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기초의원 마누라 (2)
상냥하면서도 얼굴과 몸매가 예쁜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 함께하는 곳의 분위기가 나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영진 의원이 어떤 인간인지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그의 부인되는 이 여자는 사람 대하는 일에 능숙했고, 웬만한 사내는 이 여자의 웃는 모습만으로도 간이고쓸개고 다 빼줄 것 같았다.
“그럼 이 사장님은 아직 미혼이세요?”
“예.”
“에이~ 그럼 애인도 많으시겠다.”
“애인이라도 있다면 진작 결혼을 했었겠지요.”
“우리 이 사장님 눈이 되게 높으신 모양이다. 눈을 조금만 낮추세요.”
“저 절대 눈이 높거나 까다로운 인간 아닙니다.”
“치! 거짓말. 이 사장님 정도 남자라면 내가 결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먼저 대시를 했을 텐데요.”
청주 한잔에 취한 것도 아닐 것인데 이영진 의원의 부인이라는 여자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다.
솔직히 이런 자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났더라면, 한 번쯤 작업을 걸어보고 싶을 정도의 여자였으니까.
“혹시 이 사장님 취향이 독특한 것 아니세요?”
“예?”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예?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저 여자 좋아합니다.”
“그럼 저 같은 여자는요?”
“아유~ 여사님 같은 분이 계신다면 저야 황송할 따름이죠.”
분위기가 좋게 돌아가니 박 소장은 괜스레 기분이 좋은 것인지 사뭇 싱글벙글 이었고, 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사모님,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예. 편하게 다녀오세요.”
박 소장이 휴대전화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자, 이영진 의원 부인이 갑자기 내 눈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여사님 무슨.......”
“휴대폰 좀 주시라고요?”
“예?”
뜬금없이 내 휴대폰을 달라고 했고, 얼결에 나는 안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이영진 의원 부인 손에 건네자, 그녀는 다이얼 버튼을 누르더니 발신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영진 의원 부인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내일 오후에 약속하신 것 없으시죠?”
“예?”
“내일 오후에 전화할 테니 시간 비워두세요.”
“아, 예.”
때맞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이 의원의 부인은 서둘러 내 휴대전화를 내 손에 건네고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물론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죄송합니다. 내일 오시기로 한 분이 오늘 오셨다고 하네요. 죄송하지만 저 먼저 가 봐도 되겠습니까?”
“밥도 다 먹었으니 우리 같이 나가죠. 이 사장님도 괜찮으시죠?”
“아, 예. 그러시지요.”
얼결에 나도 대답하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우린 음식점 앞에서 먼저 이 의원 부인이라는 여자를 먼저 보냈다.
“이 사장, 미안해. 기껏 불러냈는데 내가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됐어. 내가 아는 여자도 아니고, 그냥 밥값 굳혔다고 생각하면 간단한 일인걸.”
“참, 당신 먼저 가. 난 이쪽에서 손님 만나기로 했거든.”
“그래, 나도 오랜만에 바다구경이나 좀 하다가 넘어가야겠다. 볼일 보고 와.”
조금 전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과 이 부근에서 만나기로 했다기에, 나는 박 소장과 헤어져 송정을 향해 출발했다.
“자경 부동산 이진홉니다.”
“이 사장님 지금 어디세요?”
“예? 죄송합니다만 누구십니까?”
“저 양진숙이에요.”
“아, 여사님. 광안대교 위인데 무슨 일이십니까?”
“그럼 우리 일광 해수욕장 쪽에 가서 잠시 봐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조금 전에 먼저 보낸 이영진 의원부인이었다.
내일 보자던 사람이 왜 갑자기 보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우선은 그녀 말대로 일광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 사장님, 어디쯤이세요?”
“예. 해수욕장 중간쯤입니다.”
“그럼 수상구조대 건물 옆 주차장으로 오세요.”
내가 주차장에도착하자 이 의원 부인이라는 여자는 이미 자기 차를 주차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손짓으로 차를 세우더니 조수석 문을 연다.
“어디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죠.”
“어디로 갈까요? 제가 이 동네는 아는 곳이 없어서요.”
“기장 쪽으로 가요.”
“여사님 차는 어떻게 하고요?”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끌고 가야죠.”
비록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굳이 자기 차를 여기에 놔두고 기장까지 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 차를 끌고 가겠다는 말이 의아하긴 했지만, 우선 나는 기장 쪽을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이 사장님 전화기 좀 줘 봐요.”
“예?”
“휴대전화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죠?”
“예. 깔려 있습니다.”
차에 있는 내비게이션을 놔두고 뭐하려고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찾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휴대폰을 건넸다.
그러자 이 의원 부인은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더니 검색을 마치고는 휴대폰 거치대에 꽂았다.
“그리로 가요.”
“예. 여사님, 여긴......”
“정치하는 사람들이 남들 눈 피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서 그리로 가자는 것이니까 이상한 생각은 마세요. 남편이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제가 사람들 있는 데서 남자를 만나게 되면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서요.”
