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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유혹과 보상] (102/131)



〈 102화 〉[유혹과 보상]

"...으윽."


어둡고 축축한 방 내부에서 피터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방안은 매우 불쾌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고통이 섞인 신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의 양팔에는 쇠사슬 채워져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양다리에는 무거운 족쇄가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장비들인 방탄복과 글라디오도 어두운  내부에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피터는 저멀리 계단 위에서 약한 빛이 스며들어오는 것으로 눈의 어두움을 조금씩 몰아내었다. 그의 눈은 침침했지만, 점점 어둠속에서도 밝은 시야를 유지해   있었다.


"내, 내가.. 어떻게 되었더라."


피터는 자신이 이곳에 갇히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조용히 곱씹었다. 미래 예지에서  아드라말렉의 공격, 믿었던 동료의 배신.


곱씹을수록 고통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일어나셨어요?"

"(이 목소리는...)"


자신 옆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피터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자그마한 빛이 피터와 그것의 사이를 잠시 가로막았지만, 그것은 이내 갑주를 입었음에도 고혹적이고도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며 어둠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마리."

"아. 제 이름을 불러주시다니.."


마리가 그녀의 날카로운 손가락이 가득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쥐었다. 또한 그녀의 볼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지금 그녀가 기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여기는, 여기는 대체 어디야? 나를 어디로 데려온거야?"


"아아. 너무 많은걸 한꺼번에 물어보지는 말아줘요. 아하. 그렇게 저와 대화하고 싶었던거군요?"

"...아니. 내 말에 대답이나 해."

"후후후. 여기는 저희가 점령한 연방군들의 전선이에요. 비록 다이아몬드 전선을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저희는 바로 당신."

마리가 피터의 앞으로 가까이 걸어왔다. 그러더니 빼어난 조각가가 만든것처럼 매끈하고 아름다워보이는 손이 피터의 볼과 머리카락을 슥슥, 마치 진주를 매만지듯 문질렀다. 그러나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그녀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마리. 그만해. 날 여기서 당장 꺼내줘. 내겐 돌아가야하는 곳이 있다고."

"네?"

"제발. 다정했던 너로 돌아와주면 안되겠어? 이렇게 부탁할게. 대체 왜 이러는거니?"

"..."

피터의 말을 들은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흑발이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피터는 그녀가 인간 시절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리."

"안돼요."


"뭐..?"

"안된다고요."


그러나 마리는 피터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보여주며, 피터의 부탁을 손쉽게 거절했다. 그녀는 소름돋는 그 웃음을 계속해서 유지한 채 피터의 얼굴에서 가슴팍으로 손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피터의 군복을 뚫고 아래로 그어내려졌고, 찢어진 군복 사이로는 피터의 붉은 피가 흘러나와 마리의 자주색 손을 통해 그녀를 새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아윽, 무슨 짓이야?!"


"쉬잇. 이제 즐겨봐요. 같이. 이제 우리에겐 행복한 미래만이 있어요. 아..."


고조되는 흥분과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마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피터의 귓가에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대고는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너무 행복해요."


.
.
.
.


연방군의 시신으로 장식된 커다란 전선 안에서, 아드라말렉이 뼈와 내장으로 만든 그의 옥좌에 앉았다. 그는 한눈에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그 옥좌 위에서 어느 병사의 선지로 만든 고기를 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드라말레크님."


"?"


어느 나이트 크로울러 하나가 아드라말렉에게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냐."

"퍼플 윙이 연방의 미래 예지 능력자를 사로잡긴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자신의 방에서 그를 갖고 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즐기게 놔두거라. 각자의 욕망을 챙길 때도 있는법이지... 난 피터를 그년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종속되기를 약속한다면, 후에는 퍼플 윙이 가지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거래했던 자는 어떻게 할까요."


"그 남자 말인가?"

아드라말렉이 하겐을 떠올리며 푸흐흐 웃었다. 하겐은 참으로 재밌는 욕망을 가진 자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되살리기 위해 자신들과 손을 잡다니.  사랑하는 여자가 완벽하게 부활하지 못한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를 데려와. 약속한 보상을 내려줘야겠군."


"알았습니다."

.
.
.
.


"어때요? 즐겁죠? 기쁘죠?"


마리가 양손으로 피터의 가슴팍을 뜯어낼듯이 쥐며 말했다. 피터는 그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으며 마리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꺼...져. 미친년아."


"...!"

피터의 날카로운 독설에 마리가 충격을 먹은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후 정신을 차린 다음 피터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씩 웃었다.


"저런,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기는 아직 서투른가보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피터를 보며 행복하게 미소짓는 마리가 그녀의 기다란 보라색 혀를 낼름거렸다. 그녀가 악마로 승천하며 생겨난 기다란 혀는, 피터의 이곳저곳을 핥아내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피터의 볼과 얼굴을 혀로 핥았다. 외설적인 침의 내음이 피터의 얼굴에 흩뿌려지며, 그에게는 헛구역질을 일으켰다.


