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복수? (8) (83/90)



〈 83화 〉복수? (8)

일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나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워두고 사무실로 가서 서류뭉치를 잔뜩 들고 차로 향했고, 운전석  보닛 앞에서 차 열쇠를 꺼내는 척하면서 휴대전화를 바퀴가 있는 쪽으로 떨어트리는 동시에, 손에 쌓아두었던 서류를 뒷문이 있는 쪽으로 쏟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서류를 챙겨서 뒷좌석에 싣고 운전석에 올라 차를 출발시켰다.

“어! 뭐야?”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약간 덜컹거리는 느낌에 나는 차에서 내려 차의 앞바퀴 쪽을 살피니, 액정이 작살난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 시팔! 진짜! 오늘 일진이  이래?”

입 밖으로 쌍욕을 내뱉으면서 나는 차를 몰고 부산대학교 정문 쪽으로 가서 차를 주차하고, 예전 거래하던 휴대전화 가게에서 번호이동까지 하면서 휴대전화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금  차의 내비게이션에 그대로 녹화가 되어 있으니, 후일 경찰이나 검찰에서 내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다고 하더라도 걸릴 것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확실한 알리바이와 함께 말이다.

‘나야, 전화 받아.’
‘응? 누구?’
‘자경 이 사장.’

“이건 무슨 번호야?”
“당분간은 이 번호로 전화하라고.”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가서 이야기할게.”

당분간 양 여사와의 통화는, 준이에게 받아온 대포폰으로 하는 것이 안전하겠다 싶었다.

“자기야, 오늘 하러 가면 안 돼?”
“갑자기 왜? 당분간은  사리는 것이 안전해.”
“몰라, 어젯밤부터몸이 뜨거워져서 미치겠거든.”
“그렇더라도 당분간은 참아. 솔직히 당신 주변에 누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어.”
“왜?”
“박 소장이 간 보려고 찾아 왔더라. 그것도 나 몰래 녹음까지 하면서.”
“정말?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혼자 열심히 놀게 놔두면 되지. 아무튼 그 문제는 걱정할 것 없다는 말해 주려고 왔어. 그러니  문제에 관해선 걱정하지 말고 당분간 여기서 조용히 지내고 있어.”

솔직히 속이 갑갑해져 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전전긍긍하면서 종수를 만나고, 또 준이는 그런 내가 걱정되어 진영휴게소에서 나를 만나 안심시키려고까지 하고 있는데, 막상 당사자인 양 여사는 이런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미친 짓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냥 양 여사 이 여자가 무슨 짓을 당했건 모른 척했어도  일이었는데, 괜히 오지랖을 부린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괜히  일을 해결해준답시고 나서서 종수를 끌어들이고,나는 또 그 일의 뒷수습을 위해서 종수에게 3억 가까운 돈을 들이고, 종수는 이 일로 하여 1년에서 1년 반 정도의 형을 살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오입을 해도 정말 비싼 오입을 한 것이다.

“정말이야?”
“그럼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해서 생길 게 뭐가 있다고.”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진짜 죄를 뒤집어쓰고 들어간다고 해?”
“조만간 뉴스에 나오겠지.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전화를  때는 아까 그 번호로 걸어.”
“그럼 전에 사용하던 번호는?”
“그건 그대로 저장해두고. 그럼 조만간 내 휴대폰 번호 바뀌었다는 문자가  거야.”
“그럼 마찬가지잖아.”
“아니, 아까 알려준 그 번호 말고 다른 번호가  거야. 조금 전에 휴대폰 기기변경을 했거든.”
“그 휴대폰은 어쩌고?”

말로 하기 보다는 차라리 눈으로보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아까 내가 휴대폰을 일부러 떨어트리고 차 앞바퀴에 깔려 박살이 난 휴대폰을 찾아서 들고 짜증을 부리던 장면을 재생시켜 보여줬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럼 일을 이렇게까지 해놓고, 이런 사소한 걸 놓쳐서 잡혀갈 일이라도 있어?”

그렇게 잔뜩 겁을 먹게 한 후에, 나는 양 여사와 헤어져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물론 종수가 체포된 이후에야 양 여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일이 없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최대한 움직이는 것을 자제하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드디어(?) 인터넷에 종수가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당연히 종수의 이름이 아닌 이니셜로 표시되었지만,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기사 내용으로 체포된 사람이 종수란 사실을 충분히 유추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종수는 나와 이야기한 것처럼 PC방에서 체포되었고, 범행동기를 몰래카메라로 남의 정사 장면을 찍어 야동을 유통하는 업자에게 팔아먹으려다가,  섹스 동영상의 주인공이 현역 국회의원이란 사실을 알고 동영상의 값을 올리기 위해, 동영상 파일 중 일부를 공개한 것이라고 진술했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그리고 종수의 사건과 별개로 민강수란 놈이 소속된 정당은, 민강수에 대한 출당조치를 결행함과 동시에 국회 윤리위원회에 민강수를 제소하여 의원직 제명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민강수의 의원직은 조만간 박탈이 유력하다는기사도 올라왔다.


“벌써 재판에 들어간다고?”
“아무래도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건이기도 하고,  종수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니까.”
“그럼 변호사는?”
“검찰에 송치되면서바로 변호사를 선임했어. 변호사 말로는 워낙 이슈가 된 사건이라 1년 반쯤은 각오해야 거라고 이야기하더래.”
“그럼 종수는?”
“1년 반 동안 푹 쉬다가 나오겠다던데.”
“하~”
“너무신경 쓸 일 없어. 어차피 1년 반이고, 안에서 사고를 치지 않으면 모범수로 형기가 단축될 수도 있고, 학교를 처음 간 사람이야 거기가 지옥 같겠지만, 한두 번만 다녀오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란 것을 아니까.......”

