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누나는 간호사 (12)
누나는 간호사 (12)
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현관 문을 열자, 살갗에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달라붙고,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요 며칠 몸 속에 납처럼 무거운 피로가 쌓여 늘 몸이 나른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건 피로만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문득 수국이 피어 있는 병원의 화단이 떠올랐다. 그리고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 한 대가 보였다. 애인인 하늘의 차였다.
하늘은 거의 매일 병원에 왔지만, 일이 바빠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오늘 오후, 주차장을 지나치던 나는, 차에 오르는 하늘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하늘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백 미러에 내 모습이 비췄을텐데도, 마치 나를 뿌리치 듯 하늘의 차는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나는 멀어져 가는 하늘의 차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왠지 그가 일부러 나를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피하는 걸까? 아니..기분 탓일거야.'
나는 하늘의 쌀쌀맞은 태도를 기분 탓으로 돌렸지만, 하늘을 덮고 있는 장마철의 납빛 구름처럼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나는 펌프스를 벗어 던지고, 현관을 지나 지친 몸을 질질 끌면서 키친 쪽으로 향했다. 베란다의 창문은 닫혀 있었고, 불 꺼진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민우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집안에는 탁한 공기가 고여 있었다.
나는 내일 아침 찬거리가 든 쇼핑봉투를 부엌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저녁 식사는 오늘도 병원의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거실의 형광등 스위치를 켜자, 불빛이 실내에 넘치고, 몽롱하던 정신이 조금은 또렷해져 왔다.
에어컨 모드를 제습으로 놓은 뒤, 나는 침실로 들어왔다. 습기가 달라붙은 피부에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샤워로 그 냄새를 씻고, 하늘에 대한 집착도 함께 씻어 버리고 싶었다.
흰색의 반팔 섬머 니트를 벗고, 하얀 레이스 브래지어 위에 가운을 걸친 채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앞 탈의장에서 밝은 감색의 미니 스커트를 발밑으로 떨구고, 습기를 머금어 허벅지 안쪽에 붙어 있는 팬티 스타킹을 얇은 막을 벗겨내 듯 발끝에서 빼냈다. 레이스로 멋을 낸 하이레그 타입의 화이트 실버 팬티 역시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다. 남동생이 욕실을 사용할 때 보지 못하도록, 브래지어와 팬티 스타킹 그리고 팬티를 한데 묶어서, 세탁기에 넣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샤워기 노즐에서 더운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욕실에 하얀 김이 자욱히 서렸다. 나는 샤워기 헤드를 고리에 걸고,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 아래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보라가 온몸을 때리자, 싸늘하게 식어 있던 몸 속으로 온기가 스며들면서 무겁게 고여 있던 것들이 녹아 내렸다. 나는 샤워기의 물줄기로 재빨리 얼굴을 씻고, 목에서 가슴까지 바디워시 거품을 묻혔다.
거품에 젖은 젖가슴을 손으로 문지르자 여심에 열기가 고이고 유방이 딱딱하게 긴장되면서, 손바닥 아래에서 금세 젖꼭지가 굳어지면서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온기를 느낀 게 언제였었지?'
문득 나는 하늘을 떠올렸다. 일에 파묻혀 지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몸의 중심에 뜨거운 열기가 고여 있었다. 바디워시의 거품을 사타구니의 수풀에 묻히기 위해, 나는 선 채로 허벅지를 약간 벌리고 그 틈새에 손을 미끄러뜨렸다.
치골 밑의 둔덕을 중심으로 나 있는 타원형의 가늘고 곱슬거리는 무성한 수풀에 하얀 거품을 문지르자, 그 밑에 갈라진 틈새의 양쪽의 음란한 살꽃잎이 뜨겁게 충혈되어 내 손에 닿았다.
손바닥을 대고 가만히 감싼 뒤 원을 그리 듯 문지르자, 욱신거림과 함께 뜨거운 피가 몸 속을 흐르면서, 음란한 살꽃잎이 더욱 뜨겁게 부풀어 오르는 듯 했다.
나는 천천히 손바닥을 틈새에 갖다대고, 문질렀다. 허벅지를 벌리고 살짝 입을 열고 있는 틈새에 손 끝을 집어넣고 오늘 하루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갈라진 그곳을 씻었다. 손 끝의 자극을 민감하게 느낀 질 입구의 살꽃잎에서 관능의 쾌감이 퍼져나오면서 몸 속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너울거리며 흔들리는 듯한 관능의 쾌감은 녹아 내릴 듯한 졸음을 자아냈다.
'조금 눈 좀 부칠까..'
그렇게 생각하자, 일에서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샤워기 헤드를 들고 두 무릎 사이의 거품을 씻어 내고, 온몸에 거센 물줄기를 퍼부었다.
속옷은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상기되어 따뜻한 피가 도는 맨몸에 가운을 걸치고 욕실을 나왔다. 침실로 걸어가던 나는 동생의 방 앞에서 망설였다. 곧 민우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민우의 방 문을 살며시 열었다.
* * *
남자치고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민우의 방 안으로 거실의 불빛이 흘러드는 순간, 입구 근처에 놓인 책상 위에 붉은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진?'
