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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53/113)



〈 53화 〉53화

내과 의료진들은 눈앞에 자신들의 근무지인 연성종합병원의 건물이 보이자 갈등했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아니면 최면상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 정도는 인지했겠지.
그런 상황에서 떡하니 존재하는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내과 의료진들은 나를 제외하고 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상의하는 모습이다.
나는 그저 이들의 모습을 바라만 봤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최유정 의사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이어서 간호사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 대기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최유정의 눈빛을 보니 뭔가 호기심이 가득  있는 것 같다.
반대로 3명의 간호사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다들 가시죠.”

“네...”

“최 선생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으니 그 안내 음성에서 말했듯이 목적지에 도달하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막내 간호사, 한유미가 씩씩하게 말하며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휴게실에서 나에게 커피를 타다준 바로 그 간호사다.
나에게도 한번 시선을 주며 같이 들어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의사를 포함해서 다른 간호사들은 모두 나를 경계하는데, 그래도 이 막내 간호사만 나를 조금은 신경써주는  같다.

나는 이들보다 살짝 뒤로 물러선 상태에서 행동을 같이 했다.
드디어 연성종합병원의 정문에 도달했다.
현실에서는 자동문이기 때문에 그냥 근처에 가기만해도 문이 열렸는데 여기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최유정이 자동문 틈새로 손을 집어넣고 양 옆으로 벌려봤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보통 자동 센서가 꺼져 있더라도 이렇게 손으로 밀면 잘 열려야 하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최유정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간호사, 오른쪽을 맡아줘요.”

“네, 선생님.”

이번에는 최유정과 김지희 간호사가 서로 한쪽  잡고  옆으로 벌렸다.
정말 조금씩 문이 열리며 결국 사람이 몸을 세워서 통과하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이년들 생각보다 힘이 좋은데?
원래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아주 빡빡하게 설정해 두었는데 그냥 자기들이 해결해 버렸다.
드디어 병원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세상에....”

“무, 무서워...”

병원 내부의 모습은 우리가 현실에서 알고 있던  연성종합병원이 아니었다.
일단 조명이 상당히 어둡다.
겨우 서로의 모습만 확인 될 정도.
무엇보다 이들이 놀란 이유는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에 온통 핏자국이 있었고, 각종 동물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다.
심지어 천장에는 살아있는 박쥐들이 눈에서 야광 빛을 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곳으로 들어왔던 최유정도 겁을 먹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사람은 막내 간호사, 한유미였다.

“다, 다들 정신 차리고 얼른 목적지까지 가요!”

“어, 어....그래...”

한유미는 자신이 가장 선두를 자처하며 포지션을 바꿨다.
과감한 막내의 행동에 최유정도 주춤하며 뒤로  발짝 물러섰다.

“그런데  간호사,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아요...?”

“네, 네...? 그건 저도 잘....”

“저기 봐요. 엘리베이터는 전원도 안 들어오고 2층으로 가는 길은 철문으로 막혀있어요.”

“그럼 1층 어딘가가 목적지라는 말이네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일단 1층을 중심으로 찾아봐요.”

의외로 리더십이 있어 보이는 한유미 간호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가아갔다.
나는 여전히 그녀들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건물의 구조나 배치되어 있는 가구들 까지도 모두 현실과 똑같았으나, 각종 서류나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개인물품들은 하나도 없었다.
이건 내가 지형물을 소환하더라도 함께 불러올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장소는 엑스레이실이다.

치이이잉.

갑자기 엑스레이 촬영 기기가 작동이 되며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화면에 뭔가 촬영된 화면이 나타났다.
인간의 형상이 아니다.
기괴한 동물의 형상으로 보였다.

- 크르릉...

촬영실 쪽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튀어나왔다.

“꺄악!”

“뭐, 뭐야...”

“개 같은데요...?”

“무슨 개가 저렇게 커요...?”

우리를 보며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개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주연 간호사가 소리를 질렀다.

“도, 도망쳐요! 점프하려고 하는 자세에요!”

- 크엉!

개는 갑자기 점프를 하며 테이블을 넘어 우리에게로 달려들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로비 쪽으로 달렸다.
일단 손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이런 좁은 곳은 위험하다.

로비로 도망쳐온 우리는 각자 의자 하나씩을 들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미친개를 둘러쌓다.
나는 이 녀석의 눈을 붉은색으로 설정해 두었는데 나름 무섭게 보이는 게 효과가 괜찮아 보인다.
이 미친개는 붉은색 안광을 뿜으며 우리를 차례로 둘러보다가 최유정 의사를 향해서 돌진했다.

“오, 오지마!”

최유정은 눈을 질끈 감고 의자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너무 당황하기도 했고 눈까지 감았으니 조준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결국 뒷걸음치다가 스스로 넘어져 버렸고 꼼짝 없이 미친개의 이빨이 그녀의 허벅지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퍽!

깨갱!

이때다 싶어서 내가 달려가서 의자로 개를 후려쳤다.
그리고 이어서 넘어진 개를 향해서 한유미가 들고 있던 의자로 마구 내리쳤다.

“다들 뭐하세요! 빨리 때려요!”

“어어...그래...”

넘어져 있는 최유정을 제외하고 다른 간호사들은 한유미의 외침에 의자를 들고 같이 개를 후려치기시작했다.

- 깨갱! 깨갱!

