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45 일곱 장군(5) (45/89)



〈 45화 〉45 일곱 장군(5)

까마귀 길드의 상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수라장이었다.

"산개! 산개해라!"

하늘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격은 그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의 공격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전쟁이라는 것은 물론 평면의 싸움이었다.

찾아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하늘을  수 있는 권능의 보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까마귀 길드에 그런 존재가 없다는 건 분명했다.

그러니 직접 맞아보기 전까지 제공권의중요성을 알아차릴 수 있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제공권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지부터 의문이었다.

대비되지 않은 재앙에는 오로지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상대는 병사를 흩어놓았다.

물론 그들도 전열을 흩어놓는  각개격파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흩어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는다.

화염, 끓는 기름, 바위, 분뇨, 통나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한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부점 길드에게 화약이 있었더라면 이미 이번 전투를 패배하고도 남았으리라.

"안 비키면 부수고 갈 뿐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흩어진 상태에서 마치 헤어를 막아낼  있을  없었다.

보기만 해도 그 무게가 느껴지는 무쇠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며 돌격한다.

그 앞에 있던 병사들이 문자 그대로 뻥 하고 날아갔다.

진퇴양난이었다. 뭉치면 폭격을 피할 수 없고, 흩어지면 마치를 막을  없다.

"어차피 막을 수 없으니 토끼는 무시해라! 저 여자는 영주님이 고용하신 용병에게 맡긴다!"

 순간에 판단을 내리고 외친 것은 리온이었다. 새하얀 창을 거머쥔 그녀는 우렁찬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본래 그다지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던 그녀였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병사들이 그 명령을 따랐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침착성을 유지하고 있던  하나, 마구 돌격하는 괴물 앞을 가로막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둘.

그리고 조금 전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그 용병이 가진 실력을 믿었다는 게 세 번째 이유였다.

솔직히 그녀가 누구이고, 어째서 까마귀 길드에 협조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보여준 그 권능은 그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단숨에 증명했다.

병사들은 마치 헤어의 길을 열어주고서 다시 성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콜린은 그들의 모습을 벽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활을 든 병사가 시위를 당기는 것 역시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아군 측 병사들도 각자 활을 들었다. 아마 이즈음이 유효한 거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우수수 들려오고, 레니가 그의 눈앞에서 칼을 그었다.

"괜찮아?"
"네, 덕분에요."

그리고 이내 레니가 허공에서 검을 멈추었을 때, 핑거링에 화살이 대롱대롱 걸려있는 걸 보고 콜린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콜린에게로 날아오는 화살을 저 고리로 잡아챈 것이었다.

물론 감탄하면서도 폭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 멀리 있던 대포 위에 커다란 바위가 내다꽂힌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육중한 대포가잽싸기 자리를 옮겨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명중을 확인하고서 콜린은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로 괜찮겠어?"

그런 그를 바라보며 레니는 다시금 물었다.

이번의 '괜찮아'는 화살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콜린은 알아차릴  있었다.

본래 계획에따르면 이 정도 거리가 되면 레니와 백설이 성벽 아래로 내려가 산개한 병사들을 쓸어버리기로 되어있던 것이다.

문제는 본래라면 성벽에 남아 콜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로 했던 마치가 저쪽의 강자에 대응하고자  멀리 가버렸다는 점이었다.

"호위는 난쟁이들한테 부탁할 테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 콜린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난쟁이들은 그야말로 죽음도 불사하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호위였다.

물론 호위로 돌리는 만큼 폭격이 약해지긴 하겠지만, 어차피 레니가 전장에 끼어드는 이상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줄여야 했던 폭격이었다.

"알았어. 조심해, 콜린."
"다녀오세요."

그리고 레니는 콜린에게 다시금 당부의 말을 남긴 뒤 성벽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갔다 오겠습니다!"

백설 역시 그 모습을 보다가 환한 미소로 도약했다. 콜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뻐서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으그아악!"