나는 무심코 책상 위에 놓인 사진들 중 한장을 집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그대로 창백하게 굳어졌다. 붉게 보인 건, 선정적인 붉은 속옷 때문이었다. 사진 속에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보라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한장 또 한장, 손에 잡히는 대로 책상 위에서 사진을 집어들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을 손에 쥐자, 그 사진 속에 아슬아슬한 슬립을 입은 채, 유방과 허벅지 그리고 그 사이의 치모와, 수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연분홍빛 살꽃잎까지 보일 정도로 음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보라의 요염한 모습이 있었다.
'싫어..민우가 왜 이런 사진을 갖고 있는거지?'
피가 거꾸로 솟을 듯한 강렬한 질투에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동생 민우와 보라가 이런 관계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시치미를 떼고 있던 민우가 미웠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보석처럼 여겼던 남동생을 내게서 앗아간 보라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얄미운 계집애..하필이면 내 동생에게 손을 대다니..'
질투가 점차 분노로 바뀌어 내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
* * *
"누나, 거기서 뭐 하는 거야?"
갑자기 귓가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돌아다보았다. 분노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민우가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민우 너, 이게 다 뭐야? 이 사진..도대체 뭐야?"
"아..그건..."
"말해! 왜 보라랑 이런 사진을 찍었어!!"
나는 분노에 떨면서 손에 쥐고 있던 사진을 민우의 얼굴에 들이댔다.
민우는 내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서 쩔쩔매는 표정으로 거실로 뒷걸음질쳤지만, 곧 내가 들이대고 있는 사진을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뭐야! 왜 남의 방에 멋대로 들어온거야? 그거 이리 줘!"
동생이 내 손에 쥐어진 사진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나는 민우의 손을 뿌리치고, 팔을 위로 뻗었다. 느슨하게 묶은 가운의 허리 띠가 풀려서 옷깃이 어깨 아래로 미끄러졌다. 샤워 후, 예쁜 분홍빛으로 물든 피부는 분노와 격정어린 흥분으로 더 달아올라 있었다. 어깨에서 가슴까지 맨살이 드러난 상태로 내가 사진을 찢으려고 할 때, 민우의 손이 내 손으로 날아오는 동시에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그 사진이 그렇게 소중해?!"
가운이 젖혀지면서 알몸이 노출되었는데도, 민우는 사진을 줍기 위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사진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누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민우는 본능적으로 사진을 빼앗으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런 사진을 찍어 놓고 아무렇게나 굴린 어리석음에 민우는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언제부터니? 언제부터 나 몰래 이런 천한 여자랑 사귄거야!?"
"사귀는 거 아니야. 이때가 처음이야. 모델이 되어 준다고 먼저 말을 걸어 왔어. 그래서..."
나직한 소리로 입 속에서 웅얼거리며 변명하는 동생의 모습이, 내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 여자의 사진이 그렇게 소중하니? 내 손을 쳐서 빼앗을 정도로? 그런거니 민우야?'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분함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가운을 두 손으로 활짝 열어제쳤다. 위태로운 절벽 가장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왜 누나한테 부탁하지 않았어? 날 봐. 내가 보라보다 못 해? 말해 봐. 이 몸매로는 사진 모델을 할 수 없는 거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민우는 넋나간 표정으로 내 나신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곧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처럼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 애처로운 모습이, 내 분노에 박차를 가했다.
'괴롭혀 주고 싶어. 보라 같은 천한 여자의 누드를 찍다니..용서할 수 없어. 실컷 괴롭혀 주겠어.'
굴절된 질투가 내 속에 잠자고 있던 가학적인 욕정에 불을 불렀다. 나는 열어제치고 있던 가운을 단숨에 벗어, 민우를 향해 내던졌다.
"왜 안 보는 거니!? 누나를 똑똑히 봐. 그리고 대답해. 정말 내가 보라보다 못 한지."
민우는 쭈뻣거리며 시선을 내 알몸으로 돌렸다. 꿈 속에서도 떠올리던 누나의 알몸이었다. 동경하고 연모하던 누나의 알몸이 지금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민우는 더 이상 눈부신 누나의 알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름답게 엷은 분홍색으로 물든 살결은 상아빛이 섞인 조금 탁한 느낌의 보라 누나와는 달리, 새하얀 대리석처럼 촉촉하면서 우아했다. 균형 잡힌 단단하고 매끄러운 몸의 곡선과 봉긋하게 내밀어진 젖가슴 그리과 그 끝점에 연한 분홍빛으로 새침하게 부풀어 있는 버찌 같은 젖꼭지는 눈부신 여신의 완벽한 나신이었다.
복부에 가늘게 세로로 새겨진 앙증맞은 배꼽과 잘록한 허리에서 힙으로 이어지는 우아한 곡선은 부드럽게 쭉 뻗은 허벅지를 지나 무릎까지 이어지고, 무릎과 무릎 사이에는 어린 잔디처럼 수풀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그 얇은 수풀로는 숨길 수 없는 살색의 가는 균열이 세로로 한줄 새겨져 있었다.
전에 욕실에서 젖은 티셔츠와 팬티를 통해서 보았던 여신의 알몸이 지금 민우의 눈앞에 전부 드러나 있었다.
현아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민우의 배신을 힐책하고 있었다. 민우는 어떻게 여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그 사진, 누나에게 보여주지 그러니.'
민우의 머릿속에 보라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부터 이럴려고 누드 사진을 찢어달라고 그런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난 보기 좋게 보라 누나의 덫에 걸린거야. 그 교활한 여우에게 속아 이렇게 아름다운 여신을 저버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