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감염 군주 사살 작전 2]
"제길, 이게 다 뭐야."
7번째 생체탑으로 긴급히 진입한 케일의 분대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으워어어..."
"크어어.."
"무슨, 이미 여기 투입된 결사대는 싹 갈려나간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중위님."
피터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죽은 병사의 차폐복을 찢으며 살점을 먹고 있는 감염자의 머리에 총을 쏘며 말했다. 그들 앞에 놓인 시체들은 대부분 먼저 투입된 20명의 시체들이었다. 그들의 차폐복은 주인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았다.
"...감염자들이 공격적으로 변했군. 감염 군주가 매우 가까이에 있다."
목 위로 머리가 없는 감염자의 시체를 살펴보며, 케일이 나지막히 읊었다. 분대원들도 주위의 감염자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빨과 손톱들이 훨씬 티스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럼 놈을 찾아 쓰러트리죠."
"우리는 그게 어딨는지를 모르잖아."
피터의 말에 스퍼티가 딴지를 걸었다. 그는 자신의 산탄총에 총알을 우겨넣고 있었다.
"이 생체탑 어딘가에 있을거야. 찾아야한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
생체탑 위쪽의 커다란 동굴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케일의 말을 끊어버렸다. 폭발의 화염 속에서 차폐복을 입은 병사의 시체 몇 구가 땅으로 떨어졌다.
"피해!"
하겐이 떨어지는 시체들을 보며 외쳤고, 모든 분대원들은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차폐복을 입은 시체들은 경쾌한 쇳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작렬했다.
"이건...?"
"저기 누워있는 20명 말고 남은 10명이겠지. 아마 저 위에 놈이 있는게 틀림없다. 움직이자!"
"예!"
10명의 결사대는 생체탑의 계단처럼 생긴 살덩이들을 밟고 밟으며 위층으로 향했다. 위층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른 병사들의 비명과 총격음이 생체탑 내부를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터는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문득 벽에 있는 커다란 구멍을 지날 때였다. 그는 재빨리 구멍을 지나쳐서 달렸기에 당하지 않았지만 대열의 중간 부분에 있던 스퍼티는 달랐다. 기괴하게 변형된 손톱과 팔들이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며 스퍼티를 안으로 잡아끌었다.
"으아아아악-!!"
"제기랄! 스퍼티가 당했다!!"
"스, 스퍼티!"
팔런이 스퍼티를 도우려는 마리의 어깨를 붙잡아 제지시키고는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스퍼티는 어두운 구멍 속에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윽고 차폐복과 살점이 동시에 찢어지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스퍼티는 단말마를 내뱉고 조용해졌다.
"씨발, 쏴! 쏴 버려! 싹 쓸어버리라고!!"
마리를 옆으로 밀친 팔런이 구멍을 향해 먼저 사격했다. 에리와 마틴, 코리도 그의 옆에 서서 일제히 구멍 속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총구의 화염 때문에 어두운 구멍 속이 번뜩이며 빛날 때마다, 총탄에 온몸이 찢기며 쓰러져가는 감염자들의 모습이 일렁였다. 그들의 소총에서 튀어나온 뜨거운 탄피가 살점으로 된 땅바닥에 떨어지며 치이익 소리를 내며 굽는 냄새가 잠시 풍겼다.
"팔런! 여기서 탄약 그만 쓰고, 수류탄으로 상태를 진정시키자!"
"알았어! 코리! 부탁한다!"
코리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인 팔런은 총을 거두고 위로 달려갔다. 나머지 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리는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2개의 수류탄 전부를 꺼내 구멍에 휙 던지고는 그들에게 합류했다.
대열의 중간에서 탄창을 교환하던 루이는 자신의 옆에서 산탄총을 쏘아대고 있는 하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겐은 언제나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부진 성격과 믿음이 가는 얼굴. 루이는 친구로 생각했던 그가 언제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 커다랗게 자리잡았는지를 잠시 되새겼다. 하겐은 언제나 자신을 위했던 사람이었다. 첫 전투 당시 플라이어에게 몸을 던졌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겐."
"왜? 루이!"
하겐이 헉헉대며 산탄총의 탄창을 빼버려 탑 아래로 휙 던졌다. 그는 옆구리에서 새로운 산탄총의 탄창을 꺼내 빠르게 꽂았다.
"이, 있잖아! 이번 작전이 끝나면, 나 할 말이 있어!"
"뭐? 알았어. 하지만 지금은 좀 바쁘니까! 돌아가서 하자고!"