…이내 백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발목을 붙잡고 뒹구는 그녀의 모습을 콜린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야 안전장비도 없이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괜찮은 건 레니와 마치 정도였다. 낙법조차 하지 않은 백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백설의 권능은 엄밀히 말해  자체가 튼튼한  아니라 끈질긴 생명력이다. 곧장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빨리 나을 뿐이지 골절과 통증은 피할 없는 일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추태야……."

백설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재생이 덜 되어서 절뚝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앞으로 뻗는다.

그래도 이 거리라면 아마 적과충돌할 때까지는 나을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며 백설은 몸을 풀려는 듯 메이스를 가볍게 휘둘렀다.

"막아라! 어차피 다리를 다친 녀석이다!"

발목을 잡고 뒹구는 모습을 보아서 그랬는지 병사들은 거리낌 없이 백설에게 다가왔다.

이미 부상을 입고 있기도 했고, 혼자 다칠 정도로 멍청한데다가, 적어도 레니만큼 튼튼한 몸은 아니었다.

정확한 실력은 모르더라도 다들 충분히 싸울만한 상대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상대는 하나니까 둘러싸라! 오히려  편이 안전하다!"
"그거 본인 앞에서 말하면 상처받거든?"

사실 그들이 백설에게 접근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병사들은 적과 동료가 뒤섞인 난전 상황에서는 감히 폭격을 퍼부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펄펄 끓는 기름이 그들 위로 쏟아진 탓이었다.

"끄으으윽!"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퍼진다. 당연하지만 거기에는 백설의 비명도 섞여있었다.

마치 고기를 굽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났다.

"하으… 아… 뜨거워라……."

모두가 고통 속에서 바닥을 뒹굴던 와중 백설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무리 죽지 않는 몸이라지만 너무 막 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뭐랄까. 이것도 콜린 님이 주신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나름…….'

…아주 중증이었다.

×

"자리를 지켜! 도망치지 말… 크흑?!"

털썩. 검이 다리를 썰어내고 지나가자 병사는 앞으로 쓰러졌다.

백설이 무작정 육탄돌격을 하는 쪽이었다면, 레니는 몹시도 정갈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그녀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 사이사이를 오가며 그들을 제압해나갔다.

하나를 쓰러뜨린 뒤 바로 뒤를 돌아다가오는 병사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크게 도약하여 눈앞에 있는 병사의 무릎에 검을 찔러넣고, 그걸 뽑아내는 동시에 너클가드로  다른 인물의 복부를 찍었다.

"……!"

그리고 몸을 굴려 느닷없이 뒤에서 찍어내리는 창끝을 피해낸다.

"…리온."
"이름을 알아주다니, 참 영광이야."

거기에는 2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암사자가 말을 탄 채 서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원뿔형의 기묘한 백색 창이 들려있다. 마상창, 그것도 헤비 랜스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분명 항복을 권유하러왔을 때는 평범한 단창이었는데.'

레니는 미간을 찌푸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병사들이 잔뜩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오직 리온과 레니만이 서있었다.

마치 결투라도 하려는 모양새다.

"레니 테세오, 당신하고는 한 번 싸워보고 싶었거든."
"가문은 나온  오래야."
"그렇다고 핏줄이 사라지지는 않지."

그리고는 말에서 내리는 리온의 모습에 레니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까마귀 길드에서 제일 강한 여자를 일대일로 쓰러뜨릴  있는 기회였다.

"부디 전력으로 와줬으면 한다."
"나는 언제나 전력을 다하는데?"
"아니,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집요하게 다리만을 노리더군?"
"……."

리온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둔기를 붕붕 휘둘러대는 마치나 백설과 다르게 사망자는 제로였지만, 그것이 결코 레니의 실력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는 건 어느 정도 격차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검술에 있어 굳이 하반신을 노리는 건 대부분 하책(下策)으로 여겨진다.

