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의 노예 암캐들 (2)화 (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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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는 숨을 고르며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창 너머로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고층 빌딩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두 사람이 뜨겁게 육체관계를 가졌던 이곳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한강일보의 12층짜리 사옥 정상에 있는 함건호의 집무실이였다.

빅토리아 비발디는 한강일보의 여기자로, 방금 이곳에서 그의 보스와 더 깊은 신뢰관계를 맺기 위해 육체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 * *

"진강성 감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건호는 실버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빅토리아에게로 다가갔다.

"충무로의 귀재 감독이었지만, 5년 전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흥행참패 이후, 지금은 강원도에 은거한 채, 대중 앞에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빅토리아는 '비발디'라는 라스트 네임(성- 姓-)에서 알 수 있 듯, 한국계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백인 혼혈이었다.

비발디 가족은 빅토리아가 중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재원이었다.

한강일보에 입사해, 3년만에 편집국 기자로 실력을 발휘해 사주인 건호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물론 건호가 빅토리아를 눈여겨 보게 된 가장  이유는 그녀의 단아한 미모였다.


"은퇴나 은거라는 말은 맞지 않아. 그자는 재능뿐 아니라 야심도 강한 남자야. 강원도 산골에 숨어 와신상담하며 권토중래할 날을 기다렸다고 하는 게 맞을 거야."

"보스, 그 말은.. 그가 곧 충무로로 돌아온다는 말인가요?"

"응. 곧 돌아올 거야.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사단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니까. 진강성이 키워놓은 감독과 배우들의 충성심은 절대적이지. 대중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여전히 충무로의 실력자임에는 틀림 없어."

"많은 사람들이 퇴물이라고 치부하는 진강성 감독이 사실은 여전히 영화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이라는 소리처럼 들리네요."


"진짜 거물은 자신의 실체를 교묘하게 감추니까."


건호는 담배를 한모금 맛있게 빨았다.

"좋은 기자는 사냥개처럼 냄새를 잘 맡아야 해. 미디어 정글에서 살아 남으려면 거물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을 놓쳐서는 안 돼."

"보스,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할 일이 뭔지."

"지난 주에 강원도에 갔다 왔지. 물론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거물답게 가장 먼저 냄새를 맡은 사냥개를 내치지는 않더군."


"그럼 혹시 새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으셨나요?"


"집필 중인 시나리오를 보여 주더군. 몇 페이지 읽어 봤는데...."

건호는 담배를  모금 빨고, 유리 재떨이에 비벼껐다.

"걸작이야. 예술감독의 프라이드를 버리고 노골적으로 섹스와 폭력 그리고 저급 개그를 꽉꽉 채워넣었더군. 속물적이고 저급한 한국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작품이야. 성공할 게 틀림 없어."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영화 감독이 오락영화 감독으로 전향했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그건 단순한 전향이 아니야. 오락영화 감독은 충무로에 넘쳐나. 아무리 예술성으로 인정받은 감독이라도 흉내 정도로는 충무로에서 살아 남을 수 없어. 진강성은 말하자면, 성전환을 한거야. 섬세한 여자에서 마초적인 남자가  거지. 단물만 빨아먹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충무로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거야."


"보스, 충무로가 그를 받아들일까요?"


"중학교를졸업한 뒤, 막노동으로 돈을 모아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독종 중의 독종이야.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신을 거부하는 충무로에서 살아 남은 남자고, 영화판의 더러운 생리와 숨겨진 추악한 이면까지 꿰고 있는 작자니까, 새 영화로 화려하게 충무로에 한방 먹일  틀림없어."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기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좋아, 그럼 본론을 얘기하지. 수 많은 기자들을 제쳐놓고 빅토리아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한 건..."

건호는 말꼬리를 흐리고 손짓으로 빅토리아를 자신의 데스크 앞으로 불렀다.

빅토리아는 가죽의자에 앉은 보스의 데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건호는 한쪽 팔꿈치를 데스크에 짚고 가만히 빅토리아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실버 케이스에서 다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천천히 흔들리며 천장으로 피어오르자, 빅토리아 비발디의 얼굴에 긴장과 호기심이 어른거렸다.


함건호는 한강일보의 사주이자, 한강 미디어 그룹의 오너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강 미디어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최근의 업적은 부진했다.

