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후회하지 않는 선택] (51/131)



〈 51화 〉[후회하지 않는 선택]

"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

폭발한 복도의 벽들 사이사이에서 문어의, 아니, 연체 동물이 연상되는 보라색 촉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촉수들은 복도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피터의 소대원들을 낚아채 어두운 구멍으로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씨팔! 씨팔! 도와줘!"

"망할. 저게 대체 뭐야?! 티스인가?!"

자신에게 달라붙은 촉수를 글라디오로 잘라낸 팔런이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하겐은 자신의 동료를 납치하는 촉수들에게 저항하다 얻어맞고 복도에서 뻗어있는 상태였다.

"다들 조종실 안으로 들어와!"

피터는 꿈틀대는 촉수들을 향해 사격하며 한손으로는 어서 들어오라며 그들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처음으로는 팔런이 하겐을 질질 끌고 조종실로 박차며 들어왔고, 나머지 보초를 서던 대원들이 잔뜩 겁에 질린 채 둘의 뒤를 허겁지겁 따라들어오고 있었다.


"어어.."


마지막으로 들어오던 대원이 쾅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그는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게이트의 문지방을 잡고 버텼다.

"젠장!!"

피터는 몸을 날려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상황을 알아챈 코리나 다른 대원들도 황급히 달려와 끌려나가려는 자신의 동료를 잡고 놓지 않았다. 끌려나가려는 대원의 발목은 점액을 흘려대는 보라색 촉수가 꽉 조인 채 서서히 조여들고 있었다.

"으으으으-!"

이윽고 촉수의 빨판이 대원의 차폐복 사이사이에 달라붙더니 강하게 조이기 시작했다. 압력이 어찌나 강했는지 차폐복이 찌그러지며 끼기긱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발목이 잡힌 대원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발목의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제기랄--!!"


칼리브레가 조종실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가 봤던 책, '연방군의 함선'이란 책에서 본 '함선 내부의 격실마다 비상 차단용 게이트를 작동시키는 버튼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당겨! 당겨!! 절대 놓으면 안돼!"

피터가 동료들에게 비명섞인 명령을 내렸다. 그는 지금 발목이 으스러져가는 자신의 동료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자는 자신이 훈련병 시절부터 같이 지내왔던 동료중 하나였다. 피터는 더이상 자신에게 소중한 이들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이마에 힘줄이 바짝 설 정도로 이를 악물고 그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촉수들은 그들의 희망을 짓밟듯 동료의 발목을 넘어 하체, 심지어 상체 부근까지 감싸기 시작했다. 일찍이 발목을 포기하고 잘라버렸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대원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가망이 없어지고 있었다.

"찾았다!!"


칼리브레는 기판들 사이사이에서 빨간색 차단 게이트 버튼을 찾아냈다. 그가 그것을 누르기만 한다면, 포대 조종실의 비상 차단 게이트가 작동되며 촉수를 자르고 문을 닫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물론 차단 게이트가 내려가며 불쌍한 동료의 허리도 잘라버릴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상황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잡아당기던 에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눈에는 촉수들이 피터의 다리와 손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촉수가 피터에게 당도해, 그마저 잃을 것이 분명했다. 에리는 어금니를  깨물고 고민했다. 지금 온몸이 촉수에 조여지며 죽어가는 병사는 어찌됐든간에 자신의 훈련병 동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오고 있었다.


"큭...."

에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글라디오를 뽑아들었다. 글라디오가 그녀의 검집에서 빠져나가며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조종실을 메웠다.

"ㅇ, 야.. 야! 너 지금..  지금 뭐하려는거야!?"

코리가 에리에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에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 검을 높게 쳐들었다.

"에리!!! 그만 둬! 살릴 수 있어!"

"..."

"명령이야! 검을 집어넣어! 에리 캐트!!!"

피터의 말에 에리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망설이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서서히 뺐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순간 검을 쥔 손에 힘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보라색 촉수가 에리에게 소리치느라 정신이 없는 피터의 손을 살짝 건든 것이었다. 보라색 촉수는 곧이어 피터의 손목을 탐하려는 듯이 게걸스런 점액을 흘렸다. 에리는 그 광경에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굳혔다. 자신이 그에게 원망받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피터의 목숨을 구하는 합당한 선택을 하겠노라고.

"안돼---!"

피터의 울음섞인 비명과 함께 에리의 글라디오가 공기를 가르며 시원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글라디오는 피터가 잡고있던 대원의 손목을 손쉽게 절단했다. 그리고 피터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손목이 잘린 동료가 헬멧 바이져에 한 가득 공포에 질린 표정을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악!"

손목이 잘린 대원은 촉수의 엄청난 힘에 의해 매우 빠른 속도로 조종실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칼리브레는 잔혹한 광경에 충격을 받고 굳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눈물을 흘리며 버튼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삐이이이익-]

비상용 차단 게이트가 작동되는 알람과 함께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했다. 촉수들은 조종실 내부로 들어오려다가 작동되는 게이트에 깔려 꽈지직하는 징그러운 소리를 냈다.

"아.."

코리와 대원들은 잠시 얼이 빠졌다. 피터만이 아직도 잘린 동료의 손을 쥐고는 몸을 경련하며 엎드려 있었다.

"에리..! 에리..! 에리--!!"

피터가 헬멧의 바이져를 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한 가득 담겨있었다.


"에리!!!! 녀석은.. 드웬은... 살 수 있었어!! 구할  없어 눈물만 흘렸던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녀석은 살릴 수 있었다고!"


