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음계록(蔭界錄) - 1999[판타지](3)
“ 알지가 뭐지? ”
“ 소첩(小妾)이라는 뜻이랍니다 ”
동혁의 눈에 수루치라는 이가 내는 볼 수 있는 빛이 와 닿는다. 진짜론 파라브라자의 움직임들, 빛의 모든 스팩트럼, 무게톨의 모든 결, 여섯 가지 뉴트리노를 모두 내뿜고 있으며 그에 더해 갖가지 냄세 톨과 소리마저 내고 있지만 동혁에게 느껴지는 건 그것 뿐이다.
그래. 음계에 오기 앞서도 난 그 정도였다. 다만 뼈 저리게 여기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야. 동혁이 스스로를 자위한다. 그가 수루치를 보며 앉은 채 딸딸이를 깐다. 분위기 탓이다. 지구에 있을 때는 여자를 보면 수줍어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수루치는 탐스러운 금발을 지니고 있다. 디도의 머리카락은 그저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져 있지만 수루치의 그것은 깔끔하고 깨끗하게 빗겨 있다. 지나치리만치 하얗고 갸냘픈 몸매의 실루엣은 미리내의 별빛 아래서 더 깨끗하고 푸르러 보인다. 수루치의 몸매는 디도와는 달리 패션 모델의 그것과 몹시 비슷했지만 몸집은 자그마하다.
수루치가 두 팔을 들어올려 뒷머리로 넘겨 포겐다. 넘어지듯 주저앉더니 엉덩이로 꿈틀거리며 기어서 다가온다. 겨드랑이에 난 털도 음부의 거웃도 항문의 터럭도 모두 금빛이고 애써서 빗겨 있다. 수루치가 온갖 움직임을 보여 동혁의 딸딸이를 돕는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제 샅을 나른하면서도 주의 깊게 비빈다.
수루치가 한쪽 다리를 높이 든다. 손가락을 제 미주알(음부)에 넣고 빙글 빙글 정성껏 줄기차게 돌린다. 붉게 달아오른 살로 이뤄진 꽃봉오리 둘레엔 나스르르하고 노오란 실들이 일어나 감질맞게 슬근거려대는 손가락들을 애타게 바란다.
벌떡 일어나 멋지면서 조용한 힘이 스며 있는 춤을 보여준다. 그로 말미암아 수루치의 온몸은 땀과 기름에 알맞게 젖어 물이 오른다.
동혁의 정액이 샘솟듯 터져나오자 수루치가 재빨리 달려들어 받아 마시고 마시며 받는다. 정액 가운데 일부는 그녀의 속비칠만치 새하얀 젖가슴에 묻는다. 몸을 숙이고 있던 수루치가 가슴을 꼭 붙들고 건져올린다. 동혁의 정액이 묻은 손을 제 씹에 넣고 정성들여 돌리며 수루치가 어지러이 빠질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 디도 님의 레즈에요. 디도 님이랑 하는 생김새, 얼마든지 보여드릴 수 있답니다 저 추워요. 하늘에 있는 미리내도 저 만큼이나 춥나 봐요. 떨고 있잖아요. 꼭 안아주세요 ”
동혁이 수루치를 껴안는다. 품 안에 딱 붙는 갸냘프고 작은 몸.
사람 사는 누리에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때란, 여자를 노리개로 밖에 생각치않는 끗발 있는 남자와 남자를 지갑 쯤으로 여기는 갈보 가 함께 있는 것 밖에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동혁은 음계의 윤리가 어떠한지 모른다.
“자지면 만지라, 보지면 조지라는 말이 있지 ”
“그래요? ”
수루치가 동혁의 고주알(좆)을 가볍게 그러쥔다. 동혁의 거시기가 다시 일어선다. 그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수루치의 옥문(玉門)을 힘차게 조진다. 곧 좆과 손가락 두 개까지 더해 질에 파고든다.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조용한 신음을 달콤쌉싸름하게 내지르던 수루치가 동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다음 별바다를 올려다보더니 말한다.
“ 이 경치, 멋지지 않나요? ”
“ 괜찮군 ”
“ 오직 당신을 위해 디도가 만들어낸 우주랍니다 ”
그녀가 땅에서 솜을 조금 뜯어내어 동혁 앞에 내민다.
