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8 훈련(2)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이내 멎는다.
“자, 그럼 휴식.”
숨이 가쁜 기미도 전혀 없이 그리 말해오는 것은 레니였다.
“우와아… 저는 사실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네가 기초체력이 꽤 있는 건 사실이지만 등산과 검술은 쓰는 근육부터가 다르니까.”
그녀의 말과 동시에 콜린은 땀을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진다.
콜린의 한손에는 훈련용 검이 들려있었다.
가벼운 나무로 되어있는 그 검은 초승달꼴로 굽어있고 날 부분은 가죽으로 감싼 형태였다. 아마 두삭(Dussack)이라는 이름이었을 테다.
레니의 손에도 같은 검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빙빙 돌리다가 풀썩 바닥에 앉는다.
무슨 서바이벌 게임에 나가는 일이 되어버려서 그녀와의 훈련을 시작한 것이 사흘 전의 일이다.
지치기는 하지만 실력도 조금씩은 늘고 있고 땀도 실컷 흘리다보니 나름 기분이 좋았다.
“그나저나 제가 알기로는 검보다는 창이 훨씬 우수하다고 들었는데요.”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지.”
“그럼 왜 제가 검을 배우고 있는 건가요?”
그러다 문득 스쳐지나간 생각에 콜린은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분명 창은 초심자가 적당히 휘두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였을 테다.
“너무 우수해서 그래. 창은 실전용이 아니라도 무게가 있으니 잘못 맞으면 큰일 나거든.”
이내 레니에게서 돌아온 대답에 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군사훈련이 아니라 일종의 스포츠 훈련을 받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실전에서 사람을 제압하고 사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 콜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뒤쪽에서 수통이 들이밀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밝은 표정의 시안이 서있다.
“아, 고마워요.”
“…시안. 또 농땡이냐?”
“아뇨, 저희 쪽도 휴식시간이라서 온 거예요.”
조금 퉁명스럽게 대하는 레니였으나 시안은 능청스러운 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의 은빛 머리가 바람에 살짝 흩날렸다.
실제로 훈련장 쪽을 바라보니건물에 몸을 숨기고 눈만 빼꼼 내민 병사들이 몇몇 보여왔다. 서비스 정도는 해줘야겠다 싶어 콜린은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건 그렇고 언제부터 그렇게 허물없이 대하는 사이가 된 거야?”
“아, 그거 말입니까. 콜린이 그냥 편하게 부르라고 하더라고요.”
“네에, 일단 연상이니까 깍듯이 대하시면 좀 어색해서.”
물론 거짓말이었다. 남자를 사고파는 관계로 만났던 게 첫 만남이다보니 그랬을 뿐이다.
“…그래. 아무튼 내 지인이니까 함부로 수작부리지는 말고.”
‘뭐, 이미 떡까지 쳤으니 이 이상 부릴 수작도 없는데.’
당연하지만 그 말은 가슴속에 얌전히 파묻어두는 콜린이었다.
“그건 그렇고 선배한테만 훈련을 받아도 괜찮나요?”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 글쎄. 선배는 괴력의 권능을 가지고 계시잖습니까. 일반인과도 대련을 해야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뒤이어 시안은 마침 떠올랐다는 듯이 그런 제안을 해온다.
‘거짓말이네.’
콜린은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럴싸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시안이 그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조금 전에 레니가 말한 ‘수작’을 부리려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해.”
“그렇죠?”
다만 분명히 그녀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기에 레니 역시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상한 짓 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에이, 선배님. 제가 미쳤다고 백주대낮에 여기서, 그것도 선배 지인한테 개수작을 부리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다른 녀석들 훈련은 내가 시키마.”
결국 레니는 시안의 말에 수긍하고서 뒤뜰을 떠났다. 설렁설렁 경례 자세를 취하며 그녀를 배웅하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우리 선배 진짜로 눈치 없지?”
“상식적으로 이런 곳에서 야한 짓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어라, 내가 언제 야한 걸 하겠다고 했더라. 콜린 혹시 이상한 생각한 거 아냐?”
히죽히죽 시안은 그리 말해온다. 능글맞은 그 미소에 콜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게까지 그게 하고 싶은 거면 해줄 수도 있는데?”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돈을 내세요.”
“…칫, 그래. 어쩔 수 없나.”
적당히 말로 구워삶으려 했던 것 같았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시안은 혀를 찼다. 솔직히 공짜로도 못해줄 것은 없었으나 딱히 저쪽에 우위를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엿볼지도모르니 레니 씨가 다른병사분들 훈련 시작하면 저희도 시작하죠.”
“그… 아니, 알았어.”
이내 표정이 조금이지만 침울해진다. 아등바등 주도권을 쥐려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콜린은 그녀 몰래 피식 웃었다.
“시작? 무슨 시작 말인가요?”
“……?!”
그러나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시안은 깜짝 놀라 어깨를 흠칫 떨었다.
콜린이 그쪽을 바라보니 한 사람의 여성이 서있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평범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 길쭉한 토끼 귀가 쫑긋 솟아있는 탓이었다.
