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자경이 (7)
개인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라면 후원금을 욕심 낼 수도 있겠지만, 지혜가 자란 고아원은 가톨릭교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기에 내가 후원하는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기긴 하겠지만 절실한 그런 무엇은 없다.
더구나 원장 수녀님 같은 경우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신경을 기울이실 뿐 고아원 운영에는 무관할 정도로 관심이 없으신 분이셨으니, 오늘 내가 한 말에 대해 크게 기분 상하실일도 없으실 것이고 또 원장 수녀님 표정 또한 그랬다.
“형제님.”
“아~우~ 원장 수녀님. 저 성당 다니지 않는다니까요.”
원장 수녀님으로서는 ‘형제님’이란 호칭이 가장 편한 호칭이었겠지만, 나는 그 ‘형제님’이란 호칭을 들을 때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온몸이 가려운 느낌이다.
“아무튼 우리 안젤라가 형제님 덕분에....... 정말 고맙습니다.”
“처음 제가 이곳을 찾아뵀을 당시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지혜를 선택했던 것뿐이지 진짜 지혜를 돕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전 그냥 그 사람을 대신하는 것뿐입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은정 자매님을 위해서도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원장 수녀님.”
사실 내가 처음 이 고아원을 방문해서 원생 중에 한 사람은 지원하는 독지가 노릇을 하겠다고 자처했을 때, 의심을 많이 샀었다.
내가 여자였거나 하다못해 결혼이라도 한 상황에서 지혜의 후견인을 자처했다면 그렇게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 않았었겠지만, 결혼조차 하지 않는사내놈이 남자아이도 아닌 여고생인 지혜의 후견인 노릇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지혜가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동안에는, 지혜는 누가 자신을 도와주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키다리 아저씨처럼 내 도움을 받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을 퇴소할 수밖에 없었던 시점에야, 나와 지혜의 대면이 가능했었다.
물론 그렇게 얼굴을 보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지금처럼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국가장학금을 받고도 모자라는 나머지 부분의 등록금과 또 지혜가 거주할 원룸을 알선해주고 나서도, 거의 1년 가까이 지나기 전에는 지혜와 1:1로 따로 만난 기억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로서는 의심받는다는 사실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고아원을 나간 아이들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써주시는 원장 수녀님의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했었다.
저렇게 신경을 써주는 존재가 주변에 있다면, 아이가삐뚤어질 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죽었다는 그 친구 하고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부산에 내려왔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가 지혜 옷이나 몇 개 사주겠다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시구나. 그 자매님도 같이 오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친구가 또 있지요?”
“예. 둘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형제님께서도 대충 아시겠지만 딱히 저희로서는 더는 도울 방법이........”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시겠거든 저한테 연락을 주세요. 오늘 찾아뵌 이유가 그 때문이었거든요.”
“예? 또요?”
오늘 이렇게 고아원을 찾아온 이유가, 조만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에서 나가야 할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자경이로부터 원룸 사업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50억이 들어 있는 통장을 전해 받은 후, 내가 그 원룸을 대신 관리해주면서 받게 될 수입을 대충 계산해보니,앞으로 둘 정도의 생활비를 대주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그리고 임대수익을 위해 사들일 원룸 중 하나를 이곳 사하구에 있는 원룸으로 해서, 지혜를 비롯한 아이들이 살게 한다면 매월 나가는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될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그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바로 연락을 주세요.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지원해주면, 그다음에야 알아서 제 밥그릇은 챙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취업이 어려운 시대라고하지만 마음만 굳게 먹고 당장 거주할 공간만 있다면, 굶을 일이 없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자존심 때문에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일자리 찾기가 힘 드는 것이지, 자존심만 꺾고 회사를 고르는 눈을 한 단계만 낮추더라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경우엔 대학졸업 학력을 없던 것으로 하고 생산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성장한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일정 기간 정도는 부모의 보호 아래 용돈을 받아 빈둥거리며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고아원 출신의 아이들은 자신들은 그럴 처지가 아니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조차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강하게 뿌리박혀 있으니 말이다.
“오빠, 어딘데?”
“응, 지혜가 있었던 고아원.”
“거긴 왜?”
“원장 수녀님하고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쇼핑은 끝났어?”
“응. 대충 살 만한 것은 샀어. 그런데 지혜 맛있는 것 사 먹일만한 곳은 없을까?”
“알았다. 일단 백화점 안에서 기다려. 내가 부근에 도착하면 전화를 할 테니까.”
때를 맞추기라도 한 것인지 내가 고아원을 나와서 L 백화점으로 출발하려니, 자경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와! 완전히 아가씨가 다 되었네?”
“자꾸 놀리지 마세요.”
