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13)



〈 1화 〉1화

분명 술을 진탕 마시고 잤는데  이렇게 멀쩡하지?
아, 그러고 보니까 여긴 꿈속이구나.

불금을 기념해서 회사에서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소주와 맥주를 사왔고, 전자레인지로 대충 익힌 소시지를 안주삼아 소파에 누워서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거리다가 잠에 빠져들었는데...

그리고 지금은 꿈속에서 잠들기 전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는중이다.

며칠  반복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자각몽.
꿈속에서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고 감각들도 제법 리얼하게 느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자각몽은 운이 좋아야 아주 가끔 꿀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며칠 전부터 잠에 빠져들면 무조건 자각몽을 꾸고 있는 중이다.
뭐, 신기하긴 하지만 좋은 현상이니까 무시하기로 했다.

“그럼 오늘은 꿈에서  하면서 놀아 볼까.”

어제는 꿈속 배경이 대학시절로 돌아가서 수업을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크으~ 강의 도중에 앞으로 걸어 나가서  싸가지 없는 교수의 싸다구를 때릴  손바닥의 찰진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네.”

이미 꿈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일탈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내 싸다구를 맞고 어이없어하는 교수의 면상에 주먹을 한대  날려주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왔었다.

그런데 오늘의 꿈속 배경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사방이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쳐진 메시지는 선명하게 보였다.

[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쉼터를 직접 설계해 보세요.]

무슨 말인지는 대충 이해했으니 바로 설계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일단 나는 창의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TV에서 자주 봤던 고급 호텔방을  올리며 대리석을 이용한 벽면과 아주 크고 화려한 침대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가구들을 배치했다.
더 넓고 화려한 공간을 설계하고 싶지만 인테리어 감각이 부족한 내 머리로는 딱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방에서도 할 수 있는 건 많으니까 대충 여기가지만 하고...”

음식을 만들어 내는  생각보다 쉬웠다. 이름의 키워드나 재료의 성분을 통해서 검색하면 이미지가 나타나고 클릭해서 내가 만든 방안에 놓기만 하면 끝.
어차피 내돈주고 사는 것도 아닌데 수십 가지의 음식들과 고급양주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대충 음식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봤는데 정말 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실과 똑같은 맛이 느껴졌다.

“확실히 내가아는 자각몽과는 다르단 말이야.”

꿈속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것과 지나치게 현실적 감각을 느낄  있다는 부분에서 단순한 자각몽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언제까지 이 꿈을 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때 까지 열심히 즐기면 그뿐.

내가 직접 설계한 호텔방에 각종 양주와 안주를 마련하고 자리에 앉았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허전한 게 뭔가 빠진...그래! 여자가 없구나.”

나름 규모 좀 되는 중견기업 영업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접대할일이 많았고 룸에서 아가씨를 끼고 술을 마신 경험도 많다.
이미 아가씨의 시중을 받으며 마시는 술맛을 알아버렸다.

“꿈이니까 여자들도 만들어낼 수 있겠지?”

매뉴가  복잡하긴 했지만 게임강국 대한민국의 남성에게 이 정도 쯤이야.
대충 여기저기를 눌러보다가 [인물 생성]을 찾았다.

성별부터 시작해서 머리 스타일, 피부색, 눈동자의 모양, 체형 등등 끝도 없이 나열되는 바람에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다.

“아아악!! 이런 씨발!!!”

게임 캐릭터를 생성 할 때도 직접 커스터마이징 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샘플 캐릭터를 고르는 나에게 이건 엄청난 고문이었다.
그래도 이건 게임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머릿속으로 대충 내가 좋아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며 차근차근 그려나갔다.
하지만 결국은 포기.

“하아, 아무리 꿈이지만 이따위로 생긴 년이랑 어떻게 같이 술을 마시나...”

