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음계록(蔭界錄) - 1999[판타지](2)
2.디도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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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별유천지 비인간이다.
:
“ 글세, 나만 믿으래도 ”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조금 앞서까지만 하여도 조용한 위협으로 무서움의 끝이 어디까지인 지 궁금하게했던 디도가 지금은 너무나 살갑게 굴고 있는 것이다.
“ 나한테는 이름이 두 개 있어. 디도 카젤이랑 디떼 스타. 부르고 싶은 걸로 불러 줘. 우리 말 놓자, 알았지 ”
동혁은 무릎을 꿇은 채 디도의 엉덩이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가 이왕 버린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생각에 몰려 그녀의 항문에 입술을 부볐다. 예상한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선 맛 부터가 야릇하면서도 입에 착 붙는 것이 아주 좋았다. 코 안쪽 후각 세포들에 살랑대는 살내음도 그를 홀리게 만들기에 넉넉했다. 그것들엔 한동안 넋 나간 양 혀를 놀리게 할만한 힘이 있었다. 그때부터 디도는 이렇게 굴고 있다.
모든 노예들이 길들여지는 방식과 똑같다. 폭력, 회유, 강압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노예는은 굴종의 굴레에 굳게 묶이고 만다.
그러나 이곳은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다. 좋은 뜻에서의 그것과도 나쁜 뜻에서의 그것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음계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디도가 문득 말을 던진다.
“ 난 니가 좋거든. 하지만 내가 죽으면 어쩌지. 넌 다시 그런 종류의 곡두서니들에게 끌려가게 될지도 몰라 ”
소름 돋는 일이다. 애벌레처럼 발가벗은 채 이른 알 수 없는 곳은 아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룩손 계열 톨들의 모든 파장으로 내뿜어지는 - 그걸 볼 수 있었을 리는 없고 디도에게 들어서 안 - 불길 속에서도 타지는 않고 드센 아픔만을 받으며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마구 달금질을 입었다. 다음엔 온 몸을 무대 삼아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벌레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잠은 들지도 않는다. 꿈도 곡두도 가상 현실도 아닌 그것은 거듭되는 가위눌림으로만 느껴졌다. 졸음이랑 머리 아픔만이 구원이었다.
그러다가 그곳에 생활 기반을 잡으려고 나타난 디도가 파라브라자의 응용 기술인 만트라(Mantra)의 하나인 차크라(Chakara)를 그들에게 집어 던져 단숨에 깡그리 때려부숴버렸다. 동혁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뭔가 다른 됨됨이를 지녔다는 걸 디도가 느낀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여겨보니, 디도가 그에게 제 항문을 핥으라고 한 것은 짓누르는 분위기에서 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그가 그렇게 느꼈을 따름이다. 아무런 길들임도 되지 않은 판에 그따위 부탁을 달갑게 여길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 느낀 것. 누구의 마음 속에든 있다는 마조히스트를 불러와도 똑같다. 마조흐의 마조히즘은 사랑하는 이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흉내를 내는 걸 달갑게 받는 걸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살짝 뺨에 손을 대면, 따귀를 세게 맞은 듯이 흉내를 내는 그런 것. 스스로를 부수고자 하는 의지는 있지만 그 의지를 움직임으로 옮기는 경우란 별로 없지 않은가.
그가 말한다.
“ 내가 어떤 식으로 도와 줄 수 있을까 ”
“ 글세. 직접 도움은 안 될 것 같아도, 내 삶을 이끌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아. 먼저 음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줄께 ”
디도가 들려 준 이야기 가운데 상당 부분은 그에게는 별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 다음에 들은 파라브라자와 에너지의 사이는 상상력을 일으킨다는 데에서 꽤 흥미를 자아냈다.