“인마, 놀리긴 뭘 놀려.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으니까 얼마나 좋아.”
양손에 쇼핑백을 든 지혜의 모습이 확 달라 보였다.
이제 정말 풋풋한 여대생이란 느낌이 들었고, 그동안 내가 옷차림에는 전혀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지혜 뭘 먹고 싶어?”
“아무 거나요.”
“요즘 아무거나 그런 음식도 생겼나?”
“아빠!”
“그러니까 정말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라고.”
“먹고 싶은 것이 있다기보다는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어요.”
지혜는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평소 뭘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기껏 자장면 아니면 돼지국밥이라고 하던 말 대신에 패밀리레스토랑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지수도 오라고 할까?”
“하지 마.”
“왜?”
“오빤 눈치가 없는 것이 매력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확 때려주고 싶다니까.”
“응?”
“자꾸 떠들지 말고 해운대로 출발해. 음식점은 내가 찾아볼 테니까.”
자경이 말대로 내가 눈치가 많이 없는 것인지, 방금 자경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나는 부두도로를 통해 해운대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자경이가 알려준 대로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있는, 해운대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음식점의 룸에 자리를 잡았다.
“와~ 여기 정말 예뻐요.”
“마음에 들어?”
“예. 예전부터 아빠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곳에 꼭 와보고 싶었거든요.”
지혜 말에 순간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뜬금없이 아빠 엄마란 소리를 들으니, 마치 지금 우리가 아빠와 엄마가 되고 지혜가 대학생인 딸이 되어서, 가족이 외식을 나온 것처럼의 분위기였다.
“아빠, 여기 너무 비싸다. 우리 그냥 나가면 안 될까요?”
“인마, 이런 음식점은 다 이 정도 가격이야. 모르고 있었어?”
“비싸다는 것은 예상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싸요.”
“지혜야. 아줌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먹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은 낭비잖아요.”
“먹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즐기는 값이라고 생각해. 그냥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아빠와 엄마하고 외식 나온 것으로 생각하고.”
지혜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패밀리레스토랑을 이야기했지만, 막상 메뉴판에 적힌 음식의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안한 표정도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것저것 찍어 먹어보기 시작하면서 또래 여대생들의 통통 튀는 발랄함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응?”
“지혜 살던 곳에는 무슨 일 때문에 갔어?”
“올해에 고등학교 졸업하는 애가 둘 있거든. 걔들 때문에.”
“걔들 때문에?”
“응. 걔들도 학교 졸업하면 당장 지낼 곳이 없으니까.”
“또 오빠가 챙겨주려고?”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그 애들이 어떻게 세상에 정착해?”
물론 굳이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고아원을 퇴소한 아이들이 살아갈 수는 있다.
대학등록금도 정부에서 장학금이란 이름으로 지급되고, 그리고 주택공사에서 주택자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또 각 지자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500만 원쯤의 정착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고아원에서 한 달에 몇만 원씩을 용돈이라고 받던 아이들은, 돈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갑자기 손에 들어온 돈에 오히려 당황하게 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또다시 그런 목돈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는지 몰라도 몇 달 만에 그 돈을 모두 탕진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사실 나도 지혜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런 사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등록금이 해결되고 집이 해결되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원장 수녀님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올해 졸업하는 두 아이의 후견인을 할까 하고 원장 수녀님을 찾아간 것이었고.
“오빠.”
“응.”
“아이들 주택자금 지원이 된다면서?”
“그렇다고 해.”
“그럼 아이들과 의논해서 차라리 그 지원 자금을 모아서 공동으로 살 집을 만드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지 않아?”
“그렇게 뜻이 맞는 아이들이 있을까?”
자경이 생각도 전혀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정말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열 명만 있다고 하더라도 원룸 한 채를 매입해서 그곳에서 살게 해준다면,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일부 층은 임대해서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쉽진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던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고아원 출신이라고 광고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아빤, 안 드세요?”
“응, 지혜 많이 먹어. 맛있어?”
“예. 엄청 맛있어요. 아니 스테이크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아요.”
자경이와 내가 지혜를 비롯한 고아원 출신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지혜는 스테이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자경이 넌 대전에 올라가 봐야 되지 않아?”
“내일은 올라갈 거야. 일단 대전에 있는 가게들은 처분해야지.”
“그럼 부산으로 옮길 생각은 확고해진 거야?”
“아는 사람도 없는 대전보다는 오빠라도 있는 부산이 훨씬 마음 편하잖아.”
자경이가 부산으로 내려오겠다는 생각은 확실한 것 같았다.
자경이도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이 없는 대전보다는 부산이 편하다고 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친동생과도 같은 느낌의 자경이가 옆에 산다면 마음이 훨씬 더 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