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13)



〈 8화 〉8화

민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 종속되기로 하고 나서 확실히 달라진 태도가 눈에 보였다.
같은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추며 키스를 해주는 건 기본이고 와이셔츠를 입혀주고 넥타이까지 정성스럽게 매어준다.
갑작스런 지극정성에 오히려 내가 어색할 지경이다.

“갑자기 너무 달라진 거 아니야?”

“...최대한 열심히 해 볼 테니까. 알아서 잘 챙겨주세요.”

“그럼. 내가 원래 남의 것은  망가뜨리고, 내 것은 또  챙기거든.”

나는 내 것이 되겠다고 본인 입으로 말한 민지의 결심을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이 정도는 해야 그래도 완전한 내 소유라고 할  있으니까.

“아침부터 너무 꼴려서 그런데 빠르게 입으로 좀 빼주고 정액은 전부 삼켜. 할 있지?”

“....네. 할게요.”

입으로 하는 건 몇  해봤으니까 당연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내 정액을 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꿀꺽 꿀꺽.

쪽쪽.

정말로  정액을 모두 삼키고도 더욱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계속 쪽쪽 거리며 내 자지를 빨아대고 있다.
이 정도면 일단 합격.

“아주 잘했어. 앞으로 반항하지만 않으면 이유 없이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야.”

“콜록...콜록...이제 출근 해야죠. 그러다 또 늦으면 혼나잖아요.”

“그렇지. 늦으면 부장 새끼가 나를 잡아먹을 거야.”

민지와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함께 내려와서 각자의 회사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아직 민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네.
일단, 오늘 저녁에 오면 민지에 대한 모든 걸 조사해봐야겠다.

***

“휘휘~~휘~~”

“어라? 강 과장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요?”

내 유흥친구, 아니 부하직원 김상우 대리가 휘파람을 불면서 사무실에 들어오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오늘 지각해서 박 부장한테 존나 깨질 줄 알았는데, 마침 아직 출근 전인 것 같아서 말이야.”

“저, 저기...강 과장님...부장님 오늘 7시에 오셨는데요....”

“어, 어? 주차장에 부장님 차 없던데? 지금 사무실에도 안보이고.”

“타이어 펑크 나서 제차 타고 같이 오셨고, 부장님 아까부터 저기 서 있었는데요....”

뭐지, 또 불길한 느낌은...
내 고개가 뒤로 돌아가는데, 아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씨발, 역시나 내 촉은 너무 정확해서 문제다.

“부, 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지각한 것도 모자라서 상사의 직책도 날려먹고 동네 강아지 부르듯이  부르네?”

“아...그, 그게....”

“너, 지난번에 그 바이어들과의 계약 실패하면, 이거야 이거 알아!?”

박명호 부장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나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며칠 있으면 가계약을 마친 바이어들과의 본격적인 미팅이 있다.
그리고 이 미팅을 마치고 나면 분명 술 접대가 있을 것이다.
불발 안 나게 그 날, 잘 모시라는 뜻이다.
하긴, 내가 그런  말고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역할 하나 때문에 이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고, 진급도  거니까.

“걱정 마시고 맡겨주세요.”

“그래, 그런 거라도  해야지.”

내가  부장에게 깨지고 있을 때  주변에서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왔다.
여직원들의 하이톤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질간질 거리게 했다.
내가 소리의 근원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쭉 훑어보자 여직원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일하는  했다.
이미 대충은  안다.
니년들은 주민등록번호 나한테 털리는 순간 뒤지는 거다.
근데 어떻게 하면 주민등록번호를 털 수 있을까?
박 부장 정도 되면 직원들 신상정보는 쉽게 알  있을 텐데.
한 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일하는  했다.

“강 과장님, 연기 그만 하시고 식사 하러 가시죠?”

“어? 김 대리였네. 벌 써 점심시간이야?”

“이미 다들 식사하러 가고 사무실에 저랑 과장님 둘 뿐입니다.”

그나마 회사에서 나와 격 없이 지내는 유흥동료 김 대리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김 대리가 그 당시 기수 중에서 수석으로 들어왔지?”

