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44 일곱 장군(4)
리온은 까마귀 길드의 용병이었다.
여기저기 오가는 마차들의 호위를 맡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어느 날, 그 무력이 자매의 눈에 들게 되었고 그대로 고용된 것이 지금에 이른다.
벌써 몇 년을 그녀들에게 봉사하고 있었으니 이제 사실상 길드 소속이라 봐도 무방했다.
비록 원래있던 병사들의 텃세는 있었지만 리온은 굴하지 않았다.
진정한 전사는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할 뿐이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스스로를 내보일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비록 상대는 작은 규모의 도시라 할지라도 벽은 벽이고, 병사는 병사다. 간단히 무너지지는 않겠지.
더욱이 저쪽 길드에는 그 레니 테세오가 있다.
비록 가문에서 도망친 여자라 해도, 테세우스의 피가 흐르는 건 마찬가지일 터. 이번 전투는 결코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리온은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한 번쯤 그런 강적과 맞서싸우고 싶었다. 뭇 여성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리온은 진군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물론 마음속으로만─ 전장에 뛰어들 순간을 기대했다.
"이 몸은 까마귀 길드의 트위들덤이다!"
그렇기에, 항복 권유를 하러 간다는 길드장의 말에는 약간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얼른 싸우면 안 되나?'
어차피 상대가 이런 권유를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만약 받는다면 길드 입장에서야 피해 없이 이득을 취하니 좋은 일이겠지만, 자신의 이 끓어오르는 피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역시 길드에 민폐를 끼치면서 싸움을 추구할 멍청이는 아니었기에 리온은 입을 다물었다.
일단 길드장의 호위로 발탁된 몸이기에 리온은 트위들덤이 항복을 권유하는 동안 근엄한 표정으로 묵묵히 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저 말, 길드장 무게를 버티네. 하긴 내 덩치도 버티는데.'
물론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솔직히 리온 입장에서야 지루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이 이후찾아올 전투를 기대하며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느그 애비 후장에다 쳐박아두고 왔다고요!"
"쿨럭?!"
그러다가 갑자기들려온 폭언에 리온은 몹시 당황했다. 하필이면 침을 삼키던 순간이었기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성벽 위를 바라보면 연갈색 머리칼의 여성이 으스대며 서있었다. 정수리에는 길쭉한 한 쌍의 귀가 있었고, 한손에 든 금속 배트는 축 늘어뜨린 상태였다.
마치 헤어. 분명 그런 이름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폭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설마 이해가 안 되시나요?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군요. 근데 장식이면 좀 예쁜 걸로 고르지 그러셨어요!"
"생긴 걸 보니 멀쩡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건 아닌 것 같고.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당신 부친이 수캐랑 교접해서 뒷구녕으로 낳은 게 아닐까 하네요."
"가정환경이 참 복잡하셨겠어요. 어미 하나에 아비 둘이라니! 친히 자비를 베풀어서 제가 두 번째 어미가 되어줄 수는 있답니다? 아버지께 아내 된 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곧 따먹으러 가겠다고 전언 부탁드려요!"
'웃으면 안 된다. 웃는 순간 정치적으로 끝장이야…!'
마치 헤어는 최선을 다해서 트위들덤을 모욕하고 있었다.
리온은 이렇게까지 타인을 욕보이는 데 진심인 작자를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어휘력이란 말인가.
자신이 당하는 것도 아니라 그런지 듣고 있는 것만으로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어쩌면 저 뒤의 본대에서도 남몰래 웃고 있는 병사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 이익…!"
물론 장본인의 의견은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트위들덤은 완전히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방 때문에 목이 접혀있는 데도 핏줄이 돋은 게 보일 정도였다.
저러다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지는 않을까. 리온이 그런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마치가 조용해졌나 싶었더니 트위들덤의 눈앞에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는 사각형이 하나 떠올랐다. 근원적 계약의 증표였다.
리온은 눈알을 힐끔 굴려 그 계약서를 엿보았다.
'트위들덤은 마치 헤어에게 부친의 후장을 성심성의껏… 미친.'
아주 긴 계약서였으나 그녀는 거기까지만 읽고도 이마를 짚었다.
물론 더 읽으려 했어도 몹시 분노한 트위들덤이 곧바로 계약서를 치워버렸기에 무리였겠지만말이다.
'아무튼 이제 돌이킬 수 없겠군.'
그리고 리온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되면 곧바로 본대에 돌아가 총공격 명령을 내리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
"기, 길드장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리온이었기에 트위들덤의 돌발 행동에는 미처 대처하질 못했다.
이성의 끈이 끊어진 트위들덤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성벽 위로 집어던진 탓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칼은 끝까지 닿지 않고 중간을 조금 넘은 지점에 부딪혀 다시 튕겨나왔다.
"…젠장!"
그리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공중에서 빙그르르 도는 날붙이의 모습에, 리온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에는 성벽 위에서 몇 자루의 활이 이쪽을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저들이 과연 사거리가 닿지 않아 가만히 있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혹시나 해서 리온을 호위로 데려오긴 했지만,일단 트위들덤이 사자 내지는 전령의 형식으로 나온 것이기에 공격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했다.
