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113)



〈 75화 〉75화

여기저기에서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환호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와! 레벨 했어!”

“나도! 나도!”

어느새 몬스터들과의 전투에 익숙해진 겨울소녀들은 겁도 없이 잘도 싸웠다.
튜토리얼 퀘스트를 통해서 지급받은 회복 물약과 장비 덕분에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그래봤자 아직은 쪼렙이다.
확실히 현실에서 모바일로 게임을 즐길 때 보다는 진행속도가 많이 느린 편이었다.
만약 게임이었다면 30분이 안돼서 클리어 했을 전투를 지금은 거의 5시간에 걸쳐서 성공했다.
그래도 타이밍은 적절했다.
지금 시간이 6시를 조금 넘겼는데 30분이 있으면 현실에서 알람이 울릴 것이다.

“얘들아 이제 마을로 돌아가서 조금 쉬도록 하자.”

“네, 삼촌.”

다들 조금 흥분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라면  듣는다.
겨울소녀들과 마을로 돌아간 나는 조금 전에 완료한 전투 퀘스트에 대한 보상을 수령하고 곧바로 그녀들을 원래의 수면상태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곧 바로 현실에서 기상했다.
겨울소녀들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서 데리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후딱 일어나서 대충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이른 새벽에 기상하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할 만 했다.
그래도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한조를 통해서 대표를 좀 압박하고 겨울소녀들의 스케쥴을 줄여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러지 않는이유는 겨울소녀들 때문이다.
겨울소녀들 입장에서는 힘들게 연습생을 거쳐서 꿈을 이루었는데 내가 마음대로 일을 줄여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른 새벽시간에는 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서 숙소까지 15분이면 충분했다.
지금 쯤,겨울소녀들은 기상해서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차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도 휴대폰으로 열심히 뭔가를 검색했다.
바로 <더 월드>의 공략을 공유하는 사이트였다.
현재 나도 그렇고 겨울소녀들도 현실에서는 너무 고렙이라서 초반 내용에 대한 기억이 너무 희미했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솔직히 초반부를 대충 자동모드로 돌려도 쉽게 클리어가 됐는데 꿈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알아두어야 겨울소녀들을 이끌며 리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잠시 후.
아파트 입구에 불이 켜지며 겨울소녀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오늘은 다들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기운이 넘쳐보였다.
급하게 달려와서 차에 오르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삼촌! 삼촌! 꿈속에 연결된  맞죠? 맞죠?”

“어, 어...그래.  맞아.”

“역시!”

꿈속의 <더 월드>에서 나와 만난  처음이라서 혹시나 가상의 인물은 아니었을까 싶어서 하는 질문이다.
다들 너무 즐거웠는지 샵에 도착할 까지 한명도 자지 않고 <더 월드>에 대해서 야이기 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어제 혜주의 가슴 사건이 주제로 떠올랐다.

“히잇~혜주 너 꿈에서 삼촌한테 가슴 보였지~?”

“얘, 얘들아...”

멤버들의 놀림에 혜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나도  무안해서 헛기침을 하며 더 빠르게 엑셀을 밟았다.
여전히 겨울소녀들은 <더 월드>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떠들었고 약 30분 정도가 지나서 샵에 도착했다.
다른 멤버들이 모두 밴에서 내리고 가장 늦게까지 앉아있던 혜주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혜주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얼굴을 붉히며 후다닥 내려버렸다.
나는 그런 혜주의 모습이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밴에서 내린 나는 대충 골목길에서 빠르게 담배를 피우고 샵으로 들어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가장 빨리 메이크업이 끝난 혜주가 슬며시 내 쪽으로 다가와서 옆에 앉았다.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혜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도 1등으로 끝났네?”

“생각보다 이 헤어스타일이 인기가 괜찮은 것 같아서 당분한 유지하려고요.”

“그래, 지금 모습 예쁘고 괜찮아.”

“근데 있잖아요. 삼촌, 어제 꿈에서 제가 늑대에게 공격당해서 상의가 찢어질 때...제 가슴 다 봤어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혜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과연 뭐라고말해야 좋은 대답이 될까.
아예 못 봤다고 하면 너무 티나는 거짓말이 될 것 같고...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다.

“거의  봤어. 혜주 네가 빠르게 가렸잖아.”

“정말요...?”

