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0화
정말로 내 통장에 2억 원이라는 큰 금액이 입금됐다.
당연히 이 돈을 송금한 사람은 민지다.
도대체 0이 몇 개나 붙어 있는지 그 수를 샐 때 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곧 이 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욕이 나온다.
씨발, 개사기 능력을 줘서 감사하긴 한데 이왕 줄 거면 확실하게 다 줄 것이지 존나 더럽고 치사하다.
분명 앞으로도 새로운 기능으로 유혹하면서 돈 뜯어가려는 게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지름신이 강림할 것 같다.
뭐, 앞으로 이 기능들을 이용해서 쓴 돈 이상을 뽑아내야지.
내 명의로 된 통장에 2억 원이 있으니 이제 꿈에서 업그레이드 버튼만 누르면 된다.
처음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저절로 욕설이 나오고 짜증이 났지만, 추가될 기능들을 생각하니 부정적인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은근 기대감이 생겨났다.
인간을 제외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데이터를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기능.
대충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기능이 장점은 서바이벌 게임의 퀄리티를 한 층 더 높일 수 있다는 거다.
오늘 새벽에 최창식 그 개새끼를 조져야 되는데, 이 새로운 기능이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민지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8시쯤에 침대에 누웠다.
정말 이른 시간이라서 가능할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는데, 아주 쉽게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일찍 들어왔다.
먼저 업그레이드부터.
막상 예스버튼을 누르려니까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래도 누르긴 눌렀다.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사용하신 금액만큼 현실의 잔고에서 차감됩니다.]
뭔가 좀 이상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내 돈을 꿈에서 사용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현금으로 인출된 돈도 아니고 단지 인터넷 뱅킹을 통해서 내 통장에 민지가 송금한 돈이 들어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쉽게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 미친 시스템이라면 알아서 잘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추가된 기능을 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볼 때 인간이 무서워하는 건 일단 외형에서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파충류들이다.
특히 뱀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름끼치는 존재니까.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각종 뱀들의 데이터를 가져와서 생성했다.
쉬이익 쉬이익
어어! 씨발!! 저리가!
생명체의 생성 직전에 편집 기능으로 움직임이나 성향을 변경해야 하는데 실수로 원본 그대로의 상태로 확인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미친 뱀들이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어서 존나 튀었다.
나는 도망가면서 간신히 상태창을 열어서 행동을 제어했다.
일단 나는 공격 제외 대상으로 설정해 두고 이런 저런 기능들을 살펴봤다.
초기의 기본 설정은 현실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모든 것이 동일한 상태였고 내가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게 가능한 방식이다.
나는 최창식을 던져놓을 장소로 사막을 선택했다.
나름대로 미리 구상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주소를 외워왔고 까먹기 전에 얼른 입력해서 정보를 불러왔다.
이제 사막에 어울릴만한 생명체를 가져와야지.
전갈, 뱀, 도마뱀, 땅개미 등등
모두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그대로를 가져왔기 때문에 일단 외형은 인형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100% 실제 생명체의 모습이다.
자, 이제 여기서 편집 들어간다.
지금 당장 먹이를 먹지 않으면 죽을 것 만 같은 존나 배고픈 상태로.
성향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저돌적이고 포악하게.
그 다음이 가장 중요하다.
사이즈 업!
원래 2미터 가량의 뱀은 영화 아나콘다에 나오는 녀석처럼 대략 20미터 정도로 늘려서 사막 땅 속을 파고들어갈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했다.
겨우 10센티미터에 불과한 전갈 역시 15미터의 괴물로 만들어 버리고, 그 외 나머지 생명체들도 모두 거대 괴수화 시켰다.
최창식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만큼 재미는 있을 것 같다.
나는 최창식의 영혼을 내가 만든 사막 한가운데 소환했다.
역시나 동기화가 되자마자 어리둥절하게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최창식은 자신의 상황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갑자기 주변의 바닥이 꿈틀거리며 모래바람이 일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최창식은 본능적으로도망치기 시작했고 괴수화 된 뱀은 최창식을 미친 듯이 추격했다.
원래라면 저 새끼가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덩치가 커진 만큼 그 속도가 비례하면 당연히 인간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잡아먹히면 재미없으니까 일부러 도망은 칠 수 있도록 이동속도를 많이 느리게 했다.
