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화 〉동정이 좋아 (1)
동정이 좋아 (1)
"새로 온 교생 선생님을 소개할테니, 모두 조용히 하세요."
담임 여교사 미미의 말에 술렁이던 1학년 교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진짜 이쁘다...'
고1인 두리는 눈앞에 있는 젊고 아름다운 교생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귀여운 교생 옆에서 담임 교사인 미미가 미소 짓고 있었다.
이 반의 담임이자, 국어 담당인 미미(이미미)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전혀 없었다. 큰 키에 잘 빠진 몸매를 지니고 있어도 안경을 쓴데다 딱딱하고 고지식한 성격 탓에 예쁜 얼굴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수업중에 그 흔한 농담 한마디 던지는 경우가 없어서 학생들은 그녀를 싫어했다.
아직 20대 후반(28살)에 불과했지만, 학생들 중에는 '노처녀'라고 부르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 분은 오늘부터 교육실습을 나온 일란여대(一蘭) 4학년인 이유미 선생님. 미술을 맡게 될 거에요."
교실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조용, 조용히 하세요."
교실의 술렁거림이 가라앉자, 미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유미 선생님이 나 대신 2주 동안, 이 반의 담임을 맡을 거에요."
미미의 곁눈질에 유미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유미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잘 부탁할게요."
중학교를 막 졸업한 고딩들을 눈앞에 두고도, 유미는 전혀 긴장하거나 기죽은 표정이 아니었다. 키도 커서 170인 미미과 비슷해 보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새하얀 블라우스 위에 봉긋 솟은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 아래 감색 스커트가 성숙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만은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어, 청초하고 귀여운 인상을 풍겼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말해보세요."
미미가 손을 번쩍 든 남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도 그렇고, 왠지 얼굴도 닮은 것 같은데. 두 분 혹시 친척 아니세요?"
반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내 친동생이야."
미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농담이 진담이 되자, 교실 여기저기서 놀람과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 * *
"최두리."
출석을 부르던 나는 두리의 이름을 부른 뒤, 한동안 소년을 쳐다보았다. 계집애처럼 예쁜 외모에 눈을 빼앗겨, 나도 모르게 눈이 간 것이다.
'선생님이 왜 나를 빤히 쳐다보지.'
"박도식."
나는 계속 출석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두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예쁘게 생겼네. 귀여워...'
* * *
복도를 걸으며 나는 언니인 미미에게 두리에 대해 물었다.
"언니, 두리라는 아이 어떤 애야?"
"응. 착하고 얌전해."
"두리가 반장이지?"
"응. 체육 빼고도 못하는 과목이 없어."
나는 두리의 얘기를 하면서 언니인 미미의 볼이 살짝 상기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설마...고지식한 언니가 두리를?'
"언니, 두리 좋아해?"
"뭐?"
에둘러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스트레이트로 물었다.
"바, 바보. 그런 거 아냐."
"근데, 왜 두리 얘기하면서 뺨이 붉어져?"
"그냥 착하고 다른 아이들이랑 달리 날 잘 따라서, 가르치는 학생으로 좋아할 뿐이야."
"한창, 이성에 민감한 나이잖아. 두리 걔, 아마 언니를 생각하면서 밤마다 자위를 할지도 몰라."
"이유리!"
"언닌 남자에 대해 너무 몰라~"
"저 자꾸 그러면, 나 정말 화낸다."
"알았어. 그냥 농담해 본거야."
나는 적당히 둘러댔지만, 언니의 마음이 두리에게 가 있다는 걸 모를 만큼 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리가 언니를 생각하며 자위를 한다는 내 말은 거의 99 퍼센트 맞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 * *
"두리야, 기다려"
방과 후, 미술실로 향하던 내 앞에 두리의 모습이 보였다.
"언니에게 들었어. 두리 너, 미술부 부장이라며?"
'유미 선생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 은은하고 달콤한 냄새.'
"나도 지금 미술실에 가는 길이야. 구관에 있지? 안내 좀 해 줄래?"
"아, 네에..."
'후훗...옆에서 보니까, 정말 귀엽게 생겼네. 깨물어 주고 싶어."
"두리 너, 공부도 아주 잘 한다며?"
"네?"
"언니가 그러던데, 체육 빼고는 다 학년 톱이라고."
'유미 선생님, 붙임성 갑이네. 선생님이 아니라 풋풋한 여대생이랑 얘기하는 느낌...'
* * *
나는 두리와 나란히 걸었다. 키도 나와 비슷했다.
'린스 향기일까,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옅은 화장품 냄새에 섞여 부드럽고 달콤한 냄새가 나..정말 좋다...'
"여기에요."
두리가 미술실 앞에 서서, 자물쇠를 딴 뒤, 문을 열었다.
"교실이랑 비슷한 크기네."
