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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꿀같은 휴가 3] (43/131)



〈 43화 〉[꿀같은 휴가 3]

카레를 위에 살짝 뿌린 연어빵을 들고, 피터는 광장에 널린 벤치에 앉았다. 마리도 옆으로 쪼르르 걸어와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마리는 자신의 연어빵을 한입 베어물며 피터의 눈치를 살폈다. 피터는 자신의 연어빵 위에 올려진 카레를 혀로 핥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다가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음? 왜?"


"아, 아니야!"


"어.."


피터는 당황해하는 마리를 보며 다시 연어빵을 씹었다. 문득 칼리브레가 자신에게 당부했던 것이 떠올랐다. 고백이라는 것. 마리는 너에게 관심이 있을거라는 것. 네가 알아서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던 칼리브레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끄으응... 나보고 뭘 어쩌라고...)"

피터는 칼리브레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여자를 대하는 법도  모르는 그에게 이런 일에 '알아서' 대처하라는 것은 더럽게 어려운 일이었다. 피터가 입을 삐죽 내밀고 끙하는 소리를 내자, 마리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걍 잡생각 좀 하느라."


"그랭..?"


마리도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피터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일단 간단한 질문으로 어색함을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피터, 너 글라디오를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휘두를 수 있는거야?"

"어, 갑자기?"

"응. 항상 궁금했어!"

"(맞아... 얘는 훈련병일 때도 이런 걸로 질문했었던 애였지. 설마 오늘 단 둘이 만나자고 한 것도 이런 걸 질문하려고 한 거였나?)"


"네 자신만의 검술이란게 있어?"

"검술?"

"응. 검술이라기보단 뭐 휘두르는 방식이라든지 검을 잡는 방식이라든지.."

"나는 웬만해서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는 것 같은데. 휘두를 때는 상대의 머리를 먼저 베고 그 다음은 가슴팍을 대각선으로 벨 때가 많은 것 같아. 목과 가슴팍을 공격하면 상대가 둘  한 곳을 방어해도  타격을 입힐 수 있잖아?"

"오오.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글라디오를 잡고 적과 마주하면 무슨 생각을 해? 적을 살핀다거나 혹은 칼에 집중하니?"

"그럴 때는... 어..."

피터는 동화된 자와 검을 맞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피터는 동화된 자의 움직임에 최대한 집중하다가 놈의 공격을 받아치는 방식으로 타격을 입혔다. 피터는 설명해도 마리가 알아듣기는 힘들겠지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냥 상대의 움직임을 대충 예상했어. 뭔가 공격이 뇌 속에서 그려지더라고. 그래서 동화된 자와 맞섰을 때도 놈의 공격을 간신히였지만 방어하고 받아칠 수 있었던 것 같아."


"음. 그렇구나.."


"미안, 별로 도움되는 이야기는 아니네."

"아니야! 적의 공격을 최대한 예측하라! 좋은 가르침이야. 고마워!"

"어... 그래."

가만있던 마리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멈칫멈칫 거렸다. 그 모습에 피터는 다시 연어빵을 씹으며 혼자 속으로 떠들어댔다.

"(진짜 검술 같은  물어보려고 단 둘이 만나자고 한 건가? 진짜 유별난 녀석이네. 뭐, 고백이라도 할 줄 알고 쫄았는데 별 일 아니었잖아.)"


"근데, 피터. 피터?"


"...?"


"나 근데 아까부터 숨기고 있던게 있어."


"뭐, 뭔데-."


마리가 피터의 손목을 잡고는 자신의 심장 쪽으로 가져다 대었다.

"이상하게 너랑 있으면 심장이 빨리빨리 뛰고 몸에 열이난다? 왜 이러는거지..?"


"어, 음, 아, 그, 아, 하하. 자, 잘 모르겠네."

생각치도 못한 행동과 질문에 얼굴이 빨개진 피터는  자신의 뇌가 과부하되는 것이 느껴졌다. 칼리브레의 말이 옳았다. 이럴때는 알아서 대처하라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되는거람!


"... 그거는 네가 우주 감기에 걸려서 그런거겠지!"

"으오아아아악-!"


"!!"

벤치 뒤에서 갑자기 에리가 튀어나오자, 피터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마리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리는 자연스럽게 피터의 손목을 잡아 끌어 마리의 가슴팍에서 떼어내고는 벤치의 옆으로 돌아가 그들의 앞에 섰다.

"감기에 걸렸는데 왜 돌아다녀? 가서 쉬어야지. 안 그래?"


"에, 에리. 일단은 알겠으니까 진정. 오케이?"

피터는 식은땀을 한번 닦고는 에리를 말렸다.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 벤치 뒤를 돌아본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코리 일행이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코리는 피터와 눈을 마주치자 자신의 목을 한번 긋는 시늉을 하고는 머리를 쾅쾅 때렸다. 피터는 당연하게도 코리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에리한테 존나게 쳐 맞았나보군.)"


"아무튼 마리, 너는 이대로 들어가서 쉬어. 축제도 곧 끝나니까, 다들 돌아가자."

"아, 알았어. 에리... 그런데 오해하지 마. 나는 아무런 사심 없이 피터를 만난-"

"아 됐고. 가서 쉬자고 했잖아?"

"응..."