복슬복슬하고 풍성한 연갈색 머리칼은 낮은 곳에서 가볍게 묶어 늘어뜨렸다.
그녀는 생글생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콜린과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마치 씨?!”
아무래도 이름은 마치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차, 실례했습니다. 콜린 님과는 초면이었지요?”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듯이 풍만한 가슴께에 손을 얹으며 살포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체셔 영주님의 자택에서 시종 일을 하고 있는 마치라고 합니다.”
확실히 그 옷은 단정하면서도 소박하여 시녀라고 하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마치 씨가 여기는 무슨 일로…?”
그런 와중 시안은 여전히 당황한 채로 말을 이었다.
이상하리만치 긴장한 모습이었으나 마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미소로 답했다.
“영주님께서 부르셔서 콜린 님을 데리러 왔습니다.”
“저를요?”
눈꼬리가 조금 처진 탓인지 부드러운 인상이라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어울렸다.
“아, 물론 여유가 되면 말이에요. 아직 훈련하고 계신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콜린은 시선을 흘끗 돌려 시안 쪽을 바라보았다.
삿된 말로 콜린을 ‘따먹을’ 생각 만만이었을 시안이었으니 쉽사리 보내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니, 그… 네. 데려가셔도 괜찮습니다. 콜린, 레니한테는 훈련 끝내고 돌아갔다 말해둘 테니 다녀와.”
그렇기에 그녀가 이런 말을 했을 때는 콜린도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도 되나요…?”
“그러니까… 영주님이 부른 거라잖아?”
그 시안이 오히려 이렇게 바로 가라고 하니 어쩐지 불안해지는 콜린이었다.
영주니 뭐니 말하고 있지만 분명 저 시녀는 ‘여유가 되면’이라는 말을 달아두었을 터였다. 분명 얼마든지 핑계를 대고 그녀를 물릴 수 있었으리라.
이전에 영주를 보았을 때는 그다지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 아니, 고양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협박인 건가?’
그렇다면 결론되는 도출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시녀 모습은 일종의 변장이고 실제로는 어느 정도 힘을 가진여자다. 그리고 조금 전의 발언은 양보하는 척만 했을 뿐 실제로는 반쯤 강요였던 게 아닐까.
‘딱히 기억에는 없던 사람인데.’
다만 권력자라 해도 아마 유명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자, 그러면 콜린 님. 안내하겠습니다.”
결론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빠져있던 도중, 마치의 목소리가 그를 다시 현실로 이끌어내었다. 콜린은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어… 그럼 갔다올게요, 시안 씨.”
“…그래.”
솔직히 떨떠름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딱히 제안을 거부할 명분도 없었기에 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저기, 그래서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건가요?”
발걸음을 옮기며 콜린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아, 영주님께서 수고하신다고 마사지라도 해드리라 하셨거든요.”
“마사지 말인가요?”
“네, 그래요.”
뒤이어 돌아오는 것은 상냥해보이는 마치의 미소. 그러나 그 모습에 콜린은 무언가 미심쩍은 느낌을 받고 만다.
‘뭔가 숨기고 있는 건가?’
마치가 권력자라고 가정한다면 영주의 명령으로 마사지나 해주겠다는 건 이상했다. 물론 그녀의 지위는 영주보단 낮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개 영지민의 수발을 들 정도로 낮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저 여자는 그냥 자기가 원해서 이러고 있다는 건데…….’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콜린은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분명해진 것은 마치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간 순간이었다.
“…아.”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내의 모습을 보자마자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이미지에 콜린은 무심코 소리를 내었다. 마치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히 AV에나올 것 같은 상황이잖아.’
콜린은 힐끔 눈알을 굴려 마치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으려는 듯한 부드럽고 순수한 미소를 한 그녀였다.
“어라?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하지만 이제 보니 그 눈동자에는 희미하게나마 욕망의 빛이 잠들어있었다. 아주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타오르고 있는 열기가 있었다.
물론 마치가 야동을 보고 본보기로 삼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본래 세계의 그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작품인 이상, 그녀라 해서 똑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단 보장은 없었다.
“아뇨. 그다지.”
그리고 콜린은, 그녀의 욕망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위아래로훑어본다. 꽤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마치였다. 수수한 옷 너머로 드러난 가슴은 한나보다도 더욱 큰 것만 같았다.
“그럼 누우면 될까요?”
콜린은 가면을 쓰고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흡사 추악한 욕망을 감춘 마치의 그 표정과도 같이.
×
“옷이 좀 많이 얇지 않나요?”
“그 편이 마사지에는 도움이 되니까요.”
“아, 그런가요?”
전신 마사지에나 쓸 것 같은 높은 침대. 그 위에 걸터앉아 콜린은 살포시 웃었다.
몸에는 오직 새하얀 가운 하나만을 걸치고 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조금 얇은 감이 있었다.아마 젖기라도 했다간 금세 맨살이 비쳐보이리라.
