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74화
오늘도 겨울소녀들은 새벽3시가 넘어서 스케쥴이 끝났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겨울소녀들은 피곤한지 반쯤 감긴 눈으로 비틀거리며 숙소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씻고 잠들기 까지 30분도 채 안걸 릴 것 같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서 대충 씻고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으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겨울소녀들을 소환하기로 했다.
역시나 모두 수면상태였고 곧 바로 내가 천만원이나 주고 구매한 <더 월드>의 공간으로 소환했다.
이곳은 내 힘이 제한된 곳인 만큼 제법 긴장된다.
겨울소녀들은 푸른 초원위에 서서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소에도 내가 꿈속으로 소환을 했고, 멤버들의 꿈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풍경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평소랑 많이 다른 곳이네.”
“근데, 뭔가 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아?”
“그러게...”
“호, 혹시? 얘들아 저쪽으로 가보자.”
뭔가 생각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혜주를 따라서 우르르 이동했다.
그렇게 겨울소녀들이 이동한 곳은 바로 도끼를 잃어버린 NPC 아저씨였다.
도끼를 찾아달라는 기계 음성과 말풍선을 보더니 다들 화들짝 놀랐다.
“그거 맞지?”
“더 월드!!!”
드디어 익숙한 풍경의 정체를 알아차린 멤버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무섭다거나 걱정을 하는 멤버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다들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소녀들처럼 신나보였다.
“우와 대박!”
“꺄아~ 너무 재밌겠다~”
솔직히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혜주는 몰라도 다른 멤버들은 그래도 좀 무섭다거나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몸을 숨기고 겨울소녀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며 갑작스럽게 소환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가 겨울소녀들과 딱 눈이 마주쳤고 한동안 정적이 일었다.
가장먼저 입을 연 사람은 혜주였다.
“매니저 삼촌?”
“난 분명 집에서 잠들었는데...여긴 어디고 또 너희들은 왜...?”
나는 마치 이곳이 꿈속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내가 평소답지 않게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겨울소녀들이 나를 진정시키며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긴 원래 꿈속인데 이상하게 현실처럼 똑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꿈이 연결된 상태라는 걸 나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나는 겨울소녀들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왜 이런 현상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에요.”
“원래는 항상 잠들면 멤버들과 꿈이 이어졌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삼촌까지 나타났네요.”
“아! 그리고 원래는 이런 장소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진짜 특별한 장소에요!”
지금까지 이렇게 서로의 꿈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내가 나타나면 다들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겨울소녀들은 나를 정말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아무런 경계심도 없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와서는 현 상황에 대해서 설명까지 해주었다.
특히 혜주는 나의 손을 이끌며 도끼를 잃어버린 아저씨가 있는 곳까지 데려왔다.
“삼촌, 여기 이 아저씨 눌러보세요.”
“어? 이거 <더 월드> 첫 퀘스트 문구인데...”
“그쵸!?”
겨울소녀들은 이 믿어지지 않은 꿈속에 대해서 궁금하기 보다는 뭐가 어찌됐건, 이 꿈속 <더 월드>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한명 한명의 마음을 모두 살펴봤지만, 딱히 나를 의심한다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멤버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이 모험의 세계에 함께 한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고 있다.
다들 빠르게 이 아저씨의 부탁을 수락하고 첫 임무에 나섰다.
내가 인벤토리의 사용법을 설명해주려고 했더니, 어느새 스스로 알아냈는지 손에는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손에 들려진 몽둥이를 이리저리 휙휙 휘둘러보던 겨울소녀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거 대박 신기하다. 현실에서 보다 확실히 힘이 많이 강해진 느낌이야.”
“상태창을 열어보면 능력치가 나오는데, 실제 그 능력치에 맞게 우리 몸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아.”
“완전 리얼하고 재밌다~ 히잇~”
“음음, 그럼 삼촌도 우리랑 능력치가 똑같겠네요? 한 번 실험해 봐야지.”
혜주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악수를 하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그저 혜주의 손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삼촌, 저랑 팔씨름 한 번 해봐요.”
“어?”