물론 상대가 폭격을 경계하여 흩어진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제아무리 그녀라 해도 이런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으리라.

"자비는 필요 없다. 물론 당신이 대충 싸우더라도내가 지겠지만……."

리온의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사의 눈이었다.

리온은 설령 누구보다 일찍 죽더라도, 전장에서 강적과 싸우다 죽고자 하는 그런 여자였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레니는 또다시 한숨을 쉰 뒤에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왼손을 허리춤에 가져갔다.

"후회하지 마."
"설마 그럴 리가 있으려고!"

왼팔을 휘두르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검이 나타났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검에 비하면 훨씬 투박하고 밋밋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서 리온은 호탕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창을 세차게 휘둘렀다.

기이한 원뿔 형태의 마상창은 순식간에 단창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그러한 아이템이었던 모양이다.

다시금 서로 눈을 마주치고, 호흡을 들이켰다.

그리고  사람은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하지만 간격에서 유리한 건 리온 쪽이었다.

장창과비교하여 단창이라는 명칭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것도 거의 2미터쯤 된다.

반면에 레니가 들고 있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단검의 범위를 벗어난 한손검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점을 갖고 있음에도 리온은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저 여자는 설령 나뭇가지를 들고 있어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쌔액 소리를 내며 창이 바람을 가르고 찔러든다.

"…하."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 높이로 풀쩍 도약해 피하는 레니의 모습에는 허탈함까지 느껴졌다.

역시 괴물이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

리온은 곧장 창을버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공중에 떠오른 레니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녀를 그대로 바닥에 휘둘러 내리꽂을 작정이었다.

"크윽…?!"

하지만 그 순간 시야가 휘청였다. 조금 뒤늦게 머리에 둔탁한 통증이 내달렸다.

레니가 메쳐지는 와중에서도 크로스가드로 리온의 관자놀이를 후려친 것이었다.

육중한 거체가 지면에 쓰러진다. 레니는  옆에 조심스레 착지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에게 침묵이 감돌았다.

그야말로 일격에 끝나버린 싸움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이런 일방적인 결과에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이 바로 레니에게 있어선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을 벗어날 좋은 기회였다.

'…베려고 했는데.'

하지만 레니는 그저 검을 쥔 스스로의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쓰러진 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희미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레니는 전사라는 족속이 얼마나 명예를 중요시하는지 아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력으로 벨 생각이었다. 그것이 리온이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리온이 붙잡은 탓에 순간 당황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손잡이로 후려버렸다.

자기 손에 들린 것이 마치 둔기라도 되는 듯이…….

"젠장……."

아직 많이 미숙하다는 걸 이런 식으로 자각하게 될 줄이야. 레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그렇게 실의에 빠져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이곳은 전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여기저기서 긴장하여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어쩌지?'

사실 이런 상황은 레니도 살면서 처음이었다.

원래는 그냥 시야에 있는 모든 적을 제압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다들 리온과 자신의 결투를 지켜보는 흐름이 되어있었다.

사실 대부분은 두 사람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레니 입장에선 자신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분위기에선 어떻게 대응하면 좋단 말인가.

레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사람…?"

당연하지만, 끝도 없이 폭격을 당하고 선봉까지 꺾인 시점에서 답은 이미 나온상태였다.


×

배트를 바닥에 질질 끌며 토끼 귀를  여성이 다가왔다.

그 앞에 있는 것은 한 사람의 병사다.

그녀는 흉갑을 입고 낡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모로 봐도 그냥 말단 병사로 보인다.

하지만 마치 헤어는 그녀가 단순한 병사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조금  군대를 완전히 박살낼 뻔 했던 화염의 비를 막아낸 것은 그녀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까마귀 길드의 병사로 분장한 제후 대리의 지원군이리라.

"오랜만이에요."

마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나를 아느냐?"

하지만 상대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푸른 기운이 도는 검은 머리칼은 고개를 따라 찰랑였다.

