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첫 천투와 첫 사망자]
"이제 출발하랩니다. 소대장님."
운전병이 케일에게 와서 살짝 말하고는 조종석으로 돌아갔다. 케일도 그가 조종석에 앉자 자신의 헬멧과 매니셉 방탄복을 다시금 고쳐 입었다.
수송선은 이미 오레스 01 행성에 완전히 안착해 있었다. 비록 행성 대기권을 돌파하다 포자 발사체에 공격받아 이곳저곳이 찌그러지고 녹아 있었지만, 비행을 할 수는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수송선은 H-100 수송차량들이 수십대는 타고 있는 격납고의 문을 열어주어 그들의 타이어가 지표면을 밟을 수 있게 해 주었다.
H-100 수송차량들은 수송선을 벗어나 지표면을 밟고 흙먼지를 일으켰다. 알케인 A-22와 A-23에서 내린 100대의 수송차량들은 총 4000명의 병사들이 탑승해 있었다. 수송선들은 수송차량들이 전부 내리자마자 쿠웅하는 소리를 울리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다음 병사들을 수송해야하는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송선들이 상공으로 날아오르자, 공중의 적을 공격해 요격하는 포자 발사체들이 다시금 산성 포자를 뿜어대 날리기 시작했다. 알케인 A-23은 운좋게 그들의 공격에서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진입을 성공했으나, 불행히도 알케인 A-22는 요격당하여 선체에서 폭발이 일고 있었다. 산산조각난 알케인 A-22의 파편이 땅에 떨어져 수송차량 몇대를 파괴해버렸고, 그 수송차량 안의 병사들은 총 한 번 쏴 보지 못하고 전원 즉사하였다.
"우와악!"
"무슨 일이야?!"
케일의 소대가 타고 있는 수송차량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운전병이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크게 돌리자, 수송차량이 기우뚱하며 움직였다. 케일이 운전병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운전병은 말없이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차창 밖의 상공을 가리켰다. 상공에는 아직 덜 파괴된 알케인 A-22가 파편을 지상으로 흘리며 파괴되고 있었다. 곧이어 거대한 선체의 머리를 땅으로 향하며 떨어지는 알케인 A-22는 땅에 닿자마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땅이 울리고 굉음이 퍼져나갔다.
"으윽!"
수송차량의 병사들은 굉음이 울리자 귀를 막고 신음소리를 냈다.
"제길... 이렇게 되면 돌아갈 수는 없겠군."
케일이 혀를 차며 알케인 A-22의 폭발을 지켜보았다. 알케인 A-22의 폭발에, 벌써부터 티스 군단의 플라이어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며 수송차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은 아가리에서 폭발성 구체를 뱉어내, 수송차량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와아악! 뭐야?!"
운좋게 폭발성 구체를 피한 케일의 차량은 다시 한 번 기우뚱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파괴될 것이 분명했다. 케일은 결의를 다지며 소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주목! 우리는 지금 티스 놈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간 수송차량이 공격되어 폭발해 전원 즉사하거나 뒤집어진 수송차량에서 놈들을 막다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전에! 나는 놈들에게 반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케일은 자신의 좌석 뒤에 있는 사다리를 가리켰다. 그 사다리는 해치까지 연결되어, 사다리를 타고 해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해치를 열고 나가면, 파쇄 기관총 한 대가 있다. 그 파쇄 기관총은 맞추기만 한다면 플라이어들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지. 나는 사다리를 타고 해치 밖으로 나가 놈들을 저지할 것이다. 나와 같이 갈 자가 있나?"
말을 끝낸 케일은 자신의 소대원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소대원들 중 몇몇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케일은 그들의 가슴팍에 있는 이름을 읽고는 따라오라며 턱으로 사다리를 가리켰다.
"피터. 하겐. 에리. 루크. 코리. 순. 6명인가? 좋아. 따라와라. 나머지는 부상자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교대를 준비하거나 장비를 한 번 더 점검해. 그리고 너는 이거 받아."
케일이 유탄 발사기와 유탄 몇 발을 하겐에게 건넸다. 하겐은 레이져 응축기를 빼내 더플백에 집어넣고 유탄 발사기를 총기에 장착했다. 케일이 사다리를 타고 해치를 열었을 때, 폭발성 구체가 주위에 떨어져 수송차량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해치를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뭐해? 움직이자! 소대장님이 먼저 나갔잖아!"
피터는 동기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그는 케일 다음으로 사다리를 올랐다.
"네가 가면. 나도 가."
에리도 피터를 따라 사다리를 올랐다.
"가자고, 코리! 루크! 순!"
"응!"
"그래."
"엉."
6명과 케일은 수송차량의 위에서 일단 균형을 잡았다. 케일은 순에게 파쇄 기관총을 가리키며 집으라고 외쳤다. 순은 총을 뒤로 매고 파쇄 기관총을 잡았다.