“진짜 힘이 비슷해 진건지 확인 해 보려고요.”
뭔가 모양새가 이상하지만 나도 진짜 궁금해서 혜주의 요구를 수락했다.
나와 혜주는 대충 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린 상태에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혜주의 손은 현실과 똑같이 가늘고 여리여리해 보였다.
하지만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시작!”
“흡!”
“얏!”
구경하고 있던 멤버들이 시작 구호를 외쳤고 동시에 나와 혜주는 서로의 팔을 넘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진심을 다해서 혜주의 팔을 넘기려고 했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리해지기도 하며 호각을 이루었다.
결국 서로 힘이 빠져서 무승부로 끝났다.
설마설마 했더니 정말 같은 1레벨인 나와 혜주는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그런데 혜주는 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삼촌, 일부러 봐준 거 아니죠?”
“다른 애들한테 물어봐. 나 손등에 힘줄 터질 뻔 했어.”
“맞아. 혜주야. 아까 전에 삼촌 얼굴 벌개져서 완전 웃겼어.”
비록 지금은 다 같은 조건이지만 나에게는 현질이 있지.
나는 속으로 유료 상점이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 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다 같이 이 아저씨 도끼 찾으러 저기 숲으로 가자.”
자신들의 힘이 약하지 않다는 걸 알고서는 자신감이 급상승한 겨울소녀들이 숲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래도 막상 늑대를 상대해 보면 쉽지 않을 텐데.
나도 빠르게 뛰어서 겨울소녀들의 뒤를 따랐다.
역시나 늑대를 보자마자 겨울소녀들은 조금 전에 보이던 자신감과는 다르게 주춤했다.
“왜, 왜 저렇게 커...?”
“침까지 흘려...”
“우리 이길 수 있겠지?”
심지어 6명이라는 대인원이 파티를 맺어서인지 내가 혼자 진행할 때 보다 늑대의 수가 더 늘었다.
여러 마리의 늑대가 한명을 대상으로 달려들지도 모르기에 우리도 위치를 정말 잘잡아야 한다.
내가 겨울소녀들보다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서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내 뒤로 선 겨울소녀들도 얼른 몽둥이를 들고 늑대들을 노려봤다.
크엉!
드디어 늑대들이 점프를 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다행히 가장 선두에 있는 내 쪽으로 공격이 집중되었고 나는 차분하게 가장 먼저 점프를 한 늑대를 후려쳐서 멀리 날려버렸다.
그리고 뒤에 이어서 날아드는 늑대들을 겨울소녀들이 상대해 나갔다.
그래도 확실히 경험이 없어서인지 다들 많이 어설퍼 보였다.
특히 늑대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오면 겁을 먹어서 몽둥이를 휘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가만히 서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내가 끼어들어서 늑대를 상대해야만 했다.
하지만 맴버의 수는 무려 5명.
모두를 챙길 수는 없었다.
결국 늑대를 모두 처리하긴 했지만 승연이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
“승연아! 괜찮아?”
“아, 응...괜찮아.”
“어떡해...이빨에 물린 상처가 엄청 깊어. 피도 많이 나고...”
승연이는 괜찮다고 하지만 계속 인상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짜잔하고 30만원짜리 기적의 빨간 물약을 꺼내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알기로 도끼를 찾아주면 보상으로 회복 물약을 지급 받을 수 있다.
저 정도 상처는 게임 내에서 획득한 걸로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으니 빠르게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얘들아, 삼촌이 알기로 도끼를 찾아주면 회복 물약 얻을 수 있거든. 최대한 빠르게 진행 해 보자.”
“아! 맞다. 저도 기억나요.”
“그럼, 빨리 가자. 승연이 너무 아파 보여.”
나는 대충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조금 찢어서 승연이가 다친 허벅지에 붕대처럼 감았다.
그리고 내가 업고 이동했다.
내 손이 승연이의 엉덩이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자세는 점점 불편해 지고나도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다.
승연이도 그걸 느꼈는지 내 등에 업힌 상태에서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삼촌, 그냥 손으로 제 엉덩이 받쳐도 돼요.”
