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그의 운명, 데미갓 (1)
- 제 2 화 -
‘못생긴 게 무슨 죄야, 얼굴의 힘을 보여줘!’
TV에 나오는 어느 예능프로에서 했던 말이다. ‘못생긴 것이 무슨 죄냐. 얼굴의 힘을 보여 달라.’ 자신들의 얼굴을 비하하며 재미를 유도했던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웃음을 선사하였다. 물론 평범한 사람에 한정한 것이다.
벌써 수년이나 흘러버린 과거의 예능 프로를 보던 성진은 자조적인 웃음으로 그들의 행동에 반대하고 있었다. 자신이 봤을 때, 못생긴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얼굴들인데 괜히 웃음을 위해서 자기비하나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법도 하였다.
성진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보다가 이른 아침 등교를 위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으윽...’
그렇게 찬찬이 교복을 살펴보던 성진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치솟는 불쾌감에 괜시리 얼굴을 찡그린다. 거무죽죽한 얼굴에 좌우로 벌어진 광대뼈, 좁쌀 같은 눈과 낮게 뭉개진 주먹코, 징그럽게 솟아있는 여드름 자국과 모공자국들. 방금 예능에 나왔던 사람들보다 수천 배는 더 못생긴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성진은 거울을 보고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자신의 필수품인 마스크를 착용해버린다.그런 뒤, 오래 전 예능이 흘러나오던 스마트 폰을 정리하고는 가방을 들어 등교할 준비를 했다.
“성진아, 벌써부터 학교 가는 거니?”
성진이 가방을 맨 채로 때가 많이 탄 낡은 컨버스 신발을 신고 있을 때,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원장님.”
“벌써부터 학교 가는 거야? 이제 수능도 끝나서 천천히 나가도 좋잖아.”
“오늘 성적표가 나온다고 해서요. 긴장이 돼서 학교에 빨리 나가보려고요.”
“참! 그렇지. 오늘이 그 날이구나. 저번에 가채점했던 것도 그렇고 우리 성진이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잘 나왔을 거야.”
성진을 향해 따뜻한 말을 건네는 고아원의 원장님. 어렸을 때부터 못생긴 외모로 따돌림을 받게 되면 자신을 지켜주었고, 힘이 들 때 응원을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이다.
마치 어머니가 있다면 ‘이런 사람이었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녀의 따뜻한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 성진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헐레벌떡 학교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
두근거리는 마음을안고 도착한 학교. 성진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자신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여러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창가에 앉아 있는 쓸쓸한 그의 분위기와 많이 상반되었다.
푸른 하늘의 구름이 떠내려가고 그럴수록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커져가는 지금. 그러한 상황은 오랫동안 성진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자! 모두들 자리에 앉아라! 성적표 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던 목소리들이 앞문을 열고 나타난 선생님의 목소리에 모두 잦아들었다. 평소 잘 까불대기로 유명했던 아이도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닫은 모양새에 반의 분위기가 대변되는 모습이다.
“성적이 어떻게 나왔던 간에 모두들 수고했어. 혹시 기대보다 낮게 나왔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고. 성적이 잘나왔어도 다른 아이들이 있으니까 자중하고. 알았지?”
"""네."""
“그래. 그럼 성적표 나눠줄게.”
아이들이 걱정되었던 것인지, 담임선생님은 약간의 조언을 곁들이며 성적표를 두들긴다. 그리고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그들의 피땀 어린 과정의 결과물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김진아.”
“네... 흐아앙~”
“김종수.”
“옙...! 우와~! 대박이다!”
성적표를 받아드는 아이들. 선생님이 했던 조언과 다르게 막상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그들의 가진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험을 잘 못 봤는지 우는 여자 아이도 있었고 잘 받은 성적에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도 있었다.
“이성진.”
“네, 선생님.”
