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3 멋진 신세계(2)
물줄기가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진다. 피부에 닿은 물방울이 바스라지며 사방으로 튄다. 천천히 온기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요컨대 샤워중이라는 소리였다.
운이 좋게도 어디 다친 곳은 없었지만, 완전히 흙투성이가 된 탓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콜린은 몸을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자, 일단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자고로 사람이 생각이 가장 많아지는 몇 가지 순간 중 하나가 샤워를 하는 때라고 했다. 물론 실제로는 사람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콜린─본래의 콜린과 정희원 양쪽 모두─은 그런 타입이었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어차피 한 번 상황을 정리할 필요는 있었다. 어째서인지 환생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아무런 당혹을 느끼지 못한 그였지만, 잘 생각해보면 다른 세계에 갑자기 내던져진 것이 아닌가.
콜린이 먼저 떠올린 것은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를 부르는 이름은 사람마다 달랐지만 이쪽 지방에서는 대체로 ‘원더랜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장이라도 루이스 캐럴이 관짝을 박차고 일어나서 소송을 걸 것만 같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그리 부른다는데 콜린이라고 어쩌겠는가.
아무튼 이 원더랜드라는 곳은 여러모로 특이한 세계였다.
전생의 정희원이 있었던 지구와 비교해보면 차이점보단 공통점을 세는 게 빠를 정도로 말이다. 이상한 나라(Wonderland)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니겠다 싶었다.
우선 원더랜드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으로, 왕 아래 열두 제후가 각자의 구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것이 바로 일정 규모의 힘을 가진 조직, ‘길드’였다.
여러모로 중세의 직인조합 같은 것보다는 RPG게임의 길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길드는 제후들의 밑에서 각자의 영지를 소유하고 관리한다.
콜린이 사는 펠레이라 역시 그런 영주가 다스리는 도시 중 하나였다.
펠레이라의 외관에 대해 말하자면 중세와 르네상스가 섞인 분위기였다. 그 사이 시기의 건축양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짬뽕이었다는 의미다. 굳이 비유하자면 굳이 고증을 할 생각이 없는 자칭 중세풍 판타지의 모습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콜린이 몸을 씻고 있는 욕실만 봐도 현대 지구의 요소가 너무 많았다.
‘…분명히 밖에서 보기에는 나무집으로 보였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이 샤워기의 원리를 모르겠다. 무슨 마법이라도 쓴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 세계였으니까.
이곳에는 그 마법과도 같은 것을 ‘권능(Befugnis)’이라고 불렀다.
세계로부터 받은 권리, 일부의 존재에게 내려진 축복. 쉽게 말하면 그냥 물리법칙을 뛰어넘는 초능력이었다.
이 세계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권능을 가진 존재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한나의 친구인 레니도 도움닫기 없이 십 미터 정도는 가볍게 뛰어다닐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즉, 원더랜드는 온갖 초능력자들이 존재하는 일종의 판타지 세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권능보유자는 섭리를 뛰어넘는 힘에 더해, '근원적 계약'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세계의 이름 아래 행해지는 계약. 서로가 합의 하에파기하지 않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강제적으로 지켜지게 되는 계약이었다.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걸 통해 일종의 결투를 한다고 했던가.’
그 규칙과 결과는 계약에 의해 반드시 준수된다. 영지의 소유권을 두고,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혹은 남자의 옆자리를 두고 말이다.
그래.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결투하는 옛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곳 원더랜드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가 흔하다.
이곳에서는 남녀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조역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희원 역시 이에 대한 글을 여럿 읽어보았다. 물론 실제로 자신이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여자가 바깥일을, 남자가 집안일을 주로 하는 세계. 각자의 성욕과 그 표출되는 형식도 정반대였다. 보편적으로 여자가 남자를 요구하고, 심지어는 돈을 주고 남자를 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의 여성은 본래 세계의 남성보다도 더욱 과격한 성향이 많은 것 같았다. 이건 어쩌면 시대상의 문제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반대는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이 세계의 결혼관은 정희원이 있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이었다.
자신의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세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개인차는 있는 모양이라지만.
‘여자는 임신하면 아이를 낳을 때까지 10개월이나 걸리니까, 그 사이에 다른 여자와 나누는 게생물학적으로 효율적인 발전이라나?’