솔직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찍은 곳이 기장군 외곽에 있는 호텔, 그러니까 예전 러브호텔이라 불리던 그런 종류의 호텔이었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일은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이 여자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차의 블랙박스에는, 지금 이 의원 부인이 내 차에 올라탈 때부터 내가 차의 시동을 끌 때까지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그 말은 내가 이 의원 부인에게 호텔로 가자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여자가 먼저 호텔로 가자고 한 그 사실이 고스란히 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은 기장군 외곽의 한적한 골목 쪽으로 문이 나 있었고, 호텔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이 의원 부인은 손가방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내 썼고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했다.
가방에 선글라스와 모자라.......
단정할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의원 부인의 이런 행동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방증이었고, 결국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선수 중에서도 선수란 뜻일 것이다.
“현금 없어요?”
“예?”
“이런 곳에서 누가 카드를 써요. 대낮에 호텔을 들락거렸다는 것을 광고할 일도 없는데.”
내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자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나를 제지했고, 나는 카드를 집어넣은 후 지갑을 손에 쥐고 문을 들어서자 여자는 팔짱을 풀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가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 그런 여자 아니거든요.”
“예.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있는지 또 뭐가 그런 여자인지 모르겠지만, 이 의원 부인은 방에 들어가자 침대 옆의 티 테이블에 앉았고, 나도 그 맞은편의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말씀하시지요.”
“우리 맥주 한 잔만 할까요?”
“전 운전해야 하니까 여사님만 드시지요.”
“맥주 한 캔 정도는 두어 시간만 쉬었다가 가면 괜찮잖아요.”
룸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주문한 후에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소변을 싸 갈긴 후에 휴대전화의 녹음기능을 작동시킨 후, 손을 씻은 후 밖으로 나왔다.
“우리 이 사장님 아직 힘이 펄펄 넘치시네요.”
“예?”
“우리 남편은 오줌발이 시원찮아 졸졸거리는데, 이 사장님 오줌 누는 소리가 바깥에까지 들릴 정도여서요.”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요. 이 의원님의 연세가 지금 얼마나 되셨기에 벌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흔셋인데 시원찮아요. 바깥에서 많이 뿌리고 다니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영진이란인간의 집구석도 콩가루 집안인 모양이다.
남편이란 작자는 정치를 한답시고 바깥에서 할 짓 못할 짓 다 하고, 마누라라는 여자는 남편을 내조한답시고 이렇게 외간 사내를 유혹해서 욕정을 채우고 그런 집구석인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이라면 오늘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들 부부가 흔히 이야기하는 쇼 윈도우 부부인 것이 사실이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필요 때문에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남편이란 자가 부인의 외도를 알게 되거나 부인이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더라도, 적당히 모른 척하고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일 것이란 생각일 테니, 아예 남들에게 소문이 나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들 부부는 서로의 외도를 묵인하고 각자의 삶을 즐기고 살 것이니 말이다.
“여사님, 한잔 드시지요.”
“우리 건배해요.”
주문했던 맥주와 안주가 올라왔고, 나는 그걸 테이블에 세팅한 후에 맥주잔을 부딪쳤다.
“이 사장님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박 소장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기 급급한 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겠습니까.”
“이 사장님처럼 사업을 크게 하시는 분은 정치하는 사람을 알아두거나, 그게 아니라면 직접 정치를 하시는 것도 사업에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사업은 무슨 사업입니까. 옛날 말로 하면 그냥 복덕방일 뿐인 걸요.”
“그러시지 말고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보세요. 어차피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거의 확실하잖아요.”
남편인 이영진이란 양반이 구청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하더니만, 나에게 자기 남편 옆에서 보좌하고 지원하는 그런 역할을 맡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일이었고, 그런 생각은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
자경이로부터 50억이란 돈을 건네받기 이전에도 살면서 별 불만이나 욕심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 엉뚱한 짓거리만 하지 않으면 평생 편하게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뭐 할 짓이 없어서 정치판에 발을 디밀겠는가?
그것도 겨우 기초의원 정도 자리를 말이다.
“이 사장님.”
“예. 여사님.”
“에이~ 이렇게 둘만 있는데 딱딱하게 여사님이 뭐예요. 그냥 진숙 씨라고 하세요.”
“괜히 그러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닐걸요. 박 소장님 이야기로는 이 사장님이 매사에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다고 하시던데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자 문제로 구설조차 난 적이 없다고.......”
“여자가 없으니 당연히 구설에 오를 일이 없지요.”
“치~ 그걸 누가 믿어요. 제대로 서지도 않는 남편이란 작자도, 바깥에 나가서 함부로 휘두르다가 망신을 당할 뻔 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이곳에서 무언가 역사가 이루어질 분위기였다.
아까도 그랬지만 정치 어쩌고 하다가 또다시 이 의원 부인의 입에서는 성적(性的)인 내용의 말이 흘러나왔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의원 부인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