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1화
나는 회사에서 칼퇴근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자마자 침대에서 누웠다.
시간은 아직 8시밖에 안됐지만 꿈속에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민지는 자기도 나를 따라서 바로 <영혼의 쉼터>로 들어가겠다고 내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바로 잠드는 패시브 스킬이 없는 민지는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지 내가 먼저 들어와서 민지를 소환하려고 했지만 수면상태가 아니라는 문구만 반복될 뿐이었다.
앞으로 두 세 시간 후면 평소 민지의 취침시간이니까 그 때, 불러주기로 하고 나는 곧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꿈속에 들어오기 전에 암기해 두었던 대형 놀이공원의 주소를 입력해서 귀신의집을 불러왔다.
그 속에 들어있는 귀엽게 생긴 귀신인형들은 모두 삭제해버리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 넣기로 했다.
당연히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로 말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좀비는 대충 내가 그리기로 했다.
사람 모형의 인형을 불러와서 얼굴부위는 망치로 으깨어 함몰시키고 넝마의 옷을 입혀두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데?
아차, 좀비면 당연히 초록색 피가 있어야지.
나는 좀비의 몸 안에 초록색의 피를 채워 넣고 함몰된 얼굴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원래는 이런 걸 싫어하는데 계속 하다보니까 창조의 재미가 쏠쏠했다.
좀비를 시작으로 여러 생명체를 창조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11시가 되어있었다.
아! 민지의 영혼을 소환해야지.
나는 곧바로 민지의 영혼을 소환시켰고 파스스 하는 효과음과 함께 민지가 나타났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있던 민지는 동기화가 끝나자마자 나를 보고 반갑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빠....꺄악!”
하지만 달려오던 민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앞에 있는 괴기한 생명체들을 보고 놀란 듯 했다.
“괜찮아. 아직 생명력도 없는 껍데기 상태니까. 그리고 생명력이 들어가도 우리는 공격 안 해.”
“지, 진짜...? 그래도 너무 징그럽고 무섭게 생겨서...”
“그럼 다행이네. 안 무서우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
아직도 어설픈 부분이 많아서 좀 더 외형을 보강하기로 했다.
그런데 민지가 옆에 붙어서 계속 내가 작업 중인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무섭고 징그럽다면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가서 놀지 않고.”
“오빠, 이거 흉측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죠?”
“그렇지.”
“그럼 여기 이빨을 좀 더 길게 만들고 팔 한쪽은 꺾어 놓는 게 어때요?”
“오오. 괜찮은 생각인데?”
그러고 보니까 민지가 그림을 좀 잘 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예술적 감각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듯싶다.
예전 편의점 알바 시절에 손님이 없을 때면 민지는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 실력이 꽤나 훌륭했다.
나는 민지가 지적해 준 부분을 그대로 적용해서 수정해 나갔고, 민지도 재미를 붙였는지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정말 내가 봐도 무섭고 징그럽게 생겼다.
여기서 이렇게 대충 새워놓고 봐도 이런 느낌이 드는데, 겨우 사물의 구분이 될 정도로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이들과 마주친다면 몇 배의 공포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이 그 년들에게 선사할 공포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잔인한 공격성이 될 것이다.
나는 괴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형을 점검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시켜서 생명력을 부여했다.
괴물들의 성향, 지능, 목소리 등을 디테일하게 설정했지만 모든 행동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시에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영혼 빙의]라는 옵션이다.
쉽게 말하면 내 영혼이 저 괴생명체의 몸에 빙의해서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런 거다.
단순히 조정하는 정도를 넘어서 빙의한 순간은 내가 그 괴물이 되어버린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까지 모두 내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다른 신체구조를 가진 거미형 괴물이라 하더라도 내가 빙의 한 순간, 마치 원래 내 태생이 거미인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게임의 퀄리티를 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훌륭한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먹잇감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괴물들을 위해서 그 년들을 소환해 보기로 했다.
벌써 새벽 2시가 넘었으니 모두 잠들었겠지?
[현재 배지영은 수면상태입니다.]
[해당 인물의 영혼을 불러 오겠습니까? YES/NO]
[현재 이지수는 수면상태입니다.]
[해당 인물의 영혼을 불러 오겠습니까? YES/NO]
[현재 박미희은 수면상태입니다.]
[해당 인물의 영혼을 불러 오겠습니까? YES/NO]
[현재 천수연은 수면상태입니다.]
[해당 인물의 영혼을 불러 오겠습니까? YES/NO]
4명 모두 마침 잠이든 상태였고 어제 대기했던 각자의 방으로 소환했다.
역시나 동기화가 끝나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왜 또 여기야!!! 이거 꿈이잖아!!
“아악! 진짜 또 이 꿈이야...”
“서, 설마 진짜로 또 이 꿈을 꾸게 될 줄이야...”
“어차피 꿈인데 어제처럼 그냥 시간 지나면 끝나겠지 뭐.”
설마 했더니 정말로 이 꿈을 또 꾸게 됐다는 사실에 벽을 두드리며 난리를 치는 3명과는 다르게 배지영은 어차피 꿈일 뿐이라면서 제법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배지영은 31살로 나보다 2살 어리지만 오히려 입사는 더 빠른 선임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내가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떨어졌기 때문에 나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며 씹어대는 년이다.
과연 저 여유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궁금하네.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번 더 무대를 꼼꼼히 점검하기로 했다.
곧 게임이 시잘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민지도 슬쩍 내 옆에 다가와서 저들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자신도 함께 참여해서 만든 작품이니 궁금한 모양이다.
