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생명 회수자 1]
아보림이 그의 두껍고 날카로운 손을 이블린의 목으로 가져갔을때,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의 손목이 누군가에게 단단히 붙들려 공중에서 멈춰져 있었다.
"...?"
"그쯤하시지."
"타, 타하리알?!"
타하리알이 얼굴에 기쁜 미소를 띄우는 이블린을 흘긋 보았다.
"마르시의 촉이 옳았어. 뭐해? 빨리 하겐 데리고 내 아지트로 가."
"알겠어!"
이블린은 황급히 하겐을 부축하며 참호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둘이 완전하게 대피한 것을 확인한 타하리알은 자신이 붙들고 있는 아보림의 면상을 노려보았다. 아보림 또한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타하리알을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무슨 짓이지? 넌 지금 아드라말렉님의 명을 무시했다."
"...아드라말렉님이 저 둘을 죽이라고 시켰든?"
"그래! 고작 이런 한심한 짓거리를 벌이는게, 얼마나 무지한 짓임을 알고는 있느냐? 마지막 경고다. 당장 비켜라."
"그렇게는 안될걸."
아보림보다 훨씬 여리여리하고 덩치가 작은 타하리알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아보림의 손목이 죄여들어오며 엄청난 압박이 가해졌다.
"크으으악! 이 자식이-!"
아보림은 그대로 타하리알을 강하게 밀쳐 떼어내고는 그의 검을 타하리알에게 겨누었다. 검의 칼날이 불경한 이빨을 낼름거렸다.
"넌 죽을 것이다. 우릴 배반하고, 아드라말렉님의 전언을 무시한 댓가이니라."
"그러시든지. 어차피 니들이랑은 나랑 더럽게 안맞았거든."
아보림이 함성을 지르며 타하리알에게 달려들었다. 타하리알은 그의 날개를 피며 아보림에게 당당히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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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가녀린 텐타시온의 몸으로 하겐을 들쳐업고 참호 내부를 달리던 이블린이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솜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악마의 몸을 괴롭혔고, 두 눈은 바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 이런...)"
방금전 자신을 공격한 아보림 같이,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인간 타락자들이나 동족 악마들이 이블린의 눈치를 살피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이블린을 죽이려는 것은 아닌듯 했으나, 하겐을 정확히 노리고 있다는것쯤은 멍청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블린은 하겐을 노리려는 동족들의 손길에서 당당하게 뿌리치듯 외쳤다.
"다가오지마!"
"...!"
"이 인간은 내 친구야! 너희들이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어. 죽고 싶다면 덤벼."
이블린은 그녀의 빛바랜 가운에서 날이 매우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를 꺼냈다. 텐타시온들이 포로들을 고문할때 쓰는 메스는, 상대방이 베인지도 모르고 크나큰 공격을 순식간에 저질러버릴 수 있는 위험한 날붙이었다.
"그 남자를 내놔."
어느덧 이블린의 발치까지 다가온 타락자 하나가 하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보림님께서 명령하셨다. 그 남자만 내놓으면 넌 살려주마."
"...날 살려준다고?"
이블린이 약간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다른 타락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느 불행한 타락자가 하겐의 어깨에 손을 뻗었을때,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켈!"
켈이라고 불린 타락자의 손목은 팔꿈치 안쪽까지 깊게 베여졌다. 그곳에서는 피가 썰물처럼 흘러나오며,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피는 멈출 기색 없이 콸콸 쏟아지는게 사방에 튀었다.
"미친년! 이게 무슨 짓이야!?"
"...이 남자는 너희와는 달라."
"뭐?!"
타락자가 그녀를 쏘아보여 분노했다.
"하겐은, 날 무시하고 천대하던 너희들과는 다르게 내 친구가 되어준다고 했어. 그에 비해 너희들은 어쨌지?"
"이, 이년. 지금 아드라말렉님의 명령을 무시하겠다는거냐? 그걸 뒤로하고도, 그 남자를 지킬만한 가치가 네년한테는 있는거냐?!"
"너희들을 모를걸. 소중한 친구를 지킬때는 누구나 눈이 돌아간다는걸."
"씨발, 일제히 쳐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타락자 하나가 글라디오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함성을 지르는 그의 뒤에서 3~4명의 타락자도 글라디오를 뽑아들고 있었다.
이블린은 처음으로 달려드는 타락자의 경동맥을 날렵하게 그어,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게 만들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타락자를 붙잡으며 놈들이 휘두르는 글라디오의 칼날을 막아냈다. 경동맥이 그여버린 타락자가 그의 동료들의 검을 맞으며 조각조각 박살났다.
"이야아아아-!"
