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13)



〈 73화 〉73화

[현실에 존재하는 <더 월드> 게임을 그대로 구현해 드립니다.]

[단, <더 월드>지역에서는 유료로 구매한 기능 외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원래 꿈속에서  마음대로 만들어낼  있던 아이템이나 생물체 같은 것들을 창조할 수 없다는 뜻인  같다.
그리고  신체능력을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유료로 구매한 기능은 된다는 걸 봐서 ‘진실의 눈’은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치트키가 막혀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업그레이드 비용이 마음에 든다.

[업그레이드 비용은 10,000,000원입니다.]

[업그레이드 하시겠습니까? YES/NO]

겨우 단돈 천만원!
지금까지 이렇게 저렴한 업그레이드는 처음이다.
이 정도면 완전 공짜라고 생각하며 곧 바로 예스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꿈속의 <더 월드>는 내 힘이 닿지 않는 공간이라고 했으니 지금  공간과는 분리되어 있을 것 같다.

역시나 메뉴를 뒤적거리다 보니 <더 월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구가 보였다.
겨울소녀들을 데려오기 전에 일단 내가 먼저 겪어보는 것이 순서일거라 생각하고 오늘은 혼자서 입장해보기로 했다.

순간적으로 눈앞의 배경이 바뀌며 푸른 초원이 나타났다.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너무 낯익은 풍경이 추억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더 월드>에서 처음 캐릭터를 생성하면 시작하는 곳으로 각종 인터페이스를 익히며 게임에 적응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소였다.

먼저  상태를 살폈다.
각종 능력치들이 나열되어 있긴 하지만 과연 이게 어느 정도의 느낌인지는 직접 겪어봐야   같다.
대충 팔굽혀펴기를 해 봤는데, 평소보다 덜 힘들고  빠르게  수 있는 걸보니 초기 근력 수치가 현실에서의 내 힘보다는 높다는 뜻이다.

하긴, 아무리 레벨1의 능력치라고 해도 몬스터를 때려잡아야 하는 세상인데 현실 세계보다는 높게 보정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 상태의 점검을 마쳤으니 튜토리얼을 한 번 진행해 볼까 싶었다.
눈앞에 진짜 사람처럼 생긴 아저씨에게 다가가자 게임에서와 같은 목소리의 기계음이 들려오며 말풍선이 떠올랐다.
직접 전투를 해 보면서 실전감각을 익히는 튜토리얼은 이 아저씨의 도끼를 찾아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초원의 뒤에 보이는 작은 숲속에서 늑대를 만나는 바람에 도망치느라 놓고  도끼를 찾아달라는 내용.
다음 진행을 위해서는 절대 거절할 수도 없는 스토리임과 동시에  괜찮은 장비들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였다.

예스 버튼을 누르고 늑대 새끼들을 죽이기 위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상태를 보니 완전 빈손이었다.
이 상태로 늑대를 상대하는 건, 절대 불가능.
나는 큰일 날  했다고 생각하며 얼른 인벤토리를 열어서 나무 몽둥이를 꺼내어 들었다.
겨우 나무 몽둥이 하나지만 맨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숲속의 초입부로 들어오는 순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금세 어두워졌다.
연성종합병원에서는 사실 배경을 어둡게 만들었다고 해도  신체조절 능력을 통해서 대낮처럼 밝게 볼  있도록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치트키를 사용할 수 없으니  불편한 느낌이 있다.

긴장되는 마음에 아주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고 숲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숲을 헤치며 걸어 나오는 짐승  마리가 보였다.
드디어 늑대를 만난 것이다.

현실에서 늑대를 볼일이 없는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서 실제로 늑대를 보면 생각보다 크다는 말을 많이 한다.
TV에서 보면 시베리안 허스키와 너무 닮아서 개와 다르지 않다고 착각해서 그런거다.
실제로 늑대를 보면 존나 크다.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나는 익숙하다는 듯 녀석의 눈을 응시하며 몽둥이를 앞으로 세우며 전투자세를 잡았다.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늑대.
바로 연성종합병원에서 내가 미친개를 만들어 낼 때 <더 월드>에 등장하는 늑대를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에 외형을 비롯해서 공격 패턴까지도 비슷하게 가져왔었다.
그리고 치트키를 사용하긴 했지만, 몽둥이를 들고 얼마나 많이 때려잡았던가.