“ 하나님이 솜을 얻고 싶다면, 그는 우주, 그것도 솜이 있을 수 있는, 다른 우주와는 나눠지는 우주를 만들어 목숨을 키우고 그로부터 솜을 뽑아내야 하겠죠. 디도 님도 그렇게 했어요 ”
“ 디도가 하나님이란 이야기야? ”
“ 저나 당신에겐 그럴 지도 모르죠. 저 하늘 너머엔 당신이 왔던 볼 수 있는 우주가 최대 가능 엔트로피 상태가 되었을 때 보다도 1구골 플랙스 배 만큼 지름이 큰 우주가 펼쳐져 있어요. 그것도 평균 밀도는 당신이 온 볼 수 있는 우주의 평균 밀도 정도로요. 물론 이곳은 디도 님 안 어느 작은 곳일 뿐이지요 ”
볼 수 있는 우주의 지름은 150억 광년이다. 그 볼 수 있는 우주가 최대 가능 엔트로피 상태가 되면 1경 배로 커지며 따라서 150자 광년의 지름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1구골은 10의 100제곱이고, 1구골 플랙스는 1구골의 구골 제곱에 해당되는 숫자다.
볼 수 있는 우주의 무게는 지켜진다. 곧 무게는 바뀌지 않는다. 그 무게는 뉴트리노를 비롯한 암흑 물질을 합치면 10의 50제곱 ton에 이른다. 따라서 저 하늘의 무게는 가장 커진 볼 수 있는 우주의 1구골 플랙스 배의 삼제곱 배일 것이다.
에너지를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파라브라자로 되어 있으므로 디도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디도는 저 하늘에 목숨을 깃들게 했나? ”
“ 예. 지성은 없지만 고등생물까지는 있어요. 그래야 이 솜들을 만들 수 있었겠지요. 당신이 온 볼 수 있는 우주엔 100해(10의 22제곱) 개의 별이 있고 목숨이 있는 별은 3자(3 곱하기 10의 28제곱) 개 쯤 된답니다. 지금 보이는 하늘엔 그 1구골 플랙스 배의 목숨이 깃들어 있어요 ”
쓸데없는 곱셈은 이제 그만!
“ 디도는 우주를 만들었듯이 또 부술 수도 있어? ”
“ 예. 음계에서 열역학 3법칙은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에너지는 끊이지않고 나타나고 없어질 수 있지요. 엔트로피는 닫힌 누리에서 끝없이 생기지만, 음계는 얼마든지 열릴 수 있어요. 또 엔트로피는 제 살이를 에너지에 기대기에 에너지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절대 0도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에 지나지 않아요 ”
“ 저 하늘을 거듭 이어나갔으면 좋겠어 ”
“ 디도 님께 꼭 여쭙겠어요 ”
디도는 눈빛이 깨끗했다. 수루치는 조금 어두운 듯하다. 하지만 미소는 그에 못잖게 맑다.
“ 이 우주는 참으로 넓군. 물론 제아무리 넓어도 끝없는 눈길로 보면 다 똑같은 거잖아. 모래 한 알이나 이 우주나. 물론 사람은 스스로의 조건에 묶여 모든 걸 상대화하지만 ”
“ 저나 디도는 음계의 딸(Overworld's daughter)이라 보는 눈이 조금 다르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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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이런 누리를 만들 수 있다니. 물론 그것엔 나름대로 가이없는 사이가 쓰였을 것이다.
비록 나를 위해 만들었다곤 하지만, 그런 치졸한 목적론에 더렵혀지지 않은 신비가 있을 거야. 대우주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대우주의 끝없음이라는 하늘은 목적이란 새장에 빨아먹혀 소우주의 주관적 유한성이라는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강조하는 목적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목적이 아무리 크다한들 대우주만큼 드높을 리는 없으므로. 목적 없음에서 오는 끝모를 가능성은 맹목 아닌 신비가 되고 디도 카젤의 권능은 더욱 커다란 대우주의 살이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대우주가 필연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더라도 그 점은 하나도 흠 잡히지 않는다. 동혁이 온 우주가 어떤 살이이든 이 점은 같다. 그가 온 우주도 음계 그리고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대우주의 한 조각일 것이므로. 대우주에 목적이 있다면, 대우주의 있음(Is) 아닌 무엇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누리에 퍼진 고즈넉함 안에 동혁 소리가 스미듯 끼어든다. 하지만 커다란 고즈넉함을 깨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 고즈넉함 속에 하나되어 버리고 만다.
“ 이 우주를 지키라고 꼭 말해야 해 ”
“ 예 ”
따뜻하고 곱다랗기에 오히려 무섭다.
“ 어떻게 뜻이 이어지지? ”
“ 아주 욧점에 속한 거군요. 글세요. 말 뿐아니라 당신을 음계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부터가 야릇한 일이지요 ”
“ 그렇겠군. 나는 몇 안 되는 3차원 우주 가운데서도 아주 별 난 우주. 그런 우주 가운데서도 몹시 별 난 지구. 지구 가운데서도 매우 좁은 땅에서만 살 수 있으니까 ”
더욱이 이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시공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동혁에겐 현실이 될 수 없는 가능성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그가 수루치에게 달라붙는다. 수루치가 동혁에게 붙은 채 말한다.
