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호위팀]
피터는 박스에 한가득 아이스크림을 담아 들고는 흥얼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외모가 빼어난 병사가 자신에게 초코 아이스크림을 주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다.
"뭐.. 그냥 주는데로 먹겠지?"
그는 자신의 방 앞에 서서 게이트 패널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그의 방문이 열리는 순간,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네. 피터 메이슨 소위."
"다, 당신이 왜 여기에..."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방금 전 테스트실에서 도움을 줬던 라미엘이었다. 그는 언제 포자르 아머를 벗었는지 두꺼운 근육이 물씬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갑주를 벗어도 키가 2m를 훌쩍 넘길만큼 거대했다.
"내가 자네의 호위팀이네. 그리고 저 병사들도."
라미엘은 옆으로 살짝 비키며 테이블에서 주스를 마시고 있는 병사들을 가리켰다.그곳에 있는 자들은 검은 군복. 뱀 두마리가 방패를 감싸는 문양. 인류 보안부의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었다. 주스를 홀짝이던 병사 몇명이 피터를 슥 쳐다보았고, 피터는 순간적으로 그들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뭐야! 저 사람이 우리 호위 대상이었어?"
제스가 당황한듯 말했다. 피터도 그들의 얼굴과 기억을 떠올리고는 잠깐 멈칫했다.
"너희는.. 그때 만났던-"
"워워. 우리도 할 말이 많아요. 들어와서 합시다."
테니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터치하고 안으로 들어가자며 엄지를 세웠다. 피터는 라미엘, 테니의 환영을 받으며 테이블로 걸어가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가 주위를 살피자, *택티컬 슈트를 착용한 MTMA 기동대원 4명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인류 보안부의 마크가 가슴팍에 새겨져있는 걸 보아하니 그의 호위팀이 분명해보였다.
"너희가 내 호위팀이었어?"
"그래요. 보옌 중위, 시스 대위님을 잃고 우리는 본부로 돌아갔죠."
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임무가 생겼다고 연락이 내려오더군요. 뛰어난 미래 예지 능력자를 지키라고."
"그래서... 당신들 9명이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나만을 지키기 위해 투입되었다? 그런거지?"
"그렇죠 뭐. 이제 저희 분대를 소개해야겠네요. 라미엘씨, 첫 시작을 부탁드려도 되겠죠?"
제스가 라미엘을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라미엘은 그저 허허 웃었다.
"알겠네. 소위, 우리는 방금 만났었지? 나는 2 은하계 소속 라이징 해머 대대의 4중대장, 라미엘 하르크라고하네. 만나서 반갑군."
"ㅈ,잘 부탁드립니다. 라미엘씨."
"우리는 잘 알고 있죠? 전 제스 테니슨 준위, 그리고 이 친구는 테니 제퍼슨 중사. 시스 대위님의 소대였지만 이제는 제가 소대 지휘관이에요. 테니는 부지휘관이고요."
적발색의 머리를 가진 여성이 자신과 자신 옆에 서있는 병사를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제 소대는 지금 메탄 007 기지에 먼저 배치되어 소위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먼저 호위 대상을 만나게 된 거구요."
"(고작 9명이 아니었구나. 휴우...)"
"그리고 여기 4명의 MTMA 기동대원들은 교전 중에 소위님 옆에 딱 달라붙어서 호위할겁니다."
MTMA 기동대원들을 가리킨 그녀는 피터에게 살짝 다가와 귓속말했다.
"저희 소대랑은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 소위님께서 알아서 지시하시면 될거에요."
"그, 그래?"
피터가 제스의 말을 듣고 기동대원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4명의 기동대원 중 한명이 팔짱을 풀고 그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기동대원은 헬멧의 바이져를 내렸고, 곧 반삭의 굳센 얼굴을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세일 네이트 준위입니다. 옆은 제 동료들이고요. 뭐해? 인사드려."