음, 아무리 내가 약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한유미의 행동은 진짜 예상 밖이다.
웬만한 남성보다 추진력이 좋고 과감한  같다.
한참 동안 의자를 들고 있는 간호사들에게 얻어터진 개는 죽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 열쇠가 나왔어요!”

개가 죽어서 제가 되었고, 대신  자리에 큰 열쇠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한유미는 얼른 그 열쇠를 집어 들고 다른 간호사들을 바라봤다.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2층으로 향하는 철문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철문에 사용될 열쇠라고 짐작이 가는 상황이다.

철컥.

열쇠를 꽂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잠겨있던 철문이 열렸다.
그 순간, 알림음이 들려왔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원래의 수면상태로 돌아가거나 원하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선택 가능한 아이템은 다음과 같습니다.]

[몽둥이, 커터 칼, 티슈, 생수....]

“저는 여기서 나가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도요.”

최유정 의사를 비롯해서, 박주연 간호사, 김지희 간호사는 1초라도 여기 있기 싫다는 표정으로 얼른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세 사람을  꿈에서 퇴장시키며 원래의 수면상태로 돌려보냈다.
막내 간호사 한유미는 뭔가 고민이 된다는 듯,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과장님은 어떡하실 건가요?”

“저는 몽둥이를 얻을 생각입니다.”

“왜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이런 선택지가 있다는 건,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말이잖아요. 대비를 해야죠.”

“역시 그렇겠죠?”

“한 간호사님도 아이템을 선택할 생각입니까?”

“네, 저도 과장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거든요. 저도 몽둥이를 고를게요. 혼자서는 힘드실 테니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생각보다 한유미가 너무 잘해서 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달해버렸다.
 스테이지라서 아주 쉽게 설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3시간은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너무 일찍 끝나서 아이템을 선택한 나와 한유미는 원래의 수면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실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여기서 대기해야만 한다.

씨발, 원래  예상은 전부 여기서 탈출을 선택하고 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만났을 때는 나 혼자 아이템을 선택하고 대기한  하려고 했는데, 한유미가 아이템을 선택하는 바람에 어쩔  없이 나도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한유미는 나를 크게 경계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나누었다.
덕분에 조금 친해진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와 한유미는 4시간을 함께 있다가 아침이 되어 꿈에서 탈출할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나는 두 번째 스테이지를 준비했다.
첫 스테이지는 그냥 맛보기였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되자마자 곧 바로 내과 의료진 4명을 모두 소환했다.
모두 소환되자마자 이들은 존나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나는 한유미를 소환할 때 그녀 앞에 몽둥이도 하나 생성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여 진 몽둥이를 주워서  쥐었다.
마찬가지로 내 손에도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저기, 과장님 뒤에 있지 마시고 앞으로 좀...”

“마, 맞아요. 한 간호사와 같이 선두를 부탁드려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이들이 몽둥이를 들고 있는 나에게 선두를 부탁했다.
남자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아니냐는 식으로 싸가지 없이 말하면 나도 매몰차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부탁해 왔다.
그래도 한마디 해주는  잊지 않았다.

“저와  간호사님은 어제 이 몽둥이를 선택한 대가로  시간이나 이곳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과장님...부탁드립니다.”

“좋습니다. 어제는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할 테니, 앞으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목적지를 찾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2층부터는 1층에서 등장했던 미친개들이 우글우글 거린다.
그리고 고양이나 다른 짐승들도 사이즈를 키워서 많이 풀어놓았다.
당연히 우리를 보면 바로 달려들도록 설정해두었다.
그렇다고 너무 강하지는 않다.
맨손으로는 힘들겠지만 몽둥이가 있으면 적당히 두들겨 패서 죽일 수 있을 정도다.

어쨌든, 몽둥이가 없는 세 사람은 할 일이 크게 없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나는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나머지는 돌아가면서 한유미가 획득한 몽둥이를 들고 싸우는 걸로 했다.
그래봤자, 내가 선방 쳐서 쓰러뜨리면 같이 때려주는 정도?
슬슬 내가 이들의 리더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목적지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는 거다.
물론 나는 알고 있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존나 어렵다.
그리고 다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헉...헉...조금만 쉬었다 가요...”

“3층으로 가는 열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굳게 잠겨있는 철문을 보고는 이제 목적지가 3층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열쇠가 어디에 있을지 찾을 수 없다는 거다.
이동 경로마다 짐승들이 나타나니 나아가는 속도는 느리고 체력은 한계가 오고 미칠 노릇이겠지.

“후우, 다들 쉬었으면 다시 움직입시다.  자리에 오래 있으면 짐승들에게 둘러싸인다는 사실, 이미 겪어봐서  아시죠?”

“일어날게요. 가시죠...”

대놓고 아침까지 버티는 걸 막기 위해서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도록 내가 만들어놓은 안정장치였다.
현재 3시간 정도가 지났으니 슬슬 목적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줘도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선두에 서 있고 방향도 거의 내가 정하고 있다.
가끔 뒤에서 누군가 저쪽으로 가보자고 하면 따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내 마음대로 이동중이다.

나는 우연인척 하며 창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곳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 상자를 개봉했다.
하지만 열쇠가 아니었다.

“지도...?”

바로 병원 2층의 지도였다.

그리고 지도를 주워드는 순간 알림음이 울려퍼졌다.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지도에 남성의 정액이나 여성의 애액을 바르면 열쇠의 위치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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