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13)



〈 71화 〉71화

“매니저 삼촌! 더 빨리!! 늦었어요!”

“아, 큰일이네. 그 방송 PD님 엄청 무서운데...”

대표실에서 만난 겨울소녀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 스케쥴에 대해서 설명을 듣다보니 일정이 조금 촉박해졌다.
나는 지금 검정색 밴에 <겨울소녀들>을 태우고 미친 듯이 엑셀을 밟으며 방송국으로 달리고 있지만 조금 늦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다들 자연스럽게 나를 오빠가 아닌 삼촌으로 부르고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아프다.
그래도 나를 바라보며 귀엽게 삼촌이라고 불러주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아직 어린 이 아이들에게는 방송국 관계자들을 비롯해서 함께 출연하는 선배 가수들이나 경력이 많은 다른 연예인들이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더 빨리 가달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이미 10분 이상은 늦을 것 같다.
다른  몰라도 우리 귀염둥이들이 욕먹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데, 무슨 방법이 없나?
나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재 스케쥴이 SBC의 예능프로그램인데 유림이의 큰아버지가 SBC 방송국의 국장이라는 걸 기억하고는 곧 바로 한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조를 통해서 유림이의 큰아버지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내 말을 들은 그는 걱정 말고  천천히 촬영장으로 가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국장이라고만들었는데 예능부의 국장일 줄은 나도 예상 못했다.

아무리 내가 조용조용하게 통화를 했다고 해도 다 들렸을 거다.
그럼 지금 쯤, 국장님과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고 난리가 나야 할 텐데 이상하게 너무 조용했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뒷거울로 봤더니 다들 골아떨어진 상태였다.

아까는 그렇게 늦었다고 초조해하고 난리를 치더니...
하긴, 어차피 늦었다는  아는데 맘 편하게 잠이나  자는  좋은 색택일 수도 있다.
어제도 늦은 시간까지 스케쥴을 소화했다고 했으니지금 엄청 피곤할 것이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조심조심해서 운전했다.
어차피 조치를 취해두었다고 하니, 조금 더 늦어도 상관은 없을  같아서 대놓고 여유를 부렸다.

그래서 원래 10분 정도 늦을  같았던 시간이 30분을 초과했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멈추자 본능적으로 부스스 눈을 뜬, 아이들은 비몽사몽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시계부터 확인했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며 잠이  깬 듯하다.

“얘, 얘들아! 큰일 났어!”

“왜, 왜, 왜!?”

“30분이나 지났어...”

“흐잉...완전 망했네.”

“뭐해!? 다들 뛰어!”

귀염둥이들은 자기들끼리 소리를 질러대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차문을 확 열어젖히고 전력질주로 달려 나갔다.
깜짝 놀란 나도 얼떨결에 함께 달리며 따라갔다.

방송국 복도에서 다른 연예인들과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런 우리의모습을 보며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겨울소녀들이 나에게서 쫒기고 있는 그림처럼 보인다.
그래도 주차장에서부터 촬영 장소까지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빠르게 도착할  있었다.
겨울소녀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곧장 PD에게 다가가서 크게 인사를 하며 죄송하다고 했다.

“PD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아니야. 겨우 이정도 가지고 뭘...30분 후에 촬영 들어갈 테니까, 다른 출연진들과 인사 나누면서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PD가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고 차에서 들었다.
특히, 지각에 예민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주니 우리 귀염둥이들이 살짝 당황한  같다.
오히려 평소처럼 대놓고 화를 낼 때 보다 이런 모습에 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어떡하지...? PD님 완전  받은 거 같은데 그치?”

“완전 망했어...원래처럼 소리라도 지르고 나면 뒤끝은 없는 분인데...”

“일단, PD님은 그렇다 치고, 선배님들에게도 사과하고 오자.”

다시 자리를 옮겨서 촬영장 주변에 앉아서 쉬고 있는 선배들에게 가서도 늦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다들 늦긴 뭐가 늦었냐고 웃으며 대답했다.
겨울소녀들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뺀질하게 생긴 젊은 남자 한명이 다가와서 제법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연락 못 받았나보네? 방송 장비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촬영시간이 1시간 미뤄졌어.”

