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지하수로에서 (1)
"하아…."
저렇게 순진한 사람은 나랑 상성이 안 좋았다.
나는 클레앙이 건네는 담요를 거부하곤 조심스럽게 말했다.
"클레앙."
"예?"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아."
죽기라도 하면 괜스레 찝찝하다.
지금 내가 하려는 짓은 일종의 피학자위다. 고통의 끝에서야 느낄 수 있는 생을 향한 갈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감정들. 당연히 평범한 자해로는 한계가 있었다. '죽지 않는다'라는 전제가 깔려버리면 머리가 급속도로 식어버리니까.
극한의 상황으로 마법사의 이성을 마비시켜야만 '진짜 나'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내 자아를 좀먹는 마법사의 이성을 죽여라.
그뿐이었다.
물론 모든 마법사가 다 나 같은 건 아니다.
경험과 지식의 조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지혜.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오랜 수련을 동반해 '마법사로서의 이성'과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잘 맞물려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아무런 수련도 하지 않고 마법의 극의를 깨우쳤다. 그것도 이세계에 떨어진 지 단 몇 초 만에.
그렇게 경험 없이 완성된 완벽한 정신은, 오히려 정신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디젤차에 가솔린 넣는다고 굴러가겠느냐고. 적어도 난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본래라면 금방 망가져야 할 것이 굴러가고 있다는 소리다.
자아가 분열된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내리는 판단이 온전히 나의 판단인지 모르겠다. 정신병에 안 걸린 게 용한 수준이다. 혹은, 이미 걸려있을지도.
"돌아가다뇨?"
클레앙은 갑작스레 돌아가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이, 이건부당해요. 전 제대로―"
"쉿."
-짤그랑.
이런 데기운을 빼기 싫었던 나는 대화보다 물질을 택했다.
클레앙은 손바닥 위에서 옅게 빛나는 은화 두개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2실버."
말없이 그에 손에 동전을 올려놓자,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람을 회유하는 데에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약간의 돈만 있으면 된다. 넘어오지 않는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는가를 먼저 생각하면 된다.
E급 모험가가 2실버라는 돈을 벌기 위해선, 정말 피나도록 몇 달을 모아야 한다.
며칠동안 쥐 떼 퇴치를 해도 고작해야 1실버. 거기에 네 명이서 나누면 1인당 25쿠퍼라는 적은 돈. 숙박비, 식량과 기름값, 장비 손질을 생각하면 다람쥐 쳇바퀴처럼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클레앙은 무언가 할 말이 굉장히 많아 보였으나 분한 표정으로 등을 돌릴 뿐이었다. 그는 내 말대로 지하수로를 떠나 길드로 복귀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놈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
……
…
사람이 죽는데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있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초조해졌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쥐들이 시체를 갉아 먹는 소리, 털보가 코 고는 소리까지. 모두 선명하게 들린다. 참고로 후드남은 잠에 들지 않았다.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후드남이 다가왔다.
불침번 교대를 할 시간이었다.
졸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딱 봐도 연기였다.
"금발 꼬맹이는 어디 갔지?"
"도망쳤어요. 춥고, 습한 곳은 싫다며 질색하더라고요."
후드남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알았다. 편히 쉬어라. 나머지는 우리가 서도록 하지."
나는 낡아빠진 천조각을 몸에 두르곤 구석에 처박혀 눈을 감았다.
딱히 지치지도 피곤하지도 않아 잠에 들진 않았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정신만 깨어있기를 몇 분, 후드남의 시선을 느꼈다. 개미가 기어오르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시선이었다.
그렇게 정확히 26분하고 41초가 지났을 때.
-부스럭.
천막을 열어 재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흥. 시발. 벌써 내 차례야?
―금발 꼬맹이가 튀었다.
―뭐? 시발 그게 지금 무슨, 아니. 아니지. 그년은 잘 있고?
―처박혀서자는 중이다.
동시에 들리는 후드남과 털보남의 대화.
―크흐. 좋아. 시작하자고.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내가 눈을 떴을 때엔 이미 내앞에 도착한 후였다.
"크하. 안녕하냐 마법사 나리?"
저열한 탐욕에 젖은 눈.
털보의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볼살은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푸르르 떨렸다. 뒤에 서 있는 후드남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털보와 시선이 마주쳤다.
털보는 퉤 하고 침을 뱉더니 검집을 들어 올렸고―
―파악!
"윽…!"
그대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두피가 찢어졌는지 눈가 사이로 피가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뭐야? 기절 안 해? 아쉽게 됐네. 흐럅!"
―콰직!
털보는 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검을 크게 휘둘러 옆구리를 가격했다. 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으읍, 욱. 크웩."
위액이 역류한다.
불침번을 서기전 먹었던 육포가 도로 나왔다.
통증 때문에 순간숨이 멈췄다. 털보는 내가 거칠게 숨을 고르며 꺽꺽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만히 서 있는 채로 날 구경했다.
"시발년.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시퍼렇게 어린년이 모험가 따위를 하러 와? 좆같은 마법 하나 우연히 배워서 위세 떨더니 지금 꼬라지가 뭐냐?"
―퍽!
"응? 좆같은 년아. 말을 좀 해봐. 내가 우습냐?"
―퍼억!
"윽… 흐윽."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른 듯했다. 목에선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쉰 소리밖에 나지 않았고, 두 눈은 피에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털보는 내 머리채를 잡고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머리칼도 시뻘건 게 피랑 잘 어울린다?"
―휙.