첫 공격은 무조건 점프를 하며 달려든다는  기억하고는 때를 기다렸다.
역시나 나와 시선을 마주하던 녀석이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점프해서 달려들었다.
나는 긴장되긴 했지만 반복된 경험 덕분에 거의 반사적으로 녀석이 허공에 떠 있는 그 순간을 노려 빠르게 몽둥이로 후려쳤다.

깨갱!

늑대는 이가 부러지며 뒤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연성정합병원에서와는 달리 이  번의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고 또 다시 침을 질질 흘리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몽둥이 찜질을 했다.

“헉헉헉...”

확실히 치트키 없이 여기서 제공하는 1레벨의 능력치 가지고는 겨우 늑대 한 마리 잡는대도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늑대는 죽으면서 재가 되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코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코인부터 주워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돈이다.
 돈으로 각종 물약도 사고 무기나 방어구도 사야한다.

그런데 문득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이정도로 힘든데 과연 연약한 겨울소녀들이 튜토리얼을 진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잠시 후, 내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깨달았다.
어차피 이 장소에 오는 순간, 나와 똑같이 레벨1에 해당하는 능력치가 될 텐데...
즉, 겨울소녀들도 지금 나와 같은 힘에 같은 몸놀림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내가 늑대의 공격 패턴에 좀 더 익숙해서 잡기 쉬울지도 모르지만, 그건 몇 번만 해보면 금방 익숙해 질 문제다.

앞으로 같이 사냥하면서 움직이게 될 텐데, 은근히 내가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도 된다.
연성종합병원에서는 치트키를 남발했기 때문에 내가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에 이 게임처럼 같은 조건이었다면 한유미에게 밀렸을지도 모른다.

 늑대만 해도 그렇다.
지금까지 5마리 정도 잡은 것 같은데 힘들어 뒤질 것 같다.
내가 알고 있기로 나무꾼이 잃어버린 도끼를 찾기 위해서는 수십 마리의 늑대는 더 상대해야 한다.
게임에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금방 클리어 했던 것 같은데 난이도가 좀 어렵게 구현된 느낌이다.
나는 일단 <더 월드>에서 벗어나 내 영역의 공간에서 좀 쉬다가 오기로 했다.

[전투 중에는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전투 상태에서 5분이 지나면 비전투 상태로 인정됩니다.]

후아, 이거 잘못하면 좆  수도 있겠는데?

존나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강제로 겨울소녀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더 월드>내에서 도망 다니며, 5분 이상을 버텨야지 원래 내공간의 영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인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진짜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냥 고통을 감수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천만원이 좀 아깝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한게임인  같다.
그래서 이 게임은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료 상점이 오픈되었습니다.]

이런, 씨발 좆같은 시스템이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기다렸다는 듯이 짜잔! 하고 나타났다.

[강제 귀환 스크롤  100만원.]

[기적의 빨간 물약 – 30만원.]

[기적의 파란 물약 – 30만원.]

....
....
....

각종 일회용 소모품부터 시작해서 장비까지도 구매할  있는 상점이었다.
전투상황이라도 마을로 바로 귀환할 수 있는 스크롤부터 시작해서 즉시 모든 체력을 회복할  있는 기적의 빨간 물약, 그리고 즉시 모든 마나를 회복할 수 있는 기적의 파란 물약까지.
전부 실제 게임에서 존재하지 않는 씹사기 아이템들이다.

지금  유료 상점은 게임 내의 시스템이 아니라 <영혼의 쉼터>에서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의 일종이다.
겨울소녀들에게는 제공되지 않고 나만 사용할  있는 상점이란 말이다.

아이템 하나하나에 붙어 있는 저 가격들은 전부 게임 코인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씨발! 시스템 새끼가,  천만원에 <더 월드>를 제공해주나 싶었더니, 게임을 하면서 빨대를 꽂으려는 목적이었다.
비상용으로 미리 구매하고 있어야 하는  강제 귀환 스크롤만 해도 나를 비롯해서 겨울소녀들 모두에게 나눠주려면 6장이 필요한데, 그 가격만 해도 무려 600만원이다.

