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71 Because Poe wrote on(5) (71/89)



〈 71화 〉71 Because Poe wrote on(5)

덜컹! 창문을 열고 곧바로 도약한다.

반대쪽으로 건너간 체셔는 뒤를 돌아 콜린이 무사히 따라오고 있는 걸 파악하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영주님. 길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길잡이의 본능이야!"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내달리는 보랏빛 고양이를 바라보며 콜린은 호흡을 다잡았다.

"제후 정도 되는 괴물은 사이에 벽 같은게 가로막고 있어도 얼추 보이거든!"

공감하기는 힘든 이야기였다.

대충 기운이 너무 강해서 길잡이쯤 되면 감지할 수 있다고 여기면 될까. 콜린은 그리 생각하고서 무거워지는 다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어서 체셔는어느 앞에 멈춰섰다.

"…여기인가요."
"그래."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문 손잡이를 잡고 살짝 몸을 기대며 콜린은 거칠게 숨을 토해내었다.

거리에 비하면 꽤 일찍 도착한 셈이었다.

그러나 결코 시간에 여유가 있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조차 늦은 시각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상황은 급박했다.

콜린은 아주 잠깐만 호흡을 고른  곧바로 문을 열었다.

이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큼직한 방이었다.

양쪽으로 두 개의 석조 제단이 놓여있었다.

왼편에는 사람만한 크기의 연갈색 쥐. 그 털은 상상보다 복슬복슬하고 푹신해보였다.

그 반대쪽에는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신체 여기저기에 있는 건 아마도 감겨있는 눈일 것이다.

둘의공통점은 신체에 커다란 말뚝이 박혀있었다는 점.

"…무슨 일로 온 거냐."

그리고 방 중심에는 의자가 하나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 쓴 노인이 물담배를 손에 든  연기를 내뿜는다.

자세한 상황을 설명할 시간 따위 없었다. 콜린은 냅다 방 안쪽으로 달려들어 연기를 세차게 들이켰다.

연기를 들이킨 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카티다.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상황을전달할 수 있겠지.

"……그렇군."

물론 카티라고 해서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아니었으리라.

페스트는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콜린도 그럴진대 체셔와 마찬가지로 길잡이인 카티라면 괴물이 풀려났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제후를 부활시키지 않은 건, 최소한의 주저 때문일 것이다.

페스트가 깨어났다. 이는 곧  힘을 몸에 담고 있던 마틸다에게 더 이상 생존의 가능성이 없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어차피 곧 죽게  몸이라 해도 자기 손으로 미리 죽여둔다 함은 무게감부터 달랐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여왕의 친구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를 깨우기 위해 마치의 동생을 희생시키지는 않았다.

누구의 것이든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고 생각했거나, 적어도 단순히 희생시키지는 못할 만큼 마틸다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거나 하는 것이다.

지금 콜린의 행동은 이른바 일침이었다.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행동해야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안내를 받다니, 이거 참 부끄러운 일이로군."

카티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비틀 걸어 제단으로 향했다.

꿈틀거리는 백색의 존재가 몸을 뉘인 곳으로 다가간다.

"그 계획. 확실한 거겠지?"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요."

그리고 잠시 콜린 쪽을 바라보고 물은 뒤 말뚝으로 손을 뻗는 카티였다.

까드득. 이내 시꺼먼 말뚝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아, 쥬브쥬브. 이제 슬슬 일어나라."

노인은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천천히 하얀 여왕의 신체 여기저기에 돋아나 있던 눈이 뜨였다.

[────.]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작은목소리와는 다르게 거기에는 명백한 무게감이 있었다.

"급한 상황입니다. 말씀드리는 장소로 문을 열어주십시오."

흥정은 없었다. 콜린은바로 본론에 들어가 그녀에게 부탁했다.

"페스트가 깨어났습니다."
[…하타가 결국 일을 벌였구나.]

이어진 대화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하나에  냥. 둘에  냥.]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여왕이 흉측한 입을 쩌억 벌리자 콜린의 눈앞에 새하얀 공간이 펼쳐졌다.

소용돌이를 형상화 한 것만 같은 그런 균열이었다.

[들어가거라.]
"감사합니다."

마치가 말했던 포탈이라는 게 아무래도 이것인 모양이다.

콜린은 그것을 인지하고서 곧바로 뛰쳐들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잠시 뒤를 돌아 체셔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빨리 올게요. 다들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새하얀 공간 너머로 발을 들이자 이내 찾아오는 현기증에 콜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

×

"…안 움직이네."