“큼큼, 제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압도적인 성적으로 들어왔죠.”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해서 회사에서 사랑받고 있는 녀석인데 유일한 단점이 술과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나와 어울려 놀다가 이미지가 심하게 망가졌다는  정도.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이미지가 좋은 편이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김상우  녀석은 나와 다른 의미로 박 부장에게 총애를 받고 있다.
내가 그저 술상무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녀석은 진정한 박 부장의 오른팔이다.

“우리 구내식당 말고, 저기 앞에 새로 생긴 백반 집으로 가지. 내가  테니까.”

“헉,  귀에 이상이 생겼나 봅니다. 환청이 들리네요.”

“그 동안 내가 후임에게 너무 무심했지? 오늘 거하게 살 테니까 맘껏 먹도록 해.”

남자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는 내 좌우명을 깨면서 까지  대리에게 밥을 사줬다.
맛있게 밥을 먹고 대충 분위기가 잡혔을 때 나는 대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김 대리, 부탁 하나만...”

“아아, 역시 이럴  알았다니까요.”

“일단 들어는 봐. 너무 걱정 돼서 그렇단 말이야. 너는 내가 회사에서 짤리고 앞으로 유흥을 함께할 동료가 없어지면 좋겠어?”

“젠장...그건 안 되는데. 부탁이 뭡니까?”

“박 부장 서랍에 보면 업무평가 적어놓은 파일철 있잖아. 그거 김 대리가 엑셀로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잖아 그치?”

“아, 진짜. 강 과장님. 아무리 그래도 업무평가 점수 위조하는 건 좀 아니라고요. 더구나 인사과에서는 제가 작성한 엑셀 파일만 보는 게 아니라  부장님이 수기로 작성하신 원본도 같이 본단 말입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그냥...내가 올해 업무평가 점수가 워낙 형편없을 걸로 예상되니까 걱정돼서 몇 점인지 확인만 해보고 싶어서 그래.”

“점수 확인만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며칠 있으면 점수 중간집계 한다고 부장님이  대리한테 작업 시킬 것 같은데, 그  모두 퇴근하고 사무실에 우리 둘만 있을 때 잠시만 보여주면 돼.”

“그건  어렵지 않지만...겨우 밥 한 번 사주고 이런 부탁하기 있습니까?”

“곧 바이어 접대가 있을 예정인데 그 때 불러줄게.”

“그 정도면 괜찮네요. 콜!”

 업무성적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정도면 김 대리가 크게 의심하지는 않을  같다.
분명, 업무평가표에는 직원들의 정보가 간략하게 나와 있고 주민등록번호 역시 기재되어있다.
내가 노리는 건 바로 우리 부서 사람들의 주민등록번호다.

***

퇴근하고 민지의 오피스텔로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민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하고 있다가 나를 보며 다가와서 가볍게 입맞춤을 해준다.

“오늘 회사에서는 안 힘들었어요?”

“힘들 뻔 했는데,  재밌어 질것 같아서 괜찮아.”

“다행이네요. 얼른 씻고 나와요. 소고기 넣은 된장찌개 끓였어요.”

“이런 기특한 것~”

나는 민지의 볼을 한 번 꼬집어주고 씻으러 들어갔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현모양처가 되어버린 민지의 모습에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뭔가 복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칼을 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살짝 들 정도였다.
혹시 모르니까 경계를 풀지는 말자.

저녁을 먹고 나는 민지의 목욕시중을 비롯해서 각종 하드코어한 섹스 자세를 요구했다.
민지의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내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현자타임이 찾아와서 멍하니 있으면 알아서 애인모드로 돌변해서 내 품에 안겨왔다.
이럴 때 보면 내가 그동안 민지를 괴롭힌 게 미안해 질 지경이다.
그래도 그런 과정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민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폭풍 같은 섹스가 끝나고  품에 안겨있는 민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무슨 일 해?”

“오빠 회사 가는 길에 보면 서초동에 법원 있잖아요.”

“그래 법원 있지.”

“법원 근처에 있는 로펌에서 근무해요.”

“로펌에서...? 설마 너 사법고시 합격했어?”

“네. 로스쿨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사법고시 준비했는데 합격했어요.”