내 앞에는 정말 술맛 떨어지게 생긴 오크년이 떡하니 서 있었다.
눈이 더 오염되기 전에 얼른 [삭제] 버튼을 눌러서 치워버렸다.
역시 나는 이런 쪽으로는 재능이 꽝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맛좋은 음식과 고급술을 앞에 두고 혼자 마시자니 영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그냥 내 머릿속 이미지를 인식하고 알아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음식이나 사물과는 다르게 생명체의 생성은 그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새로운 기능이 눈에 들어왔다.

[현실의 정보 불러오기]

“오... 이런 기능도 있었네?”

일단 클릭.

[지형] [인물].......

제법 많은 매뉴들이 있었지만 딱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서, 설마...?”

현실에 존재하는 지형을 그대로 불러올 수 있을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이 맞다면 힘들게 직접 방을 꾸밀 필요가 없었는데.

[지형] 클릭.

또 다시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주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주소는 우리 집과 회사밖에 없다.
대충 우리 집 주소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내방과 똑같은 공간이 화면에 나타났다.
대충 원리는  것 같다.

“현실의 지형을 그대로 카피하려면 주소를 알아야 된다는 말이네.”

어차피 내방이나 회사보다는 내가 임의로 상상해서 만든 이 공간이  화려하고 좋아 보이니까 헛수고는 아닌 셈.

“다행이네. 그럼 이제 인물정보를 살펴볼까.”

[인물] 클릭.

설마 그 인물이 살고 있는 집주소를 입력하라는 그런 개소리는 하지 않겠지?

[해당 인물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세요.]

“이런 씨발...”

더 좆같은 메시지가 내 눈앞에 튀어나왔다.

“아오!! 내가 여자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을 리....있네?”

딱, 한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내 머릿속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었다.
대학생 시절 편의점에서 같이 알바하면서 알게 된 동생.
내가먼저 근무를 하고 있었고 뒤늦게 지원한 그녀의 이력서를 보면서 확인했던 주민등록번호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내 주민등록번호랑 워낙 비슷해서 얼떨결에 외웠는데 아직도 기억나네. 그때는 어리고 예뻤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여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확인버튼을 눌렀다.

[검색 중...]

약 1분 정도의 로딩 시간이 지나고 한 여성의 이미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화면의 이미지를 좀  확대해서 살펴봤다.
성숙해 지긴 했지만 내가 아는 민지의 모습이 맞았다.

“오오 20살 때보다 오히려 더 예뻐졌네?”

[현재 박민지는 수면상태입니다.]
[해당 인물의 영혼을 불러 오겠습니까? YES/NO]

겨우 이미지를 카피해서 데이터를 만들어내면서 거창하게 영혼을 불러온다는 문구에 웃음이 나왔다.

예쓰!

그래도 꿈에서 이정도 퀄리티라면 만족할만하다.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예스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은근 기대감이 생기면서 긴장이 된다.

- 파스스스

약간의 효과음과 함께 앞에 여성의 모습이 생성되었다.
밝은갈색으로 염색하고 웨이브를 살짝 넣어준 화려한 헤어스타일.
피부는 잡티가 없고 뽀얀 게 타고난 듯했다.
눈이 크고 전형적인 강아지상 미인으로 귀여우면서도 성숙미가 동시에 느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면서도 마네킹처럼 멈춰있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봤다.
잠잘 때나 입을법한 짧은 핫팬츠에 나시를 입고 있고 있는 민지의 모습을 보다가 어느 한 곳에 내 시선이 멈췄다.

“호오, 제법 가슴이 크잖아?”

항상 편의점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착 달라붙는 나시를 입고 있으니 봉긋한 가슴이 눈에 확 띄었다.

“실제 민지의 사이즈와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것 보다는 좋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작은 특징까지도 디테일하게 적용된  봐서는 3사이즈 역시 동일할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는 민지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박민지의 영혼이 100% 동기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구와 함께 내 귀에 들려온 소리.

“꺄악!”

