로를 조금씩 견제하듯 바라보며 시험에 도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빛이 새 나오며 1층과 마찬가지로 천사가 튀어나온다.
“응시자분들은 모두 기둥에 손을 대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사의 말에 따라서 차례차례 검은 기둥에 손을 대고서 이동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검은 기둥에 손을 올리고서 이동한 검은 기둥의 너머는.
흰색의.. 방?
아무것도 없는 흰색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탑을 오를 시험을 치른다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오자, 다른 등반자들도 꽤나 당황한 눈치다.
“으흠! 반갑습니다. 여러분.”
““...!!!””
분명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튀어나온 한 어린 남자아이.
빨간 나비넥타이가 달린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은 채 모자를 벗으며 공손하게 인사한다.
“저는 2층의 관리자 슈라고 합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은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시험을 보러오신 분들이 맞지요?”
자신을 2층의 관리자라고 소개한 슈라고 하는 꼬맹이의 명량한목소리로 하는 물음에, 등반자들이 얼떨떨해 하면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제 모습이 어려서 다들 당황하신 모양이네요~? 이래 보여도 보이는 것보다 나이는 많으니까 어린애 취급은 하지 말아 주세요!”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투는 애 같은데?
관리자 슈를 보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반자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그런 표정을 보며 슈는 큰 모자를 다시 머리에 눌러쓰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시험을 시작할까요?”
다들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시험을 시작한다는 슈의 말에 표정이 곧바로 진지해진다.
“자 시험 내용은 바로!! 두구두구두구두구...!”
북을 치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두구두구 소리를 내는 행동.
영락없이 애 같은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런 애 같은 행동에도 시험 내용이 뭐가 나올지 긴장한 모양인지, 이곳의 등반자들 중에서는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도 곧 보인다.
“두구두구...... 아무것도 없습니다!”
“..없다고...?”
시험이 아무것도 없다는 충격적인 말에 곧바로 소란스러워진다.
물론 나도.
저 애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찰 때쯤 슈가 말을 이어서 내뱉는다.
“그저 이 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24시간 버티기만 하면 곧바로 시험 통과입니다!”
“고작 그렇게 간단한 게 시험이라고...?”
“정말... 이에요?”
“네! 관리자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간단한 시험 내용에 믿기지가 않는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등반자들.
그런 등반자들을 바라보며 슈는 싱글싱글 웃다가 무언가 생각난 모양인지 손을 탁 치며 외친다.
“아! 한 가지 더! 그리고 제 시험은 초보 등반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무려 포기! 를 크게 외치면 시험을 포기하고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답니다!”
슈의 말에 반응을 해주는 등반자는 아무도 없었다.
24시간만 버티면 올라갈 수 있는 것을 병신도 아니고 왜 포기해? 라는 뉘앙스를 가진 눈빛으로 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등반자들의 시선에도 슈는 싱글싱글 웃더니.
“모두 행운을 빌어요!”
손을 흔들며 그대로 스르륵 사라져 버리는 관리자 슈.
슈가 사라지자마자 공중에는 시간을 알려줄 타이머가 생겨나 1초씩 줄기 시작한다.
시간도 알려주고 친절한 관리자구만.
나는 하품을 쩌억- 하면서 그대로 냅다 바닥에 누웠다.
혹시나 누가 덤벼오더라도 누워 있는 상태로 이길 자신이 있기에 그냥 누워 버린 것이었지만.
“으음..”
“휴우우...”
그런 나를 보고서 하나둘 자리를 잡고서 앉기 시작한다.
나처럼 드러눕지는 않더라도 24시간을 잘 버티기 위해서 휴식을 취할 셈인 듯했다.
시험이 시작 되고 나서 겨우 1시간 쯤 지났을 무렵.
이대로 23시간만 더 지나면 무사통과할 간편한 시험이다.
하지만 꼭 이런 간편한 시험에서도 나대는 놈들이 있다.
“거기 너. 나랑 얘기 좀 하지?”
조용한 방 속에서 지들끼리 유독 시끄럽던 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만히 앉아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에게 다가간다.
붉은 머리의 여자는 세 남자무리에게 시선을 잠깐 주다가 무시한 채 주먹에 붕대를 휘감는다.
“맞네.. 너 이 씨발년.. 아까는 우리를 개 좆으로 봤겠다?”
가운데 대머리 남자의 얼굴이 씩씩대며 분노로 시뻘게진 것을 봤을 때, 시험에 들어오기 전 무슨 마찰이라도 있던 모양이다.
“개 좆으로 본 건 어떻게 알고.. 혹시 내 마음이라도 읽을 줄 아는 거야?”
“이, 이 씨발 년이..!!”
“마침 잘 됐어.”
대머리남자가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을 것만 같은 얼굴로 붉은 머리의 여자에게 달려든다.
“알아서 처 맞으러들 와주고 말이야.”
붉은 머리의 여자는 붕대를 다 감은 주먹을 한 번 쥐더니..
퍼억-
“크헉..!!”
그대로 주먹을 꽂아버린다.
남자들 중 우두머리 행세를 하던 가운데 남자가 여자의 주먹질 한 방에 날아가 쓰러진다.
“뭐, 뭐 하는 짓거리야!”
“닥치고 덤비기나 해.”
여자가 무섭게 웃는 얼굴로 나머지 남자 둘마저 쓰러트려 버린다.
단순히 때려서 쓰러트리는 것이 아닌..
“포, 포기.. 컥.. 포기!!!!”
세 남자가 모두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때려서 모두 시험을 포기시킨다.
붕대를 감은 주먹은 어느새 피투성이.
붉은 머리처럼 붉게 물든 주먹이 꽤나 어우러진다.
“다음.”
다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갑자기 내뱉은 붉은 머리의 여자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꽂힌다.
여자는 방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까딱이며.
“방 나 혼자 써야겠으니 다 덤벼.”
모두에게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