레니 테세오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어준다면 좋은 일이죠."

그 시선 끝에 있는 것은 페스트라 불리던 거대한 괴물.

그러나 어째서인지 당장에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레니와 마찬가지로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마치는 일단 나쁜 일은 아니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던 그녀들이었다.

그저 대치 상황이 이어질 뿐이라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수 있었다.

"젠장. 괜히 그런 소리 해서 이러나?"
"아무리 그래도 우연이겠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괴물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쩌면 조금 전까지는 막 깨어나 몽롱한 상태에 지나지않았던 것이 아닐까.

마치는 그리 생각하고서 배트를 거머쥐고 뛰쳐나갈 자세를 잡았다.

"잠깐."
"…레니?"

그러나 그녀의 앞을 금빛의 머리칼이 가로막는다. 레니가 그녀를 멈춰세운 것이었다.

"시선을 끌어야 해요.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저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군중을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

허나 페스트라는 괴이의 공포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간의 상처를 입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즉사시키며, 또한 그 괴물에게 살해당한 자는 또 다른 괴물로 태어난다.

물론 페스트의 자식에게 죽어도 괴물로 변해버린다.

그나마 감염자에게 즉사의 권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다행일까.

아무튼 그런 괴물로부터 시작되는 재앙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시선을 끌어야만 했다.

저 녀석이 다른 쪽으로 달려나가기시작한다면 방법이 없다. 몸으로 가로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유일한 방안은 이쪽을 공격하는 데 몰두하게 만든 뒤 목숨을 걸고 회피하는 정도였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들을 자각시켜야 할 마치 입장에서는 레니의 행동을 이해하기어려웠다.

"넘겨주십시오, 무기."

이어서 그녀는 마치에게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치가 들고 있는 무쇠 배트를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생각이 바뀐 거예요?"

레니 테세오. 테세우스 가의 장녀였던 존재.

설령 집안을 나왔다 해도  핏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둔기라 함은 페리프테스(Περιφήτης)를굴복시킨 이래 테세우스의 심장과도 같은 무기였다.

물리법칙을 초월한 권능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그것은, 단순한 가문의 전통 이상의 의미였다.

과장을 좀 보태서 테세우스는 오로지 둔기를 휘두르기 위해 태어난 족속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니 테세오의 주 무장은 검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레니는 검을 휘둘렀다.

수련하지 않아도 남들을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그 권능이 그녀는싫었다.

과정도 없이 오로지 결과만을 제공하는 그것은 흡사 저주와도 같았다.

물론 가문과 연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마치는 그 다짐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알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고 부점 길드는 파멸의 위기를 겪어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레니는 단 한 번도 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죽는 것보다 싫은 일'이었던 것이다.

"……."

그러나 레니는 이번만큼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마치가 조심스럽게 건네주는 배트를 꽉 쥐고선 대신 자신의 검을 넘겨줬다.

그것은 정말로 섬뜩한 희열이었다.

신체가 세포 단위에서부터 다시 짜맞춰지는 듯한 감각에 레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로  무기가 오늘 처음 쥐어본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레니는거의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배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차라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둔기를 휘두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하지만 레니는 보고야 말았다.

마치 헤어가 그녀의 동생을 포기하는 모습을.

이미 가망이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시름시름 앓다 죽게 두는 한이 있더라도,  결과 자신까지 죽어버리더라도 할  없는 선택은 있기 마련이었다.

마치라는 여자에게여동생은, 레니에게 있어무기와 같은 것이라고 확신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동류의 직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치는 타인을 위해   물러섰다.

레니라 해서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먼저 돌입하겠습니다."

레니는 배트를 들어올리고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


그것은 전투라기보다 광기의 표출에 가까웠다.

짙은 검은빛에 물든 하늘 아래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두른다.

날아드는 발톱을 아슬아슬하게 배트로 흘려내고 뒤로 도약한다.

금속제 배트에서 섬뜩한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아직 버티고 있는 그 무기를 힐끔 바라보고 레니는 다시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저 거구의 공격을 배트  자루로 버텨내며 무기를 온존할  있던 건 말도 안 되는 수준인 그녀의 기술 탓도 있었지만, 본래 무기가 튼튼한 탓도 있었다.

일단 마치의 주 무장이기도 했던 물건이다. 아이템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무기 중에서는  상등품에 속하겠지.

그리고 그 물건의 주인은 레니가 물러났던 타이밍에 딱 맞춰 도약했다.