“어쩐지 말을 또박또박 잘한다 싶었더니 변호사였네. 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거고...잠깐만...”

“네에? 왜요?”

이거 뭔가 불안한데?
대한민국에서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직업을 가졌는데, 지금 나와의 이 관계는...

“야, 너 지금 나 콩밥 먹이려고 준비 중이지?”

“이제는 아니에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증거 잡아서 고소하려고도 해 봤는데. 꿈속에서 있었던 일은 그 어떤 증거도 안 돼요. 결국 저는 오빠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은 것 밖에는 안 되고, 현실에서 있었던  가지 강제성을 가지고 처벌이 가능해 진다고 해도...저는 오빠한테 더욱 큰 보복을 받게 되겠죠. 그래서 그냥 오빠 말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어요.”

“그으래...?”

너무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하는 민지의 말에 나는 설득되어 버렸고, 일단은 의심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법을 다루는 사람답게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논리도 아주  알고 있네.
그렇다면 이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 자기를 꿈속에서 해방시켜주면 매달 300만원 씩 주겠다는 그 말.
연봉이엄청 세다는 뜻이겠지.

“개인 변호사 사무실도 아니고 로펌에 소속되어 있으면 연봉 많이 높겠는데?”

“지금 3년 째 근무하고 있는데, 2억 조금 넘어요.”

“와, 씨발...존나 많이 버네...혹시 내가  돈  뺏어 가면 너 어떡할 거야?”

“.......”

나에게 순종하겠다던 민지도 이번에는 당황했는지 대답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나는 민지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서 계속 기다렸다.

“....원하면 다 가져가세요.”

민지는 똑똑한 머리로 수많은 생각과 계산을  봤을 거다.
내가 어떻게든 돈을 뺏어가고 싶다면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힐 것이고 그걸 버틸  있을 것인가?
결론은 불가능 하다는 계산이 나왔겠지.
지금 민지의 표정은 정말 세상 살기를 포기한 듯 보였다.

“그냥 물어본 거였어.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진짜 돈이 급하면 그 때 가져가도 되니까 지금은 민지에게도 최소한의 숨구멍은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진짜 돈을 물 쓰듯 쓸 수 있는 재력가 여성을 교육시켜서 데리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민지에게 했던 교육방식이라면 웬만한 여자들에게는 다 통할 것 같은데.
당연히 외모도 받쳐줘야 하니까 천천히 찾아보자.

나는 이제 잠들기 전에 습관처럼 민지의 가슴을 만졌다.
민지 역시도 조금씩 나와의 스킨십에 거부반응이 줄어들고 있는지 제법 익숙해진  같았다.

꿈속에 들어가서는 확실히 민지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 원하는 게 있으면 다 제공해줬다.
그리고  곳에서는 아무리 체력소모가 많은활동을 해도 아침에 깨어나면 푹 잔 것처럼 피로가 풀려있고 개운하다는 장점 때문에 민지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어쩌면 현실과 이곳 세상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바꿔버렸는지도 모른다.

***

나는 원래 내가 살던 집의 처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차피 민지와 함께 살면서 유령의 집처럼 저렇게 방치해 둘 필요가 있을까.
비록 서울 외각에 위치하고 20년이나 된 아파트지만 3억은 넘는다.
내가 수년간 개처럼 일하면서 모은 돈과 부모님이 지원해 주신 돈으로 겨우겨우 마련한 내  재산이다.
나의 이런 고민을 해결 해준 건 민지의 조언이었다.

“오빠, 그냥 파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직 20년이면 재개발을 바라보기에도 무리고, 차라리 팔고 그 돈을 다른  활용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역시그렇지?”

“네, 그리고 어차피 저랑 같이 지내면 되는데 당장에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아파트를 팔고 3억을 현금화 시키는 걸로 결정했다.
 그래도 현금이 너무 부족해서 불편한 것들이 많았는데 차라리 잘됐다.
그리고 <영혼의 쉼터>라는 꿈속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야한다.
아무리 요즘 시대가 정보에 많이 노출된 시대라고 하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아무렇지 않게 알아낼 수 있는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한 법이다.
당장에 우리 부서 직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김 대리에게 피 같은 내 돈으로 밥을 사줘야 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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