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배신]
"제스! 당장 소위를 데리고 빠져나가게!"
라미엘이 그의 망치를 돌리며 잔해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드라말렉을 응시했다. 제스는 그런 라미엘의 말에 이를 악물고 일어났고, 피터를 비롯, 자신의 대원들과 라미엘을 보았다.
"...감사합니다. 라미엘씨. 몸.. 조심하십시오."
"하하.. 내 걱정은 말게나."
라미엘은 제스를 돌아보며 헬멧의 바이져를 올리고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바이져를 내려, 아드라말렉에게 맞설 준비를 마쳤다.
"어, 어서. 갑시다. 에리씨, 피터 소위를 부축해줘요. 전 대원은 테니 하사가 있는 수송차량까지 이동한다! 어서!"
제스가 옆구리의 상처 때문에 피를 토하며 외쳤다. 그녀의 지시에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신속히 참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스! 빨리! 빨리 와!"
저멀리 수송 차량의 문앞에서 테니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반겼다. 그의 바로 위 하늘에는 연방군 소속 *스타 파이터와 악마들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연방 우주군 소속 전투기.)
"알겠어-! 전 대원, 소위님을 호위하면서 수송 차량에 탑승-"
테니를 확인하고 수송 차량에 탑승하려던 제스가 잠시 굳었다. 그들의 바로 아래에, 두 날개를 가진 무언가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어느 대원이 위를 올려다 본 순간, 날카로운 창이 그에게로 날아들어 가슴팍에 꽂혔다.
"...!"
제스가 위를 확인하자, 보라색의 깃털을 가진 여성이 날개를 펄럭이며 땅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 안개 연대원을 죽인 그 창에게로 손을 뻗었고, 대원을 뚫고 땅에 박힌 그 창은 그녀의 손으로 재빨리 날아 돌아왔다.
"퍼, 퍼플 윙..!"
"..."
이제는 완전한 악마가 되어버린 마리가 그들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보호하고 있는 피터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피터는 자신에게 꽂히고 있는 칼날같은 시선에 순간 몸서리쳤다.
"그를 내놔."
모두의 마음을 사르르 녹일만한 고혹적인 목소리가 현장에 있는 자들을 때려댔다. 굳건한 의지의 검은 안개 연대원들은 조금만 삐끗하면 정신을 빼앗겨버릴 수 있는 공포에 떨며, 유혹을 견뎌내고 있었다.
"으윽.. 다들 정신차려! 저년에게 당하지마라..!"
세일이 주먹을 꽉 쥐며 퍼플 윙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윽고 검은 안개 연대원들의 화력 투사가 이어졌고, 수송 차량에서 대기중이던 테니의 분대도 재빨리 그들에게 합류해 퍼플 윙에게 화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어, 어서! 가세요! 어서요!"
"제스!"
피터가 제스를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요! 세일씨, 레나씨! 잘 부탁드릴게요. 소위님을.."
제스는 그 말을 끝낸 직후 퍼플 윙에게로 소총을 난사하며 전진했다. 다른 검은 안개 연대원들도 퍼플 윙에게 화력을 부어대며 조금씩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이런.. 제스.."
"빨리 가야합니다! 당신이 더 중요한 인재라구요! 아시잖습니까?!"
세일이 피터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준위님의 말씀이 맞아요!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한다구요! 팔런씨! 에리씨! 수송 차량에 있는 분들께 가서, 당장 출발할 준비를 해달라고 해줘요!"
"아, 알겠어!"
에리와 팔런이 수송 차량으로 먼저 달려나갔다. 그 뒤를 피터를 부축하고 있는 두 MTMA 기동병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봐! 문 열어! 어서!"
팔런이 수송 차량의 문을 쾅쾅 두들겨댔다. 그러자 안에서 칼리브레가 다급히 떠드는 소리와 함께 수송 차량의 두꺼운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팔런!"
"젠장, 여기서 탈출해야겠다는데!"
"뭐?! 방금전까지 여기에 있던 검은 안개 대원들은 운전수 하나빼고 다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우리도 몰라! 밖에 마리가 나타났다고! 완전 악마로 변해버렸단 말야!"
"마, 마리가?!"
"그래!"
"다들 여기서 빠져나갈 준비해요! 어서!"
칼리브레와 대화를 하고 있는 팔런의 옆으로, 세일과 레나가 나타났다. 그들의 옆에는 피터가 콜록거리며 부축받고 있었다.
세일은 피터와 에리를 먼저 수송 차량에 태우고, 레나에게 먼저 타라는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레나가 수송 차량의 위로 한 걸음을 옮겼을때, 수송 차량 주위로 불경한 자들이 모였음을 세일은 알 수 있었다.
