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6 Was it a cat I saw? (6/89)



〈 6화 〉6 Was it a cat I saw?

조금 걸쭉한 스튜를  숟갈 크게 퍼올려 입에 가져간다.

누린내가 살짝 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맛.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여긴  한나는 꾸역꾸역 그것을 입에 넣었다.

유감스럽게도 맛이니 뭐니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뇌가 많이 바쁜 상황이었던 탓이다.

“누나, 맛있어?”
“아, 응. 맛있네.”
“다행이다.”

원인은 두  할 것도 없이 눈앞에 있는 소년─콜린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녀의 동생 탓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눈앞’이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못하리라. 한나는 그 소년에게서 최대한 시선을 돌리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평소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그럴 수조차 없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사람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 현재의 문제였다──요컨대 콜린은 그녀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는 말이다.

‘……대체 왜?!’

화기애애한 가족… 이라기보다도 거의 연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나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콜린에게 그다지 사랑받고 있지 못하던 누나였다. 대부분의 원인은 그녀 본인에게 있었다는 점을 모르고 있던 것만 빼면 일단  판단은 정답이었다.

그런데 최근 며칠  갑자기 이토록 엉겨붙어오니 그녀로서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번에 동굴에서 조난당했을 때 구하러 간 일─엄밀히 말하자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온 콜린을 마중나간 것에 가까웠다만─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었던 것일까.

한동안은 그리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금 과하게 살가워지지 않았나 싶어진다. 구체적으로는 지금처럼 은근히 허벅지를 쓰다듬는다든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차라리 처음 만난 남자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이게  떡이냐 하고 덥썩 물어버릴 가능성이나마 있다만, 평소에 이런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콜린이 그러고 있으니 오히려 불안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결국 한나는 오늘도 당혹스러운 머리를 부여잡은 채 아침식사를 급히 마치고 집을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의외로 안 넘어오네…….”

그렇게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안, 집안에서는 콜린역시 한 줄기 한숨을 뿜어내었다.

정희원의 의식이 콜린에게 덮어씌워진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었다. 남녀의 가치관이 역전된 이 세계에서 즐거움으로 점철된 생활을 보내리라 마음먹은 그였다.

그리고 그 타깃 중 하나로 점쳐둔 것이 바로 콜린의 누나인 한나. 콜린의 기억으로 미루어보아 그에게 성욕을 품고 있는 듯 하여 하루이틀이면 넘어오리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까 오히려 저쪽에서 밀어내려는 기색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이랑 너무 달라서 그런가?’

되짚어보면 평소에 반쯤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오던 동생이 하루아침에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기쁨보다는 위화감이 앞설지도 몰랐다. 어쩌면 방향성이 조금 틀렸던 것일까.

그래도 이전 모습과의 차이로 발생한 위화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게 되리라. 언젠가 성욕이 불안을 앞지르는 순간 한나는 그에게 손을  것이틀림없었다.

‘사실 지금에도 이쪽에서 덮치면 결국엔 거부하지 않겠지만…….’

그래서야 어쩐지 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혹해서 저쪽이 손을 대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결론은 ‘지금껏 하던 대로 하자’였던 것이다. 콜린은 다시금 한숨을 짧게 내쉰 뒤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왼손을 당기듯 가볍게 휘두르니 시커먼 책이 둥실둥실떠오른다.

처음에는 원래 놔뒀던 장소와 다른 곳에서 책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에 한나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이따금 책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까지는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를 이곳으로 불러온 물건이니 뭔가 요술 같은 걸 부려도 이상하진 않겠다고 납득했다. 어차피 권능이니 뭐니 하는 초능력을 쓰는 사람도 있는 동네가 아닌가.

…이런 경우 보통 납득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감각이 망가졌다는 표현을 쓴다는 부분에선 눈을 돌리기로 했다.

콜린은 둥둥 떠 있는 책 위에그릇을 겹쳐 올렸다. 펼치자마자 튀어나온 괴물에게 꿀꺽 삼켜진 적이 있던 책이라서 작가에게 미안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아랍어라 못 읽기도 하고, 이따금 두껍고 어려운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는 사례가 있으니 비슷한 셈 치기로 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도구가 늘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다.

…설거지를마친 뒤 돌아온 거실 소파를 보랏빛 털덩이가 차지하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털뭉치라는 귀엽고 보편적인 표현이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사람… 아니,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커다랬던 탓이었다.

비유하자면 복슬복슬한 인형탈이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

그리고 그것이 순간 고개를 홱 돌린 탓에 눈이 마주쳤다. 그 샛노란 눈동자에 콜린은 무심코 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자세로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치 이쪽에 위협적인 행동을  의향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 긴장이 풀려 그 존재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마치 당장이라도 이족보행을  것만 같은 고양이의 모습. 처음의 인형탈과 비슷하다는 감상이 얼추 완벽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놀랐어? 이런 식으로 갑자기 와서 미안해.”