그렇다고 마냥 여유 있게 도망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존나 열심히 달리면 아슬아슬하게 도망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곳곳에 최창식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지형들도 만들어줬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최창식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민지와 내기를 했다.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제 생각에는 1시간 정도?”
“나는 그래도 2시간은 버틸 수 있다는 쪽에 건다. 딱밤 3대.”
“콜! 그래도 오빠는 남자니까 왼손으로, 저는 오른 손으로 해요.”
“오케이.”
나와 민지는 나란히 앉아서 정말 영화를 보듯 팝콘과 콜라를 마시며 최창식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관람했다.
“아아아! 저 미친 새끼 왜 저기서 잡아먹히고 지랄이야!”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질렀다.
최창식은 거대 뱀과, 전갈로부터 아주 잘 도망쳤다.
그리고 최창식이 미로 같은 지형으로 숨어들어가서 녀석들을 잘 따돌렸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왼쪽 손가락을 튕기며 딱밤을 때릴 준비를 했다.
당연히 민지는 울상을 지으며 눈을 감고 이마를 내민 채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오아시스를 발견한 최창식이 목이 마른지 아주 다급하게 거기로 뛰어갔다.
씨발...그래서 망했다.
저 오아시스 안에는 20미터 크기의 개구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창식은 짧은 외마디를 남기고 개구리의 혓바닥에 잡혀서 그대로 호로록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최후를 맞이했다.
“와~1시간28분 버텼으니까 제가 이긴 거네요?”
“아놔, 3분만 더 버텼어도 내가 이긴 건데.”
“오빠, 눈 감고 머리 좀 걷어주시고~”
“너 아주 신났다?”
“뭐, 사실 지금까지 오빠한테 당한 건 많으니까 이럴 때라도 때려봐야죠~”
“그래, 실컷 때려라.”
저렇게 여리여리한 여자가 딱밤을 때려봤자 얼마나 아프겠냐는 생각으로 머리카락을 손으로 확 걷어주고 아주 때리기 좋은 위치까지 이마를 대주었다.
딱!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눈에서 별이 보였다.
“아! 씨발, 너 지금 주먹으로 때렸지?”
“아닌데요? 진짜 손가락 튕겨서 때렸어요. 못 믿겠으면 남은 2대는 눈뜨고 맞아보세요.”
딱!
딱!
진짜 민지는 손가락을 튕겨서 때렸다.
그러데 씨발...존나 아프다.
어떻게 저런 파워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쪽쪽.
너무 아파서 잠시 멍 때리고 있는 내 모습에 민지가 나를 껴안으며 부어있는 내 이마에 뽀뽀를 했다.
“오빠 미안해요...많이 아프죠?”
“아니 하나도 안 아파. 존나 간지러워. 그러니까 내일 다시 하자. 딱밤 5대 내기.”
“저는 무조건 콜이요.”
***
회사에 출근하면 일단 분위기를 살피는 게 내 습관이다.
워낙 오랫동안 몸에 베인 습관이기 때문에 대충 문 열고 들어와서 주변을 몇 번 스윽 둘러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의 분위기는 1년에 몇 번 없는 아주 맑음 상태다.
마치 인자한 옆집 아저씨인척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박명호 부장의 표정이 바로 그 증거다.
이때다 싶어서 박 부장의 오른팔인 김상우 대리가 딸랑딸랑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짜식, 역시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왼팔인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대충 친한 척 해주기로 했다.
“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강 과장도 목소리가 우렁찬 걸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이네?”
“부장님 기분이 좋아보여서...저도...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살짝 말을 더듬었다.
다행히 부장은 오늘 정말 기분이 좋은지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내 물음에 답했다.
“몇 달 전 부터 질질 끌던 신규 거래처 승인에 대해서 오늘 유관부서와 회의하고 최종결정하기로 한 날인데, 때 마침 최 차장이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출근을 못 한다고 연락이 왔거든”
“그렇군요. 최 차장이 없으면 무조건 승인이 떨어지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진작 통과됐어야 하는 안건인데 최 차장 그 인간이 워낙 심하게 반대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잖아. 분명 뒷돈 먹고 점찍어 둔 신규업체가 있었을 거야.”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보이던 박 부장은 최 차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박 부장과 최 차장이 서로 앙숙인 것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도 최 차장 그 개새끼가 로비 받은 건 확실 해 보였다.