그의 말에 벽에 기대며 팔짱을 끼고 있던 대원들이 걸어나오며 바이져를 열었다. 여성 한명과 남성 2명이었지만, 남성 중 한명은 신기할 정도로 피부가 매끈하고 창백했다.
"순서대로.. 레나, 마이스, 자드입니다."
"어.. 그래. 나도 반가워."
피터는 어색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이며 피부가 이상한 병사를 살짝 쳐다보았다. 그러자 세일이 피터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옆으로 다가왔다.
"피부가 이상하지요? 귀공자마냥 피부가 무서울 정도로 창백하지만, 그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걱정마시죠."
방안 모두의 소개가 끝나자 라미엘이 짝짝 박수쳤다. 그는 피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잘 부탁한다고 따듯하게 말했다.
"이로서 모두의 소개가 끝났다네.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잘 부탁하겠네. 소위."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벨라토르시여."
"그런데 테이블에 올려논 상자는 뭡니까? 약간 젖어있는 것 같은데?"
테니가 상자를 가리켰다. 아차한 피터가 상자를 쳐다보니, 상자는 이미 아이스크림 몇개가 녹아 땅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런..! 다들 첫만남이라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왔는데. 녹아버렸잖아."
피터가 한숨을 쉬며 상자를 버리려고 집어들었다. 그러나 세일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기다려주시죠. 벌써 자드의 능력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지만... 자드!"
"예. 준위님."
"능력 발휘를 조금만 해줘야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자드는 피터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 상자를 조심히 건네받았다. 그는 아이스크림 상자를 들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떴다. 피터는 방안의 온도가 순간 차가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간단한 능력입니다."
세일은 피터가 보이도록 자드의 손을 가리켰다. 상자를 잡은 자드의 손에서는 허연 냉기가 스멀스멀 춤을 추고 있었다. 새하얀 냉기는 상자 속으로 스며들더니, 이윽고 상자를 감쌌다.
"다 됐습니다. 준위님."
"고맙다. 여기, 받으시죠."
세일이 아이스크림 상자를 건넸다. 피터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아이스크림 상자를 열어보고는 크게 놀랐다.
"아이스크림이 다시 얼어있잖아..? 이거 어떻게 한거야?"
"하하하... 자드의 능력은 액체를 얼게 만드는 겁니다. 녹아버려 섞인 아이스크림도 그의 능력이면 다시 본 형태를 되찾을 수 있지요. 그렇게 대단한 능력은 아닌 것 같지만, 여럿 목숨을 살린 친굽니다."
"대단하군!"
라미엘이 자드를 보며 경쾌하게 칭찬했다.
"이제 먹어도 되겠군요!"
테니와 제스도 피터의 아이스크림 상자에 손을 뻗었다. 피터는 그들이 모두 가져갈 수 있도록 테이블에 상자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왁자지껄 떠들며 아이스크림을 집는 그들을 보며, 피터는 왜인지 메탄 007 기지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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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203 행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의 행성은--- 쾌락! 타락! 학살! 순수함을 더럽혀라--!"
부서진채 똑같은 말을 반복하던 전광판이 광기에 가득찬 목소리로 변하고는 끊겨버렸다. 전광판에는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들이 잔뜩 찍혀있었다.
그리고 3M는 족히 될만한 거구의 악마가 시체가 가득한 들판을 걷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폭력, 파괴, 섹스, 추잡한 생각으로 똘똘 뭉친 여러 악마들이 살아있는 것을 고문하며 끝없는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
"그만해! 그만해애!! 아아악!"
얼굴에 종기가 가득한 악마가 붙잡힌 여성의 옷을 찢었다. 놈은 사람의 팔뚝만한 지옥 벌레를 여성의 성기에 쑤셔넣으며 거나하게 비웃고 있었다.
"아악! 아파! 안돼애..."
지옥 벌레가 속을 파먹고 더럽히기 시작하자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곧 광기가 가득한 쾌락의 신음으로 뒤바뀌어가며, 마지막에는 절정의 비명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거구의 악마는 그것을 보며 감미로운 기쁨을 즐겼다. 그의 입가에 얄팍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아드라말레크님."
