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야, 네 자지가 그렇게 크다며!?
적당히 시끌벅적하던 술집은 일순간 조용해진다.
그리고 내게 날아드는 시선들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듯하다.
"아, 아니이… 그게 무슨 말?"
"야! 나, 다 들었거든?! 너, 엄청 뻔뻔하다!?"
얼굴이 시뻘겋다.
술이 있는 대로 취한 듯 보인다.
그리고 나 역시 얼굴이 화끈해서, 일단 저기 구석에 앉은 '누나'를 바라본다.
"아…."
그런데, 역시나 술에 취한 것은 '누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거기에 한 술을 더 떠서 눈을 감은 채로 자는 듯했다.
"…일단 저희 누나 좀 데려갈게요."
"누구 마음대로!!"
이미 술에 잔뜩 취한 일행들이다.
그 중에서 둘셋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내 앞을 가로막으려고 한다.
그런 와중에 휘청대는 몸뚱어리들.
위태위태한 꼬라지가 그대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아…."
"저리 안 가?!"
"아니, 아까 그쪽이 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기껏 오라고 해서 왔더니, 예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누나'였으니까, 그래서 가로막은 여자들을 억지로 뚫고 지나가려고 했다.
"어, 어머! 너, 지금 어디 만져써어!?"
"꺄아아! 변태 새끼야아!!"
뒤통수가 아주 따가웠다.
그리고 이마에는 진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후우… 어쩌자고요."
어차피 술에 취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사람들을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은 바보나 다름이 없었다.
"어, 음… 흐으음….'
그리고 나와 통화를 했던 사람이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키는 내 가슴 언저리였고, 머리카락은 단발에 흔히들 말하는 기가 좀 세 보이는 그런 얼굴이다.
특히나 역팔자로 휜 눈썹이, 도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불만이 아주 가득하다.
그렇게 나를 아주 잡아 먹을 것처럼 노려보다가 손등으로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저는 그냥 누나만 데려가면 되는데, 따로 할 말이 없으시면 그냥 갈게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동생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술자리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했을 지를 몰랐으니까.
그래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흐음… 키는 좀 크네."
눈을 한참이나 비비더니, 나를 올려다 보며 그렇게 말했다.
"…제 말 못 들었어요?"
"아니, 그건 됐고. 야, 너 술 마실 줄 알아?"
"저는 누나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온 김에 너도 한 잔 마셔."
"후우…."
내 말이 정말 안 들리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살피더니, 반 쯤 남은 소주병을 내게로 내밀었다.
"자."
"…이걸 마시라구요?"
"어. 너네 누나 안 데려 갈 꺼야?"
술에 취해 살짝 꼬인 혓바닥.
그리고 도발을 하는 것처럼 입꼬리가 씰룩인다.
"마시면요? 그럼 그냥 보내주는 거죠?"
"어."
"후우…."
술취한 사람과 말을 길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손에 들린 소주병을 그대로 받아들었다.
"꿀꺽, 꿀꺽, 꿀꺽… 흐으…."
쓰디쓴 소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더군다나 빈속이었기에, 오늘따라 술이 더 쓴 듯했다.
"…됐죠."
탁-
빈 병을 소리 나게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비키라는 눈짓을 보냈다.
"오… 좀 마신다? 자, 그럼 이제 안주 먹어야지."
노릇노릇하게 익은 은행꼬치를 내게 또 내밀었다.
"…좀 비켜요."
"아, 일단 이것만 먹으면 진짜 비킬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과장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어디! 누나가 주는데, 어?! 빨리 안 먹어!?"
"그래, 예슬이 팔 떨어져. 얼른 입 안 벌려!?"
주변에서는 또 얼른 안주를 먹으라며 보채기 시작한다.
"하아…."
말싸움을 하기도 귀찮다.
그래서 손에 들린 은행꼬치를 낚아 채서는 곧장 입안에 넣고 아그작아그작 씹어 삼킨다.
"야,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 자, 자. 이제 콜라 마실래?"
캔을 손에 든 채로 틱- 틱- 아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후우, 이제 됐으니까 저희 좀 갈게요."
"에이! 그냥 가면 섭하지! 조금만 기다려. 사장님!! 여기 소주 두 병이요!!"
"아, 뭐하는 거예요."
"괜찮아, 우리가 계산 다 할게."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아, 씁! 누나가 말하면 들어야지, 응?!"
막무가내였다.
'누나'만 어떻게 챙기려고 해도 몸을 가로막는다.
"어, 너, 또, 막 여자만 보이면 다 이래? 은근히 내 몸 더듬는 거 같다?"
"아… 뭐라는 거야. 좀 비키라니까요?"
"아니이! 술이 이렇게 남았는데! 이걸 안 마셔?!"
소주가 더럽게 차갑더라니, 냉동실에 보관이라도 하는 건지 술병에 아주 성에가 잔뜩 껴 있었다.
"지각주는 아까 그걸로 퉁치고. 자, 이걸 다시 받든가. 아니면 그냥 혼자 나가던가."
빈 잔을 내게 흔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서로 말은 안 통하는 듯했고.
차라리 술로 먼저 보내버리는 게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
'누나'의 친구들은 이미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사람들.