“ 당신이 온 우주는 아주 커요. 볼 수 있는 우주가 다 일거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겠지요? 지구 말고도 당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은 매우 많아요. 지구 보다 당신에게 나쁜 별도 많지만 오히려 좋은 별도 많지요. 당신을 음계가 받아들이는 수수께끼에 관해서라면, 디도도 알지 못해요 ”
“ 그녀는 하나님이 아니군 ”
“ 물론이지요. 만약 하나님이라면 큐티에호비호렙 따위에게 쩔쩔메고 있을 리 없겠지요 ”
더욱이 하나님이란 것부터가 사람의 집단 자기 숭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디도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건 꼭 맞는 일이리라.
갑자기 디도의 목소리가 울린다.
“ 큐티에호비호렙과 계약을 맺었어. 날 계속 강간하고 싶데. 이제 밖으로 나와도 돼 ”
강간은 일탈이다. 그런데 계약을 맺고 하는 일탈이라. 어째 조금 야릇한 낱말이다.
풍경이 맨처음의 것으로 바뀐다. 동혁이 몸서리친다.
디도 카젤은 큐티에호비호렙 앞에 무릎 꿇은 채 한쪽 손으로, 두 손으로도 제대로 가려지지 않는 젖가슴 하나를 붙들고 있다. 웬만한 손가락 만큼이나 굵고 솟구쳐 오른 젖꼭지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걸로 보아 가리려는 뜻은 없는 것 같다.
큐티에호비호렙은 푸른 털과 햇빛에 살짝 그을린 듯한 살결을 지닌 도도한 미녀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그녀는 꿋꿋하고 박력 있게 알몸을 곧추 세운 채 오만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숱많은 새파란 머리카락은 정강이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달걀 꼴인 얼굴의 곡선은 흡 잡을 데 없이 마무리되어 있고 귀염성도 보인다. 가슴과 궁둥이는 디도 못잖은 크기와 맵씨를 자랑한다. 입술은 조금 얇았으나 아주 예쁘다. 디도 보다도 어께가 넓지만 흉해 보이긴 커녕 잘 어우러져 떳떳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디도와 마찬가지로, 빵빵함과 늘씬함이 어떻게해야 가장 보기 좋게 어우러질 수 있는 지에 대한 모범 같은 몸매를 지니고 있다. 디도나 수루치처럼 정수리에서 음부까지의 길이보다 음부에서 발뒤꿈치까지가 더 길다.
오롯한 여체의 균형미를 지녔으나 디도와 마찬가지로 몇몇 붙임꼴이 아름다움에 별 흠을 주지 않으면서 있다. 곱고 커다란 유방 사이에 있는 앙가슴엔 억센 음경이 달려 애액(愛液)을 철철 흘리며 잔뜩 꼴려 있다. 박쥐를 닮은 날개는 등엔 없고 대신 자그마한 것 하나가 오른쪽 뒷통수에 달려 있고 왼쪽 뒷통수엔 두 개의 아가리가 달린 야릇하고 무섭게 생긴 머리가 달려 가끔 으르렁댄다. 그녀의 사타구니엔 푸른 거웃이 몹시 길고 두텁게 자라 무릎까지 늘어져 있다. 음핵 걸이엔 씹물이 싸고 돌며 흐르는 황금 사슬이 꿰어져 양쪽 발목에 달린 차꼬에까지 이어져 있으나 움직임에는 아무 지장 없는 소소한 악세사리일 뿐이다. 목에만 목티의 목 가리는 조각 닮은 것을 두르고 있을 뿐 무엇 하나 걸치지 않았다.
“ 여자가 맞긴 맞는 거야? ”
수루치가 답한다.
“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당신에게 제가 어떻게 보일 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음계의 살이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저나 디도 카젤 님은 보는 이에 따라 보이는 꼴이 다르지요. 다만 어떻게 보이는지엔 잣대가 없지는 않아요. 당신이 지금 보는 제 생김새는, 당신에게는 괜찮게 보이는 꼴일 겁니다. 때문에 저는 조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에게 맞출 수 있는 것이죠 ”
동혁이 잠깐 수루치의 말을 곱씹더니 말한다.