벤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리의 방 동기들이 분위기를 깨닫고는 그녀를 데리고 거주 구역으로 걸어갔다. 마리의 축 처진 어깨는 왜인지 아쉬움이 남아있어 보였다. 피터도 헛기침을 한번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코리에게 어서 가자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어, 코리! 있었구나! 자, 방으로 돌아가자. 오늘  피곤하네?"


그러나 에리는 피터가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것을 진작에 깨닫고는, 콧방귀를 한번 픽 뀌고는 그에게 남으라고 말했다.


"피터, 너는 잠시 남아줘. 왜인지는 알잖아? 이건 하극상이 아니라 '부탁'이야. 알겠죠, 준.위.님?"

"(씨발.. 내가 계급이  높은데.)"


피터가 코리쪽을 바라보니 코리는 이미 하겐과 칼리브레를 데리고 방으로 떠난지 오래였다. 코리는 멀찍이서 피터를 보고는 손가락으로 장난스레 경례를 했다.


"아, 저 새끼 진짜 도움이 안 되네.."

"피터! 너 나 놔두고 다른 사람한테 눈 돌릴래?"

이윽고 주위의 모두가 떠나자 에리가 피터에게 곧바로 따지기 시작했다. 에리는 그를 몰아세우며 벤치에서 일어섰던 피터를 다시 앉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데? 나는 맨날 너만 생각하는데. 우으, 자기 소대원이랑 바람이 나다니! 지휘관으로서 완전 꽝인  알아?"

"바, 바람이라니. 너무 하잖아... 그냥 고민 상담 같은건데."

피터가 쥐어짜듯 낸 변명을 에리가 사뿐히 짓밟았다.


"요즘 고민 상담할 때는 가슴에 손도 올리고 그런데? 와, 난 처음 알았다!"


"엥?! 마치 내가 만졌다는듯이 말하지 말라고! 마리가 내 손목을 잡은거란 말이야."


"마리가 아무리 너를 좋아해서 손을 잡아당겨도, 너는  잘라 거절했어야지! 그런 것도 못해? 작지만 한 소대의 대빵이라는 사람이."

"그거는..."


피터는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주제로 에리와 싸우다가는 백날을 싸워도 이길 수가 없는게 뻔했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피터도 억울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는 계속해서 말을 길게 늘렸다.

"솔직히 그런 걸 어떻게 반응하냐? 엇, 하다보니까 내 손이  가슴팍에 올려져 있던걸! 그걸 반응한다면 나는 일반인이 아니겠지."

"흥, 됐네요. 네가 그렇게 마리를 좋아한다면... 나 진짜 미쳐버린다?! 미쳐버려서 막 나중에 전장에서 고년 등짝에다가  갈길지도 모른다고!"


"얌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 내 성격 알잖아? 나는 원하는 걸 못 가지면 미치지만, 가진 걸 뺏기면 진짜 돌아버린다는거!"

"(끄응.. 이거 일이 좀 복잡하게 됐네.)"


"빨리 대답해! 내가 좋아, 마리가 좋아?! 나 진짜 진지해! 거짓말 아니야."


"엄청 유치한 질문을 하네. 유치원생 인줄 알았어."

"빨리!"

"네, 네가 더 좋지.. 음. 에리 캐트 씨가 최고지요."

"진짜지?"

"암요. 진짜지요. 이따시만큼 사랑한답니다."

피터가 벤치에서 일어서며 양팔로  원을 그렸다. 거기에 에리는 잠시 기쁜 표정을 지었다가 피터에게 자신의 기분을 들킬까봐 다시 화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내가 더 좋지? 나를 더 사랑하는거 맞지?"

"아.  참. 애도 아니고 여러번 말해줘야 돼? 나한텐 니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야. 됐니?"

"응. 그러면 이제 됐어.."

에리가 피터에게 안겼다. 피터는 잠시 얼타며 굳었지만 이내 자신을 꼭 껴안는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휴, 어린 애도 아니고. 이럴 때 보면 참 고양이같단 말이야."

"헤헤, 피터가 내가 좋대. 나도 피터가 좋-아."

에리는 피터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벼댔다. 그녀의 행동에는 피터를 향한 사랑이 진득하니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부담스러워  정도로.

"이제 진정됐어? 진정됐음 잠시 떨어질까."

"싫은데. 오늘 축제인데도 같이 못 다녔잖아.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 히히."

"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서류 상으로 상관과 부하라구. 이런 모습 들키면 그리 좋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지 않을까."

"무슨 상관이야? 힣."

에리가 자신을 꽉 껴안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자, 피터가 결심한 듯 혼자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렸다. 에리가 피터의 행동에 궁금증이 들었는지 그를 올려다보았다.

"읏차."


피터는 신랑이 신부를 들어서 안듯, 에리를 들어 안았다. 피터가 자신을 갑작스레 들어올리자 에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에리의 빨개진 볼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거주 구역까지 가도 상관없지? 방까지 데려다 준다?"


"..."


"아니면 내려놓고 걸어가고. 어쩔까?"

",,,"


"내려놓는다?"


"... 아니야. 이대로 가자."


에리가 피터의 목을 끌어 안으며 그의 목에 짧게 입맞춤했다. 그리고 그녀는 피터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피터도 그녀의 행동에 볼이 약간 붉어졌다.


"아야, 왜 그래?"

"... 오늘 일들에 대한 벌."

축제가 끝나가는 광장에서 형형색색의 빛들이 피터와 에리의 그림자를 물들였다. 둘은 짧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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