"..."
세일이 조용히 뒤돌았다. 그런 그를 맞이하듯 딱봐도 20명이 넘는 나이트 크롤러와 하급 악마들이 그를 노려보고 킬킬대고 있었다. 세일은 말없이 한 손에는 권총을, 한 손에는 검을 뽑아들었다.
"준위님! 어서 타셔야-..."
레나가 수송 차량의 문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세일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 수송 차량의 내부를 돌아보았다. 4명의 병사들이 헉헉거리며 자신들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그중 단 한명, 하겐만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투욱.]
"레, 레나?"
"괜찮을거에요. 소위님."
레나가 수송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피터와 동료들이 일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여준 뒤, 수송 차량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여기는 시켄입니다! 제스 준위님! 어떻게 할까요!!"
그 모습을 본 운전병이 제스에게 다음 명령을 간곡히 애원했다. 곧이어, 치직거리는 무전기 사이로 제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츠---추..-발해! 어-,,서빨--"
"준위님?!"
"출발하라잖아! 빨리 밟아!"
하겐이 그에게 큰 목소리로 다그쳤다. 마침내 운전병은 크윽하며 울분을 참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의 페달을 밟으며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
.
.
.
탈탈거리는 수송 차량 뒤에서, 레나와 세일이 각자의 무기를 쥐고 악마들을 마주 보았다. 악마들의 더러운 혀가 레나를 향해 낼름거렸고 세일은 그런 악마에게 순식간에 총을 쏘아 미간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주었다.
"크르르.."
"크크크."
악마들이 제각기 그들을 비웃으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세일은 자신들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레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나."
"...예."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저도 따를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준위님."
레나가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오빠."
악마들이 그들에게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
"테리우스-!"
아드라말렉과 합을 주고 받던 라미엘이 자신의 뒤에서 참호 내부로 들어온 악마들과 교전하고 있는 테리우스를 불렀다.
"예!! 중대장님!"
테리우스는 그의 롱 소드로 데모니오의 머리통을 참수해버린 뒤, 그에게 대답했다.
"가라-! 여기는 내가, 내가 맡겠다! 가서 제스와 소위를 도와!"
"예?! 하지만 여긴 혼자서는 무립니다! 말도 안되는 명령, 하지 마시죠!"
그에게 달려드는 타락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짓이긴 테리우스가 라미엘의 말을 거절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서! 가라고! 지금 소위는 위험에 빠진게 틀림없어. 당장 가!"
"하, 하지만, 그건-"
"명령이다. 가라!"
라미엘이 아드라말렉의 가슴팍에 번개가 담긴 망치를 때려박으며 외쳤다. 테리우스는 그런 중대장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갑주로 가려진 그의 손이 노랗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조금 더 강했더라면, 라미엘을 도울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알겠..습니다."
테리우스가 그의 제트풋을 발동시켰다. 그는 그대로 참호의 콘크리트 천장을 뚫고 나가며 하늘로 솟았다.
.
.
.
.
피터를 태운 H-100 수송 차량의 운전병이 막 다이아몬드 전선을 빠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모두가 차량 내부의 좌석에서 늘어진채, 그들에게 주어진 잠시의 안전에 기뻐하고 있었을 때였다. 피터가 헬멧을 벗으며 후우 한숨을 내뱉었을 때,
하겐만이 굳건한 의지가 담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허벅지에 꽂혀있는 권총이 수송 차량 내부의 전등에 빛나며, 반짝였다. 루이를 닮은 공병단의 병사가 준, 그 권총이었다.
"하겐?"
하겐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의아함을 느낀 피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하겐은 피터를 비롯, 자신의 소중한 동료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
[타앙-!]
하겐은 그의 권총을 뽑아들어 수송 차량을 몰고 있는 대원의 머리통에 깔끔하게 구멍을 내었다.
"!!!!!!!!!"
"무, 무슨-"
"하겐!!! 무슨 짓이야!!!"
칼리브레가 그에게서 권총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하겐은 그의 의수 주먹을 피하고, 그의 가슴팍에 권총을 두발 쏘았다. 칼리브레가 가슴을 움켜쥐며 땅바닥을 굴렀다.
"아-"
피터는 그 순간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며, 미래를 보고 있었다. 하겐이 팔런의 목과 가슴을 쏘고, 에리마저 쓰러트리는 모습을. 믿었던 동료가 배반하는 최악의 결과를...
하겐이 피터를 제압할 목적인지 피터의 다리로 권총을 겨누었다. 순간 에리가 반응하며 그녀의 주먹을 휘둘렀으나, 하겐은 그녀의 주먹을 팔로 받아내고 그녀를 챙이 박힌 군화로 걷어찼다. 얼마나 강하게 걷어찼는지, 방탄복을 입고 있는 에리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질 정도였다.