"순! 우리가 위치를 잡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 피터를 비롯, 나머지는 나를 따라 위치를 잡고 플라이어를 향해 사격해!"
"예!"
순의 파쇄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파쇄탄이 플라이어 몇 마리를 고깃조각으로 만들어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순은 계속해서 수송차량 주위에 달라붙으려고 하는 플라이어를 향해 기관총을 갈겼다. 이에 질세라 케일과 5명의 소대원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날아다니는 플라이어를 향해 사격했다.
"플라이어는 구체를 뱉기 전의 아가리나 날개가 약점이야! 이 두 곳을 집중적으로 노려!"
"예!"
플라이어 한 마리가 코리를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다들 다른 곳을 보고 있었기에, 코리는 영락없이 탐욕스러운 아가리에 찢길 위험이었다. 피터가 그를 돕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으나 탄약은 다 떨어져 틱틱 소리만이 울렸다.
"안 돼!"
코리가 물리기 바로 직전,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들어와 플라이어의 머리를 짓이겨 놓았다. 플라이어는 쿠엑하는 추한 단말마를 내지르고는 땅을 굴렀다. 코리는 순간적인 충격에 자빠져 있었고, 피터는 탄창을 교체한 뒤에 그에게 달려가 일으켰다.
"괜찮아?! 대체 누가 구해준 거지?"
"저, 저기인 것 같은데."
코리는 떨리는 손으로 다른 수송차량을 가리켰다. 피터가 그의 손가락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자, 다른 수송차량 위의 어느 병사가 손을 흔들었다.
"다른 녀석들도 나와서 싸우고 있는 거야!"
"휴우..."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플라이어가 쏜 폭발성 구체에 코리를 구해준 수송차량의 병사들이 직격당했다. 수송차량은 대파되어 몇 번을 구르더니, 뒤집어졌다. 당연히 수송차량 위에서 교전하던 병사들은 즉사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이 온몸에 불이붙어 고통스러워하며 차량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피터는 충격에 굳어버렸고, 코리는 눈을 감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이팔.... 말도 안 돼.."
"너희들 뭐해! 다음 놈들이 온다! 준비 해!!"
충격에 굳어버린 둘에게 케일이 윽박지르자 정신을 차린 피터는 다시금 하늘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플라이어 하나가 그의 총격에 의해 가슴팍에 구멍 수십개가 뚫린채 땅에 떨어졌다. 코리도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파쇄 기관총에게 달려드려는 플라이어를 향해 레이져 탄환을 쏘아 머리를 녹여버렸다. 하지만 플라이어는 파쇄 기관총을 진득하게 노리고 있었다. 파쇄 기관총은 플라이어를 쉽게 제압할 만한 무기였기에, 플라이어들도 경계를 하고서 파쇄 기관총의 화망을 피하고 있었다.
"순! 조심해!"
케일이 날아오는 폭발성 구체를 보고는 순에게 소리쳤다. 순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폭발성 구체를 보고는 최대한 빨리 반응해 파쇄 기관총을 난사했다. 운좋게도 폭발성 구체에 파쇄 기관총의 총탄이 닿자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것은 나머지 인원들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순에게는 불행이었다.
"아악!! 으악!!! 으아아아아아아악!!!!!!!!!"
공중에서 폭발한 구체는 수송차량과 케일을 포함한 5명의 소대원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했으나, 폭발에서 가까웠던 파쇄 기관총과 순에게는 큰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폭발의 여파로 불이 붙은 순이 기관총에서 떨어져 나와 수송차량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의 살갗은 순식간에 불타올라 새까매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럼에도 그을리는 격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하겐이 불타는 그를 보며 절망했다.
"순!! 순!!!!"
코리도 그에게 손을 뻗으며 달려나가려 했지만, 피터가 그를 제지했다.
"크윽..."
에리와 루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순을 보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미안하다... 순..."
케일은 크윽 소리를 내며 순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SK-2의 총탄이 순의 헬멧을 뚫고 동시에 머리를 뚫었다. 순은 마침내 그를 괴롭히던 화염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졌다.
"정신차려! 똑바로 정신차리지 못하면 다음은 우리가 저렇게 될 거다!"
"ㅇ, 예!!"
"제기랄! 제기랄!!"
코리가 날아오는 플라이어에게 소총을 난사했다. 분명히 가슴팍과 머리에 총탄을 맞아 죽는게 정상이었어야 하지만, 플라이어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달려들고 있었다.
"젠자아아아아앙!!!!"
코리가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달려드는 플라이어를 보고 눈을 감았다. 곧이어 엄청난 격통이 찾아올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플라이어가 고통의 괴성을 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괜찮냐! 코리!"