오랜 경기침체와 미디어의 중심이 유튜브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로 넘어가면서 종이 매체의 광고수입이 격감한 탓이다.

한국의 3대 유력 일간지인 '한강일보'의 영향력도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그뿐 아니라 한강 미디어 그룹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와 월간지의 발행 부수도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어 경영상 절박한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연예기획사와 영화투자사를 설립해, 방송과 영화계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텃세에 막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건호는 사운을 걸고 블록버스터급영화에 매달렸지만, 이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경쟁 기획사나 투자사에 의해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런 건호에게 충무로의 이단아인 진강성의 새 영화는 올인해 볼 만한 매력적인 승부처였다.


진강성은 전재적 재능과 야심이 있었지만, 중졸의 학벌과 모난 성격 그리고 예술성을 추구하는 영화로 충무로의 메인스트림에 합류하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겉돌다가 마지막 영화의 흥행참패로 5년이란 긴 세월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칩거생활에 들어간 것이다.

건호의 상황도 절박했지만, 진강성도 절벽 끝에 내몰린 건 마찬가지였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은 재기를 위해 커다란 한방을 노리는 승부사였다.


"재수 없는 작자지만, 재능만은 진짜야. 천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건호는 가볍게 이마를 찡그리며 안색을 바꿔 정색을 하고 빅토리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촬영중에 여배우에게 유사성교가 아닌 진짜 성교를 강요해서 화제가 됐던 게 기억나요."


"여배우가 목매는 씬을 찍을 땐, 장면에 너무 심취해서 여배우를 거의 질식사 시킬 뻔한 적도 있지. 반쯤 미친 놈이야."

"네.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인물인 건 틀림 없어요."

"그런데 그 긍지 높으신 분이 자신의 영화 인생을 손바닥 뒤집 듯 부정하고 멍청한 대중의 속물적인 기호에 영합하기로 결심을 하셨단 말이야. 이번 시나리오엔 점잔을 빼거나 고상한척 거드름을 피우는 장면은 일체 없어. 대신 대중이 열광하는 섹스와 폭력과 B급 유머 같은 자극적인 향신료가 가득 들어 있지.  직감으로는 블록을 날려 버리는,  그대로 진짜 한방을 터뜨릴 블록버스터(Block buster)가 틀림 없어."

건호는 빅토리아가 두 손으로 건넨 유리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실버 케이스에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빅토리아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하지만 담배 연기가 눈에 스며들어도, 빙긋 웃는 얼굴로 보스의 다음 말을 진지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대개의 천재들은 어수룩해서 속여 먹기가 쉬운데, 진강성은 어렸을 때부터 시궁쥐처럼 사회 밑바닥을 박박 긴 탓인지 전혀 어수룩하지 않아."


"보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네임밸류와 새 영화의 가치를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거든. 그래서 절대 싸게 팔려고는 하지 않을 거야. 충무로에 시나리오가 돌기 시작하면, 썩을 정도로 실탄을 많이 지니고 있는 영화사나 기획사가 서로 물고 뜯는 개싸움을 벌이며 진감독과 새 영화의 가치를 폭등시킬 거야. 그러면 연옥이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는 거지.  지옥 속에서 진강성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을 거야. 영악한 작자라 지옥에서 빠져나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황금키를 자신이 손에 쥐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경쟁이 치열하겠군요."


"난  한방에 사운을 걸 작정이야. 어차피 종이매체인 신문과 잡지에서 단물 빠는 시대는 지났어. 여기서 방향을 틀어서 영화와 방송에서 승부를 내지 않으면 어차피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어."


"진강성 감독을 설득해 보셨나요?"


"하다가 포기했지. 거의 백지 수표를 내밀었지만, 녀석은 미끼를 물지 않았어. 영리한 놈이야."


"복안은 있으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진강성은 거의 완성한 시나리오를 손보며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올릴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있을 게 틀림 없어."


"그럼 저희는 그냥 그 사람이 시나리오의 집필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다, 그가 세상에 나오면 다른 쟁쟁한 경쟁사들과 싸워 이기는 수 밖에 없나요?"

'아니, 시나리오가 공개되고경쟁이 시작되면 우리에겐 승산이 거의 없어."

빅토리아는 보스의 말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하지만, 사장님께선 그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한방을 손에 쥐고 계시겠죠?"


