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113)



〈 97화 〉97화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달 동안이나 배윤지를 괴롭히다 보니 나도 좀 시들해진 느낌이 있고 그녀도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이제 나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 쓰는 것에는 완전히 익숙해 진 상태였고 심부름을 시키더라도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침 드라마 촬영도 끝이 나면서 배윤지가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이제 작품 활동도 끝나서 당분간 쉴 동안 해외여행이라도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오빠도 같이 갈 거예요?”

“같이 가면 좋겠어?”

“뭐, 상관없어요. 알아서 결정해요.”

“됐다.  혼자 다녀와라. 난 안가.”

“혼자는 아니고 유연이 그년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유연이가 휴가를 달라고 했었구나. 참나, 둘이 보기만하면 욕하고 싸우면서 다시 정들었네?”

“아, 몰라요.”

배윤지와 송유연은 서로의 대화에 반이 욕설인데 이상하게 계속 붙어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송유연이 내 전담 피부관리사이기 때문에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없어도 둘이 종종 붙어 다니는 모습을 봤다.

이참에 나도 당분간 좀 쉬기로 했다.
취미삼아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로드매니저의 가장 기본업무인 운전만큼은 내가 직접 했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겨울소녀들의 매니저를 시작으로 계산하면 그래도 1년 넘게 꾸준히일을 해 왔다.

나는 크게  일이 없고 심심할 때면 한조가 운영하는 술집으로 가서 그 녀석과 종종 술을 마셨다.
한조가 주량도 세긴 하지만 나와 제법 말이 잘 통한다.
물론,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 좋은 말만 골라서 하기 때문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두운 일을 하는 녀석 치고는 머리회전도 빠르고 센스도 좋았다.
가문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한조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정말로 마음먹고 공부를 했더라면 분명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녀석이다.

그래서 배윤지와 송유연을 공항까지 태워다 주고 곧장 한조가 운영하는 주점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한조가 술과 안주를 세팅해놓고 대기를 하고있었다.
아가씨도 준비 중이었다.
내 파트너는 당연히 예나였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오빠, 오랜만이에요~”

아직 사진을 다 지우지 못한 예나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예나의 젖가슴을 만지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술 약속은 내가잡았는데, 마침 잘 됐다는 듯 나를 보자마자 한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통 한조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잘 없다.
내가 묻는 말에 성실한 답변이나 의견을 낼 뿐이었다.
이렇게 한조가 먼저 말을 꺼낼 때는 제법 중요한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은근 긴장이 되기도 했다.

“형님께서 저희가문 사람들 중에서 보지 못한 인물이 한명 있는데, 이틀 뒤에 귀국한다고 합니다.”

“귀국?”

“네, 사촌 동생이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내일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도 형님께 인사를 시키고자 그 날 자리를 마련하면 어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지 뭐. 어차피 요즘 할 것도 없어서 놀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술이나 마시자.”

“네, 형님. 한잔 받으십시오.”

한조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는 룸에서 그대로 기절해서 잠들어버렸다.
아침이 되어서야 한조의 똘마니 녀석에게 업혀서 집으로 실려 갔다.
완전 술병이 나서 하루 종일 기절해 있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가버리고 이유림의 사촌 동생이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아영이가 중,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녔는데, 20살이 되자마자 이렇게 귀국을 해버렸네요. 대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고 싶대요.”

“그럼 내년에 입학하겠네?”

“네, 1년 재수한다고 생각하고 공부해서 수능 치려는  같아요.”

“1년 공부해서 좋은 점수 받을 수 있겠어?”

“아영이가 워낙 똑똑해서 괜찮을 거예요.”

이유림의 입에서 똑똑하다는 말이 나왔으면 그냥 천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오늘의 주인공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유권의 집에 도착했다.
주로 가문행사는 가장 어른인 이유권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편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이유림의 가문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다들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이제 대충 얼굴과 이름 정도는 외웠다.

대부분 나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서 딱히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유권이 나에게 존대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이런 반응에 익숙해지면서나도 점점 이들의 윗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 버렸다.

대충 인사를  번 나누고 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이유권과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없었다.
그냥 내가 부지런히 기운을 모으면서 가문을 위협하는 재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말하면 이유권은 아주 고마워하며 이런저런 선물을 전해준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걸 알고는 정말 귀한 양주를 선물로 준비했다.

선물 때문에 한층 더 분위기가 좋아졌다.
제법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밖이 좀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가문의 젊은 사람 한명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할아버지, 아영이가 도착했습니다.”

“오냐, 내 방으로 들라고 해라.”

“네. 할아버지.”

잠시 후. 뭔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컥!

“할아버지!”

“크흠, 아영아 손님이 계시는 자리다. 예의를 지켜야지. 그리고 너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면...”

와락!

“헤헤~할아버지이~~”

“오냐,그래. 타지 생활은 힘들이 않았느냐?”

“재밌었어요. 그래도 대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고 싶기도 하고, 또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한걸음에 달려왔어요.”

“허허허.”