다음으로는 피터의 피가 흐르는 가슴팍이었다. 마리는 비릿한 피의 맛을 오히려 즐기는 듯, 피터를 가열차게 핥아댔다.

"후후."

마리가 그녀의 입술 주위에 묻은 피터의 피를 손으로 쓱 닦아냈다. 그리고는 손에 묻은 피를 다시 혀로 게걸스럽게 핥았다.


"어때요?  혀가 닿을때마다, 몸을 움츠러드는게.. 조금씩 즐기는 것 같은데요~."

"...좆같은 소리 집어치워. 넌, 넌 더이상 내가 알던 마리가 아니야..."

피터가 마리의 말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말했다. 그는 마리가 이렇게나 추악한 악마로 전락해버렸음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

"하나...약속하지."

피터가 굳건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마리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일은 절대로, 죽어도, 영원히 없을거다. 고작 너의 장난질로 내가 친구들을 버리고... 돌아설 것 같냐?"


"..."


"그리고 내게는 꼭 돌아가서 만나야할 사람이 있어. 너같은 년 10억명보다 그녀 한 명이 내겐 더 소중한 여자다.내  자리에서 다시 약속하마. 넌 날 갖지 못할거다."


"...그래요?"


마리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그녀는 피터를 사랑과 애증이 담긴 눈으로 째려보고는, 그녀의 갑주 가슴팍 한가운데에 손을 올렸다.

[철컥, 투욱. 철컥- 투욱.]


그녀의 튼튼한 자주색 갑주가 무너져 내리듯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가리던 갑주의 부분들이 하나하나 떨어질 때마다, 고옥같이 매끈하고 육감적인 몸매가 피터의 눈을 가득 채웠다.  어떤 악마가 그녀의 몸을 조각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악마는 참으로 욕망에 충실한 놈이 틀림 없었을 것이다.

"...야. 뭔 짓을 하려는거냐?"

"...호호."


마리는 아무 말 없이 갑주를 벗은 몸으로 천천히 피터의 앞에서 살랑거렸다. 그녀의 흑발이 춤추며 마리의 은밀한 부위들을 살짝살짝 가리며 상당히 외설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피터가 아무리 일반인을 뛰어넘은 인내심과 일편단심을 지녔을지라도,  순간만큼은 그의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거봐요. 소위님도 그렇게 나를 원하고 있잖아요?"

"닥쳐."

"피하지마요. 받아들여요. 그리고..."

마리가 피터의 턱을 잡아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잡아끌었다. 피터의 입술과 마리의 입술 사이는, 단 5cm의 거리만이 남아 있었다.

"즐겨요."

마리의 미끄러지듯 꿈틀대는 혀가, 피터의 입안으로 파고들어 춤추기 시작했다. 곧이어 피터가 숨쉬기 고되어 읍읍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리의 혀가 타액으로 젖어 질퍽거리는, 외설적인 소음이 방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
.
.
.


"그 자를 데려왔습니다. 아드라말렉님."


"드디어."

나이트 크로울러 하나가 하겐을 아드라말렉 앞까지 인도한 뒤 어두운 참호 내부로 사라졌다. 지옥 군세의 위대한 돌격대장은 굳센 의지를 가진 사내를 조용히 내려다 보았고, 하겐도 전혀 물러섬 없이 아드라말렉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약속을 지킬 시간이지. 악마야."

"후흐흐. 더이상은 기다리지 못해서 미칠  같나? 응?"


"그런 같잖은 소리 따위를 하려고 당신네 악마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은건 아니다."


"하하, 걱정은 마라. 필멸자야. 하후케크가 네놈을 위해 약속한 보상을 준비해뒀으니까 말이다."


아드라말렉이 그의 시체 옥좌 위에 거만하게 앉아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타락자 두명이 어느 여성을 질질 끌고 아드라말렉과 하겐의 앞으로 걸어왔다.

"자, 지옥의 군세가 네게 약속한 '보상'이다."

타락자가 끌고온 여성의 얼굴을  하겐이, 감격과 기쁨에 젖은 얼굴로 변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모래밭에서 진주를 찾아낸 거지와도 같은 표정이었다. 하겐은 재빨리 달려가 타락자들을 밀쳐내고 그들이 끌고온 여자를 꼭 껴안으며 심호흡했다.


"루, 루이.. 루이.."

그의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었던, 그의 진정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하겐은 지금 껴안고 있었다. 그는 이것만을 위해 악마들에게 영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쳐왔다. 연방, 동료와의 믿음, 앞으로의 미래... 하겐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루이의 부활만을 위해 뼈를 깎고 살을 찢었다.

하겐은 북받쳐 오르는 행복과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 아래에 도취되며, 루이를 그저 조용히, 굳세게 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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