"..?"
거구의 악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았다. 지옥의 전사들이자 밤에 기어다니는 자들인 나이트 크롤러가 인간의 해골을 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고르페우스 구역은 곧 우리의 손에 넘어올 것입니다.. 연방군들의 98%가 죽거나 타락했습니다. 고르페우스 구역의 살아남은 인간 대부분은 이제 저희를 섬깁니다."
"...좋은 소식이군. 다른 소식은 없나?"
"아뢰옵기 황송하지만, 수많은 *우주 포식자 무리가 저희가 있는 고르페우스 구역으로 이동중이라고 합니다.."
(*악마들은 티스를 우주 포식자라고 부름.)
"얼마든지 오라고해라!! 우리는 그들의 피와 내장으로 몸을 적실지니... 그들의 해골을 짓밟는 것은 우리가 될 것이다--!"
아드라말레크가 자신이 든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시체가 가득한 들판에서 즐거움을 나누던 악마들이 흥분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아드라말레크! 아드라말레크! 아드라말레크! 아드라말레크!"
"그리고... 숨어있던 자들을 잡아왔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크흐흐.."
나이트 크롤러는 옆으로 살짝 비키며, 자신이 끌고 왔던 남자를 아드라말레크 앞으로 휙 던졌다. 또한 나이트 크롤러의 뒷편에는 남자의 가족들로 보이는 여자 3명이 악마들에게 고문당하고 있었다.
"오, 자네는."
아드라말레크가 쓰러진 남자에게로 흥미로운 얼굴을 하며 가까이 들이댔다. 악마의 본능으로써, 아드라말레크는 자신 앞에 비참히 쓰러진 자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자네의 아들이.. 피터 메이슨이지?"
"...!"
미동도 없던 남자는 피터의 이름을 듣고는 몸을 꿈틀거리며 일어서려고 움직였다. 그러나 아드라말레크는 그의 한쪽 어깨를 짓밟아 부숴버렸다.
"으아아아악-!"
"아.. 감미롭도다. 자네의 아들은 우리가 가져갈거야. 내 말 알아듣겠나?"
"아, 안돼.. 너희들은 대체.. 누구야..?!"
피터의 아버지가 밀려오는 고통을 참아내며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었다. 그가 쇼크로 죽지 않은 것은, 아들을 생각하는 부성애의 존재 덕분이었다.
"우리를 모른다? 우리를..?"
아드라말레크가 그의 가슴 근육 한복판에 달린 지옥 군세의 문양을 보여주었다.
"아니, 너희는 모르는게 아니야. 우리의 존재를 그저 허황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게지. 그리고 너희들의 허황된 믿음은 악이 되어 돌아왔다. 자네도 알잖아? 우리가 누군지."
"아, 악마들.. 악마들이라고오..?"
"피터 메이슨 같은 자를 만들어 줘서 고맙네. 자네는 특히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해 주겠어."
아드라말레크가 피터의 아버지를 들어올리고는, 그의 가슴팍을 손으로 뚫어버렸다. 피터의 아버지는 숨이 끊기기 직전, 자신의 아들이 이곳에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크레텐스!"
"예... 아드라말레크님."
아드라말레크에게 이름을 불린 어느 타락자가 앞으로 조심스레 걸어나왔다. 아드라말레크는 피터의 아버지 시신을 크레텐스에게 휙 던지며 말했다.
"이 자의 시신은 누구도 건들지 못하게 하라.. 써먹을 곳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크레텐스가 시신을 질질 끌며 악마들의 무리속으로 사라졌다. 아드라말레크는 잠시 그 광경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넓게 펼쳐진 들판을 마주했다. 기괴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인공 태양이 들판을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
"곧.. 만나게 되겠구나."
아드라말레크가 들판에 쓰러져 있는 시신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는 인간의 피로 가득한 자신의 손을 꽈득 쥐었다.
"크흐흐흐.. 그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