"...응!"
루이는 하겐의 말에 싱긋 웃었다. 꼭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말리라라고 생각하면서.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새롭게 변이된 감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탱탱 부어 총기로 쏘아 터트리자 사방에 강한 산성의 액체를 뿌리는 감염자,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괴력을 가진 감염자 등 보병들에게는 강력한 상대였다. 하지만 그런 감염자들도 죽음을 각오한 9명의 결사대원들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가! 가라고-!"
수십 명의 감염자에게 둘러싸인 마틴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들어 온 몸을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감염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레이져 응축기를 과부하시켜 자폭해버렸다.
"씨바알!"
마틴의 최후에 코리가 눈물을 흩날리며 욕을 했다. 피터도 같이 생활해 온 동기이자 같은 훈련병이었던 동료의 죽음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펐으나, 코리를 다독여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코리! 집중해! 우린 감염 군주를 쓰러트려야 한다!"
"전방 약 20m 앞에 교전 중인 병사 2명 발견! 어떻게 할까요! 중위님!!"
대열에 맞춰서 달리던 마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쳐다보다가 케일에게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케일도 감염자들과 몸싸움 중인 병사 2명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도와주자! 지금은 한 명이라도 소중한 상황이야!"
"네!"
케일의 말이 끝나고 에리와 마리가 대열보다 더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녀들은 차폐복의 신체 강화 능력 덕분에 순간적으로 시속 140km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윽고 순식간에 병사 두명에게 다다른 그녀들은 각각 자신들이 자신있어하는 무기들을 꺼내들었다.
에리의 로쉐 장갑이 감염자의 머리를 뚫고 그 옆 감염자의 머리까지 박살내었고, 마리의 글라디오는 입이 기괴하게 변형된 감염자를 세로로 일도양단 내 버렸다. 몸싸움을 하던 병사 2명은 맥이 풀렸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에리와 마리가 순식간에 상황을 종결시키자 케일의 분대가 달려왔다. 케일은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병사에게 어떤 상황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봐! 나는 5번째 생체탑에 투입된 케일 중위다. 7번째 탑에서 감염 군주가 발견되었다는데, 어디있지? 그리고 너희 지휘관은?"
"저, 저희 지휘관은 *동화된 자들에 의해 전사했습니다. 살아남은 것은 저희 둘 뿐입니다..."
(*동화된 자: 인간의 DNA를 개조해 만든 티스의 위험 개체. 다목적 전술 기동병 한 명의 전투력과 동일하다.)
"동화된 자라고? 이런 씨팔."
케일이 벽을 쾅 쳤다. 그가 주먹을 떼자 주먹의 자국이 벽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게 뭔데 그럽니까?"
"티스놈들이 인간 DNA로 만든 강력한 개체들이지. 지금부터는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될거다. 그건 그렇고, 감염 군주는 어디에 있나?"
병사는 떨리는 손으로 차량 한 대는 들어갈 것 같은 거대한 동굴을 가리켰다. 동굴은 여기서 멀지 않은 높이에 있었다.
"흠, 저건 아까 폭발이 일어난 동굴인 것 같은데요."
"그렇군. 피터. 저들에게 아까 전의 폭발은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봐."
"예. 이봐, 아까 전 폭발로 시체 몇 구가 땅바닥에 떨어졌는데, 그거 너희 분대원들 맞나?"
"맞..맞아. 거대한 벌레 같이 생긴 감염 군주를 폭사시키려고 폭발물을 설치했었는데, 동화된 자들이 방해해서 그만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어..."
"고맙군. 소대장님, 저 동굴 안에 있는게 확실해 보입니다. 진입할까요?"
"그러자고. 저 병사들에게도 같이 움직이자고 말해."
"예. 너희들 들었지? 감염 군주를 여기서 처리한다."
병사 두명은 벌벌 떨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감염 군주를 처리하지 않으면 어차피 전부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겐, 애들한테 준비하라고 말해. 곧 진입한다고."
"알겠어."
하겐은 피터의 말에 동료들을 향해 뒤돌았다.
"이제 곧 진입-- 루이!!"
하겐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의 눈에는 루이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있는 날카로운 이빨의 감염자도.
"?!"
루이는 황급히 이상함을 알아채고 움직이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감염자의 커다란 턱과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은 그녀의 차폐복을 종이 찢듯 찢어버리고 그녀의 목덜미를 탐할 준비를 마쳤다.
"안돼!"