“그래, 이건 진짜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니까 승연이가 이해해 줘.”
“당연히 이해해요.”
나는 과감하게 승연이의 엉덩이에 손을 받치고는 자세를 다시 고쳤다.
확실히 편했다.
원래는 손이 허벅지 정도에 위치해서 업으면 가장 편하지만 상처부위 때문에 이렇게 엉덩이 쪽이라도 받쳐줘야 했다.
그런데 습관이 정말 무섭다고 진짜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여 버렸다.
“저기, 삼촌...손가락을 그렇게 계속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아요...?”
“어? 그러게 내 손가락이 왜 이러고 있지?”
“간지러워요.”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승연이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다시 멈추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말랑말랑한 승연이의 엉덩이를 콕콕 찌르고 만지작거리던 감촉이 아직도 손가락에 남아있는 듯했다.
나는 ‘진실의 눈’을 사용해서 승연이의 속마음을 살펴봤다.
다행히 나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멤버들이 보지는 못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민망해 했다.
그냥 나의 실수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이 많이 심한데 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승연아, 많이 아프지? 삼촌이 빨리 끝내서 물약으로 치료해 줄게.”
“네, 삼촌만 믿을게요.”
나는 승연이의 귀여운 말투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도끼를 찾기 위해서 좀 더 빠르게 발을 놀렸다.
비록 능력치는 같지만 경험이 많은 내가 확실히 겨울소녀들에 비해서는 잘 싸웠고 덕분에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리더의 위치를 잡았고 다들 내 말을 잘 따라주었다.
원래도 착한 겨울소녀들은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내 말을 정말 잘 들었다.
“후우, 조금만 힘내자 이제 한 번의 전투만 더 하면 도끼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어.”
“히잉, 빨리 끝내고 싶어...”
지금 울상이 되어 빨리 전투를 끝내고 싶다고 말하는 멤버는 다친 승연이가 아니라 혜주였다.
현재 혜주는 늑대의 발톱에 쓸리는 바람에 상의가 다 찢어져서 가슴이 살짝 비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리저리 조치를 취해서 노출된 부위를 가렸지만 남자인 내가 함께 있으니 많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늑대가 혜주에게 발톱 공격을 하는 순간 내가 달려들어서 도움을 주었기에 혜주의 옷이 찢어지며 가슴이 드러나는 그 순간을 나는 똑똑히 지켜봤었다.
그래서 혜주가 더 민망해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내 눈 앞에 혜주의 뽀얗고 봉긋한 가슴이 아른거린다.
그 때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즐거운지 웃음이 나왔다.
“삼촌, 왜 제 가슴 보면서 웃어요? 아까 봤던 장면 상상했죠...?”
“응? 아, 아니...”
“아우! 삼촌!”
나는 딴청을 피우며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버렸고, 혜주는 씩씩 거리며 내 뒤를 열심히 쫒아왔다. 하지만 혜주 역시도 속마음을 읽어보면 나에게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삼촌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몰라. 그래도 가슴을 보여준 건 너무 창피해...]
이 정도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꿈속의 <더 월드>를 진행하다보면 이보다 더한 상황도 자주 발생할 각오는 해야 할 거다.
우리는 빠르게 나무꾼의 도끼를 찾아서 돌려주었고 그 보상으로 기본적인 가죽갑옷과 무기, 그리고 회복 물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각자의 직업이 달라서 지급받은 무기나 방어구들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일단 초반 장비라서 별 차이는 없어보였다.
그리고 나와 혜주는 같은 전사계열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의 신체구조가 다르기에 갑옷의 모양도 조금 달랐다.
내가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다소 밋밋한 형태였지만, 여자인 혜주가 입고 있는 갑옷은 나름 굴곡이 들어가 있고 가슴도 모양에 맞게 봉긋하게 솟아 있다.
어쨌든 가죽갑옷 덕분에 혜주는 찢어진 상의를 완벽하게 가릴 수 있었고 승연이도 회복 물약을 마시고 허벅지 상처가 다 나았다.
그렇게 우리는 튜토리얼을 끝내고 본격적인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