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03화
신채영이 학원에서 돌아왔으니 이제수업을 할 시간이다.
방으로 들어와서도 신채영은 아무런 말없이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기만 했다.
어색하면서도 뭔가 못마땅한 시선이다.
싫다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가르치는 선생님도 파릇파릇한 대학생 오빠가 아니라 삼촌뻘의 아저씨니까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채영 양, 반가워요.”
“아, 예.”
“선생님의 이름은 알아요?”
“네, 들었어요. 한국대학교 강민철 교수님.”
“으음, 이제부터 말을 놓을게. 그리고 채영이 너도 편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저기요. 한국대학교의 교수면 엄~청~ 바쁠 텐데, 이럴 시간이 있어요?”
“엄청 바쁘지만 아영이의 친구 동생이라서 특별히 시간을 냈지.”
“쌤, 이거 시간낭비에요. 어차피 저 공부 안 할 건데.”
첫날부터 진도를 나갈 생각은 없어서 신채영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봤다.
예상대로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아무리 물어봐도 신채영은 ‘그냥 공부가 싫어졌어요.’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오늘 수고 많았어.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할 테니까 숙제로 내준 문제들은 미리 한 번씩 풀어 봐.”
“아, 귀찮아.”
“그럼, 채영이 믿고 선생님은 오늘 이만가볼게.”
표정만 봐도 절대 숙제를 할 것 같지는 않다.
과외 시간에맞춰서 집에만 있어도 다행이지.
어쨌든 오늘의 수업은이렇게 마무리하고 나와 아영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어 잠이 들면서 나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전에 이유림을 통해서 신채영을 비롯한 가족들의 주민등록번호는 모두 입수했으니 꿈속에서 영혼을 소환할 생각이다.
[현재 신채영은 수면상태가 아닙니다.]
[수면상태가 아닌 대상의 영혼은 불러올 수 없습니다.]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자?
그렇다고 공부를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집 주소를 입력해서 공간을 먼저 꾸미고 기다렸다.
2시간 후.
[현재 신채영은 수면상태입니다.]
[해당 인물의 영혼을 불러 오겠습니까? YES/NO]
예스.
새벽 3시가 넘으면서 드디어 신채영이 잠들었고 그녀의 영혼을 소환할 수 있었다.
[신채영의 영혼이 100% 동기화 되었습니다.]
“어? 여긴...우리 집인데...뭔가 기분이 이상해...”
내 꿈속에 처음으로 소환되었을 때 흔히 겪는 현상이다.
비록 배경은 자신의 집이지만 뭔가 으스스하면서 기분이 이상할 거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가서 거실에 도착한 신채영은 냉장고의 문을 열어 물을 마셔보고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다.
“맛이 똑같이 느껴지는 걸 보면 꿈은 아닌 것 같고...”
신채영은 아직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긴장한상태로 조심스럽게 부모님의 방문을 열어보고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였다.
“꺄아아악!”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고 신민영과 현지수가 줄에 묶인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의식은 잃지 않았지만 입에 테이프가 묶인 상태로 버둥거리고 있는 중이다.
신채영이 거실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내가 두 사람의 영혼을 불러와서 이렇게 작업을 해둔 것이다.
“음음음!”
“어, 언니! 엄마!”
언니와 엄마에게 다가가려는 신채영의 앞에 가면을 쓴 내가 등장했다.
손에는 피가 묻은 식칼 한 자루를 들고.
“꺄악!”
너무 놀라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신채영이 몸을 질질 끌면서 뒤로 물러났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일 수밖에 없는 본능이었다.
물론 바닥과 칼에 묻은 피는 내가 연출해서 만들어낸 것이지만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신채영의 눈에는 다른 의미로 보이겠지.
“누, 누구세요....”
“풀어.”
“.....예?”
“이 문제를 풀면 가족들을 살려주겠다.”
음성을 변조한 내가 신채영 앞에 문제집 한 권을 던졌다.
문제집에 체크한 부분은 숙제로 내주었던 것들이다.
그냥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으니 이렇게라도 시켜야지.
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내가 신민영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으니 신채영은 벌벌 떨면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문제의 양이 제법 많아서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가만히 기다리면 지루할 테니 그 동안 ‘진실의 눈’을 통해서 세 사람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로 했다.
우선, 가장 궁금했던 현지수부터.
[제발... 내 딸, 채영이를 살려주세요...!]
입에 테이프가 묶여서 정확한 발음을 못하고 있지만 ‘진실의 눈’을 통해서 들어 본 그녀의 속마음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신채영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거 의외인데?