‘아, 말할  있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장도 입었는데 말을 할 수 있어도 이상할  없는 듯 했다. 그런 식으로 혼자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기억 한 켠에서 눈앞의 그가 누구인지를 떠올려냈다.

“…영주님?”

콜린은 이전에 스쳐지나가듯 했을 뿐이긴 해도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기억이 뒤섞이기 전의 콜린이.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혹은  지역에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길드의 우두머리. 그런 그가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그래. 일단 나름 이쪽에서 길드장을 맡고 있는 체셔 캣이야.”

그는 이내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을 척 내밀었다. 콜린은 조금 떨떠름해하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조심스레 악수를 했다.

그나저나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라.  그 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싶었다. 아마도 자기 외모에맞게 가명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음?뭔가 이상한데.’

손에서는 보드라운 육구, 통칭 냥젤리의 감촉이 전해져왔다. 그런데 순간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져서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러니까 이름이…?”
“체셔. 체셔 캣.”

그래. 이상한 것은 바로 그 이름 자체였다. 체셔 고양이라는 존재는 작가 루이스 캐럴이 만든 등장인물이다. 앨리스는 희대의 명작  하나이니만큼 거기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콜린이 지금 있는 이곳은 이세계라고 한다면 의문이 생긴다. 이쪽 세계에는 물론 루이스 캐럴이 없을 테니까.

‘그럼 대체 이 사람… 아니, 고양이는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그… 이름이 조금…….”
“루이스 캐럴이 쓴 책의 캐릭터라서?”

또 말했다. 이번에는 아예 작가 이름을 말하기까지 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건가요?”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더니 그는 또다시 히죽 웃었다.

“내가 그 이야기의 체셔 캣 본인이니까.”

체셔는 양팔을 벌리며 자랑스러운 듯 말해온다. 하지만 콜린으로서는 더욱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러다 겨우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설마 여기는 책 속의 세계라든가…”
“아, 그건 아니니까 안심해.”

…아무래도 오답이었던 모양이다. 한순간에 일축당했다.

“…….”

꽤나 그럴싸한 결론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들어주면 어디 덧나나 하는 마음이 절반. 그리고 그게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싶은 마음이  절반.

콜린은 어쩐지 머리가 아파와서 관자놀이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런 콜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머리가  복잡한가봐?”
“당신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눈앞의 이 고양이를 붙잡아서 마구 흔들어버리고 싶었다. 원작에서는 그러면 꿈에서 깨어나던데.

물론 그 그때의 고양이는 체셔가 아니라 스노우볼이었지만. 아니, 스노우드롭이었나?

“그건그냥 루이스 캐럴이 만든 캐릭터 아니었어요?”

아무튼. 가장 큰 의문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야기에 나오는 고양이 본인이라고 하면서 딱히 책 속의 세상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반대요?”
“내가 태어난 순간 그 남자가 영감을 받아 책을   있었던 거지.”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냥 틀렸다고일축할 수는 없었다.

다짜고짜 말이  된다고 딴죽을걸기에는 지금 이 세계에 있는 콜린의 상태부터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우선 진위 여부는 제쳐두기로 했다. 애초에 거짓말을 해도 구별할 방법도 없고.

“그럼… 여기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요?”

그보단 조금 더 체셔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나을  같았다. 콜린은 또 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꼴이긴 했지만, 정황상 저 고양이는 이미 알고 찾아온 듯 하니 문제는 없으리라.

“뭐, 일단나를 포함해서 주변 녀석들은 적당히 원더랜드라고 부르고 있는데.”

아까 전부터 묘한 작명센스여서 내심 실소를 지었다.

“조금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는걸. 혹시 종교는 있어?”
“없어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나간 적은 있지만.”
“그럼 문제될 건 딱히 없겠네. 조금 불경스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니.”

체셔는 일부러 과장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거라고 생각해?”
“음… 글쎄요.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확실히 이렇게 말하면 정확하게 대답하긴 쉽지 않으려나. 그러면 조금 다르게 묻자. 과거에 비해서는 어떨까?”

그렇게 말하면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서 종교를 믿는 사람은 정말 극적이라 해도 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 콜린의 대답에 체셔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은 뭘까?”
“과학의 발전 때문이지 않을까요?”

증명가능성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과학의 시대. 순전히 믿기만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명확한 증거를 요구하기 시작한 탓이리라.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때?”
“무슨 이야기요?”
“옛날에는 정말 신이 있어서 사람들이 믿었고, 지금은 없으니 믿지 않는 거야.”

모로 봐도 궤변이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는 없다. 예전의 그 같았으면 신이 어디있느냐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다못해 이쪽 세계에는 권능이라는 이름의 초능력을 쓰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정의에 따라서는 물리법칙을 벗어난 그들도 충분히 신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너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 그러니까 원래 신이나 요괴로 불리던 것들을, 비교적 약한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쪽 세계로 격리했다고 할 수 있겠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의 거리가 멀어지고 결국은 사실상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체셔는 그렇게 설명했다.

즉, 이곳은 신화나 전승 등에 나오는 존재들이 격리된 동네라는 소리였다.