어딘지 이기론(理氣論)을 떠올리게도 하는, 파라브라자와 에너지라는 2원론은 또다른 2원론을 통해 그 무게가 덜해질 수 있다. 파라브라자와 에너지가 대우주라는 하나의 낱말로 더해지 듯이, 풀이라는 낱말로 겹쳐지는 또 하나의 2원론이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슬이나 넋을 풀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것을 죽이라 한다. 죽음이란 슬이 죽으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슬픔은 슬을 지닌 목숨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겠다. 배달 겨레의 낱말로, 인도의 낱말이 많은 음계의 개념 체계와는 조금 다르다. 어렴풋한 반감으로 떠올려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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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일이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와서 싸구려 민족주의나 생각하고 있다니. 파라브라자와 에너지라는 2원론은 서구적이고 물리학적이어서 풀과 죽이라는 2원론보다 훨씬 냉엄하고 기계스럽다. 유기적이고 사람을 한얼님으로 받드는 풀과 죽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풀과 죽이라는 2원론을 덧붙인다 하여 무게가 가벼워질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1990년대의 몇몇 연구에 따르면, 한국과 인도는 같은 갈레의 말겨레가 아닌가. 인도 - 유럽 말겨레의 한 갈레인 인도 - 말레이 말겨레 말이다. 물론 말겨레라는 모자란 가설이 참일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곧 에너지인 우주에서 온 동혁에게 파라브라자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음계에서 에너지는 파라브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에너지는 나름대로의 얼개를 지니지 못하고 파라브라자의 얼개 안에 싸여버리고 만다.
“ 음계는 계약을 바탕 삼아 나아가 왔어. 음계에 사는 그 무엇이든 계약으로 묶이지 홀로 서는 건 없어. 서로 서로 싸움을 거듭하면서도 계약 사회를 나름껏 이룩한 건 바로 그런 까닭에서야 ”
“ 나도 마찬가지겠네 ”
“ 물론. 넌 지구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지. 어떻게 온 거야? ”
“ 그건 ”
어디서부터 말해야할 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이 미소녀를 어떻게 봐야 할 지 모르겠다. 비록 뿔, 지느러미, 날개, 꼬리가 있다지만 작디 작은 붙임꼴일 뿐이고 몸은 틀림없는 미소녀니까. 눈길은 다른 데에 두고 있으나 눈가로 슬쩍 슬쩍 보이는 걸 가늠하여도, 디도는 참으로 빵빵하다. 그는 여자를 보면 처음엔 얼굴에 눈이 간다. 그래서 아름다운 얼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려하였으나 몸에 눈길이 가는 걸 막기 어렵자 다른 곳을 본 것이다.
동혁이 눈길을 아직도 다른 데 둔 채 이야기한다.
“ 그런데 말야, 파라브라자가 설마 초월적 브레지어 짜임으로 이룩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
에너지가 초 끈 짜임인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초 끈 짜임이 마지막 물리 짜임인지 확실치 않은 판에, 농담이라도 그 말을 차마 덧붙이진 못하는 동혁이다.
“ 농이라고 한 거니? 파라브라자는 초절정능력 도깨짐승(가축)이라는 뜻이야. 참고로 음계에서 브레지어란 건 악세사리 대접을 받고 있지. 음계에서 차림새를 제대로 갖춘 애를 만나긴 힘들껄. 내가 그렇듯이 ”
디도가 큼직한 유방을 붙들고 잠깐 돌린다. 브레지어는 주문해서 맞춰야겠는 걸. 허리는 가느다랗게 살랑대면서 왜 저렇게 크다냐.
파라브라자.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눈이 못 미치는 곳 깊숙이에 잠긴 도깨짐승. 파라브라자는 힌두어 짜집기니까 이때의 브라자는 소일 게다. 그것도 인도 물소. 피안에 잠긴 초월스런 인도산 물소가 되새김질을 하다가 레미콘 카에서 시멘트 들이붓듯 똥을 누면 그게 바로 에너지가 된다는 건가.
