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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요화(妖花) 알라우네 1999[역사 판타지] (3/84)



〈 3화 〉요화(妖花) 알라우네 1999[역사 판타지]

요화(妖花) 알라우네





루이 16세의 왕비,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뜨와네뜨.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다. 흠잡을 곳이라곤 약간 앞으로 튀어나와 다소 경망한 느낌을 주는 아랫 입술 뿐이다.

한 초상화는 그녀의 모습을 정겹게 묘사한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달콤함에 젓어있을 무렵 여러 자녀들을 얼싸안은 채 단아한 나무집 안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는 통통한 그녀를.


오스트리아 여제인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보살핌 아래서 익힌 우아한 몸가짐은, 루이 16세와 함께 왕립 사냥터에서 수렵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 안에서도 고이 지켰다.

시민들이 빵이 없으면 굶어죽는다며 빵을 달라 요구하자 과자를 먹지 왜 굶어죽느냐고 했다는 여자 앙뜨와네뜨.


사냥과 지도 작성을 좋아했던 뚱뚱한 사내, 루이 16세가 혁명군에 붙잡힌 국경선에서 그녀도 부부 사이를 과시하며 더불어 잡혔다.


생전 처음겪는 모진 고생과 빈약한 식사로 얼굴엔 살이 빠지고 까무잡잡해졌다. 덕분에 20세기말을 꿰뚫은 인체 미학과 몸의 균형이 엇비슷해졌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더욱 매력이 풍긴다.


수만의 군중들.


성이 나서 썩은 달걀과 토마토와 온갖 쓰레기를 집어던지며 얼렁 처형하라고 외치는 파리 시민들 앞에서 성호를 그었지만 죽음의 공포는 간신히 얻어낸 평정 상태를 가볍게 날려 길로틴 앞에서 발버둥치며 비명을 지르게 몰아간다.


그녀가 머리채를 휘어잡힌다.

그녀의 어린 아이들이 참혹하게 운다.


시민들의 눈엔 핏발이 섰다. 지식인들과 상인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형을 집행코자하는 결의에 차있다.


왕족 처형을 절정으로 삼아 파리 시내에 있는 수천여명의 성직자와 귀족을 남녀노소를 묻지않고 교수대와 길로틴으로 처형했다. 프랑스 국내에 있는 성직자와 귀족도 대부분 목숨을 바쳤다.


마리 앙뜨와네뜨의 목이 길로틴날에 피를 묻히며 구른다.

눈을 까뒤집히고 입과 코와 귀에선 피를 쏟고 고통에 찬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표정만은 확실하다.

목없는 주검은 막 버둥거리고 튀어오른다.


피와 살을 뿜어대며 팔딱 팔딱 튀어오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밤.

잘 딱인 칼날을 위에 동아줄로 잘 고정시킨 길로틴은, 그믐달이 먹장 구름 속에서 간신히 고개를 쳐든 밤을 배경으로 모든 악의 종주라도 되는양 우쭐거리며 버티고 있다.

끄물끄물 서양의 온갖 잡귀들이 길로틴을 마녀의 우두머리 헤카테로 삼은양 몰려온다.


핏물을 얻어먹기 위해서다. 귀족들뿐 아니라 공포 정치 아래서 숙청 당한 무수한 시민들,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의 신선한 피가 하루에만 수백명분씩 몇백 양동이를 채울만치 길로틴을 적신다.


입맛 다시는 늑대인간, 마법사, 마녀, 뱀파이어, 오우거, 그렘린, 고블린들의 무리.


고대와 전설과 주술의 밤. 발킬리아의 밤

이름모를 온갖 요괴들도 기묘한 주문을 외우며 길로틴을 경배한다.

낮에는 시장이 들어서고 광대패들이 몰려 와, 처형을 구경하며 어떤 주검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오래 튀어오르는가로 내기를 걸곤 하지만 밤에는 길로틴만이 광장에 홀로 선다.


네거리를 지배하는 마녀의 우두머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법의 여신 헤카테처럼.

건성건성 누더기 헝겊으로 치워내고 빗자루로 쓸어낸 자리엔 피와 살이 곰팡이가 쓴 채 엉키었다.

덕택에 가장 많은 피를 담뿍 맞은 이는 길로틴도 검은 복면 쓴 사형 집행수도 아니다.


흙이다.

허약한 프랑스 혁명군이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막강한 군세와 맞싸우러 나가는 이때가 바로 흙이 피맛을  절호의 기회다.


한맺힌 지옥의 여왕 페르세포네마냥 안으로 안으로만 삭여오던 흙의 원한이 수천의 주검들과 공명한다.

언제부터인지 높다란 길로틴 아래 비옥해진 토양에선 어디서 온지 모를 씨앗이 심궈지고 뿌리내려 피를 들이마셨다.

가지가 엉키고 뿌리가 엉키고 잎사귀들이 태양을 마시더니 어느덧 결실의 때가 한걸음 다가온다.

피가 금새라도 뚝뚝 떨어질듯한 새빨간 꽃 알라우네가 탐스럽게 핀다.


