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23화
꿈속에서 유서연을 소환하기에 앞서서 일단 몇 가지 준비할 게 있다.
혹시나 싶어서 시스템의 기능을 좀 살펴봤더니 역시나 가능했다.
바로 녹화기능.
비록 꿈속의 스크린을 통해서만 재생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잘만 이용하면 꽤나 유용한 기능이다.
연출, 주연, 작가 모두 내 담당이었고 촬영 역시 셀프다.
살짝 오버하는 연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쪽팔려서 민지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당연히 민지는 궁금해 했지만 호텔방으로 쫒아버렸다.
촬영을 완성하기 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얗게 불태웠다.
연기를 할 때는 오글거려서 죽을 뻔 했는데, 완성해서 모니터로 보니까 나름 리얼해 보인다.
회사 때려치우고 배우로 진출 해 볼까?
대충 연예계 영향력 있는 인간들 잡아다가 조지면 데뷔는 시켜줄 것 같은데.
당연히 농담이다.
내 성격상 댓글로 욕먹으면 그 인간들 싹 다 잡아다가 꿈에서 존나 뒤지게 때릴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너무 귀찮다.
잡생각은 이제 집어치우고 내가 창조한 백호의 몸으로 [빙의]했다.
그리고 유서연의 영혼을 소환시켰다.
신전으로 소환된 유서연의 모습은 어제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일단 복장이 오늘 회사에서 입고 있던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3시에 퇴근하고부터 옷도 안 갈아입고 잠들기 전까지 계속 울기만하다가 쓰러져서 잠들었을 것 같다.
유서연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그녀의 엄마는 작년에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며칠 전에 첫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연히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몽신의 존재를 알게 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겼는데, 그 희망이 좌절되면서 더 큰 슬픔에 빠졌을 테지.
유서연의 영혼이 동기화 되고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상황파악을 하던 유서연은 저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백호에 빙의한 내 눈과 딱 마주쳤다.
“몽신님....”
나를 올려다보는 유서연의 표정에서 기대감이 살짝 보였다.
자신을 이 곳에 다시 소환했으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의 부탁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일 것이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한 동안 유서연을 바라만 봤고 유서연도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의 대리자 강민철이라는 인간이 워낙 간곡하게 부탁해서 일단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死神)과 회의를 했다.”
유서연이 긴장한 표정으로 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긴장감 고조를 위해서 말을 한 템포 끊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할 수 있도록 협상했다.”
“저, 정말입니까?!”
“조용하고 내말을 끝까지 들어라!”
갑자기 흥분해서 큰소리로 되묻는 유서연에게 나는 엄하게 호통을 치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협상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반드시 대가에 상응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불행과 고통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신은 지옥불의 고통을 받는 영혼의 모습을 보길 원했다.”
“제가 그 지옥불의 고통을 받겠습니다! 부디 엄마를 만나게 해주세요.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제발...”
“그건 불가능하다. 사신은 가치가 낮은 영혼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또 다시 희망고문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유서연의 몸은 떨려왔다.
그때, 나의 한 마디에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미 협상은 체결되었고, 너는 곧 영면에 든 자의 영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대리자 강민철이라는 인간이 그 지옥불의 고통을 감수하겠다고 자처하더군. 당연히 나의 대리자 정도면 사신이 만족할 만큼 가치가 있는 영혼이라고 할 수 있지.”
“강 과장님이 저를 위해서 희생하기로 했다는 겁니까...?”
딱!
도저히 믿을 수 없다다는 듯한 유서연의 물음에 나는 대답대신 손가락을 튕기며 허공에서 스크린을 생성했다.
당연히 손가락을 튕긴 건 그냥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다.
“아마 지금쯤 나의 대리자에 대한 고문이 시작 됐을 것이다.”
나의 말과 동시에 내가 만들어낸 스크린에서는 엄청난 불길에 고통 받고 있는 실제 나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 끄아아악!!!
바닥을 구르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춰졌다.
정말 고통스러운지 침도 질질 흘리면서 손톱으로 온몸을 자해하기도 했다.
아, 씨발...지금 이렇게 보니까 존나 추하게 보이네.
오버액션도 좀 과한 것 같고...
당연히 지금 나오는 장면은 내가 미리 녹화를 해둔 장면이고, 저 지옥불이라는 것도 전혀 뜨겁지 않다.
하지만 유서연은 지금 저 화면이 실제 집행되고 있는 고문으로 착각했는지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린 채 굳어 있었다.
“너를 대신해서 타인이 저렇게 고통 받는 모습을 보니까 어떤가?”
“저, 저는.....”
“너의 욕망 때문에 나의 대리자가 대신 고통을 받고 있다. 나 또한 이 몽신의 대리자라는 자가 한낱 인간을 위해서 저런 수모를 겪고 있다는 것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
유서연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 지옥의 불길은 영혼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유서연이 최대한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끼도록 막말 대단치를 벌였다.
유서연의 표정을 보니까 제법 잘 통하고 있는 것 같다.
딱!
이제 내가 제작한 영상이 거의 끝나가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보여주고 스크린을 다시 삭제시켰다.