“자, 여기 있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이따가 1교시 끝나면 선생님한테 찾아와줄래? 할 말도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의 이름을 호명하자, 교탁 앞으로 다가간 성진은 곱고 매끄러운 손을 뻗어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든다. 그 누구의 것보다 화려했던 성진의 성적표. 그러나 그것을 받아든 그의 표정은 별다른 미동이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1교시가 끝난 뒤 교무실로 찾아와 달라는 말을 건넸다. 계속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성진은 그녀의 말에 알겠다는 대답을 한 뒤,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
“성진아, 너 정말로 대학갈 생각 없니?”
“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렴. 이 정도 성적이면 아무 대학이나 골라서 들어갈 수 있어.”
“...... .”
“장학금은 물론이고 요새 국가 장학금도 잘 나와서 무리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을거야. 이만하면 네 사정도...”
“선생님. 괜찮아요. 저는 그냥... 진학하지 않을래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녀도 생활비나 여러 다른 비용 때문에 힘들 것 같아요. 또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적응 문제도 그렇고...”
“그래도... 더 좋은 방법이 있을거야. 이 성적은... 너무 아깝잖아.”
“...... .”
“휴... 그래, 성진아. 아직 원서 쓸 시간은 남아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렴. 선생님도 네 사정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나 잘 살펴볼게.”
“...... 네, 선생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성진은 자신을 설득하려던 선생님의 만류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간다. 고아인 그의 처지에도 항상 잘해주려고 노력했던 그녀였기에 성진은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할수록 그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었다. 어떤 꿈이 있어서 공부를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외로워서, 자신을 지탱해 줄 것이 없어서 했었던 공부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과의 상담 뒤, 성진은 책가방을 들어 자신이 살고 있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아직 수업이 끝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선생님들은 수능 원서 때문에 바빴고 남아있는 학생들을 관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빠른 귀가가 가능했던 것이다.
“야, 아영이는 어쩔거야?”
고아원으로 향하던 가운데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 무렵이었다.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대화를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성진과 같은 학교 교복이면서 명찰의 이름표 색도 같은 것을 보니 그와 같은 나이인 것이 분명했다.
“아영이? 그건 왜 물어봐?”
“하하... 이런 약아빠진 새끼를 봤나. 우리가 저번에 선아랑 지원이 먹게 해줬잖아.”
“그래, 인마. 거기다 다른 학교 쌈박한 여자애들도 꽂아줬더니만... 너는 입 닦고 조용히 하겠다?”
“아... 그랬지.”
“미친 새끼. 그런 조건으로 우리가 아영이랑 사귀도록 도와준 건데...”
“야, 야. 알았어. 나중에 시간 봐서 해주면 될 거 아니야.”
느린 걸음으로 그 근처를 지나가던 성진은 그 주위로 들려오는 말소리를 무시하며 느린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187센티에 타고난 골격이 있던 그가 겁이 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귀찮은 일을 싫어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보이자 잠깐 말소리를 줄였던 아이들은 그의 모습이 멀어질 때 쯤,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야... 너 설마... 먼저 아영이랑 먼저 싸바싸바 한 거 아니야?”
“에라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 손만 겨우 잡고 있는데...”
“뭐야... 천하의 강지훈이가? 얼굴 반반해서 여자 후리기에 달인 강지훈이?”
“몰라 이 새끼들아. 생긴 거답게 엄청 까다로워. 뭐, 그래도 나름 계획이 있지만...”
“무슨 계획인데?”
“아영이도 이번에 수능을 잘 봤다고 해서 같이 1박 2일로 놀러가려고.”
“역시, 강지훈이네. 그나저나... 그 애도 여행 가고 싶어할라나?”
“말은 엄청 비싸게 구는데... 한번 뚫어봐야지. 내가 먹은 년들만 몇 명인데...”
“역시, 강지훈이야. 크큭. 우리는 그럼 아랫도리 잘 닦고 기다리고 있을게.”
지훈을 둘러싸고 있던 친구들은 그의 말에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 지방의 어느 소도시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의 자식들. 그들은 ‘아영’이란 아이를 어떻게 해 볼 생각으로 대화 하는 것에 열중한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친구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불쾌한 기색 없이 음침한 미소를 짓는 강지훈. 성진은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고아원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
“성진아, 축하한다!”
