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서민지라는....... (1) (57/90)



〈 57화 〉서민지라는....... (1)

“어딜 다녀왔어?”
“내 동선까지 당신에게 보고해야 하나?”
“지랄. 오늘 갑자기 왜 까칠하게 굴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침부터 박 소장이 사무실을 찾아왔지만,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반갑기보다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짧으면 당일치기 길어야 1박2일로 예정했었지만, 부산에 내려와서 은지와 해운대에 있는 호텔에서 1박 2일을 뒹굴었던 탓에 잠을 잘 시간조차 부족했던 것이다.

은지는 그동안 남편과 하지 못했던 잠자리를 내게서뽕을 뽑으려는 것처럼 내 물건을 잠시도 자기 구멍에서 뽑지 못하게 했었고, 덕분에 내 물건은 은지의 구멍 속에서 퉁퉁 불어터질 지경이 되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웬일. 그냥 커피나 한잔하자는 거지.”

물론 평소에도 아침부터 내 사무실을 찾아오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오늘  소장의 표정을 보니 단순히 커피나 마시고 잡담을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은 아닌  같았다.

“이거 읽어보고 사인해라.”
“이게 뭔데?”
“산악회 입회 신청서.”
“산악회라고? 뜬금없이 산악회는 무슨?”
“남구 지회 박지영 소장 알지? 그 양반이 산에나 한번 가자고 해서.”
“산에 가려면 자기 혼자 가면 되지 무슨 쓸데없이 모임을 만들고 그래.”
“지랄 알면서 이러기는.......  소장 다음 총회에서 협회장 선거에 나서려고 하잖아.”
“그래서 나보고 손들고 만세 불러 달라고?”
“꼭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이왕이면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지회장이 되면 서로 좋잖아.”

벌써 회장단 선거가 다가오는 모양이다.

우리 협회 내의 선거든 국가에서 시행하는 선거든, 선거 때만 되면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소장과 같은 사람인데, 도대체가 돈도 되지않는 일에 뭐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남의 일에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신 당분간 또 사무실 접겠네?”
“접긴 왜 접어? 김 여사 덕분에 요즘은 내가  일도 없는데.”
“그 양반 독립해서 나간다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하려고 미리부터 걱정해. 그리고 이따금 한 번씩 제대로 눌러주면 그런 소리 절대 안 나와.”
“아무튼 협회장이든 지회장이든 그런 선거에는 관심 없으니까, 나보곤 뭐라고 하지 마.”
“야, 박 소장이라니까? 내 12촌 조카.”
“지랄하네. 10촌인지 12촌인지 계산이라도 해보고 그래? 당신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 5%는 네 친척이겠다.”

 소장의 본관이 밀양으로 알고 있고, 언젠가 본 대한민국 성씨 중에서 밀양 박가가 6.6%인가라는 통계가 있으니, 밀양 박가만 보면 친척이라고 설레발을 치는  소장 논리대로라면 내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웃기게도 나이트클럽이나 어디 술자리에 가서 만난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 여자가 밀양 박가라고 하면 아예 일회성 잠자리조차 거부하는 인간이 바로  소장 이 인간이니 말이다.

“남구 지회 박 소장 걔는 아니라니까. 걔가 날 만나기만 하면 꼬박꼬박 아재라고 부르는 것 몰라?”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네 조카가 산악회 만드는데 내가 가입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
“이 사장 네가 있어야 가입하겠다는 아주머니들이 많으니까 그러지.”
“지랄, 어떤 미친년이 그따위 소리를 해? 누구 앞길 망칠 일이 있나.”
“아무튼 산악회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까, 우선 이름 적고 사인이나 좀 해줘.”
“그럼 확실히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맞지?”
“창립기념 첫 등반에는 참석해줘야지.”
“꺼져!”
“야! 이 소장. 나 한 번만 살려주라. 가입신청서 스무 장도 못 받으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아침부터 찾아오더니 사람을 들들 볶아대고 있었다.

‘똑!’ ‘똑!’

“사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직원이 문을 열고 손님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이 소장님, 이렇게 사무실을 번듯하게 꾸며두시곤 왜 초대도 한 번 않으셨어요? 많이 섭섭하네요.”
“장 여사, 어서 와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한꺼번에 무슨 일로?”
“응, 내가 여기로 오시라고 했어.”

여자 소장 여섯이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섰다.

딱히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일단 자리에 앉게 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여자들을, 박 소장 이 인간이 이리로 불러 모았다는 것이다.

“내 사무실에서 모이면 동구 쪽에 한 소장 지지하는 쪽에서 눈치를  수도 있잖아.”
“무슨 첩보영화 찍어?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남 눈치까지 보게.”
“당연히 눈치를 봐야지. 이번 협회장 선거에서 박 소장이 당선되면 몰라도 만약 동구의 한 소장이 당선되기라도 하면 우린 찬밥 신세가 되잖아.”
“지가 벌어서 지 밥그릇 챙기면 되는데, 찬밥이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다고.”

나하고 박 소장은 가진 생각부터 달랐다.

내 생각으로 부동산중개인사무소라는 곳은, 건물이나 땅을 매각하려는 손님들에게 그들 소유의 땅이나 건물을 적정한 가격에 팔아주고, 사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요구에 맞는 건물과 땅을 소개하고 구전수수료만 챙기면 끝인 직업이다.

그런데  소장의 경우는, 부동산중개인사무소가 단순히 사려고 하는 사람과 팔려고 하는 사람의 중간에서 땅과 건물을 거래하는 그것 이외에, 다른 일까지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내 눈에는 말짱 돈도 되지 않는 헛짓거리로 보이고 있고 말이다.