하겐이 손을 뻗으며 달려나갔지만, 감염자는 자비없이 그녀의 목을 물어찢었다. 감염자의 커다란 턱과 샛노란 이빨들이 루이의 새빨간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루이는 자신을 물어뜯은 감염자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결국 팔을 늘어뜨려버렸다.
"이 씨팔놈아--"
산탄총의 총구를 놈의 머리에 꽂힐 정도로 때려박은 하겐이 방아쇠를 거침없이 당겼다. 감염자의 머리는 몇십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나며 흩뿌려졌다.
"루, 루이..."
"젠장."
"야... 이게..무슨..일..이냐.."
에리와 피터, 코리를 포함한 모든 분대원들도 굳어버렸다. 하겐은 이미 숨이 넘어갈락 말락하는 루이를 부여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재생제를 뽑아들어 그녀의 목에 투여했다. 하지만 감염자로 인한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감염자의 턱에서 그녀의 신체로 침투한 티스 바이러스는 그녀의 재생을 막고 점점 감염시키고 있었다.
"빨리!! 누가-! 재생제를.."
피터는 자신의 바이져를 매만지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하겐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말렸다.
"하겐.. 이미 늦었어.. 루이는, 루이는..이미."
그러나 하겐은 그에게 소리지르며 반박했다. 그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믿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니야! 아직 살 수 있어. 루이는 변하지 않을거라고. 변하지 않을거란 말이야!! 오, 루이.. 제발. 눈을 떠."
"큭.."
코리는 그것을 보고 못 보겠다는 듯이 얼굴을 돌려버렸다. 에리 또한 착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팔런과 마리는 아직도 굳어버린채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루이! 루이.. 제발. 날 버리고 가지마. 살아돌아가서 칼리브레를 만나야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잖아..."
하겐이 루이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자, 루이가 자그맣게 눈을 뜨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하, 하겐..?"
"루이! 정신이 들어? 여기서 죽으면 안돼.. 일어나.. 제발!"
"하..겐..이구나.. 미안해.. 몸..이 안 움직여서.. 나는...나,나는.."
"아니야, 말하지 않아도 돼. 루이. 괜찮아."
루이가 힘겹게 말을 뗄 때마다 그녀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재생제의 효과가 거의 먹히지 않은 듯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팔을 느리게 들어 하겐의 헬멧을 부드럽게 만졌다.
"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겐.. 나..나는..너를..너.."
"루이.. 루이...."
"조, 좋..아.. 좋...아..해-"
마지막 말을 겨우 뗀 루이는 손에서 힘이 빠져 하겐의 가슴팍에 툭 떨구었다. 하겐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등을 떨며 오열하고 있었다.
"루이.. 루이.. 아, 안돼.."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피터의 볼에서도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피터 또한 마음이 아팠다. 이곳에 와서부턴 이별의 연속이었다.
"하겐, 하겐. 일어나. 가야한다. 가야 해."
"아아.. 루이.. 루이..!"
"하겐! 가야 한다!"
케일이 망토를 휘날리며 그들에게 걸어왔다. 그의 눈가 주위는 붉어져 있었다.
"가야만 한다. 하겐! 그리고 네 손으로 끝내야만 한다. 진정 그녀를 위해서라면.."
케일은 그에게 권총 한 정을 건네주었다. 그는 죽어가는 루이와 하겐을 착잡한 표정으로 번갈아 쳐다보고 뒤돌았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리도 매정한거냐고.. 다들.. 제기랄."
팔런이 마리와 뒤돌며 짧게 한 마디 내뱉었다. 에리도 쓰러진 루이의 얼굴을 보고 주먹을 꽉 쥐며 뒤돌았다.
"개새끼들."
"피터, 하겐.. 가자. 움직여야 해. 이 위에 바로 감염 군주가 있어."
"알았어. 코리. 먼저 가. 난 바로 뒤따라갈게."
"응."
코리가 장비를 챙기며 대열을 따라갔다. 피터도 대열에 합류하기 전, 하겐에게 짧게 한마디를 건넸다.
"...하겐. 네 손으로 끝마쳐야 해. 루이를 위한다면. 내 말 알아듣겠지.."
"..."
피터는 말을 마치고 뒤돌았다. 그가 대열에 합류해 케일과 대화를 나눌 때, 뒤쪽에서는 총성이 한 번 울려퍼졌다.
"...결국 루이는 안식에 들었나?"
"네. 하겐이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피터가 케일에게 답했다. 피터의 어깨 뒤편에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타는 하겐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케일은 하겐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