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마탄-3 행성]
피터 일행을 태운 수송선은 어느 행성의 대기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수송선의 선체가 대기권에 의해 빨갛게 달아올랐고, 흔들리고 있었다. 좌석에서 짧은 잠을 청하던 사람들은 수송선이 흔들리는 충격에 모두 잠이 깨버리고 말았다. 코리 맥코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선체가 요동치자 잠에서 벌떡 깨어났다.
"우왓! 뭐야?"
피터와 에리는 이미 창밖으로 대기권을 진입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당황하지 않고 코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 대기권에 진입 중이야.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다고."
"그래? 그럼 이제 진짜로 다 왔다는 소리잖아..."
잠깐의 충격 끝에, 수송선은 부드럽게 행성에 착륙했다. 엔진에서는 하얀 매연을 쉬이 뿜어냈다. 수송선은 누가 보아도 군 부대로 보이는 곳에 착륙하고 있었는데,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 2명과 지휘관으로 보이는, 망토를 걸친 이가 수송선에 접근하고 있었다. 수송선에서 내린 파일럿은 지휘관에게 경례를 했고 대충 경례를 받아들인 지휘관은 수송선에 올랐다. 사람들은 갑자기 수송선 안으로 들어온 사내에게 이목이 집중되었고, 사내는 무서운 표정과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반갑다. 훈련병들. 여기는 마탄-3 행성의 로스토크 훈련소다. 너희들은 여기서 6개월 간 버티기 힘든 훈련을 받고 이 행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투입되게 되겠지! 이곳에서는 너희에게 살아남는 방법과 무언가를 죽이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징병 대상자들, 아니 훈련병들은 잔뜩 겁 먹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들이 위험한 곳에 왔다는 사실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훈련병들에게 지휘관은 더 큰 목소리로 대답을 요구했다.
"대답이 아예 없군. 겁 먹기라도 했나? 겁쟁이들만 온 건가? 다들 이제 수송선에서 내려! 바로 훈련소로 이동한다!"
지휘관은 그 말을 남기고 같이 왔던 병사 2명과 함께 내렸다. 훈련병들도 우물쭈물 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피터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코리는 인상을 팍 구기며 혼자 투덜거렸다.
"쳇, 누가 겁쟁이라는 거야?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니까 그런 거지."
"됐어. 어서 내리자고. 괜히 늦게 내렸다가 불이익이라도 당할지 몰라. 여긴 군대니까..."
"그래그래. 빨리 내리자."
느릿느릿 내리는 사람들을 피터 일행은 재빨리 일어나 그들을 따랐다. 수송선은 꽤나 거대했기에, 기나긴 복도를 걸어야만 했다. 코리가 얼마나 줄이 긴 거냐고 불평하려는데, 갑자기 그들의 옆에 닫혀있던 입구가 기잉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수송선은 앞 뒤 뿐만이 아닌 양 옆으로도 내릴 수 있던 것이었다. 코리는 불평하자마자 열린 문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피터와 에리도 고개를 끄덕이고 게이트로 내렸다.
"콜록콜록! 뭐야, 이 먼지바람. 게다가 눈부셔! 여긴 태양이 뭐이리 밝은거야!"
그들이 수송선에서 내렸을 때, 그들은 수많은 타 수송선들도 오르락 내리락하며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송선에 의해서 먼지 바람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피터는 저들도 자신처럼 훈련병이 된 운명이지 싶었다.
수송선에서 하차한 사람들이 쭈뼛쭈뼛 서 있자, 아까 보았던 지휘관이 권총을 하늘로 쏘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었기에, 말 보다는 행동으로 대신 한것 같았다.
"자. 이제부터는 나를 따라 와라. 여기서 400m 가량 떨어진 곳에 로스토크 훈련소가 있으니."
지휘관은 병사 2명에게 손짓하여 훈련병들을 4줄로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이동하라는 말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건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피터 일행은 앞 쪽 라인에 껴 이동하고 있었는데, 피터는 그들과 이동하면서 문득 포격 소리나 총격음을 들은 듯 했다. 아주 멀리서 들렸지만, 피터에게는 그것이 진정 전쟁터의 소리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지휘관이 이끄는 훈련병들의 대열이 건물 앞의 거대한 개활지에 도착하자, 지휘관은 병사들을 더 불러 훈련병들을 가로로 긴 대형을 만들게 시켰다. 그는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좋아.너희들은 이제부터 연방군에 소속된 훈련병들이다. 더 이상 민간인이 아니며, 자신의 행동이 연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있음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알겠나?"
하지만 훈련병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모두가 긴장해서였을까.
"체감이 잘 되지 않나보군. 짐을 모두 자신의 앞에 내려놔"
지휘관에 말에 훈련병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로 갖고 온 가방이나 짐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마지막 훈련병까지 짐을 내려놓자, 지휘관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뒤에 거대한 개활지가 보이나? 그럼 뛰어!"
지휘관에 말에 훈련병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휘관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욕설과 소리를 질러대며 빨리 움직이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뭐해! 움직여! 달려! 씨팔놈들! 여기가 너희들 아양이나 받아주는 곳으로 보이냐? 달려! 어서!"
훈련병들의 가로로 된 대열은 무너져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지 않으면 완전 무장한 병사들의 주먹질과욕설, 심지어는 소총의 개머리판이 날아오는 상황이었다. 훈련병들은 이제 전부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장한 병사들은 옆에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뛰어! 뛰어!"