흐드러진 꽃망울이 몹시 예쁘다.

보름달이  밤에 으스스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알라우네 꽃 사이에 서있다.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순백의 나신이다.


뒤에서 보니 양손으로 가슴을 가린 듯하다. 가느다랗고 긴 허리와 팽팽하고 토실한 엉덩이가 감미롭다.

푸른 달빛이 희디  어께에 낱낱이 흩뿌려진다.

바람이 그녀의 치렁한 검은 머리카락을 세게 날린다. 그녀가 한순간 돌아본다.


요염하면서 청순한 얼굴. 뇌쇄적이지만 섬찟한 푸른 눈.


사람들은 그녀가 발견된 곳의 이미지를 따서 그녀를 알라우네라 부른다.

알라우네가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면 알라우네는 자신도 잘 모른다 한다.

사람들은 알라우네가 도시에 공장이 늘어나면서 돈 벌러 시골에서 무턱대고 올라왔다가 어떤 충격으로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 한다.

처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알라우네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들기 비롯한 것은 알라우네가 병을 몰고다닌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때부터 알라우네가 알라우네 꽃에서 나왔다는 기묘한 소문이 돌았다.

오늘도 알라우네는 일터에 나선다.

알라우네를 한번 보면 사람들은 너나 할것없이 알라우네의 사랑스런 자태를 잊을 수가 없다.

알라우네는 언제나 분주하다.

건장한 군인이 들어온다.

라 마르세이즈(프랑스 국가, 당시엔 혁명가이자 행진곡)를 부르며 쓰디쓴 럼주 냄새를 풍긴다.

항구 노동자였던 그는 떡 벌어진 어께를 벌린다. 마르세이유에서의용병으로 올라왔다. 모레면 프로이센과의 싸움에 나설 것이다.

알라우네는 먼저 싸구려 포도주를 마신다. 미끈하고 갸름한 굉장히 예쁜 다리를 벌린다.

군인에게 깔려 궁둥이를 힘껏 돌린다.


깊고 기름진 보지를  조인다.


군인의 입에 혀를 밀어붙이고 자지를 목젓까지 깊숙히 끼워넣는다. 똥구멍을 빨아준다.

알라우네의 씹물은 가멸지고 깨끗하다. 알라우네 꽃이 흠뻑 들이마신 숱한 이들의 피만큼 많은 듯하다.


군인은 만족해서 돌아간다. 프로이센군과 대처한다.

끊임없이 싯누런 콧물만 푼다. 아무데나 묻혀놓고야 만다.


알라우네를, 알라우네가 맛본 오줌구멍에서 싯누런 것이 나온다.

눈에서도 눈물 대신 고름이 흐른다.


급기야 땀꾸멍에 고름이 진득하다.

데굴데굴 구르며 숨이 끊어질락 말락하게 고함친다.


힘줄이 풀어지고 살갗은 거무죽죽해지고 마침내 뼈가 삭아버린다.

군인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알라우네는 아메리카에서 왔다는 매독따위에 희생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날이 건강해진다.

어떤 까닭으로 매독균에 안전한지는 당대의 내노라하는 의사들도 알지 못했다. 연구하러  의사들은 알라우네의 매력에 빠졌고 제깜냥껏 단단한 내성 규율도 알라우네의 젖가슴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알라우네를 마녀라 했다.


중세의 마녀 재판.

오로지 소문으로 상당수의 선량한 사람이 포함된 수백만명의 여인들을 죽인 그 재판을 흉내내려 파리 시민들은 곡괭이와 밧줄을 들고 알라우네를 찾아갔다.

혁명을 이룬 그들은 사탄의 세력까지 갈아엎으려는 것이다.

알라우네가 보인다.


투명한 벽에 둘러싸인 듯.

푸르고 청순한 눈매에 사람들은 꺼뻑 죽는다.

모두들 언제 왔느냐는듯 총총히 돌아들간다.

누군가 말했다. 악마를 향한 혁명은 실패했다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혁명의 총아 로베스 피에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일했고 그의 의지에 따라 죽어갔다.


길로틴 아래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그 누구도 로베스 피에르를 고발하지 못했다.


로베스 피에르의 권세를 모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정적들은 눈을 퍼렇게 뜨고 흠집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로베스 피에르는 흑막 뒤에서 모든 일을 해냈다.


누구도 로베스 피에르가 수많은 사람들을 밀고자로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없었다.

어느날 한 혁명가가 알라우네를 찾아왔다.

혁명가의 눈은 총기로 빛났으나 어딘지 불안하게 떨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때 혁명가가 한 부탁은 역사에 남아있지 않다.


역사가 흑막에서 이뤄진다는 선례를 남기기가 싫었던 것이다.

혹은 일개 고급 창녀가 혁명에 지대한 공헌을 하도록 만든 부탁을 남기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혁명가도 알라우네를 보고 가슴이 떨려왔다.

그도 예외일 수 없다.

혁명가가 알라우네에게 덤벼든다.

알라우네가 격렬하게 응한다.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알라우네의 궁둥이가 하늘을 향해 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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