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서민지라는....... (2) (58/90)



〈 58화 〉서민지라는....... (2)

“벌써 끝났어?”
“교수님 면담이야 왜 휴학하느냐는 형식적인 질문이고, 대학본부야 그냥 제출만 하면 되는 일이잖아.”

하긴 중고등학교도 아닌 대학에서 휴학하는데 무슨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아무튼 박 소장과 약속한 것이 있기에, 나는 하단에서 바로 출발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디야?”
“응, 여기가 어딘가 하면......”
“그냥 주소 찍어서 보내.”

우리 동네가 아닌 모양이었기에 나는 주소를 찍어서 보내라고 했고,  소장은  전화가 끝나자마자 문자로 주소를 찍어 보냈는데 철마면이었다.

회동수원지 쪽으로 해서 철마면으로 넘어가 내비게이션을 켰더니, 내비게이션 안에서 상근하는 아가씨가 산길로 인도했고  산길 꼭대기가 목적지였다.

이왕 이렇게 멀리 올 것이라면 차라리 속이 확 트이는 바다로 갈 것이지 산속으로 왔나 싶었고,  소장이 다른여자 소장들과 함께 온 커피숍은 산 위에서 기장군이 내려다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어~ 왔어.”
“뭐 이런 산꼭대기까지 오고 그래?”
“사람들 잘 모르는 곳이잖아. 그리고 점심도 먹어야 하고.”
“사람들이 모르기는 개뿔. 검색만 하면 우르르 쏟아지는 것이 이런 곳에 관한 정보다.”

솔직히 바람피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 내가 이 커피숍을 찾아와서 느낀 기분이었다.

물론 이곳이 전망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산 아래에 아파트와 공장만 보이는 곳을 과연 전망이 좋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서울이라는 도시라면 몰라도 부산처럼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면 바다도 있고, 또 같은 산이라고 하더라도 접근성이 훨씬 좋은 금정산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금정산 범어사 일주도로 곳곳에서 영업하는 커피숍 같은 경우에는, 부산의 3040대 여성들에게는 이미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아서 끼리끼리 수다를 떨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부산 도심에서 떨어져 그것도 산속에 있는 이 커피숍은, 손님들 구성에서도 드러나듯 부부인지 불륜커플인지 모를 남녀 커플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내 추측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같은 업주가 운영하는 소고기를 주메뉴로 하는 고기집도 있으니, 업주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산중에 커피숍을 열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이다.

“이 사장님, 일거리가 많은가 봐요?”
“아닙니다. 약속이 된 개인적인볼일이 있어서요.”
“그러시구나. 애인?”
“아이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바쁜데 애인 만들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있는 사람이 더 하다더니, 우리 중에서 가장 잘 나가시는 이 사장님이 엄살을 부리시면 어떻게 해요?”
“박 소장이헛소리한 겁니다. 내 돈이 아니라 위탁을 받아서 관리를 해주는 것뿐인 걸요.”

내가 자리에 앉자 옆에 앉아 있던  소장 하나가 말을 걸어왔고, 그 입에서 나온 소리를 듣고 ‘역시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분위기를 보니, 지금까지  소장은 남구 지회장인 박 소장에 관한 약을 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이 사장님도 박소연 소장을 지지하시는 건가요?”
“누구 지지하고 말고 할 계제도 아닌 걸요. 박 소장하고 같이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전 잘 몰라요. 그리고 협회장 선거에 별로 관심도 없고요.”
“이 소장!”
“지랄! 내가 내 마음대로 말도 못하냐?”
“박 소장 걔, 정말 괜찮다니까.”
“알았다. 당신 말 믿고 나는 박 소장 그 친구를 찍어줄 테니까, 대신 나보고 선거운동을 해달라고만 하지 마.”

내가  자리에서 박 소장에게 협조해줄 수 있는 한계가  이 정도다.

아무리 부동산중개인연합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라고 하지만, 일단 이것도 선거인 이상 협회장이 되고자 나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사람을 찍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는 말인가?

박 소장이 나의 그런 태도를 탐탁잖게 생각하고,  이런 나의 태도 때문에 박 소장하고 거리가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딱히 내가 신경  일도 아니었다.

“기장으로 해서 송정으로 가는 해변도로 쪽을 따라가다가 보면, View가 괜찮은 커피숍 있어요. 거기서 만납시다.”

그렇게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소고기로 배를 채운 후에, 이번에는 내가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솔직히 귀찮다는 생각에 이전 개업식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화분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렇다고 점심값을 내가 낼 이유가 없었기에 커피로 대신하려고 한 것이었다.

“난 이 사장님 차로 갈래.”
“나도.”

내 잘못이었다.

지혜와 효주의 휴학서류 제출 때문에 둘을 태우고 학교로 가야 했고, 똥차를 끌고 갔다가 아이들이 부끄러워할까  지난번 자경이가 떠넘기다시피 했던 그 차를 끌고 갔었다.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해서 차를 바꿔 타고 온다는 것을 깜빡하고 온 탓에, 이 난리가 난 것이다.

박 소장까지 해서 일곱이 차 두 대로 왔는데, 차를 끌고 온 둘 이외 다섯이 모두 내 차에 타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결국  여사와 가장 친하다고 알려진 민 소장이 장 소장과 한 차로 이동하고, 박 소장은 혼자 따라오기로 했는데  차에는 뒷좌석에만 셋이 타고 가게 된 것이다.