나로서는 당장 어떻게 거들 방법조차 없었다.

아니 준이는 나중에 종수가 형이 확정되고 수형 생활을 할 때도, 아예 출소하는 날까지 면회조차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흘러 종수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변호사 말처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후 항소를 포기하고 수형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 L 모 기초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및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기소]

[부산 G 구의 기초의원인 L 모 의원이 부산지방검찰청에 의해 구속기소 되었다.

L 모 의원은 얼마 전 섹스 동영상으로 문제가 된, D 당의 M 모 전 의원의 뇌물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M 모 전 의원과 공모하여 G 구의 구립 도서관 건립과정에서 건설업자인 K 모 대표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되어, 오늘 전격 구속기소 된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방검찰청 K 모 검사실의 관계자 말에 따르면, M 모 전 의원과 기초의원인 L 의원은 그동안 S 건설의 K 모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G 구에서 시행한 다양한 건설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부정한이익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에 부산지방검찰청 K 검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암묵적인 관행처럼 여겨지던 지방정부와 지역건설업체와의 유착관계를 뿌리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알려졌다.]

민강수란 놈과 양 여사의 남편인 이영진이란 놈에겐 엎친  덮친 격으로, 그동안 지역의 건설업체와 공생관계로 지내면서 부정한 돈을 착복하던 것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기사가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그동안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과 차기 구청장 후보로 낙점되었던 지역의 실세 둘이서, 국민 세금을 가지고 도둑질을 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가, 이제 그 도둑질한 것이 탈탈 털리게  것이다.

이미 당에서도 출당조치를 했을 아니라, 민강수란 놈 경우에는 아예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직 제명까지 당한 상태이니, 누구도 민강수를 거들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검찰은 마치 하이에나처럼 민강수를 물어뜯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민강수에게 마누라까지 상납하면서 떡고물을 챙겼던 이영진 또한,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고 말이다.

“자기 기사 봤어?”
“방금 봤어. 괜찮아?”
“내가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어. 이미 재산분할을 끝냈고, 모레면 숙려기간도 끝이 나는데.”
“애들은 뭐라고 해?”
“애들이 그런데 신경이나 쓸  같아. 애비로 생각하지 않은지가 언젠데.”
“참 불쌍한 인생이다. 세상에서 배척당하고, 자식에게까지 버림받은 인생이네.”
“그 인간은 죗값을 받아야 해. 평생 남들 손가락질이나 받으면서 살아야 할 놈인데.”

그렇게 복수 아닌 복수가 끝이  모양이다.

민강수라는 놈도 그리고 이영진이라는 놈도 이젠 부산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긴 힘이 들 것이고, 그렇다고 전직 국회의원이나 기초의원이라는 감투조차도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제 종수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 종수가 앞으로 먹고살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만 남았다.


“아빠.”
“응?”
“이거.”
“이건 뭔데?”
“뭐긴 뭐야. 돈이지.”
“그러니까 이게 무슨 돈이냐고?”

뜬금없이 지혜가 돈이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가게 월세잖아.”
“까분다. 누가 월세 내라고 눈치를 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어?”
“그건 아니지만, 요즘 장사도 잘 된단 말이야.”
“그냥 넣어두고 저금이나 해. 그래서 가게를 하나씩 늘여봐.”
“치! 그냥 이대로 계속 여기서 셋이 할 건데.”
“그럼 그러든지.”

그렇게 양 여사와 관련된 일들이 정리되는 가운데서도, 지혜와 민지 그리고 효주가 하는 마카롱 가게는 연일 성업 중이었다.

하긴 이렇게 월세를 내겠다고 돈을 마련해 온 것을 보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훨씬 이상으로 가게가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워낙 아이들 셋이 잘빠진 몸매에 얼굴도 예쁘니, 그 때문인지 가게 앞에마련해둔 파라솔에는 매일 같이 사내놈들이 진을 치고 앉아서 마카롱 몇 개와 커피를 앞에 두고 리포트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었으니까.

“아빠.”
“또 왜?”
“우리 여름휴가 어디로  거야?”
“여름휴가?”
“응, 어차피학교 방학하고 나면 손님도 조금씩 줄어들 거고, 아무튼 그래서 우리 일주일쯤 여름휴가 가자고 얘기가 되었거든.”
“인마, 여름휴가는 남자친구하고 가야지.”
“치! 아빠가 있는데 남자친구는 무슨.”
“요즘 가만히 보니까 매일 여기 죽치면서 껄떡대는 애들 몇 보이던데?”
“그야 걔네들 사정이지. 우린 흥미 없거든.”

어느새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 것이다.

지혜를 비롯한 아이들 셋은 매일 같이 낮에는 손님을 맞아 장사하느라 바빴고, 가게 문을 닫은 후에는 다음날 팔 마카롱을 만드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1학기 기말고사가 끝이 나면 가게도 조금 한산해질 것이니, 그때를 이용해서 여름휴가를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너흰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냥 우리나라만 아니면 돼.”
“응?”

엉뚱하게 국내여행이 아닌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딱히 셋이 낭비를 하는 성격도 아닌데, 뜬금없이 국내여행이 아닌 해외여행을 이야기하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럽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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