빅토리아의 말에, 건호는 흡족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역시 빅토리아 당신은 영리한 여자야. 그래, 내겐 신사인  하는 진강성의 천박한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거든. 그 비열한 녀석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비열한 신의 한수가 내겐 있어."

"비열한?"


"정정당당하게 충무로의 악마들과 싸워서 우리가 살아날 방법은 없어."


"악마에게 당하느니 악마를 죽여라"

"그래, 악마에게 당할 바엔 차라리 내가 먼저 악마를 죽여 버리겠어.."

"보스, 저에게 시키실 일이 있는거죠? 제가 뭘 하면 되죠?"


"역시 똑똑하군. 빅토리아.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제가 할 일은.. 진강성이 쓴 시나리오를 손에 넣는 거군요."

"맞아. 감독 제안을 수락하도록 설득할 때까지 설득하고, 계속 거부한다면 시나리오만이라도 어떻게든 손에 넣어서 가지고 와.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 감독들은 얼마든지 구할  있어. 진강성보다 먼저 영화제작 발표회를 열고 시나리오를 적당히 수정하면 그걸로 끝이야. 나중에 진강성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봐야 한강일보를 동원해 진강성을 매도해서 사회에서 생매장해 버리면 그만이야. 난 꼭 그 시나리오가 필요해 영화로 만들면 틀림없이 대박이 날 거야. 진강성이나 충무로의 다른 녀석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그때는 언론의 힘을 이용해 어떻게든 잠재우면 돼."

"毒を食らわば皿まで"

"독을 마실려면 접시까지...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단 걸 알았지만, 일본어까지 할  있는 줄은 몰랐군."


"감사합니다."

"빅토리아, 지금 한말, 너의 결심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네. 기필코 성공시켜 보이겠어요."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그동안 널 주목하고 있었어. 지난 달,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킨 건 정말 멋진 한방이었어."


"칭찬해 주셔서 영광이예요, 보스."

"이 일은 한강일보뿐 아니라 한강 미디어 그룹의 사활이 걸린 문제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설득에 실패할 경우 시나리오라도 손에 넣어야 해. 그 뒤의 시끄러운 일은 내가 책임지고 처리할테니 신경쓸 필요 없어."

"진강성 감독의 설득에 실패하면, 시나리오를 입수해서 보스에게 가져오면 되는 거죠?"

"쉬워 보이지만, 진강성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야. 꽤 힘든 일이 될 거야."


빅토리아 비발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기가 도는 금발 머리가 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균형잡힌 콧날에 커다란 눈동자.

엷은 화장이라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청초하게 보였다.


 블라우스의 소매에서 뻗은 팔은 희고 가늘었지만 가슴은 훌륭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군살없는 탄탄한 배와 잘록한 허리.


스커트에서 뻗어 나온 다리도 미각이라고 할 만큼 보기 좋았다.


건호는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띠우고, 먼저 입을 열어 정적을 깨뜨렸다.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에 합당한 보수를 주지. 만약 이번 일을 무사히 성사시키면, 한강일보 편집국의 '차장' 자리를 약속하지. 알겠지만, 신문사의 간부급인 차장까지 가는데는 보통 10년 이상이 걸려. 그리고 또 하나. 특별상여금으로 1억을 내 포켓 머니로 지급하지."


"이번 일, 성공시키겠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Every rose has its thorn"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빅토리아는 무심코 건호가 한 말을 되뇌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가시 투성이의 장미야. 하지만 가시가 많은 장미일수록 더 아름답고 더 향기가 진한 법!.'

* * *

"그레이트! 베리 굳!"

건호는 활짝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빅토리아의 곁에 다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이 일을 맡아 줄  알았어. 넌 믿을 수 있는 든든한 부하야. 비키, 너와 좀 더 깊은 신뢰관계를 맺고 싶어."

빅토리아는 그녀의 보스 건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스의 입이 빅토리아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는 순순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깊고 달콤한 키스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건호의 딥 키스에 빅토리아의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건호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섹스에 대한 유혹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건호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든 것도있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사춘기를 그곳에서 보낸 빅토리아는 섹스를 일종의 게임으로 여기며 즐길  아는 개방된 미국 여자였다.


순순히 받아들이며 몸을 내맡기는 부하 빅토리아에게 건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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