이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스스로 자처해서 저렇게 고통을 받고 있으니,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시켜 주겠다. 여기에 죽은 자의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하도록 하라.”
나는 종이와 펜 하나를 유서연 앞으로 생성시켰다.
내가 필요한 건 주민등록번호지만 일부러 이름과 신체의 특징 등을 상세하게 적으라고 했다.
유서연은 내가 불에 타는 고문을 겪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지 고민 없이 종이에 내용들을 작성했다.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영면상태의 영혼을 소환시켜보기로 했다.
민지의 할머니를 상대로 실험을 해보긴 했지만, 실제로 소환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해 보는 건 나도 처음이다.
유서연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긴장되기는 했다.
- 파스스.
수면상태의 영혼을 소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효과음과 함께 사람의 형상이 생겨났다.
5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의 모습이 생겨났고 마찬가지로 동기화 과정을 거쳤다.
아직 동기화가 다 되지 않아서 멈춰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서연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유서연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동기화가 끝나고 그녀의 엄마는 정신을 차렸다.
“여긴 어디지?...내가 아직 죽지 않은 건가...?”
“엄마! 엄마!”
“서연이니...?”
“흑흑...엄마 저 서연이에요...”
“그래, 서연아 울지 마. 엄마 지금 고통도 덜하고 컨디션 아주 괜찮아.”
유서연의 엄마는 자신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유서연을 토닥거리며 달래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죽었다는 사실도 인지 못하는 듯 했다.
아마도 아직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죽기 전의 상태로 인지한 것 같다.
하지만 곧 주변을 둘러보고 거대한 백호의 모습을 한 나의 모습을 보더니 이상함을 느꼈다.
“그런데 서연아, 여긴 도대체 어디고 앞에 저, 저 괴물은 뭐니...?”
유서연의 엄마는 백호에 빙의한 나를 보며 경계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딸인 유서연을 꼭 껴안고 있었다.
“엄마, 믿기 힘들겠지만 내 말 잘 들어봐요.”
유서연은 차근차근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서연의 엄마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설명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납득했다.
그러더니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장면이긴 하지만 또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을 별도의 공간으로 보내 버리고 서비스로 이런저런 맛있는 음식들도 넣어주었다.
나는 유서연에게 주의사항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이 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5시간 밖에 안 된다고 미리 말해주었다.
그리고 강민철의 희생과 맞바꾼 협상 조건은 딱 한 번의 소환이라는 말도 했다.
슬슬 죽은 자의 영혼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에 유서연과 그녀의 엄마가 있는 공간을 비춰봤다.
유서연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헤어지기 싫다고 투정도 부리며 엄마에게 안겨있었다.
하지만 유서연의 엄마가 인자하게 웃으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른다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웃고 있는 유서연의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안타깝고 슬픈 장면이긴 하지만 유서연이 엄마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강할수록 나에게는 더 유리하다는 건 사실이다.
결국 유서연의 엄마는 5시간이 지나서 꿈속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유서연은 엄마의 얼굴을 보고나서 그리움이 더 강해졌는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현실에서 정신이 들면서 천천히 사라졌다.
***
유서연은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지만 한 참 동안이나 천장을 바라보며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르륵.
누운 채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엄마...”
꿈에서 엄마의 영혼을 봤기 때문에 기쁨과 동시에 그리움이 섞인 눈물이었다.
그렇게 누워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유서연은 정신을 차렸다.
“아, 회사 가야지. 오늘 또 지각하겠네...”
유서연은 빠르게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출근준비를 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역시나 10분 정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성실의 아이콘이었던 유서연이 연속 이틀이나 지각했기 때문에 박명호 부장도 살짝 의아해 했다.
“유서연 사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그냥 늦잠 잤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어디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지?”
“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됐어. 자리에 들어가 봐.”
유서연은 박 부장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강민철 과장의 자리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직 출근 안하셨나?’
최근에는 지각이 거의 없긴 했지만 강민철에게 지각은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유서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날 때 까지도 강민철은 출근하지 않았고 톡을 보내 봐도 계속 읽지 않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유서연은 결국 박 부장에게 가서 오늘 강민철 과장에게 연락 받은 게 있는지 물었다.
“강 과장은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병가 냈다.”
“벼, 병가요...?”
“분명 늦잠자서 혼날까봐 그냥 아프다고 뻥치고 푹 쉬고 있겠지, 어휴.”
“그렇군요...”
평소라면 유서연도 박 부장의 말에 동의 할 테지만, 어제 꿈속에서 강민철이 지옥불에 고문당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몽신의 말로는 지옥불이 현실의 정신에도 타격을 준다고 했으니 정말로 몸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유서연은 업무 종료시간인 6시가 되자마자 총무부에 들러서 강민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소를 알아냈다.
서울의 외곽이긴 했지만 택시를 타면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강민철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 앞에 도착한 유서연은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현관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주소는 맞는데...’
아파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유서연은 다시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유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파트 내부는 먼지가 많았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유서연은 이 곳이 강민철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얼른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끄응....”
안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어떤 남성의 신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유서연에게 아주 익숙했다.
‘강 과장님 목소리...?’
유서연은 빠르게 안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그 방에는 강민철이 있었다.
강민철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유서연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갔다.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