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격투 훈련 2]
훈터 교관은 격투 훈련을 끝낸 훈련병들을 집합시켰다. 대열을 이뤄 앉아있는 훈련병들은 격투 훈련 전 벗어버린 군장을 다시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훈터는 훈련병을 둘러보곤 자신의 글라디오를 꺼냈다. 훈련병들이 생존 훈련 교관 로케스에게서 받은 글라디오를 드디어 활용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훈터는 자신의 글라디오를 꺼내 아까 격투 훈련 중 사용하던 허수아비를 베어버렸다. 1번, 2번, 3번의 공격으로 허수아비는 4등분이 나 땅바닥에 뿌려졌다.
"봤지? 글라디오는 이런 허수아비 정도야 그냥 베어버린다. 물론, 너희들이 전장에서 베어야 할 것은 같은 인간이나 괴물딱지 같은 것이겠지. 이런 허술한 허수아비 따위가 아니라. 하지만 훈련은 훈련이니까. 뭐, 너희들이 검술을 기른다면 전장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당연히 높아지겠지. 질문 있나?"
누군가 손을 들었다. 훈련병들은 손을 든 자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아까 전의 대단한 격투를 보여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손을 든 자는 에리와의 격투 훈련 도중 패배해 재생제를 2방이나 투여받은 피터였다.
"음, 아까 오지게 쳐 맞고 의료실에 실려간 훈련병인가. 무슨 질문이지?"
피터는 자신이 궁금한 점을 그대로 질문했다.
"교관님! 왜 격투 훈련인데, 검술을 배우는 겁니까?"
"타당한 질문이군?"
훈터는 허수아비를 벤 글라디오를 칼집에 꽂아넣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야. 연방군에서 검술은 공식적인 격투술 중 하나라고 규정했거든. 총검술이나 로쉐 장갑을 이용한 것도 격투술이다. 질문은 끝?"
훈터의 참으로 간단명쾌한 대답에 피터는 잠시 쭈뼛거렸다. 그로서는 또 다시 의문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로쉐 장갑은 또 뭐람.
"죄송합니다만, 교관님. 로쉐 장갑은 뭡니까?"
"그거? 그거는 오늘 검술이 끝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텐데, 간단히 설명하면 너희들의 주먹을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무기다. 궁금증은 어느정도 해결됐나?"
"네. 감사드립니다."
"좋아. 그러면 다시 검술 훈련을 시작하겠다. 너희들이 여기 처음 왔을 때 진절머리나게 맨손으로 때렸던 허수아비들 기억나나? 때려도 때려도 가죽이 찢어지거나 터지기는 커녕, 너희들의 손이나 다치고 피가 흘렀지. 이제는 간단한 복수를 해 줄 시간이다. 허수아비들 앞에 서."
"네!"
훈련병들은 차례차례 처음 왔을 때 처럼 허수아비들 앞에 섰다. 이번에는 그들에게 글라디오가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지만.
"자, 글라디오를 뽑아라!"
훈터의 명령에 훈련병들 전원이 글라디오를 일제히 뽑았다. 쉬잉하며 칼날이 칼집에서 미끄러지는 소리도 동시에 울려퍼졌다.
"어차피 너희들의 간격은 넓다. 글라디오를 던지지만 않는다면 마음껏 휘둘러도 돼. 그러니 단 3번으로 허수아비를 4등분 해 바닥에 굴러다니게 만들어라. 실시!"
검술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피터와 에리, 하겐과 칼리브레, 그리고 이름모를 훈련병의 허수아비는 4등분이 나 땅바닥에 떨어졌다. 2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훈터는 허수아비를 순식간에 베어낸 5명을 보며, 검술에 재능이 있는 자들이 있는 것을 기뻐했다. 그는 훈련병들의 검술을 잠시 중단시키곤 재능 있는 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 이름이 뭐지? 아까 나에게 질문 해 왔던 훈련병이로군."
"1중대 4소대 훈련병 피터 메이슨 입니다!"
"좋아. 피터 메이슨."
훈터는 다음으로 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1중대 4소대 훈련병 에리 캐트 입니다."
"에리 캐트라. 큼..큼.."
에리의 눈에는 왠지 교관이 웃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자, 그럼 너네 둘은?"
"1중대 4소대 훈련병 로스터 하겐 입니다!"
"1중대 4소대 훈련병 칼리브레 칼 입니다."
"좋아. 좋아. 4소대에는 꽤 뛰어난 녀석들이 많군. 마지막으로 너는?"
"1중대 1소대 훈련병 마리 앵겔로이 입니다."
"4소대는 아니군. 1소대에도 재능 있는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구만."
훈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훈련병들은 마리를 쳐다 보았다. 마리는 잠시 시선이 쏠리자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운 듯 군화를 땅에 비볐다.