다른 타락자 하나가 그녀에게 검 끝을 향하며 돌진했다. 이블린의 복부를 향해 깊숙히 찔러넣을 속셈이었다. 이 자 말고도 다른 타락자 하나는 강력한 로쉐 주먹을 낀 손으로 이블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블린은 초월적인 정신을 유지하며 공격을 받아쳤다. 비록 악마중에서 가녀리다는 텐타시온이었을지라도, 저 우매한 인간놈들에게는 그녀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법이었다.
"죽어-."
글라디오를 찔러넣으려던 타락자의 면상이 일시에 함몰되었다. 놈의 함몰된 얼굴 가운데에는 이블린의 주먹이 자리하고 있었다. 놈의 코에서 피가 팍 터지며 뒤로 나자빠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로쉐 주먹을 휘두르는 타락자는 이블린의 가슴팍을 때리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공격을 허용한 이블린에게 다음 공격까지 추가타를 입힐 수는 없었다. 곧바로 이블린의 메스가 타락자의 목으로 날아들며, 깊숙한 상처를 내었다.
"갸아아아악--.."
타락자가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이블린이 다시 하겐을 부축했다. 살아남은 공격자들은 주춤거리며 이블린에게 전혀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연약하다고 생각했던 텐타시온이, 그들을 조금의 상처도 없이 처리해버렸으니까.
그들은 말없이 도망치는 이블린과 하겐의 등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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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너무 시끄러운데. 무슨 일이라도 난게 틀림없어."
실렌티온을 보호하던 마르시가 문이 열린 틈으로 계단을 올려다보며 불길하게 말했다. 곧이어 누군가가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헉헉대는 소음이 들려왔다. 마르시는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나이프 하나를 쥐며, 문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마르시!"
"...아. 이블린. 그리고 하겐?"
"큰, 큰일 났어..! 동족들이 하겐을 죽이려고 해!"
"뭐?! 타하리알은?!"
"타하리알은... 우리를 지키려고 무서운 놈이랑 맞서고 있어. 어떡하지?"
마르시가 이블린에게서 하겐을 부축받으며 의자에 앉혔다. 강력한 파이프 담배의 약효가 거의 빠져나간 하겐의 눈에는 총명함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블린의 말을 들은 마르시는 분주하게 아지트 내부를 움직이며 도구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있었다.
"마르시! 어떡하지!?"
"기다려! 하겐이랑 잠시만 기다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지. 뭐."
"하, 하지만.. 타하리알은? 타하-"
이블린이 악 소리를 내며 그녀의 가슴팍을 쥐고 주저앉았다. 의자에 기대고 있던 하겐이 이블린의 비명에 정신을 완전히 차리며 그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블린!"
"헉...헉... 가슴이.. 가슴이 너무 아픈데. 아마도 갈비뼈 몇개가 부러진게 틀림 없겠어..."
"젠장, 설마 아까 그놈들 때문인가."
하겐이 그의 몽롱한 정신을 되짚어가며 방금전의 일을 떠올렸다. 로쉐 주먹을 장비한 타락자가 이블린의 가슴을 강타하는 모습을.
"됐어! 챙길 건 다 챙겼어. 하겐! 실렌티온을 업어. 여기서 빠져나가자!"
"...빠져나가자고? 아니, 너희들은 죄가 없잖아. 내가 실렌티온을 데리고 빠져나가겠어. 나 때문에 너희들이 왜 피해를 봐야하지?"
"...이미 타하리알이 아보림에게 맞서고 있어. 그 녀석이 죽든지, 살든지, 너와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탔다고 알려졌겠지. 나야 타하리알과 언제나 친했으니 숙청되는게 당연할걸. 아니면 뒤지는것보다 끔찍한 일들을 겪든가."
"미, 미안하다.."
하겐이 그들에게 미안한 말투로 조용히 속삭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실렌티온에게로 다가갔다. 실렌티온은 새하얀 침대 위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었지만, 그녀는 어딘가 고통이 엄습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실렌티온?"
하겐이 실렌티온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실렌티온이 눈을 떴다. 강력한 마인드 에너지 파동이 실렌티온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하늘을 향해 거대한 보라색 에너지 빔을 높이 발사했다.
[콰아아아--!]
"우악-"
하겐은 순간적인 섬광과 에너지에 노출되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위협적인 것이 아니었다. 말그대로 폭풍이 몰아치기전, 잠시 하늘이 때려붓는 비와 같은 것이었다.
섬광과 에너지의 폭발이 점점 잦아들며, 그 안에 있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렌티온! 침대 위에 서 있는 그녀는 공중에 높이 떠있었다. 그런 그녀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주위에는 그녀가 내뿜는 마인드 에너지가 보라색의 섬광을 반짝이며 불길함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시, 실렌티온?"
하겐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블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의 두뇌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직 마르시만이 이 불길한 전조 증상을 알아채고 하겐의 뒷덜미를 강하게 잡아당길 뿐이었다.
"이리와!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