"아뇨. 처음 보는데요."
"그러면 왜 그런 소리를 한 게야?"
"혹시나 당신은 저를 알고 있을까봐 떠본 거죠."

토끼는 키득거리며 배트를 어깨까지 들어올렸다.

보고만 있어도 그 무게가 느껴질 것만 같은 육중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헤어에요. 그쪽은?"
"말해줄 의무는 없도다."
"뭐, 그러시겠… 죠!"

그리고 마치는 앞으로 크게 도약하며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방어도 회피도 하지 않은 채  붉은 눈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바라볼 뿐이었다.

"……?!"

배트가 허공을 가른다. 공격은 그녀의 머리를 그저 뚫고 지나갔다.

깜짝 놀라며 마치는 뒤로 물러났다.

'분명 감촉은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상대의 이마에서 핏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공격이 닿았다는 건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주 잠깐 충돌하는 감각이 느껴진 다음, 흡사 물을 가르는 듯한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배트가 그녀의 머리를 통과했다.

"엄청 귀찮은 상대라는 건 알겠네요. 이럴 줄 알았다면 레니 씨한테 맡길 걸 그랬어요."

심지어  조금 찢어진 상처마저 금세 아무는 것을 보고 마치는 농담을 던졌다.

"지금이라도 상대를 바꾸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노라."
"그래도 먹던 걸 남한테 줄 정도로 예의를 모르지는 않아서요."
"그렇더냐?"

하지만 상대는 그다지 감흥도 없다는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마치에게로 팔을 뻗자  손바닥에서 시뻘건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면 네가 상대하겠다는 걸로 이해하마."

순식간에 거대하게 부푼 화염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진짜 재주도 많으시네요!"

잽싸게 회피하려 했던 마치였지만 그 순간 무언가 발목을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니 연보랏빛의 사슬이 그녀의 다리에 휘감겨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이걸 떼어내고 움직이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마치는 배트를 휘둘러 날아드는 불꽃을 풍압으로 흩었다.

그 직후 힘을 주어 다리를 잡아당기자 사슬이 투둑 끊어졌다.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거의 완전히 파훼하고서 잠시 침묵에 잠겼다.

'정말이지,  이런 괴물이  있담?'

마치는 스스로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보여준 권능만 해도 방어와 재생, 화염 조작, 속박의 네 가지다.

제후 대리가 아주 칼을 갈고 나온 모양이다.

자칫하면  여자 혼자서 도시를 점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는 곧 그녀를 막지 못한다면 나머지 군대를 전부 제압해도의미가 없다는 소리였다.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마치 헤어는 다시 배트를치켜들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금  자신의 공격은 그녀를 통과했다.

다만 아주 약간의 타격이라면 분명 있었다.

'재생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연타하면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내 마치는 고개를 저었다.

전력으로 휘두른 공격을 가만히 맞고도 이마가 조금 찢어진 게 다였다.

그걸 감안하면 적어도 백 대는 때려야 치명상이 될 것이다.

대체 누가 세 자릿수의 타격을 가만히 맞아주겠는가.

"……!"

마치의 시야 한쪽에서 난쟁이가 소환된 건 고민에 빠져있던  순간이었다.

난쟁이 헬렐은 소환이끝나는 동시에 튀어나와 활을 쏘았다.

병사는 그 기척을 느끼고서 잽싸게 뒤를 돌며 한쪽 팔로 머리를 보호했다.

조금 전 마치가 공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공격은 그대로 통과해 지나갔지만 여태껏 무표정을 일관하던 그녀의 얼굴에 변화가 있었다.

"큭?!"

잠시 뒤 그 표정은 더욱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옆구리에 어느새 화살이 하나 꽂혀있었다.

마치는 잠시 당황하고 있다가 화살의 출처를 알아챘다.

