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자해하는 미친 븝미
―사각…사각…
이 야만적인 세계에 떨어진 지도 벌써 석 달째다.
마법과 검,마왕과 천사, 엘프, 드워프, 온갖 위험과 기연이 난무하는 판타지 세상… 정말이지환상 그 자체인 세상.
나는 그런 '판타지' 세상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사각…사각…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평소대로라면 컴퓨터 앞에서 템파밍이나 했었겠지. 마법 갈기면서 존나게 못생긴고블린 따위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사각…사각…
"흐으…."
오른손에 들린 작은 단검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곤, 여관 나무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진 하얀 붕대를 집어 왼쪽 팔목에 둘렀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혈흔의 향이 방 전체로 퍼져 나갔다.
붕대가 미처 가리지 못한 절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상처를 전부 가리기엔 붕대가 살짝 모자랐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붕대… 사러 가야 하나.'
당연하지만 의료용 붕대 따위가 아닌 그냥 뭉쳐놓은 천조각들이다. 치료 마법과 포션이 널리 퍼져있어 의료 물품 쪽으론 부실하다고 해야 하나.
다치는 즉시 치료 마법을 갈기거나 포션을 부으니까.
상처로 뒈지는 놈들은 포션 살 돈도 없는 좆밥 모험가거나 힐러를 못 구한 불우한 파티뿐이다.
그러니까, 다치면 힐 하거나 포션 부을 생각부터 하지 붕대 감을 생각은 안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확인한다.
'...'
붉은색의 로우 트윈테일의 소녀가 거울에 비추어졌다. 전체적으로 어디를 가나 눈에 띌 정도의 귀염 상이었지만 그것이 내 얼굴이라는 점과, 소름 끼칠 정도의 무표정, 내려간 입꼬리가 모든 것을 갉아먹고 있었다.
허벅지 살짝 아래까지 내려오는 프릴 치마는 혈흔이 묻었음에도 치마의 강렬한 붉은색 덕에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피가 굳으면 그제야 이상한 티가 나겠지만.
반대로 흰색 계열의 상의와 스타킹은 피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 상의는 둘째치고 스타킹을 신고 가야하나 고민해봤지만, 가터벨트를 푸는 것이 귀찮아 기각하였다.
나는 피가 멎자 곧바로 여관 밖으로 나갔다.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정도.
자연스레 아침밥을 처먹고 있는 투숙객들과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여관 주인의 시선이 닿았다.
투숙객들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내 눈치만 보았지만, 여관 주인은 내 꼬락서니에 겁이라도 먹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내게 말했다.
"이, 이보게나! 방 안에서 습격이라도 당한 겐가?"
그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어투로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멀쩡하니까."
"내 올라가서 확인해보겠네!"
설득력 제로.
젠장.
여관 주인이 저리 기겁을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주로 내 모습―역시 그것이겠지.
평판.
안좋은 사건이라도 나면 투숙객이 줄어들 테니까.
'여관, 옮겨야겠네.'
이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자해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날 내쫓을 거다. 여관에 자해하는 미친 여자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연속 숙박이 줄어들 테니까.
나는 천 가게 [금빛 수선]을 찾기 위해 으슥한 골목길로 떠났다.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피투성이인 채로 번화가를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
나는 마법사다.
단순히 불이나 물을 뿜어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고차원적인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 이 세상 사람들은 나 같은 마법사를 통틀어 아크메이지Archimage 라고 부른다.
아크arch― '위대한' 이라는 접두사가 붙기엔 인간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았지만, 독자적이고 강력한 마법을 구사한다는 점에선 다른 평범한 마법사와는 궤를 달리했다.
나는 특히나 원소 마법을 능통하게 다를 수 있었다. 그것이 자연 현상이든, 금속이든, 심지어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이든 간에.
이 세상의 마법이 대부분 화火, 수水, 명明, 암暗의 4원소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이점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좋은 점만 있지는 않았다.
삼라만상의 모든 원소 마법을 이해한 탓에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우선 마나와 인식의 경계가 융합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본질을 볼 수 있으며,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능력의 그 대가는,
지독한 권태와 무료함.
이건 저주에 가까웠다.
중세 판타지 세상에 떨어지고 조금이나마 흥분한 것이 마지막 감정이었다. 뭘 해도 흥미를 찾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감정은 매말라갔다.
물론 흥미를 못 느끼는 거지 감정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슬프면 울고 부당한 일에는 분노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무척이나 적어졌다는 게 문제지.
견고한 마법사의 이성은 감정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마법사의 이성.
마법사란 족속들은 늘 합리로 행동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실리를 취한다. 영원진리한 지식은 오롯이 독립된 이성으로부터 나온다고 굳게 믿는 그들은 항상 의심하고 의심했다. 이것이 맞는 선택인지. 자신의 선택이 맞다면 그것은 합리일 것이며, 진리로 표출될 것이다. 그리하면 실리이다. 이것은 마법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마법을 습득할수록 이는 심해진다. 마법사들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손익을 계산하면서 조금이라도 틀리다 싶으면 바로 발을 내뺀다. 모험가들이 마법사를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나는, 미웠다.
마법사의 이성이 미웠다.
초월과 융합의 경지에 이른 나의 마법은 마법사의 이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저들은 저럴까, 왜 그러는 것일까, 왜 구태여 손해를 보려 하는 것일까. 혹여 보상 심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행동으로부터 오는 보상이 손해를 메꿀만한 것일까.