아, 깜짝이야 심장마비 걸릴  했네.
남자 목소리였으면 그대로 주먹이 날아갔을 테지만, 상큼한 여자의 목소리니까 그냥 넘어간다.
일단 외형은 민지와 똑같은 그녀에게 아주 반갑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누, 누구세요...? 그리고 여긴 어디죠....?”

상황을 보면 딱 납치됐다가 깨어난 컨셉인데, 그렇다면 내가 납치범인가?
제법 신선한 게 나쁘지 않은 연출이다.
어차피 내 꿈속이니까 법적인 처벌이나 사회적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고 말이지.

“오빠 기억 안나? 8년 전 즈음인가 문천대학교 정문에 있는 편의점에서 같이 알바 했잖아.”

“....아!...그, 그...이름이.....”

“에이~섭섭하네. 오빠는 민지 이름뿐만 아니라 같이 알바 할 기억이 생생한데.”

“그게...저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데 이름이 잘...”

8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지만, 6개월이나 함께일했는데 이름조차 기억 못한다는 건 그녀의 기억 속에 나는 정말 휙 스쳐가는 인물 중 하나라는 말이다.
저 정도 외모라면 주변에 밥 사주겠다고 껄떡대는 남자들이 많긴 할 것 같다.
가슴 아프지만 일단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비록 꿈속의 인물이지만 확실히 나에 대한 기억을 그녀의 가슴 깊숙이 심어주기로 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 여기 와서 앉아.”

“네에...?”

“네에 라니? 아직 상황파악이 안 돼?”

“.........”

“오빠 이름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일단 거기 그만  있고 여기 와서 앉자.”

“.....정말로 저를 납치한 건가요?”

재밌어 보이니까 일단  꿈속 시스템이 만들어준 컨셉을 충실히실행해나가기로 했다.

“알바 할 때 보니까 너 눈치도 빠르고 똑똑하던데, 상황 파악했으면 얼른 와서 앉아.”

나는 내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진주성찬이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래도 여전히 민지는 몸을 떨기만 할 뿐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말에 거역하기보다는 처음 겪어보는 공포에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 했다.
진짜사람처럼 감정을 너무 리얼하게 만든 거 아니야?
나는 또 다시 이놈의 꿈속 퀄리티에 감탄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말 잘 들으면 집에 보내 줄 테니까 걱정 마.”

“저, 정말 풀어주실 건가요....?”

“너 하는 거 봐서. 근데 지금도 계속 내말 안 듣고 반항 중인 건 알고 있지?”

“아...!”

이제야 조금은 정신이 들었는지 민지가 천천히 내 옆자리로 걸어와서 앉았다.
여전히 창백하게 겁에 질린 표정으로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휘유~너무 긴장했네?”

움찔.

너무 긴장해서 뭉친 민지의 어깨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주무르자 그녀는 크게 한 움찔하더니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내가 먼저 농담 삼아 8년 전, 그녀와의 추억을 꺼내보기로 했다.
물론, 그녀에게 좋은 추억은 아니겠지만.

“민지 너 알바 마지막 날에 내가  한 잔 사준다고 했는데, 급한 일 있다고 그냥 갔잖아. 기억나지?”

“아....그, 그때는....”

“남자친구랑 데이트?”

“아, 아니에요...엄마 생일....”

민지가 당황하며 대답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더 귀여운 모습을 볼  있을 거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엄마 생일이 1년에 2번 있나봐?”

“네에...?”

“알바 그만두기  달 전에 엄마 생일이라고 친구가 대타뛰었잖아?”

“.......”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더욱 크게 떨고 있는 민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지 뭐.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나서 술 한  할 기회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 그치?”

“그, 그럼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거짓말 하면 알지?”

“.....네, 네!”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에 더 겁을 먹었는지 민지가 아주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제야 진짜 술 마실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민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던 내 손은 어느새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고 은근슬쩍 내 손가락이 그녀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내 행동에 민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살짝 맺히기 시작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뭐해? 빨리 오빠 잔에 술 따르고 안주 대기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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