그리곤 그대로 집어 던졌다. 쿵! 하수도 바닥에 얼굴부터 처박은 나는 성대하게 코피를 쏟았다.
이거 두개골에 금 갔을 수도 있겠네…. 조금 더 세게 부딪혔으면 진짜 위험했을지도.
털보의 손엔 동전 주머니가 들려있었다.
"크하아. 이게 다 얼마야? 역시 마법사야. 돈 하나는 많은 십새끼들."
"적당히 해라. 나도 즐겨야 하니까."
"아, 그래그래. 난 볼일 끝났으니 너 알아서 해라."
욕망에게살해당한다.
저들의 저열한 욕망으로 내 삶이 찢겨나간다.
"흐, 흐으…."
그런데,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모든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온 몸의 힘이 빠진다.
입으로 흘러들어 가는 피 맛은 정말이지 비렸다.
"웃어? 지금 니가 무슨 짓 당할지 알고 있기나 해?"
"헤, 헤으. 흐히…."
"완전 미쳤군…."
심각한 상황임에도 웃음이 새어나오는 내가 미웠다. 수치심, 억울함, 절망감…. 평소의 '마법사 유진'이였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 날 감싼다.
후드남은 한 손으로 목을 꾸욱 하고 쥐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뜩이나 쉬기 어려웠던 숨은 후드남에 의해 완전히 차단되었다.
"본래라면 그대로 했었겠지만…… 마법사는 위험해서 말이지. 미안하다. 팔은 가져가마."
나는 멍하니 후드남이 꺼내 드는 연장을 지켜보았다. 나는 입을 벌리고 뭐라소리치려 했지만 막힌 목구멍에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톱이다.
후드남은 톱을 꺼내 들었다.
녹슨 쇠톱날이썩어버린 물가에 비친 불빛을 반사해 시퍼런 빛을 냈다.
나정도 되는 마법사가 팔 잘린다고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니었지만, 마법 행사에 지장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마법사 대부분은손끝을 통해 마력을 방출하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도 반항해야 할까.
간단한 마법 하나만으로도 먼지처럼 찢겨나갈 놈들이었다.
"이봐. 포션 좀 써도 되지?"
"엉? 아 그래라.지금 포션이 문제야? 손에 들어온 돈만 70실버인데."
"많기도 하군. 그럼 사양하지 않고 쓰겠다."
그럼에도 반항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 인정하긴 싫어도,
앞으로 찾아올 고통을 기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첫단추를 잘못 끼웠는지도 모르겠다. 무료함을 달래줄 수단으로서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고통이었으니…. 만약에 고통 말고 다른무언가가 있었다면, 정신병에 가까운 권태감을 없애줄 무언가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내 몸을 망가뜨렸을까.
스스로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후드남은 왼손으로는 내 목을 조르고, 오른손엔 쇠톱날을 든채 절단을 준비했다.
그 소름이 끼치는쇠의 감촉이 오른팔에 닿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그…윽 하그윽!! 히그으윽!!"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에 몸을 들썩였지만, 후드남에게 깔려 움직이지 못하는 지라 미약한 진동만이 흘렀다. 그득, 그드득….쇠톱날을뒤로 당기고, 앞으로 내지르기를 반복할 때마다 근육이 갈리고 뼈가 잘리는 난폭한소리가 지하수로에 울려 퍼졌다.
팔이 산채로잘려나가는 고통에 숨이 멎는다.
동시에 온 몸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경련한다.
나는 이가 부서지도록 꽉 깨물었다.
그럼에도 기절하지 않았다.
아크 메이지의 강인한 정신력은 매 순간순간을 선명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 죽기 싫으면."
나는 침을 질질 흘리며 떨어져 나간 오른팔을 곁눈질로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후드남은 내 오른팔을 걷어차 저 멀리 치워버렸다. 풍덩! 더러운 지하수로에 빠진 오른팔은 물의 흐름을 타고 저 멀리 떠나갔다.
팔 절단을 마친 후드남은 나무 막대기에 천을 두르더니 거기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설마 불로 지져서 출혈을 막으려는 건 아니겠지. 소리 지를 힘도, 움직일 힘도 없었던 나는 흐느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치지직!
"흐그으윽!!."
불타오르는 횃불이 절단면을 지진다.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 살이 타는 냄새는, 각자의 의견이 갈릴 수는 있어도 대부분어패류가 타는 냄새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 역겨운 냄새가 절단면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흐으으…."
내 목숨이온전히 타인의 손에 달린 이 기분…
아픔에 몸부림치면서도 미약한 흥분감을 느낌과 동시에, 극심한 자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모든 고통과 굴욕은 저속하지만 결코 끊을 수 없는 자극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씨발, 넌 저게 꼴리냐?"
"마법사라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씨이발. 팔다리 자르면서까지 하고싶냐고."
"넌 이해 못 하겠지.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지랄 육갑을 떨어요 씨발. 저딴 애새끼 안을 바엔 창관 가서 쭉빵한 창녀들 안고 말지."
이어서 울리는 한숨.
후드남은 쇠톱날을 들고 반대편 팔도 잘라야 하나 고민한 듯했지만, 힘없이 널브러진 내 모습을보곤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순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우악스러운 손길.
"하윽!"
-투두둑!
후드남은 내가 입고 있던 상의를 거칠게 뜯어냈다. 작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새하얀 가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핏물에 젖었지만 희고 부드러운 피부는 건재했다. 남자는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에 감탄한 듯 조심스럽게 피부를 쓸어내렸다.
순간 차오르는 역겨움.
"그, 그마, 그만―"