그런데 이쪽에서 공격행위를 한다면?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사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전투가 시작된다. 시작되고 말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길드장이 본대에 떨어진 상황에서!
"길드장님, 복귀합니다! 꽉 잡으십시오!"
"으, 으윽?!"
거기까지 파악하고 나자 리온의 행동은 빨랐다.
그녀는 트위들덤이 탄 말의 고삐를 낚아채더니 급히 뒤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팍.
조금 전까지 트위들덤이 있던 자리에 화살이 꽂혔다.
하지만 돌아볼 시간 따위는 없었다. 두 마리 말을 동시에 모는 데는 그녀의 집중력을 죄다 쏟아야만 했다.
뒤에서 또다시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 히이익!"
결국 트위들덤은 말 위에 반쯤 엎드린 자세로 겨우 매달려서 본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겁에 질린 호흡을 내뱉는 그녀를 바라보며, 리온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왼쪽 어깨에서 뻐근한 통증이 몰려왔다. 길드장을 지키느라 도중에 화살 한 대를 맞고 말았다.
리온은화살대를 꺾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화살 한둘쯤 맞아도 상관없는 몸뚱이라 해도 아픈 건 아픈 거였으니까.
"다들 준비해라!"
그동안 본대에서는 각 병사들이 무기를 거머쥔 채 돌격의 준비를 했다.
리온 역시도 다시 말을 돌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흘끗 시선을 돌려 진형의 한쪽 끝을 바라보았다.
여타 병사들과 다를 바 없는 복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는 약간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길드장이 이번 전투를 위해 고용했다는 용병이었다.
그러나리온 입장에서는 그녀의 정체도 실력도 알지 못하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불만이라도 있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은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
그녀가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질 생각은 없었다.
리온은 손에 들린 창을 꽉 쥐었다.
그리고 신호와 함께,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
"슬슬 오겠군요."
성벽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고서 콜린은 중얼거렸다.
긴장 탓인지 손에 약간 땀이 찼다. 생애 처음으로 겪는공성전이니 말이다.
"자, 저희도 다들 준비… 레니 씨?"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레니의 모습에 콜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나 이 자식… 대체 집에서 어떻게 지내면 애가 이런 말을……."
…아무래도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듯 했지만 상황 여유는 없으니 변명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어디, 시작해볼까요!"
반대로 마치 쪽은 몹시 기운찬 모습이었다.
콜린의 대리 패드립에 당황한 듯한 그녀였지만, 나중에는 아주 자기가 신나서 조롱해댔다.
콜린이 대사를 정해주긴 했으나, 그 스스로도 저렇게까지 짜증나는 어조로 연기할 자신은 없었다.
정말이지 항상 이상한 데서 재능이 드러나는 여자였다.
혹시나 자신이 악마를 깨워버린 건 아닐까 한숨을 쉬면서도콜린은 다시 시야 너머에 집중했다.
수백 명이라는 인원은 전쟁에 있어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마주하는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멋대로 심장이 뛰고 머리가 아찔해진다.
누군가는 검을 들었고, 누군가는 창을 들었으며, 또 누군가는 활을 들었다.
대포를 끌고 오는 사람이 있었고, 말에 올라탄 사람이 있었으며, 성벽을 넘기 위한 사다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콜린은 심호흡을 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
명백히 다수 대 소수의 싸움이다.
이쪽에 이점이 있다면 성벽, 그리고 일부 강자들의 존재.
하지만 아무리 레니와 마치라고 해도 백병전에서 진형을 갖춘 군대를 휩쓸어주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힘을 최대한으로 쓰려면 적어도 저쪽의 진형을 망가뜨릴 필요가 있었다.
'일단 대포와 사다리만 박살내놔도 성벽은 거의 확실히 지킬 수 있다.'
실전을 겪어본 적 없는 콜린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기물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지금.'
콜린은 거리를 계산하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으, 끄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뒤이어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순식간에 벌어진일이었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더니 사방으로 번진 것이었다.
쾅!
포구(砲口)에 불똥이 튄 탓에 대포가 안쪽에서부터 터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조 따위 없는 아비규환이었다.
만약 저 가운데 있었더라면 아주 조금은 더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하늘에서부터 무언가 액체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이 기름이라고 깨달은 순간 불꽃이 일었다.
물론 그것을 겪은 병사들은 이미 온몸에 불이 붙은 상태라 설명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진짜 제 권능을 이렇게 쓸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콜린의 곁에서 백설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대로 저 상황은 백설의 권능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콜린에게 양도한 권능이었지만 말이다.
콜린은 시야에 난쟁이들을 소환할 수 있는 권능을 그녀에게서 받았다.
그런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적진 한가운데 난쟁이들을 소환시켜 난장판을 만들어놓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실험을 해본 결과 소환 자체, 그리고 소환되고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걸려 제대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제압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역시 콜린 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청 악랄하다는 의미에서요.”
그리고 다음으로 떠올린 계획이 바로 방금 전의 유사 항공폭격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파라 외의 일곱 난쟁이들은 소환될 때 백설에게 지급받은 초커를 차고 있었다.