물론 그 입장에서야 그냥 헛소리였다. 다만 애초에 초능력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본래 세계의 생물학이라는 잣대를 들이밀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콜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지금 그는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음껏 떡치고 다닐 수 있는 세계라는 거잖아?’
심지어 그렇게 하더라도 사회적 비난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너무나 편리한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
콜린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한나의 풍만한 육체였다. 살집이 어느 정도 있으면서도 몸 쓰는 일을 해서인지 처진 곳 없이 탄탄한 몸매. 그는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잘 생각해보면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추잡한 망상을 하고 있자 사타구니로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콜린은 힐끔 아래를 바라보았다. 배꼽 아래에서 커다란 육봉이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분명 콜린은 이제 막 십대 후반에 접어든 육체였을 텐데, 본래 정희원의 것과 비교해서는 물론이요 서양 야동에서나 나오는 양물에 비해도 손색없는 수준의 물건이었다. 정희원이 미묘하게 패배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니, 이제 이건 내 몸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는 정희원이었다. 물론 직후에 그 거근을 가라앉히기 위해 또다른 ‘위안’을 행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역시 젊은 몸이 건강하긴 하구나.’
굳이 몇 마디 덧붙이자면, 처음으로 성적 쾌감을 경험한 콜린의 육체는 고작 한 번으로 식지 않았다는 정도로 해두겠다.
전생의 그는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든 이후로는 한 번만 사정해도 뻐근함이 몰려왔는데, 지금은 두 번을 내리 싸질러도 그런 불쾌감이 전혀 없었다.
콜린은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마구 떡이나 치면서 지낼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절륜한 육체이기까지 한이 상황이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수압을 약하게 해서 고간을 가볍게 헹구고 전신을 다시 한 번 씻어내린 뒤에 콜린은 샤워기를 껐다. 걸려있던 수건으로 몸을 간단히 닦아내고, 미리 챙겨 들어온 옷을 걸친 뒤 욕실을 나섰다.
콜린은 한나를 부르려고 했다. 한나 역시 땀을 많이 흘렸으니까 얼른 몸을 씻고 싶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이기까지 하니 더더욱.
“……!”
그러나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광경에 콜린은 숨을 삼켰다.
한나가 거실 소파에 속옷 바람으로 엎드려 축 늘어져있었다.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육체가 살갗을 그대로 드러낸다. 심지어 새하얀 팬티는 풍만한 엉덩이에 먹혀들어가 음란한 색기를 내뿜고 있었다.
전생을 포함하면 여성의 속옷 차림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지만 한나의 육체는 그 차원이 달랐다. 옷 위로도 좋은 몸매라고는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건강한 몸매가 아니라 음란한 몸매였다. 좋은 몸매─주로 정희원의 관점으로─라는 평가는 변함없지만 말이다.
사실 전생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다. 이내 그는 한나가 이따금 집에서 이런 차림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콜린은 아무리 집이라도 제발 옷 좀 똑바로 입고 있으라며 미간을 찌푸리곤 했다.
‘런닝에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오빠를 보는 여동생 같은 느낌인가.’
대체 왜 저런 꼴리는 장면을 마다한 것인가, 하며 정희원은 의아해했지만 곧 무언가를 떠올리며 혼자 납득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니 확실히 보편적인 가치관으로는 저게 꼴리면 제정신인지 의심하게 될 것 같긴 하다.
문제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가 이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한 인물이라는 점이었지만.
꿀꺽. 콜린은침을 삼키며 그 신체를 훑어보았다. 시선으로 핥는다는 것이 가능했더라면 아마 이런 시선이었으리라.어느새 아랫도리는 또다시 반쯤 부풀어 있었다.
저 육체를 당장이라도 희롱하고픈 욕망이 그의 가슴속에서 들끓어올랐다.
‘…아니, 못할 게 뭐 있어?’
콜린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현대에서도 성희롱의 주체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그 허용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더군다나 얼핏 보기에도 그보다는 이전 시대의 풍경─콜린과 한나만 해도 약초를 캐고 사냥을 해서 먹고 사는 실정이다─을 담고 있는 이 세계라면 어떠하겠는가. 해봐야 남자가 그런 짓을 함부로 하고 다니면 곤란하다는 핀잔 정도나 들으리라.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가자 콜린은 바로 욕망을 행동으로 옮겼다.
“히익?!”