주위를 둘러보자, 구석에 이젤과 캔버스가 몇 개 놓여 있고, 선반에는 석고상이나 꽃병 같은 게 놓여 있었다.
"미술부원은 몇 명이야? 다른 아이들은 안 오니?"
실내를 둘러본 뒤, 두리의 옆으로 다가가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부원이라고 해 봤자, 몇 명 안 되요. 그리고 미술실에도 자주 안 오고..."
"그냥 이름만 올려놓고 활동은 별로 안 하는 모양이지."
"네.."
나는 다시 두리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그림을 그리려고 온 거니?"
"네. 집에서 그림을 그리면, 엄마한테 혼나거든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림 따위 그린다고."
두리가 자신이 그린 수채화를 내밀었다. 기교는 떨어지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개성 있는 풍경화였다.
"좋은 그림이야."
"그냥 취미인걸요."
나는 의자에 앉은 뒤, 내 옆으로 다른 의자를 끌어당겼다.
"앉아."
"네."
두리가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아침 조회 때 널 보는 순간, 솔직히 내 마음에 들었거든.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귀여워서 더 마음에 드는데."
"......"
'선생님이 아니라, 누나가 동생에게 말하는 것 같아. 이런 누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직설적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걸 말했다.
"두리 너, 학교 끝나고, 시간되면 내 모델이 되어 주지 않을래? 졸업과제로 그림을 제출해야 되는데, 너 처럼 예쁜 소년을 그리고 싶거든."
"네에?...."
"지금 언니랑 같이 살거든. 두리 너 혹시 언니 집 어딘지 아니?"
"네...주소는 알아요."
"그래? 잘 됐네. 그럼 학교 끝나면, 그곳으로 와 주지 않을래?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시간 내줘.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네, 선생님만 좋다면 전 상관 없어요."
"정말?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지금 가지 않을래?"
나는 기뻐서 두리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며, 곧장 두리의 손을 잡고 미술실에서 나왔다.
'꿈만 같아...유미 선생님 담당이 미술이라 잘하면 친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나절만에 이렇게 친해져서 선생님 집에까지 가게 되었잖아.'
* * *
"두리 너, 나랑 같이 걷는 게 창피하니? 왜 자꾸 떨어져 걷는거야?"
"아, 아니에요."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그리고...친구들이 보면 놀리거나 소문이 날 것 같아서...'
"두리야, 버스 왔어."
나는 두리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도중, 두리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럼, 지금 집에는 미미 선생님이랑 유미 선생님 둘 밖에 없어요?"
"응. 아빠가 해외 지사에 부사장으로 발령났거든. 엄마도 아빠 따라서 영국으로 갔고. 그래서 집에는 언니랑 나 둘뿐이야."
* * *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 도착했다.
"집이 정말 좋아요."
"응. 고마워."
2층으로 지어진 반듯한 단독주택으로, 나와 언니의 방은 이층에 있다.
나는 두리를 차고 2층에 있는 내 아틀리에로 안내했다.
"여기가 내 아틀리에야."
"멋지다!"
"옷 갈아입고 올게. 그동안 편하게 둘러 봐."
"아틀리에가 꽤 넓네. 게다가 넓은 창으로 햇살이 비춰들어 어둡지도 않고...나도 이런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두리는 안을 둘러 보았다.
이젤 위에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의자가 있고 책상 위에 화구와 미술 잡지 같은 게 흩어져 있고, 취침용인 듯 침대까지 한 쪽에 놓여 있었다.
물감과 기름 냄새가 실내에 자욱했다. 그리고 그 냄새에 섞여 유미 선생님의 달콤하고 향긋한 체취가 느껴졌다.
* * *
"오래 기다렸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오렌지 주스 두 잔이 담긴 쟁반을 책상 위에 놓았다.
"두리야, 교복 상의는 벗고 의자에 앉아 봐."
나는 의자에 앉은 뒤, 와이셔츠와 검정색 바지를 입은 두리를 방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흐음~ 좀 진지한 표정을 지어 봐. 살짝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이렇게요?"
"두리 너 사랑해 본 적 있어?"
"네?"
"없구나. 그럼, 여자한테 차인 적도 없겠네?"
두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게 너무 귀여웠다.
'정말 탓 내 타입이야...'
"여자를 정말 좋아해 본 적은 없어요. 아이돌이나 여배우를 좋아한 적은 있지만..."
"그래? 연애경험 제로란 말이지? 요즘 아이치고는 꽤 늦네."
"......"
"할 수 없지...그럼 배고파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 봐."
가볍게 웃으며, 반농담으로 말했지만, 진지한 성격인지, 두리는 내가 시킨대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그대로 움직이지 마."
나는 두리가 없을 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디카로 두리의 사진을 찍은 뒤, 데생용 숯으로 재빨리 캔버스에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날은 1시간 정도 데생을 한 뒤, 순순히(?) 두리를 귀가시켰다.
'서둘러 먹으면 체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