무기나 방어구들도 마찬가지로 개사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작가격 자체가 억 단위 부터였기에 곧바로 유료 아이템 상점을 닫아버렸다.

이런 좆같은 시스템! 이럴 목적으로 내 치트키를 막아버렸구나!

그래도 이건 강요가 아닌 선택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선택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씨발, 목구멍에서 욕이 저절로 나오긴 하지만 재미있을것 같아서 안 할 수도 없다.

튜토리얼을 완료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파악했으니 오늘 저녁부터 겨울소녀들과 함께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현실에서 겨울소녀들이 촬영 중일 때, 틈틈이 잠을 자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며 놀았는데, 이제는  바쁘게 움직여야할 것 같다.

다음날.
어김없이 겨울소녀들은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기 바빴고, 나는 밴에서 대기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남편한테 졸라서 돈 좀 구해 봐.”

얼마나 필요한데요?

“그냥 최대한 많이.”

알았어요. 최근에 쇼핑도 많이 안했고, 주식으로 돈 좀 벌었으니까 1억 정도 받아내 볼게요.

“그래, 더 받아 낼 수 있으면 좋고. 아무튼 최대한 많이 뜯어내.”

알았어요.

평소에는 진세희에게 한 달에 천 만원씩 받는 걸로 만족했지만, 오랜만에 큰돈을 요구했다.
그녀도 나름  나올 구멍이 있는지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1억 정도면 그래도 소비 아이템은 넉넉하게   있을  같고.
하지만 억 단위 부터 시작하는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

민지도 요즘 유림이 덕분에 재판에서 승률이 좋은 편이고 몸값도 많이 올랐으니 제법 많은 돈을 모아뒀을  같다.
역시나 내가 전화를 걸어서 여윳돈이 있는지 물었더니 아무렇지 않게 1억을 입금시켜주었다.

좋아. 이번에는  크게 놀아볼까.

나는 한조에게 전화를 걸까 싶었지만, 이런 중요한 문제는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문의 가장  어른인 이유권에게 전화를했다.

귀인께서 저에게 전화를 다 주시고,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큰 문제는 아니고, 기운을 가진 여성들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런데,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몇 십억 짜리 아파트를 받은 입장에서  다시 돈을 달라고 하기는 좀 그래서 일단, 빌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이유권의 언성이 높아지면 흥분했다.

빌려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 가문을 위해서 쓰이는 돈인데 당연히 그냥 드려야지요. 10억 정도면 당분간 활동비로 되겠습니까?

“일단,  정도면 가능할  같은데...”

솔직히 깜짝 놀랐다.
대충 3~5억 정도 생각했는데 10억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준다는 말에 이 가문의 재산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너무 많은 돈을 뜯어내면 안 된다.
원래 돈이 돈을 끌어 모으는 법.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되지.
거위가 황금을 낳을 때 마다 조금씩 가져가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좆같은 시스템이 나에게 빨대를 꽂은 것처럼...

겨울소녀들이 촬영을 하고 있는 동안 나 혼자 밴에서 여기 저기 전화  통으로 벌써 12억을 벌었다.
당연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매니저 삼촌, 뭐가 좋아서 혼자 그렇게 웃고 있어요?”

“아쓰! 깜짝이야!”

언제 밴의 창문이 열려있었는지, 열린 창문사이로 고개를 들이 밀고 있는 혜주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촬영을 하고 있어야 할 혜주가 여기 있는 걸까?

“근데, 아직 촬영 마치려면 멀었잖아? 혜주 너, 여긴 웬일이야?”

“개인기로 춤추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PD님이 1시간 정도 쉬다가 다시 합류하래요.”

“어? 심하게다쳤어?”

“그냥 조금, 욱신거리는 정도에요. 병원까지는 안가도 돼요.”

혜주는 얼른 차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뭐달라고?”

“휴대폰 주세요~”

“어?”

“게임 좀 하려고요. 삼촌도 같이 할래요?”

“너 <더 월드>가 그렇게 재밌니?”

“네, 항상 차안이랑 촬영장에만 있으니 답답한데,  게임을 하고 있으면 자유롭게 모험도 즐기고 너무 신나요. 실제로 이런 세상이 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그래...? 근데 게임이라서 그렇지 실제로 이런 세상이 있다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에이~스릴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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