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어두운 머릿속]
벨라토르 중대와 궤도 해병들의 신출귀몰한 작정느로 400명 가량의 침입자들을 제압하고 나서야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우주 궤도 기지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데, 침입자들로 인해 3천명의 무고한 인원들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기지 곳곳의 중요 기계들이 대파되는 등 티스의 습격을 방불케하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건 반역일세."
포로가 된 침입자들을 무릎 꿇려놓은 그레고리가 광장의 모두에게 외쳤다. 연방군 보병들은 다들 분노한 채 침입자들에게 침을 뱉거나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었다. 피터의 소대도 광장에 모여 포로들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악! 이 자들은 거대한 악에 굴복해 반역을 일으켰네."
"죽여라! 죽여라!"
병사들은 흥분하며 놈들을 죽이라고 을러댔다. 하지만 그레고리와 그의 중대원들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잠시 기다리게. 그레타?"
"네. 중대장님."
"이 반역자들의 머릿속을 살펴보게."
"알겠습니다."
그레타라고 불려진 여성 군단원은 자신의 바이져를 열고 무릎을 꿇은 포로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흑발이 헬멧 사이에서 찰랑거렸다. 그녀가 포로들에게 손을 뻗자, 포로는 소리지르며 그녀에게 저항했다.
"뭐, 뭘 하려는거야! 꺼져! 꺼지라고!"
"가만있어!"
병사들이 포로를 뒤에서 짓눌렀다. 포로는 낑낑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레타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을 뻗어 포로의 이마에 가져다댔다. 그레타는 포로의 머릿속을 정확히 살펴보며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벨라토르이자 마인드 능력자, 벨라토르 베네피쿠스였다.
"으음. 이건."
그레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끔찍한 것을 보는 듯, 감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뭘까?"
코리와 칼리브레가 시시각각 바뀌는 그레타의 표정을 보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피터와 에리는 그저 진지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 으."
그레타는 머리가 아픈지 포로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그녀는 강한 두통을 느끼며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고 뒤로 비틀거렸다. 그녀가 비틀거리자 다른 벨라토르 군단원 두명이 그녀를 받쳐주었다.
"뭔가 알아냈는가? 그레타?"
"네. 중대장님."
"뭐였지?"
"거대한...악. 인간의 원초적 추악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살인... 학살... 방화.. 멈출 수 없는 쾌락... 폭행... 파괴. 이 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것들 뿐입니다. 그것들이 이 자를이리 만든 것입니다."
"감이 잘 안잡히는군. 어쨌든 알겠다."
그레타는 다른 벨라토르 군단원의 부축을 받고 휴식을 취하러 걸어갔다. 꺼지지 않는 정신력을 가진 벨라토르조차도 저들의 머릿속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레타 자매의 말로는 이들을 구해낼 수 없답니다. 어떡할까요."
그레타를 부축해주고 돌아온 벨라토르가 그레고리에게 다음 명령을 물었다. 그레고리는 잠시 고민했지만 포로들을 전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흠. 어쩔 수 없군. 처리해."
"알겠습니다. 그레고리 형제여."
벨라토르 군단원들이 무릎꿇은 포로들을 걷어차 넘어트리고는 머리에 총알을 선물해 주었다. 포로들은 즉각적으로 머리를 비롯 상체가 터져나가며 즉사했다. 그들의 피가 철바닥을 덮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피는 다른 이들의 피보다 훨씬 검붉었다.
머리가 터져나간 침입자 포로들의 시체를 치우라고 명령한 궤도 기지의 지휘관이 벨라토르에게 경례했다. 벨라토르들도 그들에게 경례를 나눈 후 자신들의 거주 구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너희들 시체 치워. 수호! 감사합니다. 벨라토르시여."
"수호. 자네들도 수고 많았네."
벨라토르들이 광장에서 모두 떠나자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각자 자기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5시간은 경계 태세로 대기하라고 일렀다. 병사들은 터덜터덜 자신들의 거주 구역이나 근무 구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사태는 끝났다. 다들 자기 위치로 돌아가 5시간은 언제나 무기와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기하라."
"수호!"
"제기랄...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어깨 부상 때문에 칼리브레에게 부축을 받던 코리가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어깨에는 재생제 2방이 투여되고 붕대에 칭칭 감겨져 있었다. 만약 어깨가 아닌 조금 더 아래에 맞았다면 심장이 위협당할 수도 있었던 큰 상처였다.
"누가 아니래. 씨팔. 반역 같은 걸 하고 지랄이야."
칼리브레가 코리를 부축하며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있는 작은 파편을 걷어찼다. 그는 어지간히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며칠 안 남은 휴가도 곧바로 종료구나. 참나..."
하겐도 자신의 산탄총에 장전된 탄창을 확인하며 허망하게 말했다.
"에리, 우리 소대쪽 피해는 정확히 어때?"
피터는 자신의 옆에서 딱 붙어서 걷던 에리를 보고 말했다. 에리는 그를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후우... 6명. 졘, 허쉬, 매리트, 구엔, 피엔, 쉐런."
"...휴우. 결국 이런 곳에서도 이별이 일어나는구나."
"병사의 삶이란 이별의 연속이지."
"좆같은 삶이란 말이지?"