"다른 훈련병들도 지금 말한 5명을 본받기 바란다. 너희들이 고작 한두 번 베어낼 때, 이 녀석들은 3번을 벤 뒤 검을 쉬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의 실력이면 전장에서 괴물딱지들이 근접 해 온다고 해도 그리 위급하진 않을거다. 그럼. 허수아비를 다시 갈아줄 테니 훈련 시작해!"
말을 끝낸 훈터는 품에서 태블릿을 꺼내 툭툭 두들겼다. 그러자 허수아비들이 끼익 소리를 내며 젖혀지더니 곧이어 새 허수아비들이 쑥 올라왔다. 마치 사격 훈련 때의 표적지들 같았다.
"자, 허수아비들은 모두 교체 됐으니, 다시 훈련 시작해."
쉭. 쉬익. 써걱.
훈터가 허수아비를 교체 해준지 3초도 안 되어 5개의 허수아비가 4등분이 나 땅을 구르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허수아비는 6등분이 나 있었다. 누군가가 5번이나 베어버렸다는 뜻이었다. 훈터는 이 광경에 적잖게 놀라 태블릿을 품에 쑤셔 넣었다.
"누가 4번이나 벴지? 누구야? 대체 이런 실력을 가진 놈이 누구냐고."
"접니다. 제가 벴습니다."
"1중대 4소대 훈련병 피터 메이슨... 너로군."
"네 녀석은 검술 훈련 제외다. 지금부터 쉬어도 좋다."
피터는 훈터에게 목례를 건네고 글라디오를 칼집에 꽂았다. 그러고선 자리에 앉아 휴식하기 시작했다. 훈련병들은 대부분 그를 부럽게 쳐다 보았다. 단 두 사람. 에리와 마리를 빼고. 에리는 그를 은근히 자랑스레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격투술이 뛰어나고, 피터는 검술이 뛰어나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 같았다.
마리는 그를 보며 약간 경이로움을 느꼈다. 마리, 그녀는 세르우스 구역에서 나고 자란 검술 가문의 딸로 검술에는 언제나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피터 같이 월등한 실력을 지닌 자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물론 경외의 마음 뿐 만이 아닌, 두근거리는 알 수 없는 마음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검술을 익히는 자에게는 검술이 뛰어난 자가 호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뭘 보나. 허수아비 교체할 테니 다시 시작해."
훈터는 휴식을 취하고 싶어 부러운 눈으로 피터를 쳐다보는 훈련병들을 다그쳤다. 그는 훈련병들이 병사로서 적당한 검술을 익힐 때까지는 훈련 시간 내내 계속할 생각이었다.
훈련병들은 훈터의 허수아비 교체에 맞춰 베고, 또 베고, 베고, 썰고, 찌르고, 휘둘렀다. 글라디오는 수십 개의 허수아비를 썰어 버리고도 날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을 즈음, 훈터는 검술 훈련을 종료했다.
"자, 끝! 끝! 검술 훈련은 여기서 종료다."
"와아-"
"녀석들. 아직 격투 훈련이 하나 더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좋아하기는."
"......"
"글라디오 다 집어넣고, 집합 해, 마지막 훈련을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너희들에게 선물을 하나 주려고 한다."
"와아-"
"그래봤자 글라디오 같은 무기야. 바보들아. 먹는 것도 아닌데 엄청 좋아하는군."
"......"
"이쯤에서 소개해야겠지. 로쉐 장갑이다. 아까 피터가 질문했을 때 간단히 설명해줬던 무기지. 이 무기는너희들이 진정한 의미의 '격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기다."
훈터는 품속에서 딱 봐도 단단해 보이는 기계가 잔뜩 붙어있는 장갑을 꺼냈다. 그는 장갑을 들어 훈련병들에게 한 번 보여주고는 자신이 쓱 착용했다. 그리고 그는 장갑을 낀 주먹을 허공에 쌩쌩 휘두르기 시작했다. 주먹이 얼마나 빠른지, 살짝 잔상이 보일 정도였다.
"보이나? 로쉐 장갑은 착용자의 격투 능력을 올려주는 무기다. 내가 맨주먹을 휘두르면, 당연히 잔상 같은 건 나오지 않아. 그건 너희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간단히 주먹을 휘두르는데도 잔상이 보일 정도지? 로쉐 장갑은 이런 것이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한 훈련병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훈터는 대답대신 자신의 옆에 있는 허수아비를 주먹으로 여러번 가격했다. 허수아비는 순식간에 찢어지고 터져버렸다. 훈터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허수아비를 가리키더니, 훈련병들을 쳐다 보았다.
"봤지? 그렇게 힘을 담지도 않았는데, 허수아비가 몇 번 맞더니 터지고 찢어졌다. 그래. 너희들이 지금 알아챘듯이 로쉐 장갑은 주먹의 속도와 파괴력을 끌어올려주는 무기다. 힘을 담아치면, 그만큼 주먹의 파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지. 자, 이제 장갑을 배부하겠다."