막 말로 베프가 눈앞에서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게 지금 이 몸이란 말이다.
이세계 트립특별 치트라도 되는지, 나는 트립하자 마자 마법을 깨우쳤고― 이 꼬라지가 되었다.
시발.
이럴 거면 그냥 능력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게 나았다.
물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마냥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좆밥끼리 파티를 맺고, 인연을 맺고, 우정을 맺는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야말로 '이세계물' 초반 스타트의 정석이 아니겠는가. 강해지는 건 뒤로 미뤄도 괜찮았다.
게다가 성별까지 바뀌었다. 뭐 작정하고 몸을 분해하고 재구축하면 바꿀 수야 있겠다지만 실험해본 적도 없고, 딱히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하기도 싫었다.
물론 성공이야 하겠지.
난 내 마법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다.
그냥, 그냥.
의미를 못 찾겠다.
본래 내 성별을 찾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아니고. 성적 정체성이니 호모니 뭐니 하는 건 인간을 초월한 내게 있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 능력도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 작은 소망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세상과 내가 동화되는 기분이 든다. 세상과 하나가 되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끔찍한 기분. 마나와 인식의 경계를 융합한 대가였다.
아니 시발, 누가 융합해달라고 했느냐고. 그냥 트립하자마자 이 꼬락서닌데.
―툭.
"이 시팔. 조심히 안 다녀?"
사나운 목소리. 고개를 들어 나와 부딪힌 사내를 보았다. 나보다 30cm는 커다란 거구의 남성이었다. 조금 더 눈을 굴려 뒤를 바라보니 사내와 비슷한 체구의 남성들이 두 명 더 있었다.
지가 먼저 부딪혔으면서 왜 지랄이지.
"아니, 눈깔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 때문에 내 검이 부서졌잖아!"
나는 눈을 내려 그의 허리춤에 달린 검을 보았다. 한 손으로 들기 딱 좋은 숏소드였다.
부러져있었지만.
"내 말 안 들리냐? 꼬마야. 이거 3실버 짜리야. 알아?"
내가 '실수'로 부딪힐 리없었다. 적어도 이 도시 전체는 내 인식 범위 안에 들었다.
게다가 저 검, 부러진지 정확히 17일 하고도 2시간이 지났다.
이곳은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뒷골목'.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저들은 상습범이다.
"왜 말이 없어? 아가리에 꿀 발랐냐?"
나는 말 없이 사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대답 없이 가만히 멀뚱멀뚱 서 있자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걍 좆밥같은데 죽이고 옷 팔면 안 됩니까 형님? 비싸 보이는데."
"피투성이잖아. 깔끔하게 죽여도 옷 갖다 팔면 살인범으로 몰릴걸?"
자기들 딴에는 안 들리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집중만 하면 대륙 너머 바닷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어 보이고... 걍 죽이고 돈이나 빼?"
"…얼굴은 반반해 보이는데."
"이미 당하고 온 거 아니야? 피범벅이잖아. 얼굴도 생기 없어 보이고."
지금 나는 붕대를 몇 개나 사야 할 지 고민 중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그 지랄을 낼 수도 없고… 붕대 말고 걸레를 살까. 여관 옮기는 것도 슬슬 벅찬데… 도시를 옮겨야 하나.'
내가 고개를 떨구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참이었다.
"시발 되는 것도 없네. 걍 죽어라."
―턱.
땅을 박차고 순간적으로 앞에 접근한 사내는 내 목을 움켜쥐곤 하늘 높이 들었다.
"컥, 크학."
목에 가해지는 압박.
막힌 숨구멍.
숨을 쉬지 못하는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야, 몸 뒤져서 지갑 있나 찾아봐."
그는 내 목을 든 채로 방향을 바꿔 동료에게 내밀었다. 그들은 내 몸을 뒤지더니 지갑 하나를 찾아내었다.
"우왁 시발!! 형님!! 이년 돈 존나 많은데요?!"
"어, 얼만데?"
"79실버!"
"시발 그 정도면 금화 하나 값이잖아!"
"학. 흐큭…."
지독한 권태와 무료함을 이겨내기엔 작은 소망만으론 부족했다.
자극, 자극이 필요했다. 마약이나 자아실현을 통한 만족감 따위는 눈에 차지않았다. 그렇게 이 빌어먹을 이세계에서 꺼져버릴 듯한 자아를 붙잡고 몇 달을 버텼다.
초조함과 불안함.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이 내게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다.
삶.
나는 삶을 갈망하고 있었구나.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죽지않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었구나.
내가 이렇게까지 무언갈 갈망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환호했다. 이 세상에서 떨어지고 처음 겪은 '행복'이었다.
"시발! 대박 쳤다! 돌아가서 술부터 퍼마시자!"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저열하지만 아름다웠다. 이건 나 스스로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다. 삶을 갈구하는 순간만큼은 권태조차 잊고 필사적이게 된다.
아, 고통이여….
너는 결코 내게서 떠나지 않았기에 마침내 너를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형씨."
아 고통이여, 나는 너를 안다. 너는 존재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것을.
"뭐야? 왜 그래? 시발 얼굴 안 펴?"
"아니 형씨!"
"아 뭐! 씨발!"
내 영혼이 심연의 바닥을 헤맬 때에도 고통은 늘 곁에 앉아 나를 지켜주었으니.어떻게 고통을 원망하겠습니까.
"저년 웃고 있는데요?"
내게는 고통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