솔직히 엄마와 딸들의 사이가 좋다는 아영이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대학교의 교수라는 말을 듣고는 왜 그렇게 좋아했던 걸까?
당연히 피가 안 섞인 딸의 과외보다 남편의 성공을 위한 인맥이 생겨서라고 판단했는데.
[어차피 공부는 안 할 게 분명해...그렇다면 한국대학교 편입 시험에서 도움을 받는 방법 밖에 없어. 어떻게든 친분을 쌓아야 돼...무조건!]
아아, 이제 이해가 되네.
어차피 수능 시험으로 결정되는 정시는 함부로 권력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교수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는 편입 시험이라면 확실히 가능성이 높지.
결국 그녀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을 위해서 나와친분을 쌓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친딸도 아니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살펴볼까.
나는 ‘진실의 눈’을 통해서 현지수가 가지고 있는 관념, 습관, 오래전의 기억까지 모두 조사했다.
현지수가 현재의 남편과 재혼을 했던 시기는 제법 오래전이고 임신이 불가능했던 그녀는 당시에 애기였던 신채영을 키우면서 모성애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남편에 대한 사랑보다 신채영을 아끼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다음으로는 열심히 문제집을 풀고 있는 신채영에게 ‘진실의 눈’을 사용했다.
[언니와 엄마를 죽게 할 수는 없어...]
[아, 문제가 왜 이렇게 어려워!]
친엄마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신채영은 당연히 현지수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인 신민영에 대한 애정도 깊다.
마지막으로 신민영의 진심을 들여다보았다.
아버지가 재혼을 할 때 신민영은 친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지수에게 뚜렷한 사랑의 감정은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생이 현지수를 친엄마처럼 따르기 때문에 신민영도 같이 어울리고 있는 정도.
이것으로 세 사람의 관계는 모두 파악했다.
결론적으로 신채영이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관계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신민영의 목에서 식칼을 거두며 문제를 풀고 있는 신채영에게 다가갔다.
모르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풀었네.
어차피 더 이상 시간을 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가르쳐 주기로 했다.
내가 팬을 들고 옆으로 다가가자 신채영이 기겁하며 물러선다.
신채영의 반응을 무시하고 몰라서 비워둔 문제의 옆에 공식을 적어주었다.
“공식을 알려주었으니 다시 풀어라.”
“지, 진짜 다 풀면 살려주시는 거예요...?”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30분이 넘어가면 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죽게 될 거야.”
“아, 안 돼요!”
“시작.”
시작이라는 신호와 함께 나는 다시 식칼을 들고 신채영과 현지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마음이 급해진 신채영은 얼른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공식을 알려줬다고 해도 전부 다 풀 수는 없겠지.
결국 내가 제시했던 30분이라는 시간이 초과되고 말았다.
“그만. 30분이 지났다.”
“거의 다 풀어가요. 시간을 10분만 더 주세요!”
“약속은 약속이다. 누굴 죽일 것인지 네가 선택해라.”
“제, 제발 이러지마세요...흑흑...”
“1분 안에 선택하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아아아!!!”
신채영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한다.
그때 현지수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흔들며 테이프가 묶인 상태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음음음!!!”
뭔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육성으로 직접 들어보고 싶어서 현지수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뜯어줬다.
“제가 죽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채영이를 살려주세요!”
“흑흑흑, 엄마 안 돼....”
“30초 남았다. 빨리 선택 해.”
내 말을 듣고도 신채영은 여전히 울기만할 뿐, 누군가를 선택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현지수가 더욱 발악하며 소리를 지른다.
“나를 죽이라고 하잖아!”
“이미 1분이 지났다.”
나는 식칼을 높이 치켜들고신채영을 겨냥했다.
“무, 무서워...제발 살려주세요...흑흑...”
“나를 죽이고 채영이를 살려주세요!”
“음음음!”
겁에 질린 신채영은 살려달라면서 애원을 하고, 현지수는 딸 대신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입에 테이프가 묶인 상태로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신민영도 비슷한 의미겠지.
하지만 나는 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신채영을 향해 식칼을 휘둘렀다.
“꺄악!”
“안 돼!”
“음음!”
식칼이 신채영의 머리에 닿기 직전에 모두의 영혼을 꿈속에서 해방시켰다.
지금쯤, 원래의 수면상태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겁을 먹었을 테니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서로가 정말 끔찍한 꿈을 꾸었다면서 대화를 나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