즉, 소지품 역시 소환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걸 이용해 한손에 기름 항아리를, 다른 손에 횃불을 든 난쟁이들을 공중에 소환해 낙하시킨다. 그리고 추락하기 전에 송환한다.
딜레이가 있기에 삐끗하면 그대로 난쟁이들이 곤죽이 된다는 문제만 빼면, 기름과 불을 하늘에서 무한정 쏟아부을 수 있는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콜린은 입꼬리를 올렸다. 진영에 불이 쏟아지는데 멀쩡히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신 차리기 전에 같은 걸로 한 번 더 가죠. 준비는 됐습니까?"
다시 성벽 안쪽으로 시선을 옮겨 난쟁이들을 소환한 뒤 콜린은 물었다.
도시 내부, 성벽 근처에는 몇 번이고 폭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물건들을 쌓아놓은 상태였다.
'화약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콜린 혼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없는 건 없는 거다. 불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우위를 가져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난쟁이들에게서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받은 뒤 콜린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 그들을 소환했다.
난쟁이는 여덟인 반면 저쪽은 대포만 해도 아홉이었다. 아직 제압해야 할 구역이 많았다.
"흠?"
하지만 저쪽도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병사들에게 번지고 있는 불이 갑자기 꺼졌다.
아니, 정확히는 화염이 하늘로 옮겨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중에서 쏟아지고 있던 불덩이도 내려오다 말고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콜린 님. 방금 누구 하나 박살난 거 같은데요."
"바하무트네요."
"그게 보여요? 제가 그 권능 갖고 있을 때 위치를 파악하는 기능은 없었는데."
"누굴 어디 소환했는지는당연히 제가 알고 있죠."
심지어 난쟁이 하나는 기름 항아리를 들고 있는 상태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공중에서 불꽃이 번지며 숯덩이가 되어버린 난쟁이의 모습에 콜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체는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빛의 입자가 되어 파스스 흩어졌다.
설령 죽어도 나중에 다시 부활할 수 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전략이라곤 해도, 역시 저렇게 죽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영 불편했다.
물론 지금은 애도하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허공에 모여든 불덩이는 점점 더 크기를 키워가더니 그대로 성벽을 향해 날아왔다.
"영차─!"
그리고 그 순간 마치가 당장이라도 모두를 집어삼킬 듯이 다가오던 불덩이를 향해 도약했다.
이어서 배트를 크게 휘둘러 그 풍압으로 화염을 흩어낸다.
"마치 누나!"
"저는 괜찮아요!"
방어를 위해 필요했다곤 해도 냅다 성벽에서 뛰어내린 그녀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던 콜린이었다.
물론 고작 이 높이에서 떨어진 걸로 마치가 다칠 리는 없지만 그래도 공성전에서 느닷없이 밖으로 빠져나는 행동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치는 떨어지다 말고 공중에서 우뚝 멈춰섰다.
지금 보면그녀의 허리에 밧줄이 감겨 성벽에 연결되어 있었다.
"…대체 언제 묶은 거예요?"
"음, 불덩이가 움직일 때부터 기분이 쎄해서?"
순식간에 휘릭 하고 다시 성벽 위에 올라오는 마치였다. 진짜 이 양반만큼은 예측할 수가 없다며 콜린은 이마를 짚었다.
"그나저나 화염을 조작하는 권능인가요……."
"마치 누나. 저기 저 사람인 거 같은데 아는 얼굴이에요?"
"으음… 아뇨. 모르겠네요."
콜린은 조금 전 불꽃이 멋대로 움직일 때 왼팔을 들고 있던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마치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까마귀 길드에 그런 권능을 가진 사람이 있단 소린 못 들었으니 아마도 제후 대리가 보낸 사람일까.'
그렇다면 꽤나 강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뭐, 저 여자는 제가 맡도록 할게요."
"부탁해요."
마치에게로 흘끗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빙그레 웃더니 훌쩍 뛰어내렸다.
'…밧줄은 또 언제 풀었대.'
"대열을 망가뜨리지 마라! 버텨!"
당연하지만 지금은 불이 꺼졌다고 해도 이미 대열은 잔뜩 흐트러진 상태였다.
"안 비키면 치고 갈 거예요!"
거기에 더해 괴력의 적이 금속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며 돌진하면 뭐든 간에 멀쩡히 돌아갈 리 없었다.
상대도 그걸 알기에 상관이 고함을 쳐가며 패닉에 빠진 병사들을 다독였지만…….
"혼자 멋대로 나서지 말… 커흑?!"
"아아악! 다리, 다리가…!"
"지원 고마워요, 콜린!"
공중에서 큼지막한 돌덩이가 우수수 떨어진 탓에 또다시 난장판이 되고 만다.
"…뭐에요, 저건?"
"기름만 쏟아부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 상황에는 백설도 어이가 없었는지 콜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콜린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애초에 불이 안 통하는 상대가 오면 어쩌려고 그것만 준비해둬?”
“……그런 분이었죠, 콜린 님은.”
아무래도 그녀는 콜린에게 그렇게 당해놓고도 그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이름은 콜린. 남 엿먹이는 데는 아주 도가 튼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