“아, 아! 그래서 다들 우리가 죄송하다가 할 때 마다 그런 표정을 지었구나...”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절대 장비가 고장  게 아니다.
내가 예능부 국장으로 있는 유림이의 큰아버지에게 부탁을 했으니, 일부러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준 것이 확실하다.
단순하게 PD가 화 안내고 지나가는 걸로 끝내지 않고, 다른 선배들에게도 욕먹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 뺀질이 새끼가 바로 그 새낀가?

내가 사전에 꿈속에서 겨울소녀들의 신상을 털었을 때,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새끼.

[ 진짜, 김세훈 선배. 재수 없어! 우리한테 그만 좀 접근했으면 좋겠는데. ]

김세훈.
이 프로그램에서 겨울소녀들과 함께 고정으로 출연중인 선배 가수로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라고 하는데 나는 오늘 처음 봤다.
그런데 진짜 존나 느끼하고 재수 없게 생기긴 했다.

아직 촬영 시간이 30분이나 남아있는데, 우리 귀염둥이들이 좀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계속 옆에 달라붙어서 혼자 재밌다고 낄낄 거리고 있다.
우리 귀염둥이들의 표정을 보니 억지로 리액션 해주고 있는 티가 팍팍 난다.

저런 새끼가 접근 못하게 막아주는 게 매니저로써 할 일이겠지?
나는 곧바로 유림이에게 김세훈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라고 톡을 남겨두었다.
오늘 저녁부터  김세훈이라는 새끼를 교육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 30분 후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촬영장면을 지켜보는 내내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워낙에 좋아하는 예능방송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TV로 볼 때는 1~2시간이면 끝인데 촬영시간은 무려 6시간 이상이 진행되었다.
생방송이 아니다 보니 조금만 실수가 있어도 반복해서 계속 촬영했다.

6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러서 촬영이 마무리 되었다.
다들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밴에 올라서는 완전 힘이 빠진 듯  늘어졌다.
나는 아침에 대표에게 받은 스케쥴 표를 들여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 푹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다른 방송에서 음악방송 리허설이 있다.
쉬는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

내가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겨울소녀들의 멤버 중 한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매니저 삼촌, 가는 길에 잠시 편의점 들러서 시원한 음료수 하나 사다주시면 안돼요?”

비록 운전 중이라서 앞을 보고 있지만 목소리와 말투만 들어봐도 누군지   있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꿈속에 소환해서 신상을 털기도 했었고, 오늘 아침에 나를 보자마자 삼촌이라고 말했던 장본인, 바로 진혜주였다.
혜주의 입에서 삼촌이라는 말이 나온 이후로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나를 삼촌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도 내 눈에는 혜주가 귀엽게만 보인다.

나는 당연히 알았다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다른 멤버가 불쑥 끼어들었다.

“안 돼. 대표님이 앞으로 매니저 삼촌에게 개인 심부름 절대 시키지 말라고 했어. 시키면 진짜 혼난다고 했잖아.”

“아 차, 그렇지...근데 너무 목이 말라서 물로는 갈증 해소가  돼. 그렇다고 내가 직접 사러 가면 난리가  것 같고...”

“그냥 물마시고 조금만 참아. 리허설 현장에 가면 음료수 많아.”

“그래, 그냥  참아야겠다.”

아니! 이런 귀염둥이들! 너무 착한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로드매니저가 힘든 이유 중 하나로 연예인의 까탈스러운 성격을 맞춰주기 힘들어서라는 내용도 상당수 나온다.
이규철 대표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진짜 착하다고  수 있다.

“혜주야, 목이 많이 말라?”

“아니에요. 참을  있어요.”

“호칭을 오빠로 바꿔주면 지금 바로 사다줄게.”

“히잇~그건 싫어요. 이미 삼촌이 입에 착~붙어서 익숙해져 버렸는데요~”

윽!