그런 뜻을 말했더니 디도가 목청껏 웃어재낀다. 웃을 때마다 살찐 젖가슴은 위 아래로 무겁게 흔들리고 젖꼭지는 인사라도 하듯이 예의 바르게 꾸벅거린다. 웃다니. 피눈물을 흘려도 모자랄, 참을 수 없는 살이의 가벼움인데 말이다.
유머의 요건인 자기 조롱이 통한 듯하다.
비로소 똑바로 바라 볼 수 있었다. 귀족스럽고 세련되며 늘씬한데다 균형 잡힌 생김새다. 키는 185cm는 되어보였고 가슴이랑 볼기가 슈퍼 모델들과는 비할 수 없을만치 큰데도 허리는 조금 밖에 굵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길고 미끈해보인다. 왜지?
“ 아유, 아유. 숨 넘어 가겠네. 파하하하! ”
디도가 동혁에게 무너지듯 안긴다. 몹시 거북살스럴 것이라 예상했으나 뜻밖에 마음껏 안을 수 있다.
몸집이 작아져있다. 몸의 비례는 아까와 같았지만 키는 162cm 남짓으로 줄어들어 안기에 알맞았다. 살결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넘친다. 동혁은 디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곱고 숱많은 머리결엔 앞 가르마가 뚜렷이 나있다. 이런 머리 꼴을 동혁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보지 가르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도의 가르마에 대고 페니스를 비벼대는 장난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인다.
디도가 동혁의 손을 제 궁둥이로 이끈다.
“ 만져 줘. 터지도록 주물러 줘잉~~ ”
매우 부드럽고 말캉말캉하면서도 무거운 양감이 느껴진다.
디도가 넓은 어께를 좁힌다. 가슴이 따라서 안으로 모아들어, 두 봉오리가 착 붙는다. 동그마니 튀어나온 엉덩이가 가슴에 생긴다. 디도가 눕는다.
“ 내 위에 앉아 ”
동혁이 디도 위에 걸터앉아 페니스를 앙가슴에 끼운다. 쪼임이 엄청나면서도 말캉말캉하다.
“ 헝~~ 나 오롯이 젖었어 ”
정액이 크게 뿜어져 디도의 가슴과 얼굴에 더덕더덕 묻는다.
디도가 가로눕더니 동혁의 가라앉은 페니스를 입 안 가득히 물고 혀로 간지럽힌다.
동혁이 말한다.
“ 어떻게 넌 나에게 이렇게 맞출 수가 있지? ”
“ 그건 말야 . 앗! 큐티에호비호렙(CutyJaehovyholeb)이 왔어. 일단 내 안에 숨어 ”
갑자기 풍경이 바뀐다. 디도도 그대로 있고 동혁도 마찬가지다. 경치만이 바뀌었다. 어느 쪽을 보든 눈길 끝까지 붉게 타오르는 땅굴 비슷한 것만이 있었는데 이젠 훨씬 좁은 울긎불긎한 밀폐지대다. 좁다곤 하지만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울만치 넓디 넓긴 매찬가지다.
디도가 말한다.
“ 넌 지금 내 안에 있어. 이곳은 내 씹 안에 있는 돌기야. 니 눈 앞에 보이는 꼴은 내 생각이라 해두면 되겠지. 걱정 마. 너와의 상호 작용은 아까와 아무 다름이 없을 거야 ”
그녀가 빙긋거린다. 그녀는 아름답되 건방지지는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귀염성이 넘쳐난다. 왜지?
“ 내가 작아진 거니? ”
사람은 사람이 만든 사회에선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기에 집단주의 사회는 아무렇잖게 왕따들을 괴롭히는 것이리라. 디도는 사람이 아니지만.