“그렇다니까.”

“근데, 제 가슴 좀 작지 않아요? 딸기우유라도 열심히 마셔야 되나...”

“작지는 않던데? 딱 보기 좋은 정도...”

“에잇! 역시 다 봤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사실이 튀어나왔고 혜주는 귀엽게 주먹으로 내 어깨를 때렸다.
주변에서는 가수와 매니저가 너무 사이좋게 장난치는 걸로 보였는지 웃으며 지나갔다.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면서 혜주도 금방 잊고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오히려 조금 더 친근해 진 느낌까지 들었다.

메이크업을 끝마친 겨울소녀들은 곧바로 촬영을 위해서 지방으로 향했다.
거의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기에 다들 곧바로 취침에 들어갔고 나는 혼자서 쓸쓸하게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난 겨울소녀들은 약간 불만어린 표정이었다.

“에이,  차에서 자면 그 꿈을 못 꾸는 거지?”

“나도 기대 했는데, 그냥 평범한 꿈만 꿨어.”

“이제 꿈에서 우리  만나는  아니야?”

당연히 내가 깨어 있으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내가 먼저 꿈속에 들어가서 소환해 주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겨울소녀들은 혹시나 <더 월드>가 펼쳐진 꿈이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일단 스케쥴을 위해서 겨울소녀들은 촬영장으로 이동을 하긴 했지만, 머릿속에 딴 생각이 가득해서 실수라도 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스러웠다.
촬영장 근처에는 스타일리스트가대기 중일 테니,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바로 달려오기로 했다.
당연히 나는 차에서 잠을 자야지.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니고, 꿈속 <더 월드>에서 미리 레벨 업 좀 해두려는 목적이다.

같은 레벨에서 진행하려니 너무 위험한 순간도 많고 또 다른 목적도 있다.
바로 아이템 현질.
혼자서 사냥하다가 운 좋게 획득했다고 하면 대충 넘어가겠지.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누워서 잠이든 나는 곧 바로 <더 월드>영역으로 이동했다.
유료 상점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쇼핑을 시작했다.
일단 적당히 쪼렙에서 사용할  있는 장비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구매했다.
비록 쪼렙용이라고 하더라도 원래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존나 좋은 옵션들이 붙어 있어서 억단위는 넘었다.
거기에 강제 이동 스크롤과 기적의 물약도 몇  구매했다.

이제 혼자서 레벨 업을 좀 해 볼까.

어제는 6명이 파티를 맺고 각자의 역할에 맞게 함께 사냥을 했었는데 막상 혼자 하려니 조금 긴장이 되긴 했다.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고블린들의 머리위에 느낌표가 생겨났다.
나를 적으로 인식했다는 표시였다.

나에게 때로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향해서 현질로 구매한 양손검을 휘둘렀다.

“끼에에엑!!!”

정면을 향해서 대충 한  휘둘렀더니 고블린 3마리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동강 나버렸다.
어제 고블린 3마리를 6명이서 잡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믿을 수 없는  파괴력에 당황해서 잠시 멍을 때렸다.
그런데 실수였다.
아직 2마리의 고블린이  남아있었고 어느새 내 코앞까지 도착한 녀석들이 내 가슴을 향해 손톱으로  할퀴고 지나갔다.

고블린들의 손톱 공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알고 있다.
일단 긁히면 불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린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다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긁고 지나갔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냥 살짝 간지러운 느낌이 다였다.

나를 공격한 고블린도 뭔가 좀 이상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휘두른 검에 그대로 허물어졌다.

갑옷의 방어력이 존나 말도 안 되게 좋다는  증명되었다.
어마어마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춘 나는 이제 두려울게 없었다.
그냥 던전을 질주하면서 몰이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나는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 이동한 다음 양손검을 마구 휘둘렀다.

“끼에에엑!!!”

“끼엑!!!!”

고블린들의 비명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고 마지막  마리를 처치하고 보스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열쇠를 획득했다.
오늘 확인한 공략의 내용에는 분명 홉고블린이 이 던전의 보스였다.
게임에서 홉고블린은 일반 고블린과 비교도 안될 만큼 강한 녀석이었다.
현질한 장비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떨리긴 했다.