어차피 곧 우리 사무실에서 치워버릴 새낀데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
그나저나 이렇게 회사에도 못 나온걸 보면 꿈에서 개구리의 밥이 돼서 죽은 게 정신적 충격이 컸나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1주일은 고사하고 3일도 못 버틸 것 같다.
“부장님, 여기 커피 한 잔 드시고 회의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유서연이 내 자리 위에 올려두고 간 커피를 재빨리 박 부장에게 대령해서 기분이 다운 되는 걸 막았다.
나는 바로 유서연에게로 고개를 돌려서 손짓을 했다.
잠시 뒤 그녀는 다시 커피를 타서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유서연의 인상이 살짝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무시하고 커피 맛을 음미했다.
딱 봐도 오늘 박 부장은 회의 때문에 오전에는 사무실에 계속 없을 것 같으니 나는 휴게실에 가서 담배피면서 대충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그리고 때마침 꿈속에서 사용했던 2억 원에 대한 현상이 궁금해져서 곧바로 휴대폰으로 내 통장의 계좌를 확인했다.
그런데 내 2억 원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민지에게 송금받기 전에 있던 몇 백 만원이 전부였다.
더 신기한 건 거래 내역을 살펴봐도 민지에게 받았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나는 급히 민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민지의 계좌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민지의 계좌에서도 내 쪽으로 송금한 내역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2억 원은 원래 없었던 돈처럼 사라졌고 말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꿈속에서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지불한 2억 원에 대한 모든 기록이 사라진 것이다.
존나 말도 안 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내 꿈속의 현상도 어차피 말이 안되 긴 마찬가지니까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오늘은 어떻게 최창식을 괴롭혀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오늘도 최대한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새로운 지형물과 생명체를 창조했다.
어제는 태양이 이글이글 거리는 사막에서 최창식을 굴렸으니 오늘은 빛도 잘 들어오지 않을 만큼 나무가 우거진 정글에 던져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최창식의 생존 시간을 걸고 민지와 딱밤 내기를 해야지.
어제의 사막보다 더욱 다이나믹하고 디테일한 구성으로 꾸며진 정글에 각종 독충들과 동물들을 거대하게 키워서 풀어두었다.
그리고 최창식을 소환하자마자 나와 민지는 내기를 시작했다.
결과는 나의 승리.
나는 어제의 복수를 시원하게 하고 내일은 또 어떻게 최창식을 괴롭힐까 고민했다.
그때, 내 옆에서 이마를 문지르며 울상을 짓던 민지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역시 엘리트다운 창의력이다.
나는 민지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새로운 지형과 생명체의 창조에 들어갔고 민지는 금방 관심을 잃었는지 군것질 거리를 먹으며 독서에 빠져들었다.
내가 최창식을 꿈에서 괴롭히는 동안 그 새끼는 한 번도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말을 들어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쯧쯧, 상태를 보니까 더 괴롭히다가는 진짜 현실에서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오늘 밤 대충 겁줘서 퇴사를 시키기로 했다.
나는 꿈에서 최창식을 소환하고 처음에 이 새끼를 잡아먹은 거대한 개구리의 몸에 빙의해서 협박을 시작했다.
최창식은 갑자기 거대한 개구리의 입에서 사람의 언어가 나오자 기겁했다.
그리고 아주 쉽게 내 제 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큰 절까지 올렸다.
내일부터 최창식 이 개새끼의 면상을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기분 좋다.
박 부장의 스트레스 역시 줄어들 테니, 나도 욕을 좀 덜 먹을 것 같고.
그래도 최창식이 사라지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역시 유서연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최창식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유서연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었다.
나는 내일 저녁에 당장 유서연을 꿈에서 소환해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겨우 이 조건 하나로 유서연과 섹스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완전 개꿀이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현실에서 나와 섹스를 허락하면서까지 몽신을 만나고 싶어 할 정도라면 결코 가벼운 사안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99% 확률로 몽신에게 뭔가 부탁을 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나는 쉽게 그 부탁을 들어 줄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