분노한 피터가 에리의 어깨를 잡고 소리질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줄기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드웬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네가 죽었을-"


"그건  겁에 질린 망상이야!! 그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피, 피터.. 나, 나는.."


"에리 캐트 상병. 너는 너의 직속 상관이자 현장 지휘관인  명령을 완전히 거역했다. 따라서 너를 연방군의 군법으로 회부해, 즉결 처분하겠어. 이의 있나?"

피터가 자신의 홀스터에 꽂힌 자동 권총을 꺼내 슬라이드를 당겼다.


"피터! 그만해! 이제..."


"물러서!!"


코리와 팔런이 그를 말리려고 다가갔지만 피터가 악에 받혀 명령하며 그들을 제지했다.


"피, 피터 준위님. 이제 그만..."

마리또한 처음보는 피터의 모습에 겁에 질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로 피터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터는 마리의 간절한 시선도 무시한  에리에게 차가운 말투로 을러댔다.

"다시 묻겠어. 이의는 있냐?"

에리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각오한 표정으로 피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두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상병 에리 캐트! 현장 지휘관의 즉결 처분을 받아들이겠으나, 구차한  변명을 들어주십시오!"


"말해."


피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이마에 권총을 겨눴다.

"저는 준위님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준위님이 생존해야만, 저희 소대의 사기와 지휘 체계가 유지될 것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

피터는 방아쇠를 3번 당겼다. 권총의 총성이 울리며 탄환들이 조종실 벽 너머에 꽂혔다. 에리는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눈을 감고 있다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피터는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권총을 내리고는 뒤를 돌았다.

"...칼리브레. 조종실에서 나갈 수 있는 비상 탈출구를 찾아."

"...알았어."

피터의 뒷모습을 보며 에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녀는 피터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갔음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 피터와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음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고 있었다.


피터도 순간적인 분노와 에리의 명령 위반에 권총을 뽑아들었지만 그도 가슴이 저려왔다. 에리는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피터의 뇌에 흘러들어오듯 비춰진 미래에는 드웬을 살리는 미래가 보였기에 더욱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흠. 아마 여기 조종석을 밀면 될텐데."

칼리브레와 정신을 차린 하겐이 이 무안한 분위기를 애써 무마하며 커다란 조종석을 둘이서 밀어냈다. 커다란 조종석은 550mm의 플라즈마 응축 포탄을 쏘아대는 함포의 조종석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조종석의 밑에는 언제나 비상 탈출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칼리브레는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역시! 있을 줄 알았어."

조종석을 옆으로 밀어버린 칼리브레가 멋쩍게 웃으며 바닥에 달린 2x2평방미터의 문을 두들겼다.


"끄응차! 끙."


칼리브레는 힘을 주며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씨팔. 진짜."


"비켜 봐."


하겐이 손잡이 옆 부분에 자신의 전투 산탄총을 가져다 댔다. 그는 총구를 초근접시키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카앙!]


문의 잠금이 파괴되는 소리가 들려오자 하겐이 문의 손잡이를 다시 잡아당겼다. 문은 칼리브레가 당겼던 때와는 다르게 매우 쉽게 당겨졌다.


"됐네. 피터! 비상 탈출구를 발견했어. 지도에 의하면... 어..."


하겐이 자신의 팔뚝에 달린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조그만 홀로그램 지도가 팍하고 펼쳐졌다.


"음.  비상구로 이동하면 길다란 개폐통로로 연결되고. 또  개폐통로로 이동해서 끝까지 도달하면 함선의 일반적인 복도로 이동할 수 있어."


"함선 내부로 이동할  있는 복도로 연결된다는 소리지?"

피터가 자신의 소총을 확인하며 하겐에게 물었다. 하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동하자. 이 함선을 더욱 수색해야한다.  좆같은 보라색 촉수들의 근원지와 이 함선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기괴한 문양들이 곳곳에 가득한지 알아야겠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래. 나는 이 함선의 진실을 알아야겠어."

"나도 그래."


"씨팔. 두말하면 잔소리지."

코리와 팔런이 피터를 거들며 말했다. 그들의 눈에도 의지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칼리브레도 하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저들과 같은 뜻이라는 의미였다.

"그럼 나도 우리의 중대장님을 도와야겠군."

하겐마저 피터를 지지했다. 소대원들은 다들 동요하고 있었으나 하나 둘 피터의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나도 중대장님을 돕겠어."

"나도!"

"피터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한 남자야."

"다들 고맙다. 아무튼, 어서 이동하자고. 저 망할 촉수들이 문을 찌그러트리고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칼리브레, 먼저 내려가서 경계하고 있어 줘."


"오케이."


칼리브레가 바닥의 비상 탈출구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며 주위에 후래쉬를 연신 비췄다.

"다음은 내가 들어간다."


"피, 피터. 내가 먼저 들어갈게..."


에리가 힘없이 피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피터는 그녀의 힘없는 간절한 시선을 뿌리치고는 차갑게 말했다.


"에리, 너는 겐과 후미를 맡아. 나머지는 내가 내려가서 무전으로 신호를 보내면 즉시 순서를 맞춰 내려온다."

피터는 말을 마치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완전히 비상구 아래로 내려가기 전, 에리의 슬픈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에리는 애틋함이 담긴 눈은 피터의 마음을 고통스럽게하기 충분한 것이었지만 피터는 애써 참으며 사다리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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