지금까지의 훈련 중 배부할 것이 없어 지켜만 보고 있던 병사들에게 훈터가 고갯짓으로 명령했다. 병사들은 목례를 하고 자신들 뒤에서 가만히 기다리던 보급상자를 질질 끌고 왔다. 병사 한 명이 보급품 상자를 열자, 나머지 병사들이 로쉐 장갑을 1켤레 씩 배부하기 시작했다. 로쉐 장갑의 배부가 끝나자, 훈터는 앉아있던 훈련병들에게 일어서라고 말했다.
"일어서라. 여기서는 로쉐 장갑을 이용한 훈련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반대편의 훈련장으로 넘어간다."
훈터는 뒷짐을 지고 앞장섰다. 훈련병들은 쫄래쫄래 그의 뒤에 대열을 맞춰 따랐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한 훈련병들은, 이번에는 금속으로 된 허수아비들이 잔뜩 나열 되어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금속이니 허수아비가 아니라 철제 인형인가.
"여기서 맘에 드는 허수아비를 골라 서라. 그 후 보급 받은 로쉐 장갑을 착용해 훈련 준비를 마쳐라. 실시!"
명령에 따라 로쉐 장갑을 착용한 훈련병들은 아직 주먹을 휘두르지도 못했지만 왜인지 자신의 주먹이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재빨라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훈련이 시작되자, 그 느낌은 사실 진짜였던 것에 많은 훈련병들은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전부 로쉐 장갑을 착용했겠지. 그렇다면 이제 마음껏 휘둘러라. 마음껏 휘둘러서 너희들 앞에 있는 철제 인형들을 때려 부숴봐라. 시작!"
훈련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빨라진 주먹을 체감하며 철제 인형들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너무 약하게 때리거나 너무 강하게 때려 금방 지치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이번에도 한 명은 달랐다. 로쉐 장갑을 장착한 펀치 한 방으로 철제 인형의 상체를 조각조각 박살 내 버리고 하체까지 뭉개버린 이가 있었으니, 그 자는 바로 에리 캐트였다. 에리의 옆에 있던 코리와 피터는 그녀의 위력적인 펀치에 사고를 정지해 버릴정도였다.
"이, 이야. 아무리 장갑을 끼고 있다지만... 단 한 방에 철제 인형을 부숴 버리다니.. 피터. 넌 저런 녀석이랑 어떻게 싸운거야?"
"나, 나도 몰라. 임마. 무서워."
상체가 조각조각 박살 난 철제 인형을 보며 굳어버린 두 사람에게 에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휴우.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야."
"스트레스?"
"그래. 피터. 네가 아까 때린 그 스트레스. 방금 여기서 풀어서 개운해."
"...(존나게 무섭잖아. 나는 저런 건 못 해.)"
"흐흐. 그렇지만 에리, 내 스피드는 따라 올 수 없을 걸!"
"뭐?"
주눅이 들었던 코리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에리에게 말했다. 에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보여주지. 주먹의 속도란 이런 거라고!"
코리는 자신이 때리던 철제 인형 앞에 똑바로 섰다.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 듬고는 철제 인형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코리 자신이 생각하기에 멋지다고 생각되는 기합 소리와 함께.
"후바후바후바후바후바후바후바후바후바!!! 후--바앗!"
마치 기관총 소리와 비슷한 타격음이었다. 그만큼 코리의 난타 속도가장난 아니라는 뜻이었다. 코리가 마지막으로 외친 기합에 철제 인형은 온 몸이 구겨지고 찢어지고 박살이 났다. 그는 온 몸이 찌그러져 땅바닥에 나뒹구는 철제 인형을 보고 간딘히 인사를 날리며 말했다.
"Au revir.(어후브아)"
"마지막 말은 멋지긴한데.. 후바가 대체 뭐야? 그리고 마지막 말이 멋지다곤 하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어."
에리가 그를 보곤 어깨를 으쓱하며 내놓은 답변이었다. 그녀도 코리의 알 수 없는 기합 소리를 웃기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지, 약간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아니, 너희들 Au revir도 몰라? 고대 인류가 인사할 때 쓰던 말이래. 잘가였나? 우리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지. 발음은 어후브아! 그래서 나는 후바후바를 내 기합소리로 정했어. 적을 기합과 함께 쓰러트리고 나면, Au revir로 기합을 끝맺는 거지!"
"그래. 그래... 너 멋지다."
그녀가 코리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정말로 한심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그녀는 코리의 난타가 꽤 나쁘지는 않았는지, 한 마디를 덧붙여주었다.
"그래도 주먹으로 난타하는 속도는 봐줄만 했어."
에리의 칭찬에 피터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기합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