그리고 이 옷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젖을 것이라고 콜린은 확신했다. 방 한쪽에 오일이 담긴 통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 탓이다.
“자, 그럼 누워주세요.”
물론 그렇다고 딱히 거부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콜린은 얌전히그녀의 말을 따랐다. 천천히 몸을 눕히자 눈 위에 젖은 수건이 올려진다. 뜨거운 물에 적셨는지 그 온기가 눈꺼풀 너머로 느껴졌다.
이어서 또 다른 온기가 어깨에 닿는다. 미리 덥혀둔 오일이 얇은 가운을 적시고 스며든다. 뒤이어 그 위에 부드러운 손이 겹쳐졌다.
“차갑진 않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혹시 아프시면 말해주세요.”
그리고 점점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뭉친 어깨를 풀어주듯 꾹꾹 눌러대니 꽤나 기분이 좋았다.
향초라도 피워둔 것인지 희미하게 단내가 풍겨오는 와중, 마치의 손길이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안마해왔다.
서로의 손가락을 깍지 끼듯 얽어서 주무르기도 하고, 팔다리의 살을 밀어내듯 누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본격적인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 비교하진 못하겠으나, 실력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기분 좋을 정도의 몽롱함이 머리를 채웠다. 신체에 둥실둥실 가벼운 부유감이 느껴졌다.
“으…?”
“아, 혹시 아프셨나요?”
“아니, 괜찮아요…….”
그러다가 순간 허벅지 안쪽을 깊숙이 주무르는 감촉에무심코 신음을 흘리고 마는 콜린이었다. 마치는 그 소리를 듣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온다.
아무래도 딱히 이상한 생각을 품고 건드리진 않았던 것 같았다. 분명 이런 곳도 확실히 풀어줘야 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겠지, 보통은.’
꽤나 교묘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일지 모르나 콜린 입장에서는 이미 본래 목적을 다 알고 있으니 속을 턱이 없었다.
미안하다며 조금 더 아래쪽을 안마하기 시작하는 마치였지만, 잘 살펴보면 처음에 주무르던 곳보다는 명백히 위로 올라간 위치였다.
상대가 과민반응을 하는 사람인지 간을 보기도 할 겸 조금씩 그녀의 접촉에익숙해지게 하려는 것이리라.
물론 그녀의 착각이 있다면 지금 누워있는 이 남자는 격렬히 저항할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었다는 점일까.
콜린은 잠자코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마치는 다시금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허벅지 제일 깊숙한 곳, 내전근이라 불리는 곳까지 손을 뻗어서는 주물러댄다. 조금만 더 뻗으면 페니스에 닿는 그 위치를 성감을 자극하듯 부드러운 손가락이 파고든다.
희미하면서도달콤한 쾌감이 허벅지에서 허리를 타고 흘렀다. 콜린은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 가운 위로 그의 빳빳한 강직이 드러났으리라.
“하아…….”
“어때요. 기분 좋으신가요?”
이제는 아예 양손 사이에 페니스를 끼우듯이 손을 놓고는 그 근처만을 희롱하고 있었다. 애태우는 것처럼 집요하게 페니스만을 피하는 움직임에 뜨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동안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서야 마치의 손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닫힌 눈꺼풀 너머로 빛이 새어들어왔다. 눈을 가린 수건을 치웠다는 걸 깨닫고 콜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피부가 공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움찔거릴 정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아마 자신의 눈은 꽤 풀려있으리라 콜린은 짐작했다.
얼굴에 흥분이 가득한 것은 콜린뿐만이 아니었다. 마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 표정에서 흥분과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그냥 덮쳐버려도 콜린은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말로는 거부하더라도 몸이 먼저 여성을 받아들이고 마리라. 그리고 설령 진심으로 거부하려고 해도 온몸에 힘이 빠진 이 상태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본 코스는 끝났는데 더 풀어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으신가요?”
하지만 마치는 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눈웃음을 지으며 콜린을 바라보더니 그렇게 물은 것이다.
콜린은 짐작했다. 저 여자는 지금 자신이 스스로 만져달라고 요구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꽤 정복욕이 강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하아, 네… 조금만 더 해주세요.”
“네. 얼마든지요.”
콜린은 숨을 조금 고르고 미소를 지었다. 달아오른 그의 표정을 보더니 마치는 따라 웃었다. 그러나 명백히 추악한 기대감이 입꼬리에 스며있었다.
“실은 등이 조금 많이 뭉쳤거든요.”
“…그, 그런가요.”
하지만 그 기대에 순식간에 찬물이 끼얹어진다.
그리고 이내 마치는 콜린의 표정 또한 단순히 흥분하기만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도발이라도 하려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에겐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콜린은 적어도 얌전히 정복당해줄 생각 따윈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것은 분명 도발이었다. 콜린의 눈빛은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입으로 직접 항복 선언을 듣고 싶다는마치에게,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보라며.
“…그럼 마사지를 계속할 테니 엎드려 주시겠나요?”
마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도발을 받아준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결국에는 남녀가 몸을 겹치며 끝날 게 분명하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무의미한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