성큼성큼 다가가 손끝을 엉덩이골 사이에 집어넣고 가볍게 쓸어주자 한나는 깜짝 놀라 신음을 흘렸다.
“코, 콜린……?”
“다 씻었으니까 들어가도 돼.”
갑작스러운 쾌감에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돌린 그녀였지만 콜린은 그저 싱글싱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한다.
“응? 누나, 얼굴이 빨간데 괜찮아?”
“어,그, 그러니? 좀 더워서 그런가봐!”
“누나는 몸 쓰는 일 하니까 더위 먹으면 큰일이잖아. 조심해.”
“…거,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연히 건드린 거겠지?’
그의 반응이 너무나도 뻔뻔했기에 한나는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면서도 그리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뭐 좋을 게 있다고 남자가 자신의 그런 부위를 만지려고 하겠는가.
물론 남자 중에도 성욕이 많은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으나, 적어도 콜린이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허벅지 같은 데를 두드려서 부르려다가 실수한 거겠지.’
사춘기가 지난 이후로 퉁명스럽게 툭툭 쳐대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콜린의 반응을 보면 자기가 어딜 만졌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고…….’
하지만 그렇게 조금 전의 접촉은 실수였으리라 결론을 내려놓았음에도 한나의 아래는 축축하게 젖고 말았다.
설령 실수라고 해도 콜린 정도 되는 외모의 소년이 성기를 건드려오는데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저 순진무구한 모습이 배덕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것은 한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그저 뻔뻔하게 나가면 어지간한 성희롱 정도는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던 콜린의 연기였을 뿐이니까. 애당초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평소의 남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조금 만진 그거 갖고 저렇게 젖은 거야? 심지어 남동생인데? 그냥 변태새끼네.’
한나의 새하얀 팬티 위로 얼룩이 지는 것을 콜린은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녀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 콜린을 상상하며 자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피어오른 감정은 평소에 느끼던 모멸감이 아니었다.
‘좀 더 괴롭히고 싶다.’
콜린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어느새 그의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전부터 동생을 추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누나에 대한 콜린의 혐오감은 정희원의 의식이 불러온 성욕과 뒤섞여 어느새 가학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평소였다면 결코 느낄 리 없는 감각. 콜린은 여성이 자신의 몸으로 흥분해온다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이 경멸스러울 뿐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일종의 희열로 변해버렸다.
“그, 그럼, 나는 이만 씻으러 가볼게!”
그렇게 잠시 서로를 마주하며 이어진 침묵을 깬 것은 한나였다. 조금 조급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연다.
‘얼른 문 닫고 딸이나 치고 싶은 거겠지. …그나저나 이 세계에서도 딸친다는 표현이 맞나?’
한나의 상기된 뺨을 바라보며 콜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시간이 꽤 늦기도 했고 슬슬 자두는 편이 좋을까. 어차피 그녀를 즐길 시간이야 앞으로 충분히 넘쳐나니까.
한나는 금세 욕실로 들어섰다. 그러나 콜린의 눈은 한나가 이쪽의 눈치를 보며 빨래 바구니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 앞을 지나쳐 방으로 돌아갈 때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갈아입은 그의 팬티가 사라져있었다.
“아읏, 콜린…”
욕실 안에서 물소리에 묻혀 미약한 신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저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
국자를 젓자 걸쭉한 스튜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져왔다. 혀가 데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맛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정희원의 기억으로는 처음 만들어본 요리였으나, 콜린의 입장에서는 몇 번이고 만들어온 레시피였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 콜린의 기억은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만일 콜린의 기억이 사라지고 정희원의 의식이 덧씌워진 것이었다면 큰일이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안도했다.
스튜를 그릇 두 개에 담아 식탁으로 옮긴다.
“…으?”
그리고 찬장에 넣어둔 빵을 찾으려다가 발에 무언가가 걸려 비틀거렸다. 콜린은 금세 균형을 되찾고 발아래를 내려보았다.
‘이게왜 여기 있지?’
시커먼 책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어제 동굴에서 가져온 책─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저쪽세계에서 가져온─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놔뒀을 텐데.’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의 기억으로는 부엌에 있을 리가 없는 책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면 한나가 옮겨놨을지도 모른다. 조난당한 동생이 난데없이 가져온 물건이니 무슨 책인지 궁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밤에 몰래 남자 침실에 들어온다는 건 이쪽 세계 기준으로 당연히 문제가 있는 행위였지만 어차피 그 한나가 아닌가. 애초에 동생 속옷을 훔친 경력도 있는 여자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콜린은 책을 거실 소파 위에 대충 얹어놓고 다시 식사 준비로 돌아갔다.