"커어-.."
쓰러진 에리의 머리로, 하겐이 권총을 겨누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팔런이 잽싸게 그를 막아서며 에리를 감쌌다.
"지, 진정해. 진정하라고 친구! 제발!"
"..."
"왜, 왜이러는거야?! 대체 왜-!!"
"...그들과 계약을 했어."
"뭐..?"
"팔런. 넌 쏘지 않겠어. 하지만 이 차에서는 내려줘야겠다. 알겠나?"
"..."
팔런이 피터를 향해 시선을 맞추었다. 그의 걱정스러운 눈길과, 거기에 담긴 의지가 피터에게로 전해졌다. 팔런은 다시 하겐에게 눈을 돌리며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양손을 들어올렸다.
"아, 알겠다고... 갑자기 그러면... 젠장.. 알겠으니까 그것 좀 내려봐. 응?"
"..."
"우린.. 우린 친구잖아. 임마.. 이, 이러면 안되잖아..?"
하겐의 손이 더욱 심하게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손목과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겐은 마침내 권총을 내리고, 못하겠다는듯이 자신의 동료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우와아아아-!"
팔런이 두려움을 억누르는 함성과 함께 하겐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함성과 함께, 그의 기척을 느낀 하겐이 뒤돌아 권총을 들어올렸다.
"!!!"
[타앙! 타앙! 타앙-..]
목과 가슴팍에 총탄을 맞은 팔런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는 비틀거리며 컥컥 거리는 비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며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그가 숨을 내뱉을 때마다 굵직한 핏덩이들이 입에서 터져나왔고, 숨을 들이 마실때마다 그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물들이 그의 혀와 폐를 적셨다.
팔런은 마침내 발을 두어번 헛디디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
하겐은 자신이 쓰러트린 동료들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서 꿈틀거리며 감정이 솟아나오는걸로 보아, 차가운 표정은 그의 감정을 가리려는 가면일지도 몰랐다.
"...피터. 넌 나와 함께 간다."
"하겐..!"
"넌 죽이지 않을거야. 죽이면 안되니까..."
"그럼, 그럼 내 친구들은..! 네 동료들은 죽여도 되는거였냐..?"
하겐이 운전석에서 죽어있는 병사의 헬멧을 벗겼다. 그는 피터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를 내려다보았다.
"야, 지금 뭐하려는거냐..? 어?"
"...편하게 가자고."
"이, 이.."
"자고 있다가 깨면, 좀 나을거다."
"개새끼가아아-!!"
피터의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강하게 솟구쳤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충동에 몸을 맡기며 그의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하겐의 볼에 그대로 꽂혔고, 하겐은 뒤로 주춤거리며 넘어질듯했다. 피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하겐에게 달려들어 그를 넘어트린 뒤 주먹으로 얼굴을 계속해서 갈겨댔다.
"개새끼! 죽어!! 죽어어!!! 동료들을, 너를, 너를 믿었는데!! 믿고 있었는데-!!"
"큭, 크헉.."
"죽으라고!!"
피터는 하겐을 죽도록 두들겨 패는데만 집중하느라, 하겐의 오른손에 들린 병사의 헬멧을 깜빡 잊고 말았다.
[퍼억!]
단단한 헬멧이 피터의 옆머리를 강타하며 넘어트렸다. 피터는 그 헬멧에 맞고 비틀거리며 마지막으로 좌석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의 눈앞이 캄캄해지며, 훈련소 동료들과의 옛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
"(수송 차량이.. 멈췄다?)"
저멀리서 피터를 태운 수송 차량이 멈춘것을 확인한 마리는 그 안에 있는 피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선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자들을 뿌리쳐야만 했다.
수십명의 검은 안개 연대원들 화력을 받아내며, 조금씩 그들을 베어나가고 있던 마리가 날개로 그녀를 감쌌다. 더이상 이런 화력에 노출된다면 막 태어난것과 다름없는 그녀는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이미 저들과 싸워서 죽기 직전까지 몰린적도 있었으니.
"테니! 놈이 날개로 몸을 가렸다! 유탄으로 조져버려!"
제스가 그녀의 옆구리를 쥐고 날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테니가 그것을 보고 자신의 유탄 발사기를 장전하고는 마리에게로 신속히 접근했다. 마리도 그런 그의 행동을 날개에 달린 깃털 사이사이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테니가 그의 고폭발 유탄 발사기를 마리에게로 겨누었을 때였다. 마리는 그녀의 자주색 날개를 활짝 펼쳐 주위로 날카롭고 불경한 깃털들을 뿜어냄과 동시에, 그녀가 품속에 숨기고 있던 날카로운 창을 테니에게로 던졌다.