앞에서 마리와 함께 걷던 팔런도 뒤를 돌아보며 짧게 욕을 내뱉었다. 그의 가슴팍은 날카로운 것에 베였는지 매니셉 방탄복에 대각선으로 길게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내 방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나만 살아남았어. 피터."
"...팔런."
"개새끼들. 반역이니 뭐니, 개헛지랄만 해대고 말이야..!"
"진정해."
팔런의 등을 두드리던 마리가 피터를 잠시 돌아보았다. 그녀의 볼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분명 침입자들과의 혈투에서 묻은 것이 틀림 없었다. 그녀는 힘없이 피터를 보고 고개를 끄덕 거리더니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
.
.
"아이구. 힘들다."
코리를 업다시피 해 온 칼리브레가 침대에 코리를 훽 던졌다. 코리는 자신의 상처가 침대에 닿았는지 으악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야, 막 던지면 어떻게해! 난 환잔데!"
"아. 네."
대충 맞장구 쳐 준 칼리브레는 방 한 가운데에 놓여진 테이블에 앉았다. 하겐이 침대에서 아까 둘이 먹던 맥주병을 들고 와 건네자, 그는 병을 들고 나발을 불어댔다.
"으. 좀 살 것 같네. 나는 전쟁터에서 괴물과 싸울 줄 알았는데, 같은 인간들끼리 총질을 해 댈 때도 있었잖아.."
"그러게나 말이다."
하겐이 칼리브레의 맥주병을 건네받아 컵에 따랐다. 그도 맥주를 쭈욱 들이키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동료들이 한 마디씩하며 한탄을 하고 있을 때, 그때까지도 창밖의 우주 공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피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까 그레타라고 했던 벨라토르가 한 말 들었어?"
"응?"
"뭐, 인간의 원초적 추악함이라고 했었나. 그건 왜?"
하겐이 자리에 일어서서 기지개를 한번 피고는 피터에게 대답했다. 피터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창가에서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 원초적 추악함 있잖냐?"
"어."
"악마란 거 알아?"
"모를 수가 없기는 하지. 옛날 사람들은 악마나 신을 믿었다고들 하더라. 근데 뜬금없이 웬 악마?"
"내가 아는 악마는 인간의 원초적 죄악에서 태어난 걸로 알고 있거든. 아니면 악마들이 그 죄악을 만들고 퍼트리든가."
"그게 그 말이지 뭐."
"그레타라는 벨라토르가 말했잖아? 원초적 추악함이 침입자들 머릿속에 가득하다고. 아마도 반역을 일으켜 기지에 침임했던 반역자들은 악마같은 거대한 악에 굴복해버렸던게 아닐까?"
"???"
"피터... 왜 갑자기 코리도 안 할 말을 하는거냐?"
다 마신 맥주병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칼리브레가 팔짱을 끼고는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나도 그런 생각은 안 하겠다! 생각은 해도 말까지는 안 할걸?...아닌가?"
침대에 누워서 그들을 바라보던 코리도 대뜸 말했다.
"그냥 악마들이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타락이라도 시킨게 아닐까 싶다는거지."
"하, 피터... 너의 말에는 두가지 오류가 있어."
테이블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던 칼리브레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피터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뭔데?"
"첫째, 악마가 침입자들을 타락시켰다고 하는 거."
"둘째는?"
"둘째! 악마가 실존한다고 하는 것!"
"..."
"이봐. 7000년대야. 7000년대. 고대의 인류도 악마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하던데... 오늘날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과 악마를 누가 믿느냐는 거지."
하겐이 피터에게 최대한 이해가 되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피터는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아니. 나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이른 생각이잖아."
"... 모르겠다."
칼리브레와 하겐은 어깨를 으쓱했다. 칼리브레는 자신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상황을 쭉 바라보던 코리는 침대에 누워서 피터를 응원하고 있었다.
"피터 잘한다~! 말 잘한다!"
"넌 누구 편이냐. 엉?"
코리에게 자신이 읽던 책을 훽 던져버린 칼리브레가 팔짱을 끼고 피터를 쳐다보았다.
책을 맞은 코리는 곧바로 책을 집어들었다.
"아얏! 오. 칼리브레.. 너 이런 이쁘고 섹시한 누나들이 나오는 책을 읽는단 말이야?"
"... 그거 신데렐라야. 병신아. 아무튼! 피터. 그런 생각은 혼자만 해. 너도 알잖아? 연방 내에서 종교니 뭐니 이런 이야기하면... 끽."
칼리브레가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하겐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목이 달아난다는 시늉을 했다.
"그냥 상상일 뿐이야. 임마들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그랬냐. 그럼 다행이고. 코리, 책 돌려줘. 읽게."
"엥? 막 재밌어지는 참인데... 공주님이 신발을 벗어서 왕자의 머리통을 후려갈.."
"이새끼는 책을 대체 어떻게 읽은거야?"
"하하하하. 코리는 정말 어쩔 수가 없네."
하겐과 코리, 칼리브레가 서로 죽이 잘맞으며 노는 모습을 보고, 피터는 다시 창밖을 살펴보았다.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에게는 저 멀리 다가오는 커다란 수송선이 눈에 띄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헬멧에서 에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터. 쿠셴 대령이 너를 찾아."
"뭐? 알겠어."
피터는 자신의 장비를 다시 챙겨 나갈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