“으음, 밥 다 됐어…?”
“아, 누나, 일어났네.”
그것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눈을 비비며 한나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항상 밥 때만 되면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이쯤 되면 생존본능이 아닐까 하고 콜린은 내심 생각했다.
“…코,콜린?!”
그러나 하품을 하며 나왔던 한나는 콜린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 옷은 대체…….”
콜린의 옷이 너무나도 짧았던 것이다. 바지는 반바지라고 부르기엔 밑단이 한참 올라가 있었다. 한나에게도 저쪽 세계의 지식이 있었더라면 ‘거의 핫팬츠에 가까운 것’이라고 표현했으리라.
상의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콜린이 입은 민소매는 치수가 조금 작아보였다. 착 달라붙는 건 둘째치더라도, 길이부터가 짧아서 옆구리가 슬쩍슬쩍보일 정도였다.
“아, 이거? 빨래가 밀려서 입을 옷이 없더라. 장롱에서 예전에 입던 거 꺼냈어.”
“그, 그래?”
예전에 입던 옷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략 2년 전 이맘때 입었던 옷. 한나도 그 말을 듣고 이전에 본 적이 있었던 옷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래 시원하고 편해서 좋아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한나의 야한 시선을 느끼게 된 이후로 장롱 안에 봉인해둔 옷이었다. 실제로 지금 역시도 그녀는 당황한 와중에 콜린의 몸을 힐끔힐끔 훑어보고 있었다.
‘…설마 저거 자기 딴에는 안 보는 척 하는 건가?’
다 티나거든요. 콜린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터넷에서 여자는 자기 가슴을 바라보는 시선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비슷한 것일까.
그런 경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은 대놓고 보여줄 의도로 이런 옷차림을 했다는 것이지만.
기왕 이런 세계로 오게 된 것이다. 마음껏 욕정에 점철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더욱 즐겁지 않겠는가.
당연하지만 입을 옷이 없다는 이야기도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한나는 그에 화답하여 콜린이 원하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그 풍만한 육체로한심한 반응을 해오는 한나의 모습이 그의 욕망을 자극해왔다.
이러다 만약 한나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덮치거나 해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
그렇달까 오히려 그 편이 더 즐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일같이 한나를 유혹해서 결국은 덮치게 만드는 것이다.
콜린은 미인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자신을 요구해오는 광경을 상상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거기 서서 뭐해? 얼른 앉아서 먹어.”
“크흠, 그, 그래야지.”
그러나 그런 추잡한 욕망을 내색하지 않고 콜린은 의자를 빼어 앉았다.
어차피 매일 얼굴 보고 지내야 하는 가족이다. 그렇고 그런 짓을 하기에는 충분히 시간이 많았으니 조급하게 행동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한나는 뒤늦게 식탁 앞에 앉아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누나, 오늘은 사냥하러 나갈 거야?”
“글쎄. 어제 깔아둔 덫 정도만확인하고 돌아올까 싶은데.”
식사를 해나가며 문득 콜린이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러다가 뭐 적당한 게 있으면 잡아올 수도 있는 거고…….”
한나의 대답은 꽤나 대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점과 다르게 의외로 수렵은 농경에 비해 많은 휴일이 보장된다.
큰 사냥감을 한 번 잡았다하면 한동안 먹을 것 걱정은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이 잡아서 처리하기 힘든 때도 있을 정도다.
자기가 먹을 만큼을 남기고 팔아버린다는 선택지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요는 하루이틀 빡세게 일해서 며칠간 놀고먹는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일단 사냥을 성공해야 적용되는 이야기였지만, 때마침 그녀가 대박을 터뜨렸다며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온 것이 나흘 전이었다.
“콜린, 너는? 몸은 괜찮아?”
“다친 데는 없긴 한데… 오늘은 산에 안 가고 밀린 집안일이나 좀 하려고.”
어제 느닷없이 조난을 당해버린 탓에 약간이지만 집안일이 밀려있었다. 게다가 슬슬 시장에서 장을 봐올 때도 되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 말에 한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식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콜린 역시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는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한동안 울려퍼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