“맞아! 맞아! 매니저 삼촌! 이제 오빠라고 부르면 어색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이도...에이~ 말 안 할래요~”

나의 작은 요구에 다른 멤버들까지 가세해서 거절해 버렸다.
뭐, 이제 나도  삼촌이란 말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으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목이 마르다는데 음료수 정도는 사다줘야지.

나는 적당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음료수를 사왔다.
다른 멤버도 먹을 수 있게 제법 넉넉하게 사왔다.
내가 음료수를 사러 간다고 차에서 내릴 때 까지만 해도 심부름 시키면 대표님에게 혼난다면서 말리더니 막상 사오니까 너무 좋아한다.

“잘 먹을게요~”

“삼촌, 킹왕짱!”

겨울소녀들은 겨우 이 음료수 하나에 해맑게 웃으며 에너지를 보충하고는 또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본무대가 있을 때 까지 쉬는 것이 아니라  동안 다른 스케쥴을 소화하고 몇 시간 후에 돌아와서 본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오늘 하루 스케쥴이 끝난 시간은 새벽 3시.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한 스케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분간은 꿈에서 겨울소녀들이 좋아할 만 한 것들을 할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다들 신기한 꿈이라고 하면서 서로의 꿈이 연결되어 만나고 있다는 것 까지는 인지를 했다.

그럼, 나는 이제 김세훈 그 뺀질이 새끼를 교육시켜 볼까.

유림이를 통해서 알아낸 김세훈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내 꿈속으로 소환했다.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세훈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존재를 보고 기겁을 했다.
그 존재는 처녀귀신처럼 하얀 소복을 입고 있는데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있었다.
그리고 ‘나도여자다.’라는 걸 나타내 듯 긴 생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김세훈은 자신을 쫒아오는 귀신을 피해서 쉴 새 없이 달렸다.
귀신은 계속해서 김세훈을 쫒았다.
결국 귀심에게 붙잡힌 김세훈.

“아아아악! 저리가! 저리가!”

“히이이....네가...그렇게...여자를 밝힌다면서....? 나도 여자야....히이이잉....”

귀신은 음산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에 붙잡힌 김세훈의 옷을 하나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김세훈은 더욱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귀신은 김세훈의 옷을 모두 벗겨냈다.
그리고는 그의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고 자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으악! 뭐, 뭐 하는 거야!”

츄릅~

귀신은 김세훈의 자지를 미친 듯이 빨았다.
김세훈의 몸에는 닭살이 마구마구 솟아 올라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와직!

“끄억!!!!”

김세훈의 자지를 물고 빨던 귀신이 갑자기 그의 자지를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지 김세훈은 더 이상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끄윽 끄윽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김세훈의 사타구니에는 새빨간 피가 흥건했고 귀신의 입가에도 마찬가지였다.

“으흐흐흐어...앞으로 여자 근처에 접근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가 찾아와서 너의 자지를 뜯어 먹을 거야...으흐흐흐으어어...”

와그작 와그작!

김세훈은 자지가 모두 뜯기며 꿈속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


나는 하루하루 바쁘게 운전을 하며 겨울소녀들의 스케쥴에 맞춰 함께 생활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면서 우리 귀염둥이들이 얼마나 바쁜지 실감했다.
당연히 존나 힘들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꿈을 이루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외치며 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게 느껴진다.

오늘은 또 다시 내가 매니저가 되고 첫날에 진행했던 프로그램 녹화 날이다.
바로  SBC에서 뺀질이 김세훈과 함께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
오늘은 늦지 않고 미리 도착해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겨울소녀보다 조금 더 늦게 김세훈이 도착했다.
보통 때라면 눈치 보지 않고 곧바로 겨울소녀들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며 귀찮게 했을 텐데, 지금은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 오지 마! 여자들은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으악!! 저리가!!!”

“왜, 왜 저래...?”

“몰라, 며칠 전부터 김세훈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소문이  퍼졌어.”

김세훈은 마이크를 달아주기 위해서 다가온 여성 스텝의 손길에도 지랄 발광을 하며 난리를 쳤다.
딱 봐도 조만간 프로그램에서 하차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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