그래서 한두 잔도 힘겨워하더니, 결국은 '누나'처럼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다.
"흐음… 아직 안 취해찌…?"
"…네."
짠- 하고 부딪치는 우리의 술잔.
이제 테이블에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은 둘 뿐이었다.
"흐응…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해떠라아…."
"박한솔이요."
"아, 마따… 박한솔…."
괜히 본명을 말했나 싶기도 했지만, 대여섯 번도 더 말한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그럼 안 대… 왜 수지 힘들게 해애애…."
이건 열두 번도 더 들었다.
왜 바람을 피냐부터 네가 뭔데 여자가 그렇게 많냐까지.
"…힘들대요?"
"어! 심심하면 여자 꼬셔댄다고, 수지가 힘들대자나아!!"
그래도 누군가를 몰래 만난 적은 없는데, 그래서 나로서는 떳떳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모' 친구들과 그랬던 것도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흐응… 네가 어디가 잘나서, 막 수지 힘들게 하냐고오오…."
이미 풀려버린 눈은 초점이 흐릿하다.
이제는 술을 정신력으로 버티는 영역에 들어선 지가 오래였다.
"자, 여기 한 잔 더 받아요."
"하응, 수상해… 자꾸 왜 나 술 먹여…."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부들부들 떨어대는 손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쪼르륵- 하고 아주 잔 가득 소주를 가득히 채운다.
"야, 너도 받아… 아, 이름이 뭐랬더라. 박… 박…."
"박한솔이요. 여기."
"으, 응… 박한솔…."
내 잔에도 소주가 가득 들어차고.
다시 짠- 하고 부딪치는 술잔.
"꿀꺽, 꿀꺽, 푸하아… 흐응…."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몸을 파들파들 떨어댄다.
그리고 달달-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질 해 안주를 집어 먹는다.
"…술 더 시켜요?"
"응? 술 업써? 사장님! 여기 쏘주 하나 주세여어!!"
계속 이어지는 술자리.
분명 취한 건 같은데, 어째 지치지를 않는다.
그렇게 묵묵히 술잔은 몇 순배를 더 돌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오가는 술.
이제는 나도 술이 얼큰하게 올라오려고 했다.
"하아아…."
입에는 온통 술냄새로 가득했다.
머리에도 열이 확- 하고 오르는 기분이다.
"후우… 더 마실 거예요?"
이러다가 내가 먼저 지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꽉 찬 방광도 슬슬 한계에 가깝다.
"응… 당연하쥐.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해써어!"
저 말이 이제는 농담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화장실이요."
적당히 오른 취기에 나도 모르게 비틀비틀거린다.
그리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이미 이런 후회를 하기에도 늦은 듯하다.
"아… 나도 화장실."
그런 나를 따라 일어섰다.
…그냥 이대로 '누나'를 데리고 도망가버릴까 하는 마음도 살짝 동한다.
하지만, 일단은 화장실이 먼저라서 나는 비틀대면서 화장실을 찾았다.
이미 술집은 거의 비어있는 상태였다.
우리를 포함해서 기껏해야 두세 테이블이 전부.
"후우…."
걸으니까 술이 확- 하고 오른다.
그리고 화장실은 또 뭐가 이렇게 먼 건지.
또각- 또각-
그런 내 뒤로 구두굽 소리가 작게 울린다.
나는 애써 무시하며 남자 화장실로, 아니…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다.
"아…."
"…뭐해. 안 드러가?"
"…먼저 쓰세요."
"뭐?"
"…화장실 먼저 쓰라구요."
옆으로 몸을 치웠다.
그리고 벽에 기대 선 채로 턱짓을 한다.
"남녀 공용이네요. 먼저 쓰세요."
"그게 어쨌단 거야. 아, 몰라… 아무튼 먼저 쓴다."
아무래도 좋다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는데, 확- 하고 풍기는 술냄새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후우…."
그냥 집으로 갈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쯤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쉬이이이이익?
"……."
그리고 문 밖까지 들리는 세찬 물소리에 괜히 민망해지려 했고.
이어서 변기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흐으응…."
낑낑대는 신음이 몇 번 더 울리고.
손을 씻는 소리도 뭐가 그렇게 요란한지 밖으로 다 들려왔다.
그리고 또각이는 구둣발 소리가 다시 가까워진다.
"기다리다가 바지에 싼 거 아니지?"
"하… 비키기나 해요."
"응~"
방광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랫배까지 살살 아파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급한 손길로 바지를 풀었다.
"흐으으…."
소변이 무슨 폭포처럼 콸- 콸- 쏟아진다.
또각- 또각-
그런데, 멀어지던 그 구둣 소리가 가까워진다.
"야아!!"
"아, 까, 깜짝이야!"
좁은 화장실 안에 울리는 목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소변기 가까이에 붙인다.
"야, 네 자지가 그렇게 크다며!?"
쾌활하고 해맑은 목소리였다.
또각- 또각-
"…미쳤어요? 빨리 안 나가요?"
"여기 공용인데?"
화장실의 가장 구석까지 굳이 들어오는 여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동생 꼬추나 한 번 볼까?"
술에 잔뜩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여자라는 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