다들 이유권을 어려워하는데, 유일하게 아영이라는 손녀는 전혀 그렇지 않은  같다.
이유권도  눈치를 살피고는 있지만 평소에 얼마나 이 손녀를 예뻐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그런데...

존나 귀여운데?

큰 눈망울이 사슴처럼 맑아보였다.
그리고 웃을 때 마다 보조개가 생기며 애교가많아 보였다.
지금도 이유권에게 안겨서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유림이의 사촌 동생이라고 들었는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흠흠, 제가 잠시 실례를 범했습니다.”

“할아버지 이 분은 누구에요?”

이유권은 차분하게 나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야 정상인데 아영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그런 눈빛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제 영혼은 소환하지 않았어요?”

“유림이가 잠시 너를 잊어버리고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진짜 꿈에서 저희 영혼을 소환하는 게 사실이에요? 믿을 수가 없는데...”

“어허!”

“....그래도 너무 허무맹랑하잖아요.”

“크흠,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가문의 품을 오랫동안 떠나있다 보니 신앙심이 많이 부족해진 모양입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삼촌뻘 밖에 안되는 사람에게 할아버지가 존댓말 하는  아니죠.”

“아무리 이 할애비가 너를 귀여워한다고 해도 귀인께, 한 번만  그런 불경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혼날 줄 알아라!”

“네...”

아영이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이만 밖으로 나갔다.
뭐, 이런 사기꾼이 다 있냐는 그런 표정이다.
아영이가 나가고 나서 이유권이 나에게  번이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는  이유권도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중요한 문제라도 생겼는지...”

“요즘 가문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좀 과하게 힘을 썼더니 기운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열심히 기운을 가진 여인들을 품고는 있지만, 이미 그녀들의 기운도 바닥나서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료 합니다.”

“그, 그럼 어떡해야 좋습니까?”

“마침 기운을 많이 품고 있는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이유권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말없이 방금 전에 아영이가 나갔던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내 모습을 보던 이유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 대상이 아영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현재 데리고 있는 여인들보다 훨씬 많은 기운을 품고 있더군요.”

“크흠...”

이유권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수 있다.
나는 이유림의 약혼자다.
비록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곧  가족이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아끼는 손녀가 나와 성관계를 맺는 걸 달가워 할리 없다.

두 눈을 꼭 감고 침묵하고 있던 이유권이 천천히 눈을 떴고 밖에 있던 누군가를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바로 아영이의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둘러서 말하지 않고 이유권은 아영이의 부모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이라 짐작했다.

“가문을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죠.”

“가문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씨발, 이 미친놈들은 자기 딸이 나와 떡을 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는데도 가문을 위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나와 연결고리가 생겼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다.

뭐, 내가 이들의 신앙심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목적만 이룰  있으면 되는 거니까.
오히려 이렇게 쉽게 이용해 먹을  있으니 더 좋다고 봐야겠지.

“그럼, 최대한 빠르게 기운을 흡수하는 의식을 치루었으면 합니다.”

“제가 조용하고 괜찮은 방으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이유권을 따라서 나는 구석진 방으로 이동했다.
귀한 손님들이 오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존나 고급스럽고 마음에 든다.

“곧 바로 아영이를 들여보내겠습니다.”

10분 정도가 흐르자 내가 있는 방으로 누군가 오고 있다는  느껴질 정도로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동시에 매우 시끄럽게 소란이 일어났다.

“놔요! 엄마! 아빠! 진짜 왜 그래요! 그 사람 사기꾼이라니까,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이아영! 너, 그런 소리 하면  된다고 했지? 이게 다 가문을 위한 일이다.”

벌컥.

방문이 열리며 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른쪽에는 아영이의 아빠가, 왼쪽에는 엄마가 아영이의 양팔을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아영이는 부모님에게 양팔이 붙잡힌 상태로 반항을 하고 있었지만 결국 내 방안으로 끌려들어 왔다.

“귀인께서는 이 아이가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마시고, 의식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결국 아영이는 내가 있는 방에 혼자 남겨지며 문이 닫혔다.
아영이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몇 번이나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마 밖에서는 문을 열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버티고 있을 것이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아영이는 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 봐요. 아저씨, 말도  되는 이상한 소리 그만하시고, 우리 아빠랑 엄마한테 저를  보내 달라고 말 좀 해봐요. 네?”

“일단 진정하고 좀 앉아 봐.”

“하아, 진짜 우리 가문 사람들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다니까.”

내가 볼 때, 아영이가 이 가문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가문의 사람들 눈에는 오히려 아영이가 비정상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침대로 와서 좀 앉아보라고 손짓을 했지만 아영이는 그냥 문 앞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상태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쩔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영이에게 다가간 나는 그대로 번쩍 들고 침대로데려왔다.

“어어...! 아저씨, 놔주세요. 왜 그래요.”

“외국물 먹은 보지 맛  보자.”

“꺄악!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 이 아저씨가  옷 막 벗겨요!”

내가 아영이의 옷을 벗겨내자 그녀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밖에서도 아영이의 비명소리가 크게 들릴 테지만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영이가 도망 나오지 못하게 감시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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