“그런  치고는 평범한 사람도 많은데요?”
“세계가 분리될 때 딸려온 사람들의 후예야.”
“…별 관계없던 사람들도 휩쓸렸다고요?”
“그런 셈이지.”

좋아. 일단  세상을 만든 놈은 아주 대충이었다는 건 확실해졌다.

‘어쩌면 나도 그런 식으로 휩쓸린 거 아닐까.’

콜린은 한숨을 쉬었다. 물론 뭔가 어마무시한 우주적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나 이래서야 그냥 말 그대로 교통사고를 당한 거나 다름없다. 역시 조금 허탈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세상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게 오신 이유인가요? 신입 얼굴이나 보시려고?”
“뭐, 그것도 있긴 한데. 제안할 게 있어서.”

하며 말을 늘이는 체셔였다. 아무렴 영주가 고작 그것만으로 행차하지는 않았으리라.

‘아니, 다른 세계 사람이 왔다고 하면 충분히 큰일인가?’

어째 갈수록 감각이 망가지는 느낌이다 싶어 콜린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콜린 군, 서바이벌 게임 하나 나가보지 않을래?”
“예? 갑자기요?”
“한 정도 뒤에 옆 길드랑  판 붙는 게 있거든.”

‘…아, 매년 하는 그거 말인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콜린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으니 분명 이맘때 즈음 하여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출전 예정이었던 사람 중에 부상자가 있어서 레니의 추천으로 한나가 대신 나갔던 적도 있었다. 몸 잘 쓰는 사냥꾼이라곤 해도 외부인을 그리 쉽게 받아주는 걸 보면 대회라기보단 일종의 친선경기에 가까울 터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하시나요?”

물론 그것이 약초꾼을  집어넣어도 되는 시합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집안일을 하고 산을 타고 하며 체력은붙어있지만, 그게 어디 평소에 훈련을 받는 사람들에게 비빌 수야 있겠는가.

기억이 맞다면 콜린 자신보다는 운동신경이 배는 뛰어날 한나조차 게임 시간의 절반도 버티지 못하고 탈락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끼어들기엔 실력이 부족했다.

“어차피 순식간에 떨어져나갈 텐데요.”
“괜찮아. 귀여운 남자애니까 봐주면서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사실 실적을 바라고 넣는  아니거든.”

그럼 인원수나 채우라는 소리일까? 그러나 콜린이 생각하기에는 그 경우에도 운동 잘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게 맞지 않은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쁘장한 남자를 끼워넣어야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겠어?”
“…아, 그런 의미였군요.”
“경기 영상은 아이템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방송하니까.”

요컨대 시청자 몰이라는 소리였다.

“원래 나오기로 했던 남자애가 있는데, 얼마 전에 느닷없이 청혼을 받아버렸지 뭐야.”
“아, ‘내 남편을 구경거리로 내보낼 수는 없다’라는 소리라도 들은 건가요?”
“아니.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이어서 사랑의 도피를 해버렸어.”
“오…….”

복슬복슬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 체셔였다. 확실히 저런 반응이 나올만한 미친 상황이었다.

“아무튼 다른 세계에서 온 녀석을 한 번 찾아오기도 해야 할 텐데, 그 김에 제안이나 해볼까 해서.”
“적당히 짧은 옷 입고 은근슬쩍 적당한 구도로 영상을 찍혀주면 된다는 거죠?”
“아주 정확해.”

콜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금 입을 떼었다.

“만약 받아들이면 준비 같은 것도 해야겠죠?”
“최소한의 훈련 정도야 받아야겠지. 아, 물론 그동안에도 생활비는 지급해줄 테니까.”

그때 훈련이랍시고 한나가 자주 불려가던 일이 기억났다. 다만 그렇게까지 힘들어보이진 않았던 것 같았다.

“나쁘진 않네요.”

이내 콜린은 그리 답했다. 솔직히 그 생활비라는 게 약초 캐서 버는 것보단 더 많이 줄 테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고,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데에 흥미가 동하기도 했다. 옛날에 TV로 페인트볼로 하는 경기를 보면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여기서는 페인트볼이 아니라 근접전으로 할 테지만.’

그래도일종의 로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고인물에게 압살당하는 건 재미없겠지만, 아무렴 어지간해선 봐준다고 하니 적당히 즐길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해주는구나. 고마워!”
“대신 조건이 하나있어요.”
“조건?”

기뻐하는 보랏빛 고양이에게 콜린은 손가락을 하나 치켜들며 말했다.

그래. 아주 중요한 조건이었다. 어떻게 이걸 빼먹을 수가 있겠는가.

“냥젤리 만지게 해주면 할게요.”
“냥… 뭐?”
“육구(肉球)요. 발볼록살.”

 말에 체셔는 자기 손바닥을 펼쳐 내려다보다가 흘깃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뭔가 이상한 사람… 이랄까 변태를 보는 표정이었다.

‘왜. 다들 고양이 좋아하잖아?’

만져지는 쪽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콜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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