얼마나 뛰었을까? 해는 뉘엿 뉘엿 지고 있었다. 헬레헤시 구역의 인공 태양은 매우 밝아서 석양이 지는 상황에도 다른 곳보다 훨씬 밝고 더웠긴 했지만. 훈련병들은 몇 시간을 달린지 이젠 잊어먹었다.피터나 에리, 코리도 헉헉대며 언제 멈출 지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무장한 병사들은 땀을 조금 흘리며 헉헉댈 뿐, 훈련병들처럼 녹초가 된 모습은 아니었다.
마침내 선두의 한 훈련병이 다리가 풀렸는지 질퍽한 흙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도통 일어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다리가 풀려서인지 일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보였다. 피터가 그에게 다가가 부축을 해주려고 하자, 병사 한 명이 피터를 거세게 밀쳤다.
"으윽!"
"뭐하나! 훈련병! 자신의 길은 자신이 만드는거다!남이 돕는게 아니야! 너는 달리기나 해!"
"피터!"
에리가 피터에게 다가와 넘어진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피터는 괜찮다며 혼자서 일어섰다. 에리는 피터를 밀친 병사를 흘깃 째려보았다. 병사는 웃기지도 않다는듯 뒤를 돌아 쓰러진 선두의 훈련병을 붙잡고 소리쳤다.
"뭐해! 일어나! 어서! 여기서 굼벵이처럼 누워만 있을거냐? 전쟁터에서 이렇게 죽은 척을 하면 살아날 수 있을거라고 믿는거냐? 일어나! 멍청한 새끼!"
문제의 훈련병은 다리를 벌벌 떨며 일어났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병사는 그런 훈련병을 보고 고갤 한번 끄덕이고 다른 대열의 훈련병들에게 달려갔다. 다시 또 몇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병사들이 훈련병들을 멈추게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숨을 고르며 땅에 드러눕고, 병사들이 가져다 준 물을 마시고 울꺽울꺽 다시 토해내는 자도 많았다. 하지만 피터와 코리, 에리는 크게 헉헉대도 땅에 드러누울 정도로 고통스럽진 않았다. 피터와 코리는 이것보다 더 힘든 밭일을 해왔던 사내들이었으니. 이만큼 넓은 밭을 내달리고 갈아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에리는 왜였을까. 어떻게 달리기 도중 한번도 멈추지 않고 피터 옆에서 같이 달렸단 말인가. 피터는 나중에 그녀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는 훈련병들에게 아까의 지휘관이 망토를 휘날리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는 파이프 담배를 끄고 훈련병들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기분이 어떤가? 이젠 더 이상 민간인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 텐데?"
훈련병들은 이젠 바보가 아니었다. 누가봐도 지휘관의 말은의도가 있었다. 훈련병들은 작은 목소리지만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듭니다..."
지휘관은 큭큭 웃더니 훈련병들을 전부 일으켜 세웠다. 그는 다시금 저 멀리 큰 건물을 손가락질 하더니 저게 이제 너희들의 내무반이자 집이라고 말했다. 지휘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물은 똑같이 생긴 다른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저 건물엔 20개의 내무반에 각각 32명씩 생활할 수 있으니 원하는 내무반에 자리를 잡으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연방에서 주는 조그만 자유라면서. 코리는 피터에게 다가와 지휘관에게 안 들리도록 속삭였다.
"지랄. 존나게 조그만 자유네."
"뭐, 어때."
지휘관의 명령으로인해 건물로 이동하는 훈련병 대열은 정말 길었다. 건물 하나에 600~700명 가량의 병사가 생활할 수 있으니, 건물 만큼 커다란 대열이었다. 피터는대열에 맞춰 이동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몰매를 맞으며 더욱 훈련을 하는 자들을 보았다. 분명히 수송선에서 한 두번 마주쳤던 사람들 같았다.
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자신 바로 옆에서 걷는 병사에게 질문했다. 병사는 그를 아니꼽게 쳐다 보았지만, 이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저건 뭡니까? 왜 더 훈련을 받는 겁니까?"
"흠. 저건 아까 구보 때 낙오된 자들이야. 끝까지 따라오지 못하고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했거나 달리기를 중지한 자들이지. 그런 자들은 저렇게 훈련을 더 받는다. 이제 다시 대열에 합류해서 걷도록. 질문은 웬만해선 금지되어 있어."
어느덧 내무반 건물에 도착한 지휘관과 훈련병 대열은 지휘관에 명령에 멈춰섰다. 지휘관은 그들을 돌아보며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말했다.
"자, 훈련병들. 안으로 들어가 원하는 내무반을 고르기 전에, 한 가지 말할 것이 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징병은 남녀 할 것 없이 반반 정도로 선택된다. 결국 너희들 중에 이성이 섞여있단 뜻이다. 연방군은 부대내의 이성끼리 내무반을 허락했다. 뭐 너희들이 사랑을 나누든 말든, 여기서 생긴 애들은 부대 내의 화이트 아미들이 되니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피터는 모든 성별이 징병을 당했으니, 생활할 내무반도 그렇겠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리는 달라보였다. 녀석은 헤벌쭉하며 여자들이랑 같이 생활하는 거나며 피터에게 기쁨을 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