***
서로 떨어진 독방에 갇힌 채, 배지영, 이지수, 박미희, 천수연은 어제에 이이서 오늘도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어둡기만 했던 방안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4명에게 동시에 일어났다.
“뭐, 뭐지...?”
“아, 눈부셔...”
“갑자기 분위기가 또 바뀌니까 무섭네...”
“잠에서 깨어나는 중인가?”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멈추었을 때, 사방을 가리고 있던 벽 하나가 사라지면서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잠시 주춤하던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빛이 들어오는 그 통로를 향해서 달려갔다.
“헉...여긴...”
그 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랍기도 하지만 너무 익숙했다.
“여긴 이편한 마트...?”
현재 4명의 위치는 이편한 마트의 지하1층, 각 모서리였다.
서로 마주치지 않는 위치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 곳은 자신의 꿈속이고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이 무섭긴 하지만 꿈속일 뿐이라는 생각을하면서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동했기 때문에 네 사람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했다.
꽤나 넓은 공간이긴 하지만 현실과 마찬가지로 각 코너마다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시야를 많이 가렸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이들의 귀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 누구지? 나 말고 또 누군가 있는 건가?’
‘여긴 내 꿈속인데...하긴, 내 꿈속이라도 다른 사람이 나올 수는 있지.’
‘무, 무서워...’
‘진짜 별 이상한 꿈을 다 꾸네.’
속으로 오만 상상을 다 하며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4명의 귀에는 그 발자국 소리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발자국 소리가 바로 옆에 위치한 상품 진열대 쪽에서 들려왔다.
저벅저벅.
“꺄악!”
“악!”
“엄마야!”
“어어!?”
발자국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배지영, 이지수, 박미희, 천수연 이었고, 드디어 네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마주쳤다.
“어, 언니들이 어떻게...”
“다들 진짜 맞아요...?”
“하아, 진짜 모르겠다. 뭐가 뭔지...”
“너희들 다 가짜 아니야?”
네 사람은 한 참 동안이나 서로 대화를 나누며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뭔가 찝찝했다.
그저 자신의 꿈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들일까? 아니면 저들은 모두 실제 당사자들이 맞고 4명의 꿈이 연결되어 버린 걸까?
확실한 건 잠에서 깨어나서 회사에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지금은 이들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보다 이 꿈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상의하기로 했다.
“딱히 뭔가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꿈속인데 시간이 지나면 깨겠지.”
“지영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오면서 과자 하나 먹어봤는데 진짜 현실에서 느끼는 맛이랑 똑같았어요. 과자 먹으면서 수다나 떨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거 좋은 생각이네.”
“저도 그게 최선인 것 같아요.”
혹시라도 자신의 꿈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하는 당사자들인 경우를 생각해서 선배에게 반말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평소 태도를 유지했다.
비록 오늘처럼 한 장소에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전날에 모두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 때문에 ‘혹시’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이렇게 마트에 모여서 공짜로 먹고 싶은 과자와 과일들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으니 나름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참이나 큰소리로 떠들며 웃고 즐기고 있을 때, 네 사람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이잉 쾅.
위이이잉 쾅.
“무, 무슨 소리지...?”
“어! 저기 방화셔터가 내려오고 있어요!”
“어서 일어나!”
저 멀리서부터 방화셔터가 내려오며 밝게 비추던 등이 하나씩 꺼져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 던 네 사람은 빠르게 일어나서 방화셔터가 내려지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이들은 결국 지상1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다행히 지상1층은 방화셔터가 내려오지 않았고 불도 꺼지지 않아서 환한 상태였다.
네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지금까지 잘 먹고 재밌게 놀았지?
“이, 이목소리는...”
“어제 그 놈 목소리에요!”
네 사람은 안내 방송에서 나오는 음성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어제 꿈에서 깨기 직전에 내일 또 보자고 말했던 그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 이제 서로 다 모였고 인사도 충분히 나눴을 테니까,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지.
우지직.
“벼, 벽에 금이 가고 있어요!”
“어떡해...”
와자자작!
“꺄악!”
“무, 무너진다!”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마트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네 사람은 엎드린 채 고함을 질러댔다.
그렇게 고함을 지르며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매몰되어야 할 자신들이 여전히 멀쩡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들은 무사했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 따위는 없었다.
다만, 조금 전가지 마트였던 이 곳의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여, 여긴 또 어디야...”
“다시 어두워졌어요...”
“건물이 무너지던 건 그냥 환상이었나 봐요.”
“아! 너무 무서워서 미치겠어요...흑흑...”
또 다시 바뀌어버린 주변 환경에 네 사람은 또 다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막내 천수연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꿈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해도 현실처럼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이 상황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길은 저기 보이는 문 하나밖에 없어 보이는데 들어가는 게 맞겠지?”
“저, 저기 안에 들어가면 또 뭐가 나올 줄 알고...그냥 여기 있으면 안돼요?”
“괜히 여기 대기하고 있다가 또 그 미친 목소리가 들리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가장 나이가 많고 이들의 실질적인 리더라 할 수 있는 배지영의 말에 반응하듯 곧바로 허공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 잘 알고 있네. 1분 안으로 저 문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다. 궁금하면 한 번 기다려보던지.
“당신 누구야!?”
배지영이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네 사람은 과연 저 문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지 여기서 그냥 잠이 깰 때 까지 대기하는 게 좋을지 상의를 했다.
그렇게 잠시 의견을 나누는 동안 1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응? 이게 뭐지?.....꺄아아아!!!”
“배, 뱀이다!!!”
“엄마야!!”
여자들이 싫어하는 뱀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네 사람은 고민할 것도 없이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리고 이 문안에서 뭐가 나온다 하더라도 뱀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끼이익.
“귀신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