“와~ 이  얼마나 해요?”
“전 모르죠.”
“이 사장님차 아니에요?”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긴 했는데, 길에 누가 버려두고 갔기에 주워왔거든요.”
“펭귄 나오겠다.”

정말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고,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남자가 혼자인 탓인지 내 차에 탄 네 명의 여자들이 한 사람 앞에 하나씩만 질문을 해도 나는  번이나 대답해야 했기에, 솔직히 내가 이야기했던 일광 해수욕장 부근의 그 커피숍까지 가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 그 거리가 서울을 가는 것만큼 끔찍했다.

“다음에 드라이브 한번 시켜줄 거죠?”
“시간이되면 그렇게 합시다.”
“아~잉~ 약속해줘야죠.”
“예. 그런데 조금 떨어지죠. 다른 분들 보시면......”
“치! 내숭은.”

정말 한마디로 돌 지경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 바로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고는, 연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내 팔뚝에 가슴을 짓누르듯 하는데, 정말 다른 사람이 본다면 불륜을 저지르는 커플처럼 오해받기 딱 좋을 행동이었다.

“아빠,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일은 무슨. 왜?”
“엄청 피곤해 보이셔서요.”
“사람들 만나면 원래 피곤하잖아.”
“저녁은요?”
“먹고 들어왔어. 빨리 올라가서 쉬어.”

결국 커피에 간단한 저녁까지 사고 난 후에 수다스러운 여섯 여자와 헤어질 수가 있었고, 소주나 한잔하고 가자는 박 소장을 뿌리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지혜와 효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인지 지혜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인다.

오늘 여자 소장들의 행동을 보니, 정말 당분간은 우리 업계 여자들은 만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오늘처럼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경우가 없었는데, 갑자기 퍼진 소문 때문인지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도 비싸게 보이는 차 때문인지, 정말 황당할 정도로 적극적인 행동 때문에 피곤할 정도였다.

‘이 사장님, 잘 들어가셨어요?’
‘예. 도착해서 잘 준비 중입니다.’
‘다음에  한번 태워주세요. 아셨죠?’
‘그러지요. 쉬세요.’
‘잘 주무세요. ♡♡♡’

입에서 ‘미친년’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단둘이 드라이브를 가자고 들이대는 것조차 짜증이  정도인데, 하트는 왜 날린다는 말인가?

‘삼촌, 좋은 아침이요.’

한참 잠에 취해 있는데 톡의 알람이 울렸고, 내 기억에도 없는 사람에게서 톡이 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삼촌이라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럴 리야 절대 없겠지만 혹시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아이 중 누구인가 고민했지만,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표시된 발신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톡을 확인한 후에 그냥 닫아버렸다.

“예. 자경 부동산입니다.”
“삼촌 부동산 해요?”
“죄송하지만 누구십니까?”
“치! 어제 번호 저장해두라고까지 했었는데.......”

방금 삼촌 어쩌고 하면서 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어제 지혜의 친구라던 그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의 얼굴은 기억났지만, 여학생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질 않았다.

“미안해요. 어제 많이 바빴거든요.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로 저한테 전화를 하셨어요?”
“오늘 밥 사줘요.”
“예?”

내가 호구라고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닐 것인데,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서 한다는 말이 대뜸 밥을 사달라고 한다.

하지만 지혜와 어느 정도로 가까운지 화도 낼 수 없었기에,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부터 눌렀다.

도대체 어제부터 갑자기 왜 내 옆에 이런 제정신 아닌 미친 여자들이 들러붙으려 하는 것인지?

“오늘 밤 좀 사 달라고요.”
“나한테 특별히 할 이야기라도 있어요?”
“아뇨. 그런데 저도 지혜처럼 부모님  계시거든요.”
“예?”
“저도 고아라고요.”

정말 홱 돌아버릴 지경이다.

지가 고아 출신인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서 밥을 사달라고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대놓고 싫은 소리는 할 수가 없었고, 또 이곳 금정구까지 찾아온다고 했기 때문에 결국 만나서 이야기는 들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정말 고아 출신이고  지혜 이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번호가 누구 전화번호인지 알겠어?”

결국 전화를 걸어온 애가 누구인지 또 어떤 친구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지혜를 사무실로 나오게 했다.

“민지 번호인데, 아빠가 어떻게?”
“어제 학교 주차장에서 대뜸 내 휴대폰을 뺐더니 오늘 아침부터 전화를 걸었더라.”
“아빠,  착해요.”
“뭐?”
“그러지 않아도 아빠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서, 아빠한테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냥 아빠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세요.”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야?”
“아뇨, 얘 착하다니까요.”

지혜의 경우에서 보듯 착한 것과 그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도와준다는 핑계로 육체적인 거래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지혜야 여차하면 내가 결혼이라도 해서 데리고 살 생각까지 해서 그렇게 일이 진행된 것이지만, 효주와의 그 관계에 관해서는 당시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처신한 것에 대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민지라는 아이를 처음본 순간 느꼈던, 나이에 비해 색기를 풀풀 풍기는그것이  친구를 만나는 것을 꺼리게 하고 있는데, 지혜는 일단 만나보라고 하니 솔직히 곤혹스러운 기분이 든다.

거기에다가 지혜에게 나이 차이가 있는 나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방법까지 알려줬다는 친구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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