“ 그런 거라면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 아냐? ”
“ 다릅니다. 제 지바는 에너지와 이어질 뿐 전혀 다른 파라브라자로 되어 있으니까요. 전 제 모든 것이 담긴 지바및 그에 딸린 다른 파라브라자와 에너지로 되어있지요. 동혁 님의 창자에 사는 세균에겐 전 그저 한 무더기의 대장균으로 가늠되겠지요. 말하자면 가늠되는 것에 따른 보편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당신답게 보이게 하는 보편의 생김새를 지니고 있지만요. 다른 별 사람이 보더라도 당신의 무게는 똑같은 에너지로 헤아려지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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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미(絶對美, 으뜸 아름다움) 따위는 없다는 소리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미녀들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두꺼비는 알리시아 실버스톤이나 김희선을 보면 토낄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개에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절대선(絶對善, 으뜸 착함)을 모든 것들에게 착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한다면 그런 것 있을 수 없다. 이곳에 두 적이 있을 때 어느 한쪽이 이기는 건 다른쪽에겐 나쁘다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적이 되었다는 건 같은 에너지를 두고 싸운다는 뜻이고, 그 에너지가 매우 많이 주어지고 이를 더 바라지만 않는다면 풀릴 수 있는 일이다. 이때 새로 만들어진 질서는 틀림없는 착함이다. 화수분을 준다면 착함을 이뤄낼 수 있다. 착함이란 이기의 한 가지, 높고 아름다운 이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함과 나쁨의 나눔을 지니고 있을 수 없는 이들이 누리엔 훨씬 많으며 그런 것들은 지성이 빨아들여야만 윤리를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지성이 모든 무생물을 목숨으로 만들어 그들 위에 착함을 일궈냈다치자. 그 착함이 모든 지성이 받아들일만치 아름답고 나아진 것이라 해도 그것은 지성이란 임금이 펼쳐낸 애오라지 홀로 선 착함에 지나지않는다. 그러나 지성만이 착함과 나쁨을 나누어 알 수 있으므로 그게 다이다. 이것이 한계이다. 대자연의 본질이 주는 이같은 한계는 포기하라고 있는 것이지 깨뜨리라고 있는 게 아니다.
절대진(絶對眞, 으뜸 참됨)은 있다. 그러나 이때의 절대진은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는 어짊이 아니라 대자연이 지닌 서슬 푸른 힘을 가리킬 수 밖에 없다.
세 가치를 더하는 일 따위란 음계에서도 가능할 일은 아닐 지 모른다.
수루치가 고개를 끄떡인다.
잘 벼려진 칼날을 떠오르게 만드는 푸른 눈에서 섬뜩한 빛줄기를 내며 큐티에호비호렙이 수루치를 잠깐 쏘아본다.
수루치가 선 체로 말갛고 맑은 오줌을 싼다. 가늘고 곧은 다리를 타내려가는 오줌은 애액만큼이나 야하게 보인다. 그녀가 묻는다.
“ 절 죽일 생각인가요? 그런 걸로 계약을 맺었나요, 디도 님? ”
디도가 말한다.
“ 아냐. 수루치, 동혁을 잘 지켜주길 바래. 그는 에너지로만 되어 있고, 따라서 지바(Jiva, 넋)가 없어. 죽으면 그걸로 끝장이야 ”
그런가. 그게 모든 사람의 운명인가. 나를 이루는 그 무엇도 부서지지 않는 건 없다는 것이 에너지계의 참이란 이야기야. 유물론이 옳다는 것이지.
“지바는 모든 것에 다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잖아 ”
“ 낱말은 같아도 뜻은 다르지. 파라브라자로 이루어진 지바엔 음계의 목숨이 담겨 있고 한 번 이뤄지면 끝을 몰라. 따라서 수루치에게 죽는다는 건 동혁의 말로는 제 지바 안에 갇힌다는 뜻 밖에 안 돼. 갇히면 바깥과 사귀어 오고 갈 수 없고 스스로 떨쳐나올 수도 없지만, 제 안에서 아비디야(Avidya, 소우주의 어리석음이나 곡두)들을 놀리며 절대자인 양 굴 수 있지. 음계의 아한카라(Ahankara, 개별자)들은 실상 죽지 않고 봉인만 당하는 셈이야. 봉인을 당하지 않은 아한카라들은 어우러져 마하 지바(Maha Jiva, 드높은 넋)를 이루고 있어. 마하 지바는 음계가 끝모르게 얽히도록 몰아가고 있지. 난 수루치 안에 있고, 수루치는 내 안에 있어. 그러나 나누어져 있어. 모든 지바가 다 그렇게 겹겹으로 쌓여 있어. 잘 설명이 안 된다. 나중에 한 껴풀씩 알게 되겠지. 마하 지바는 0차원으로 뭉쳐질 수도 있고 무한 차원으로 드넓어질 수도 있는 권능을 지녔어. 음계의 아주 많은 조각이 마하 지바로 이루어져 있어 ”
그녀의 목소리가 어두워진다.
“ 그런 뜻에서, 마하 지바는, 더 나아가 음계는 어떤 커다란 아한카라의 자그마한 아비디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큰 아한카라에겐 아비디야에 지나지 않는 마야(Maya, 대우주의 어리석음이나 곡두)에 꽁꽁 묶여 돌고 있는 지도 몰라. 이 생각을 부정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내겐 없어. 그건 아비그나타(Avignatha), 알려지지 않은 절대 진리의 수수께끼일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