드디어 보스방에 입장한 나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보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에 거느리고 있는 고블린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녀석들이야 어차피 지금까지 상대했던 평범한 고블린들이라서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이제 진짜로보스로 보이는 고블린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분위기가 조금 달라 보인다.
덩치도 제법 크고 팔에 힘줄이 튀어나와 있는걸 봐서 힘도 무척 강해 보인다.

역시 홉고블린....아니었다.

녀석의 머리 위에는 <음욕의 고블린>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임에서는 이런 몬스터가 안 나오는데 뭐지?

나는 녀석의 생김새를 자세히 뜯어봤다.
사람 크기의 반만한 일반 고블린에 비해서 덩치가 거의 2배에 육박하고 상당한 근육질 몸매에 힘줄까지 선명하다.
거기다 분홍색 삼각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이 보기 역겨울 만큼 흉측했다.

보통 저런 캐릭터들이 존나 강한데.

긴장하며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데 녀석은 나를 무심하게 바라만 볼 뿐 덤벼들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달려들었다.
내 공격을 지켜보던 녀석은 움찔하더니 방어자세를 취했다.

서걱!

“끼에에에....”

......이 새끼 뭐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내가 한 번 휘두른 검에 그대로즉사했다.

하지만 자칭 게임고수인 나는 감각적으로 이 녀석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간파하고 재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런데 뭔가  시야에 잡혔다.

에이, 설마...

보스를 처치하면보상으로 나오는 상자가 눈앞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각종 희귀 물약과 무기가 들어있었다.
현질로 구매한 내 장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실하지만 NPC에게 팔면 코인이 들어오니까 일단 챙겼다.

그런데 보상이 나왔다면 이 녀석이 진짜 보스라는 말인데 약해도 너무 약했다.
그냥 생긴 것만 흉측할 뿐, 일반 고블린보다  약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지만 일단 마을로 돌아왔다.

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가 지나있었고 슬슬 겨울소녀들의 촬영이 끝날 때가 되었다.
정리하고 잠에서 깨어나서도 계속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

모든 스케쥴이 끝난 새벽시간.
꿈속에 들어와서 곧 바로 겨울소녀들을 <더 월드>의 공간으로 소환했다.
꿈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녀들은 문득 내 장비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어어! 삼촌 왜 이렇게 멋있어 졌어요?”

“응?”

“장비 말이에요. 완전 멋있다...”

특히 혜주가  장비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같은 전사 계열이라서 많이 부러운 모양이다.

“낮에 차에서 잠들었는데 마침 <더 월드>에 들어왔더라고. 그래서 그냥 혼자서 사냥했더니 대박 아이템이 떨어졌지 뭐.”

“와 부럽다...”

“칫, 우리는 왜 낮잠 잘 때, 여기로 못 들어오는 거지?”

“그건, 삼촌도 모르지.”

나는 대충 핑계를 대며 얼른 어제 저녁에 이어서 다시 모험을 떠나자고 했다.
혼자서 레벨 업을 좀 하긴 했지만, 파티를 맺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지는 않았다.
던전 역시도 같이 입장할  있다.
대신 이미 보상을 받은 나는 보스를 죽이더라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역시나 파티를 맺어서인지 내가 낮에 혼자서 던전에 입장   보다는 고블린의 수가  배에 달했다.
그래봤자 내가 양손검 몇 번 휘두르면 모두 죽는다는 건 변함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들 전투를 재밌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적당한 수준으로 활약했다.

어렵지 않게 보스방으로 입장했고 역시나 삼각팬티를 입고 있는 그 흉측한 고블린이 등장했다.
우리 인원이 6명이기에 내가 혼자서 할 때보다는 많이 강해져 있을 거다.
하지만 워낙 약해서 강해져 봤자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녀석의 눈빛이 내가 혼자 상대 할 때와는 다른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때 <음욕의 고블린>이 포효를 했다.
귀가 찢어질  따가웠다.
그리고 허공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음욕의 고블린이 여성체를 발견하고 극도의 흥분상태로 돌변합니다.]

[음욕의 고블린이 극도의 흥분상태에 돌입하면서 전투력이 10배로 증가합니다.]

음욕의 고블린은 붉은 안광을 빛내며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다는 듯, 혀로 입술을 적히며 입맛을 다신다.
그런데 바라보는 방향을 보면 뭔가 나는 무시하고 겨울소녀들만 주시하는 것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