[쐐애애액-]
창은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테니의 복부로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창은 테니의 배를 양갈래로 찢어버림과 동시에 배치된 수송 차량에 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쾅!!]
"테니-!!"
"(이때다.)"
마리는 그녀의 활짝 펼친 날개를 펄럭이며, 피터가 있는 수송 차량으로 단박에 날아들었다. 제스는 쓰러진 테니에게로 달려가며, 눈물을 흩뿌렸다.
"테니! 테니!!!"
"..."
"정신차려! 테니!"
제스의 울음섞인 외침에, 테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입에서 피가 푸헉하고 터져나왔다.
"제, 제스.."
"의무병! 빨리!"
의무병 두명이 재빨리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의무병들은 잘려나간 하반신을 챙길 시간도 없이, 테니의 손목에 재생제와 강력 모르핀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명은 그의 쏟아진 장기를 다시 쑤셔넣으며, 살아나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제..스.."
"테니, 살 수 있어. 조금만 참아. 이제 거의 다 끝났-"
"제...스...꼭.. 살아남..아라..?"
테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생명이 꺼질듯한 촛불처럼 가녀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테, 테니."
"미, 미안해.. 미안.."
테니의 눈동자가 회색빛으로 흐려졌다. 그의 영혼이 마침내 상처받은 육신을 버리고 떠나가버리고 말았다.
"테니!!"
"주, 준위님. 어서 움직여야합니다. 수송 차량이 공격받고 있-"
"..."
"준위님!"
대원들이 비통한 감정에 잠긴 제스를 일으켜세웠다. 제스는 자신의 대원들 말을 따르며, 천천히 수송 차량으로 고개를 들었다. 자주색의 고혹적인 악마가, 피터 소위가 타고 있는 수송 차량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이 들어왔다.
제스의 눈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
.
.
.
마리는 수송 차량을 향해 날아갈때도, 수송 차량에 내려앉았을때도, 수송 차량의 장갑판을 찢어발기며 피터의 영혼을 느끼면서도, 흥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녀가 그리도 원하는 미래가 그녀의 손 앞에 있었다.
마침내 차량의 장갑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내부에 있는 피터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비록 주위에 피터의 동료들이 상처 입은 채 쓰러져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전부 좋았다.
"소, 소위님-."
마리는 피터를 보며 감탄하는 목소리와 함께,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차량의 내부로 기어들어가 기절해 있는 피터를 들어올려 자신의 품으로 껴안았다. 피터의 부드러운 살결이 그녀의 손가락에 닿자, 마리는 끝없는 황홀함과 행복에 도취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
피터를 드디어 얻어냈다는 감정에 자신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것조차 망각한 마리가 경계하며 뒤돌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방탄복 사방에 피가 튄 하겐이 서있었다.
"네가 와줄 줄 알았다. 마리."
하겐이 그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좌석에 턱하니 걸터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해 있었다.
"너, 너는.. 하겐?"
"그래. 용케도 악마가 되셨군."
"...네가 배신자였어?"
"....계약을 했다. 더는 말하기 싫군."
"푸흐흐흐."
"왜 웃지?"
"아- 동료들에게 그렇게 듬직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알던 녀석이.. 어찌 이렇게 되었을까?"
"..."
"응? 무슨 계약을 했지? 행성을 준다고 했나? 아니면 돈? 명예?"
"..."
"말해봐. 응?"
"..그런 사사로운 걸로 내가 이런 짓을 계획했다고 생각하냐? 이제 이곳에서 같이 빠져나가는 일뿐이다."
하겐이 상당히 분노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의 말에 마리가 다시 그를 비웃었다.
"아, 그래? 그럼 내가 널 데리고 가지 않겠다면? 정~말 비참하겠군. 안 그래?"
"...네년에게 누가 국소 마취제를 가져다 줬을지, 누가 이곳에 있는 녀석들을 제압하고 피터를 먹기 좋게 요리해줬는지를 알려줘야 하는거냐?"
"..."
마리가 그의 말에 하겐을 짜증난다는듯이 응시했다. 그러더니 표정을 풀고는 그의 가슴팍을 장난스럽게 손톱으로 두들겼다.
"하헤헤. 장난이야. 잔뜩 진지해져가지고는... 그래, 소위님을 이렇게 준비해줬으니, 나도 도움을 주도록 할게. 가자고. 내 어깨를 잡아. 꽉 잡는게 좋을걸?"
"..."
하겐이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마리는 그런 그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품속에 안겨있는 피터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