마치는 괴물의 등 위에 올라타 검으로 그 가죽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시커먼 안개는 금세 상처를 메워버린다.

"…쯧."

그래도 확실히 통증은 있는지 팔을 붕 휘둘러 마치를 공격해오는 페스트였다.

마치는 급하게 몸을 던지며 지면을 굴렀다.

당연히 신체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저 괴물에게 얻어맞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스치면 죽는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효과지만, 그걸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선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실상 모든 공격을 회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쪽에 시선을 돌리지 않게 최소한 '거슬리는' 정도의 타격을 입힐 필요가 있었다.

잠깐의 흐트러짐이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었다.

괴물의 팔이 레니에게 내리꽂힌다.

"집중해, 멍청이!"

그러나바로 다음 순간 뒤에서 뛰어든 백설이 그녀를 밀쳐낸다.

페스트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낸  아니었음에도  육중한 발톱에 왼팔이통째로 뜯겨나간다.

"끄윽…!"

솟구치는 혈액.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저 괴물의 공포는 단순한 질량으로 그치지 않는다.

[Nevermore]
[Nevermore]
[Nevermore]

시뻘건 글씨가 백설의  피부에 새겨진다.

 정확하게는, 신체 여기저기에 알파벳의 형태로 상처가 벌어진 것이었다.

백설은 온몸을 부여잡고 고통 속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뒤지게 아프네 진짜!"

그나마 불사의 권능을 가진 백설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 상태로 죽어버렸으리라.

백설은 두 번째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떨어진 팔을 주워서 뒤로 도망쳤다.

아무리 그녀라 해도 곤죽이 되어서까지 재생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은 없었다.

레니는 그녀의 퇴각을 확인하고서 교대하듯 페스트에게 달려들었다.

괴물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복부에 배트를 휘두른다.

빠각! 흉악한 소리와 함게 괴물의 복부가 터져나갔지만, 동시에 배트도 쪼개져버리고 만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편이지…….'

레니는 곧바로 배트를 포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뒤, 쪼개진 배트를 괴물의 피부 아래에 박아넣고 다시 뒤로 크게 도약하여 반격을 피해냈다.

"…레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마치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어쩐지 페스트를 휘감고 있는 아지랑이가 조금 기이한 형태로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흡사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은…

"……안젤리나?"

그리고 레니는  너머에 있는 인물을 알아차리고서 무심코 중얼거렸다.

 마리의 해골마가 이끄는 마차. 그 외형은 실상 이륜전차에 가까웠다.

"레니 언니!"

저쪽에서도 그녀를 알아차린 것인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콜린은 분명  짐승을봉인할  있는 인물을 데려온다고 말했다.

어째서 안젤리나인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안젤리나가 지금 수도에 와있다는 건 콜린이 그녀를 '비장의 수'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안젤리나, 조심해!"
"으?!"

직후에 페스트가 고개를  젖히고서 부리로 안젤리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마차를 몰아 괴물의 일격을 겨우 피해냈다.

여태껏 공격을 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타깃을 바꾸었다.

그것은 분명 안젤리나에게 위협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증명이리라.

"일단 도망치면서 잡아먹으면 되는 거죠?!"
"나도 몰라! 일단 콜린한테 들은 대로 해봐!"

다그닥. 이윽고 안젤리나는 급하게 마차를 몰아 달려나갔다.

괴물이 그 뒤를 따르며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레니! 아무래도 엄호를 해줘야 할 거 같은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으,  고기방패 역할이야?!"

조금 전까지 괴물과 맞서고 있던 세 사람은 급히  뒤를 따랐다.

"마치 씨는 난쟁이의 권능도 받아왔으니 민간 대피 위주로 해주세요!"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레니!"

페스트의 끔찍함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제일 두려운 것은 괴물의 권능이 감염된다는 점이었다.

괜히 그녀들이 목숨을 걸고 괴물을 잡아두려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명백히 안젤리나라는 타깃이 결정된 이상 상황이 바뀌었다.

레니나 마치처럼 괴물 상대로도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정도라면 모를까, 안젤리나로서는 전력으로 도망치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어? 잠깐, 레니 테세오? 아니, 레니 테세오 님?"

우선 지금 시점에서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수밖에.

레니는 속으로 그리 중얼거린 채 백설의 뒷목을 붙잡았다.

"으가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대로 냅다 집어던져 안젤리나를 공격하려는괴물의 머리통을 명중시켰다.

…백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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