“ 아니. 넌 바뀌지 않는 짜임새더라. 하지만 난 그게 마음껏 되니까 널 내 안으로 갈마들인 거야 ”
“ 큐티에호비호렙인지 뭔지가 나타났다며? ”
“ 응. 큐티에호비호렙은 워낙에 걸까리지기에 나로선 이길 수가 없어 ”
“ 아직 안 왔지? ”
“ 응. 하지만 곧 올 꺼야. 사실 난 큐티에호비호렙한테 내쫓겨서 이곳에 온 거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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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은 가만히 지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실 따로 할 일도 마땅히 없으니 디도에게 빠져들어갈 밖에 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좀더 긴 시간에서 이야기한 것이고, 일단 지금은 디도가 하는대로 볼 수 밖에 없다.
“ 이제부터 큐티에호비호렙과 협상을 해야 해. 그러려면 내 모든 주의력을 남김없이 쏟아야할 거야. 난 너랑 한동안 이야기할 수 없어. 대신 나랑 더불어 사는 수루치(Suruchi)를 보내줄께. 그 애는 슬기는 제법 있지만 힘은 내게 있어서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
디도가 사라진다. 경치가 바뀐다. 너무 자주 바뀌는 경치에 정신이 없지만, 서서히 똑바로 볼 수 있다.
밤이지만 땅은 별로 어둡지 않았다. 속이 비칠만치 새까만 하늘 너머로 오롯이 보이는 큼직한 소용돌이 미리내가 조금 휘우듬하게 누운 채 파르스름하게 빛나고 있다. 소용돌이 미리내의 곱다란 생김새가 저토록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다. 그 둘레에 모래 알갱이 마냥 드넓게 퍼진 별들은 미리내와 벗하며 고즈넉이 빛나고 있다.
미리내는 하늘이 차가운지 곱다시 떨고 있다.
“ 와아! ”
저절로 소리가 터진다. 오늘 날짜가 며칠인지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인다. 떠오르지 않는다. 뭐 아랑곳없다. 날짜라는 건 유한자인 사람이 가이없는 온 누리의 철칙을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몸부림치는 데 쓴 수많은 기제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않는다.
날짜는 앞으로 음계에서 살아 갈 동혁에겐 어떤 수로도 올가미를 씌울 수 없다.
발 밑엔 고운 솜이 엉켜 멀리까지 뻗쳐 있다. 솜은 발을 따쓰히 감싸 고이 싸안아 준다. 동혁이 몸을 던지자 푹신하기만 하다. 우주로 가는 창인 밤하늘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눈 감으면 더 잘 느껴지는 따쓰한 바람결은 밖임을 잊게 한다.
이곳도 굴 같았다. 우주라는 굴. 너무나 커서 그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뺑기통. 그 끄트머리에 이르면 무한성이 주는 착각은 사그라지고 악의 섞인 참됨을 깨닫겠지. 하지만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그 착각을 풀어낼 어떤 슬기도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어리석음을 즐기기 위해 우주를 만들었으니까. 설혹 하나님이 있다면 제아무리 스스로 다른 목적을 내세우더라도 결국 그런 살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곱디 고운 목소리가 들린다.
“ 전 당신의 알지(閼氏)가 될 거예요 ”
동혁이 돌아눕는다. 그의 눈길이 높고 깊은 곳으로부터 내려와 땅에 머문다. 주관의 환상이 객관의 현실과 맞부딪치자 가느다란 느낌은 욕망의 물결이 되고 아름다운 밤하늘 머나 먼 어딘가는 디도의 질척이는 몸 어느 한구석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런 바뀜이 없건만.
생각이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 생각은 생각하는 곧바로 그곳에 가 닿는 것이기에 빛 보다도 빠르다고. 헛소리일 뿐이다. 생각이 가 닿는 곳은 전기와 화학 물질이 진창으로 뒤엉킨 뇌세포 어느 구석일 뿐이지. 그런 뇌세포마저 아직 제 스스로에게 남아 있을 지 궁금해하는 동혁이다.
발가벗은 여체 하나가 다가온다.
“ 안녕하세요, 동혁 님. 처음 뵙겠습니다. 전 수루치라고 해요. 맛이 좋다는 뜻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