때마침 하겐이 발사한 유탄이 코리에게 달려드는 플라이어를 박살내버린 것이었다. 플라이어는 유탄이 직격당하자 한 줌의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고, 고마워!"
그들이 절망스러운 전투를 하고 있을 때, 해치가 열리며 루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케일 중위님! 연방 공군이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운전병에게 무전을 보냈어요!"
이때 플라이어 한 마리가 해치 밖으로 상체를 꺼낸 루이를 보고는 발톱을 내세우며 달려들었다. 그녀를 낚아채 공중에서 찢어버리기 위해서였다.
"루이! 위험해!"
루크가 경악하는 루이를 향해 달려드는 플라이어를 보고 외쳤다. 플라이어의 발톱은 그녀와 1m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겐은 루이와 플라이어를 동시에 바라보고는, 자신의 소총을 루크에게 턱, 맡겼다.
"이, 이봐! 하겐!"
루이를 향해 달려나간 하겐은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에 꽂힌 칼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는 글라디오를 뽑고 역수로 쥐어 크게 도약했다.
"이야아아아아-!"
하겐은 기합을 내지르며 플라이어의 머리에 글라디오를 양손으로 찔러넣었다. 플라이어는 수송차량의 후미에 부딪힘과 동시에 뒤로 자빠져 흙바닥을 굴렀다. 하겐도 플라이어의 머리에 글라디오를 꽂고 있었기에, 그 녀석과 같이 흙바닥을 굴렀다. 하겐은 결국 차량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피터와 에리, 루크는 경악했다. 코리는 충격에 입을 열지 못했다.
"하겐-!!"
루이가 눈물 맺힌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겐은 그녀의 슬픈 눈과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어차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발 아래서 아직도 꿈틀대는 플라이어의 목에 글라디오를 찔러넣어 목을 절단해 버렸다. 그가 목을 자르자마자,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음을 깨닫고, 죽음을 직감했다.
"키에에에에에엑-!"
플라이어가 그를 향해 달려 들다가 공중에서 폭발해 버렸다. 하겐은 그 소리에 눈을 뜨고는 놀라움에 입을 떡 벌렸다. 플라이어를 폭사시킨 것은 공중에 떠 있는 어느 병사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평균적인 병사의 모습과는 다르기야 했지만. 그 병사는 슈트 헬멧을 열고는 하겐을 돌아 보았다.
"괜찮나?"
"더, 덕분에."
"좋아. 이제부터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전선에 합류해라."
병사의 주위에는 그 병사와 똑같이 슈트를 착용해 공중에 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두꺼운 신발의 바닥에서 푸른색의 불길을 뿜고 있었는데, 마치 발에 달린 초소형 제트팩 같았다. 또한 전신에 걸친 슈트는 행동하기 위해서인지 그리 두꺼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좋은 재질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오네."
병사가 뒤를 가리키자, 하겐이 돌아보았다. 병사가 가리킨 곳에서는 케일 소대가 타고 있는 수송차량이 빠른속도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빨리!"
케일과 5명의 소대원들은 해치를 통해 차량 내부로 들어와 운전병을 닦달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겐이 생존해 있음에 다행을 느끼며, 그를 빠르게 수송차량에 다시 태웠다. 하겐과 같이 있던 병사는 그가 차량에 타고 멀리 떠나가자, 하늘에 있는 플라이어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주위에 떠 있던 다른 병사들도 플라이어들을 향해 돌진하며 총기를 사격하고 있었다.
"하겐~! 다시는 그러지마... 으흑흑.."
루이는 차량에 탑승한 하겐을 껴안고 펑펑 울었다. 하겐은 아직도 훌쩍이는 그녀를 떼어놓고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운전석에서 처음 만난 루크가 하겐이 맡긴 소총을 다시 건네주었다. 케일이 하겐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피터와 코리도 그가 생존했음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겐.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마라."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아무튼 살아돌아와서 다행이야!"
"다시는 네 총 나한테 맡기지 말라고."
"휴우..."
"돌아와서 다행이야."
"피터.. 코리.. 루크.. 에리.. 고맙다."
하겐은 문득 방금 전 자신을 구해준 이들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는 케일에게 다가가 방금 전 인물들이 누군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소대장님. 절 구해준 이들이 누굽니까?"
"아, 그 녀석들. 연방 공군 기동병단이야. 마침 우리가 위험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도와주러 오겠다고 연락했었어. 딱 맞춰 와 준 셈이지."
"그렇군요..."
"저 녀석들 덕분에 우리는 안심하고 참호와 기지가 있는 전선으로 갈 수 있게 됐어. 저쪽도 희생이 당연히 따르겠지. 너무 고마울 뿐이다."
케일 소대의 수송차량은 플라이어와 교전하는 기동병단을 뒤로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케일의 수송차량 뿐만이 아닌, 수십 대의 수송차량들도 동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