“아무튼 어쩐 일로 이렇게 오셨습니까?”
“이 소장님 새로 이사하신 사무실 구경도 하고,  박 소장님이 점심을 사신다고 했거든요.”

꼴을 보니 오늘도 일하긴그른 날이다.

지금부터  사무실에 죽치다가  아주머니들을 끌고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면, 점심만 먹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커피숍까지 가게 되는 것이야 이미 정해진 코스일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커피숍에서 여자들 수다를 떠는 것을 지켜보다가 보면, 저녁 시간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 가능한 일이다.

“당신이 여사님들 모시고 먼저 가 있어.”
“왜?”
“오늘 오전에 사하구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그래.”
“그냥 내일 가면 안 돼?”
“무조건 오늘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야. 지금도 늦었어.”

나는 박 소장을 바깥으로 잠시 불러냈다.

오늘 지혜와 효주가 휴학계를 제출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고 내가 데려다준다고 약속을 했었기에, 그 약속이 우선이었기에 박 소장에게 저 여섯 여자를 알아서 챙기라고  것이다.

내 말에 박 소장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지만, 내가 데리고 오라고 한 여자들도 아니었고 또 별 가치도 없는 일 때문에, 지혜와 효주의 일을 뒤로 미룰 생각도 전혀 없었기에 그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소장과 이야기를 끝낸 후,  방으로 돌아가서 양해를 구하고 나는 지혜와 효주를 내려오게 했다.

“우리끼리 가도 되는데.......”
“혹시나 해서 따라가는 거야. 그러니 그냥 택시를 탔다고 생각해.”

이왕 휴학하기로 했다면 소문이 퍼지기 전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잠수를 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아무리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소문이라는 것은, 사실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사람 입을 건널 때마다 눈덩이처럼 살을 붙이는 법이니,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강간 미수가 아닌 ‘강간을 당했다.’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윤간을 당했다.’라는 소문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교수님 면담이 끝나면 이 주차장으로 와.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주차장에 둘을 내려주고 나는 학생회관을 찾아 그곳에서 커피를 하나 챙겨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둘은 학과사무실로 가서 지도교수와 상담한 후에 휴학원에 교수님의 사인을 받아, 대학본부에 휴학계를 제출하는 것으로 휴학 절차가 모두 끝이 나는 것이다.

나는 주차장 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저씨.”
“예?”

그렇게 주차장 턱에 걸터앉은 채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려고 하니 내 눈앞에는 정말 늘씬한 다리가 보였고, 조금은 색스러운 관상의 아가씨 얼굴이 보인다.

“라이터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여기요.”

요즘에 아가씨들이 담배를 피우는 일이야 다반사이니, 나는 별생각도 없이 라이터를 건넸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예?”
“학생은 아니신 것 같고 그렇다고 교수님이 주차장에 앉아 담배를 피우실 것도 아니니 궁금해서요. 혹시 학교에 납품하러 오신 분?”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럼요?”
“그냥 누구 기다려요.”
“애인? 와~ 아저씨 능력 좋으신 모양이다. 애인 예뻐요? 무슨 과?”
“그런 일 아니라니까요.”

갑자기 웬 미친년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생기긴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뜬금없이 나타나서, 대낮부터 길바닥에서 애인타령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런 이상한 여자는 말을 섞지 않고 아예 무시하는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라이터를 돌려받을 생각조차 않고 입을 닫아 버렸다.

“치! 이야기 들었던 것보다 완전 재미없으시네.”
“.......”
“지혜의 양 아빠 맞잖아요?”
“예?”
“와~ 지금까지 목 아프게 떠들어도 대꾸도 않으시더니, 지혜 이름이 나오니 금방 반응하시네. 지혜의 양 아빠 맞죠?”
“맞아요. 그런데 누구신지?”
“지혜하고 같은 과에 다니는 서민지라고 하거든요. 지혜 말대로 역시 철벽이시네요.”
“예?”
“지혜가 제 얘기 안 했어요?”
“지혜에게 딱히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요.”
“지혜가 어떻게 하면 아빠를 유혹할  있는지 물어서, 제가 많이 가르쳐 줬었는데.......”

이야기가 갈수록 태산이란 느낌이었다.

지혜가 나를 유혹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는 그것도 머리가 아픈 이야기지만, 그렇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이 친구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친구가 아니란 생각에서였다.

“지혜가 아저씨 많이 좋아하는 것 모르세요?”
“당연히 알죠.”
“그런데  지혜 마음을 몰라주세요.”
“지혜 마음이라니요?”
“지혜가 아저씨에게 처녀를 바치고 싶어 하는 거  느끼셨어요?”
“민지 양이라고 했죠? 그런 말은 듣기가 거북하네요.”
“치! 역시 아저씨 또래의 남자들은 대부분 꼰대가 맞아. 그게 대수로운 일이라고.”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친구 하고 계속 말을 섞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걱정이 되었고,  만약 지혜와 효주가 돌아온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조차 걱정이 되었다.

“어~어~어! 뭘 하는 짓입니까?”
“가만히 있어 봐요.”

 맹랑한 아가씨가 내가 보고 있던 휴대전화를 빼앗더니 급하게 무언가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친구 휴대전화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지혜가 내려올 테니까 저 먼저 갈게요. 그 번호 제 번호니까 저장해 두세요.”

그러더니 민지라는 아가씨는 내게 휴대전화를 돌려주고 뒤돌아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길 건너편 건물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대낮부터 귀신에라도 홀린 것이 아닐까 할 정도의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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