병사 근처의 허공에서 무언가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 백설이 여덟 번째 난쟁이를 숨길  썼던 은신 아이템이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크게 움직이면 저렇게 일렁임이 보인다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숨어있는 것 외에는 쓸 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마 소환과 동시에 쏠 수 있도록 활시위를 미리 당겨놓은 상태로 이곳에 소환한 것이리라.

이러면 쏘기 직전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완전한 은신이 보장되는 셈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기척을 느낄 가능성을 생각하여 두 난쟁이를 서로 반대쪽에 배치했다.

"이… 비겁한 것들이!"

하지만 마치가 콜린의 영악함에 감탄하던 것도 찰나, 분노한 병사는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거대한 화염이 초승달처럼 호를 그리며 주변을 통째로 불사른다.

높게 도약하여 그것을 피해낸 마치는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두 명의 난쟁이가불타면서 갈기갈기 찢겨나가 그 시체가 송환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생각에 잠겼다.

방금의 소환으로 콜린이 확인하고자 하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 원거리 공격도 방어할 수 있는가?

둘, 자각하지 못한 공격도 방어할 수 있는가?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음에도 대처법을 생각해낸 콜린의 기지는 역시나 놀라웠다.

…물론 콜린 입장에서는 만화에서 봤던 비슷한 능력들의 대표적인 약점을 곧바로 실험해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태에서 마치에게 그걸 전달해줄 방법은 없었다.

아무튼 마치가 추측해보건대  번째 가설은 정답이었다.

그리고  공격도 몸을 돌리기 전에일단 가드를 올렸던 걸 감안해보면… 눈으로 확인한 공격만 막을 수 있다는 게 정답이리라.

거기까지 판단하고서 마치 헤어는 중력에 몸을 맡겼다.

위에서부터 떨어지며 배트를 휘두를 심산이었다.

병사는 살짝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마치를 올려다보았다. 어디 실컷 헛고생을 해보라는 투였다.

그러나 마치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추락과 동시에 무기를 휘두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자신이 할  있는 일만 제대로 한다면, 최고로 영악한 우리 참모가 반드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소용없다며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오만한 상대에게 한 방 먹여줄  있도록.

콰득!

다음 순간 들려온 것은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검은 머리칼의 병사는 마치의 배트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혈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와아……."

자신이때리고서도 마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봤다.

마치가 저 여자에게 공격을 휘두르는 순간, 콜린은 그녀의 눈앞에 무지막지하게 긴 계약서를 소환해 시야를 가렸다.

근원적 계약이라는 것은 사실상  세상의 섭리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이런 식으로 이용한다는 건 문자 그대로 상상조차 할  없는일이었고, 과장을 좀 보태자면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런 아이디어를 이 단시간에 떠올린 악랄함에는 마치도 혀를 내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비열한 행위더냐…!"

그리고 저 멀리 날아가 지면에 쳐박힌 병사는 머리가 반쯤 박살난 채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걸 맞고도 살아있다는 점은 조금 놀라웠다.

하지만 마치는 크게 염려하지 않고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계약서로 시야를 가리는 수작은 이미 들통이 났지만, 이제는 땅에  다리를 딛고 서있는 마치였다.

오히려   있는 계책의 폭은  늘어났을 게 틀림없다.

더욱이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는 상대라면 눈을 감고도 싸울 수 있다.

"윽… 젠장…! 기억해두겠노라!"

그러나  순간 병사의 몸을 검은 안개가 뒤덮었다.

뒤이어 순식간에 휙 하고 안개가 가시며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지면에 널브러진 혈흔만이 그녀가 존재했다는 증거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순간이동까지?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마치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겼다… 이겼다고요."

그 다음으로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번에 부점 길드를 공격한 적은 오백 명 하고도 플러스 알파.

그 최대의 난관이던 플러스 알파가 도망치게 만든 시점에서, 남은 것은 그저 폭격에 만신창이가 된 잔당을 정리하는 것뿐.

마치는 다시금 배트를 거머쥐고 어깨에 걸쳤다.

말도  되는 이변이 없다면 부점 길드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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