저녁놀이 일렁이던 시간. 성진은 다시 한 번 고아원 가족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었다. 자신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고아원의원장님께서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엄청 기뻐해 주셨는데, 그 결과는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의 삼겹살 파티였다.
빠듯한 고아원의 살림에도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아 하게 된 파티. 성진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원장 부부에게 마음 속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형, 정말로 축하해요.”
“그래, 고맙다.”
“오빠, 나도 축하해. 그런데, 이렇게 시험을 잘 봤으면 한국대학교도 갈 수 있지 않아?”
“물론이지. 성진이 형은 전교에서 항상 성적이 좋았고, 이번 수능도 3개밖에 틀리지 않았잖아.”
“우와, 대단하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는 성진을 제외하고 고학년의 동생들은 그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성진의 가르침 때문에 그들도 나름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전국구로 놀던 그의 성적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의 수준이었다.
“성진아, 성적도 이렇게 잘 나왔는데, 대학은 가야지?”
“으음... 원장님. 사실은요... 저는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아니야. 성진아. 돈 때문에 걱정이 되면 내가 다 보태줄게. 등록금이랑 생활비 같은 것들 말이야.”
“그, 그렇지만 너무 죄송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키워주셨는데...”
“아니란다. 남의 일도 아니고 성진이 일이잖니.”
“그래요. 형. 이 성적을 하고선 대학을 가지 않다니... 너무 아깝잖아요.”
그녀의 말에 성진은 또 한 번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온다. 다른 동생들이 걱정하는 말 또한 그랬다. 못생긴 외모에 고아라는 자격지심. 그렇기 때문에 고아원 밖에서는 말이 없었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와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외모가 어떻던 간에 그를 이해하고 사랑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원장님~! 여기 음료수가 없어요!”
“어, 그래! 잠시만... 어이쿠, 사다 놓은 음료수가 다 떨어졌네. 어떻게 하지?”
“원장님, 제가 사러 다녀올게요.”
“성진아. 너는 주인공인데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니?”
“아니에요. 제가 힘도 좋고 그러니까 빨리 다녀 올 수 있어요.”
“그러니? 그럼 빨리 다녀오렴. 우리 성진이 고기 많이 먹어야지.”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성진은 자신이 다녀오겠다며 심부름을 자청했다. 동생들도 많은데 눈물을 보이기에는 창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고아원 근처의 슈퍼에 다녀오며 그러한 마음도 진정시키려는 그이다. 원장님께 만 원짜리 1장을 받아든 그는 그렇게 근처에 있는 슈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하염없이 길을 걷다 고아원 근처 5분 거리에 있는 슈퍼가보인다. 자그마한 규모에 ‘담배’마크가 그려진 간판이 인상적인 그곳. 성진은 추워진 날씨 탓에 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내 옛날식 미닫이문을 잡아 따뜻한 온기가 있는 안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성진이 왔니? 오늘은 뭐 사가려고?”
“음료수 좀 사려고요. 삼겹살을 먹는데, 음료수가 마침 떨어져서요.”
“호호, 무슨 좋은 일이 있나보구나?”
“뭐... 그냥 그렇죠.”
고아원 근처이다 보니 얼추 안면이 있는 주인아주머니다.그녀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말이 많은 편이라 조용한 성진에게는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오늘 또한 성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료수 페트병들을 꺼내오는 그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건네는 중이다.
“아 참~! 오늘 우리 아영이가 수능성적표를 가져왔지 뭐야. 글쎄, 담임선생이 한국대도 써볼 수 있을거라 그러더라.”
“아, 네...”
“성진이도 이번에 수능 봤지? 잘 봤니?”
“뭐... 그럭저럭요.”
“그래, 그럼 대학은 어디로 지망하려고 그러니?”
“뭐... 대충 생각해보려고요. 여기 계산 좀 해주세요.”
잠깐 동안 이야기를 들었는데,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성진은 점차 넓어지는 이야기 범위에 제동을 걸어 계산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칠 생각이 없는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성진은 거스름돈을 받으며 이 곤란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 보는데...
그 때 마침 누군가 슈퍼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